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24)
〈 524화 〉 524 게임제작사
* * *
1.
백소천은 은근히 해응응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실의 인간 대신 게임 속 괴물에게 화풀이를 하는 성정은 높이 평가하지만…’
무림에서의 은원은 모두 청산했다며 새로운 은원에 얽매이지는 않겠다고 선언, 자신에게 복수를 꾀하는 대신 수하로 받아준 해응응.
본인이야 절대고수의 초연함을 표방하고 있지만 백소천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선 불안을 느끼고 있다.
“내원주님은 묘하게 장문인을 두려워하시네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야심한 밤.
마크2가 새끼발로 살금살금 걸어서 몰래 벌꿀사탕 한 박스를 훔쳐갔음을 알고 진심으로 분해하는 여자의 인내심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문파의 체면이 떨어져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비밀로 하는 심정은 진심으로 참담했다.
그런 백소천이 해응응을 찾아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별 일이네요. 은근히 저를 피해 다니던 백소천이 제 발로 저를 찾아오더니.’
해응응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백소천이 은연중에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실력차이가 현격한 우지우는 겁도 없이 까불거리지만 막상 경지가 높은 백소천은 감히 말실수라도 할까봐 말도 제대로 못 한다.
경지가 막힌 걸까.
깨달음을 구하려는 걸까.
호기심을 품은 그녀의 시선에 백소천이 답했다.
“본관과 함께 게임사를 찾아가서 항의를 하는데 동참해주십시오.”
“?”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게임들을 만들 수가 있냐고 말입니다.”
망겜전문가로 전직한 백소천.
그의 뚜껑이 열리기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2.
해남파 내에서 급격히 악명을 떨치는 망겜 중 대표격인 .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이 쓰레기게임은 라는 제작사에서 출시한 유일무이한 게임이었다.
보통의 게임사라면 이런 쓰레기게임을 판매한다는 사실 자체에 수치심을 내리고 판매를 중지하거나 게임사가 파산해서 사라지고도 남아야 했을 터.
[용케도 이런 터 좋은 곳에 사무실을 두었네요.]해응응의 집권 이후 땅값이 수직으로 솟구친 해남동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비싼 땅값을 자랑하던 구 일성길드의 행정구역인 일성동.
매매가 기준 평당 2억을 돌파한 알짜배기 땅에 버젓이 사무실을 둔 꼴을 보니 화가 났다.
[이딴 쓰레기게임을 만들었으면 산골 오지로 유배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동감입니다. 아주 파산까지 해버릴 것이지, 무슨 염치로 게임사가 존속하는 건지 괘씸해 죽겠습니다.”
직원 얼굴을 보거든 멱살부터 잡을 것처럼 단단히 화가 난 백소천 때문에 해응응은 자기는 저 정도로 화난 건 아니라서 속으로 선을 그었다.
남 보기에 쪽팔린다 싶으면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체 할 작정이었다.
“여깁니다.”
사원증 찍고 들어가는 빌딩도 아니고 경비가 입구를 지키는 모습도 없다.
보안이 지나치게 허술하다 싶었지만 주소지를 찾아가서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딴 게 사무실?”
10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사무실.
있으나 마나한 반투명한 유리문.
그 위로 빼곡이 들어선 상호를 알리는 네임태그들.
다닥다닥 붙은 수량도 가관이다.
비행기에 이만한 태그가 달렸다면 격추 수 50기가 넘는 에이스 오브 에이스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숫자의 상호가 잔뜩 붙어있다.
[엄브렐라사][시미럴사][바니바니사][뤼팽사][킬링머신사][도죠사][스페이스레스토랑사]이름도 가관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게임사 이름부터 처음 보는 게임사 이름까지 온갖 게임사들이 나란히 모여있다.
[이거 유령회사 아닌가요?]“어이가 없군요. 협회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령회사들을 남겨뒀는지.”
[백소천씨도 원래는 협회에 있었잖아요.]“저는 십대길드 대응책을 세우고 A급 이상 게이트를 폐쇄하고 다니기도 바빴습니다.”
어찌 된 영문이든 저 사무실이 절대로 정상이 아닌 건 확실했다.
[연락처는 있나요?]“하나 있군요. 전부 같은 번호입니다.”
통화를 걸어 방문사실을 알리니 20분쯤 지나서 대머리 정장남 한 명이 건물에 들어왔다.
이곳에 방문한 이래로 처음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해마다 한 번씩 출근하고는 하는데 올해는 그게 오늘이군요. 반갑습니다. 유관심 변호사입니다.”
“해남파 내원주 백소천이라고 하네. 이쪽은 장문인 해응응. 설명이 필요한가?”
“그럴 리가요. 대한민국에서 묵언검객님을 모르면 간첩 아니겠습니까. 브이튜브에 올라온 반요곡 시리즈는 세 번이나 정주행했습니다.”
백소천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망검객이 탄생한 계기는?”
“사생아왕자가 어머니라고 불러서입니다.”
“뚜따가 겁을 먹으면 하는 일은?”
“땅을 파고 들어가 덜덜 숨습니다.”
검증을 마친 백소천이 해응응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찐팬입니다.”
“…….”
그거 알려줘서 어떡하라고.
당황한 해응응이 수첩을 꺼냈다.
“아, 네. 염치불구하고 한 장만 더 부탁드려도 될지…”
평소에는 인파에 둘러싸이며 너도나도 사인해달라고 하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결코 사인을 해주지 않는 해응응이지만.
이 건물에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기에 선심 써서 두 장이나 사인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인이 끝나자 백소천이 분위기를 잡았다.
“게임 하나에 불만이 커서 게임사를 찾아왔는데 대놓고 유령회사인 꼴을 보니 어이가 없더군. 이거 한국지부만 이런가?”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나라든 비슷할 겁니다. 현존하는 가상현실게임은 다 이렇습니다.”
“원래 있던 게임제작사들은 있을 거 아닌가.”
“아, 그치들은 다 망했죠.”
“…전부 말인가?”
“세상에 풀다이브 가상현실게임이 출시됐는데 컴퓨터로 끼적거리면서 할 게임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과금을 해도 다 가상현실게임 가서 하는데. 무료게임 빼고는 서버비도 안 나와서 사실상 전멸이죠.”
그런 트랜드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이 무인빌딩.
직원 한 명 없는 유령회사들로 가득한 기묘하리만치 조용한 빌딩이었다.
“자네는 뭔가.”
“관리자입니다.”
“제작사에서 의뢰를 받았나?”
“아마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아마도?”
“저도 얼굴을 보고 채용된 것이 아니니까요. 묘한 채용공고를 보고 연락을 남겼더니 서면으로 합격통보를 받고 관리직이 되었습니다.”
백소천은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외계인이 만든 게임 아니냐는 말이 많아도 그러려니 했건만, 진짜 외계인 놀음에 휘말린 기분이군.”
“아무렴 어떻습니까. 게임만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 재미라는 것이 없으니까 화가 나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분풀이를 할 대상이 없는 원한이란 허탈함만을 부른다. 백소천은 손찌검이라도 하려고 손을 들었다가 그냥 손을 내렸다.
무고한 양민에게 분풀이를 하기엔 무림인으로서의 체면이 너무 상했다.
사실 정파 무림고수는 심후한 내력과 고강한 무공 못지않게 정신수양도 깊어서 쉽게 분노하지 않는데, 그를 이 정도로 화나게 만든 게임이 대단한 거였다.
“서버실은 어디에 있나?”
“모릅니다.”
“제작사의 다른 연락처는?”
“없습니다.”
“돈 주는 계좌는 있겠지?”
“매번 달라집니다.”
뒤를 쫓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래서 협회가 망할 똥겜제작사에 쳐들어가 서버를 내리지 않고 순순히 공략을 하고 있었군.”
용무가 끝난 백소천이 기진맥진하며 건물 밖 카페로 내려간 사이, 이번에는 해응응이 내심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무림비망록 제작사도 여기에 있나요?]“제가 관리하는 내역에는 없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들, 전부 실존하는 세계인가요?]“너무 깊은 질문을 물어보셔도 곤란합니다. 전 단순한 서면계약 관리자일 뿐이니까요.”
[제가 여기 건물을 전부 부수면 그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자동응답기마냥 하나마나한 소리만 골라서 하던 유관심 변호사의 말문이 처음으로 막혔다.
“농담이시죠?”
[진심인데요.]“굉장히 뒷감당이 힘들 것 같은데요.”
[비겁하게 대리인이나 내세워서 문답을 피해왔으니 자업자득이죠.]“뭐가 됐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전 이만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해응응은 흔쾌히 길을 열어주었다.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안도하던 유관심 변호사의 주머니에서 사인지가 스윽 딸려 나왔다.
“아니, 저기 묵언검객님?”
[가신다고 하지 않았나요?]“사인지는 좀…”
시치미 뚝 떼고 고개를 돌리는 해응응.
사인지를 인질로 잡혔음을 깨달은 변호사가 깊은 한숨과 함께 항복 선언을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연락을 올려볼 테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주십시오.”
[재미없는 게임은 존재 자체가 죄악이에요.] [인간적으로 같은 망겜은 없애주세요.]사실 백소천에게 올라갔던 보고서는 모두 해응응에게 먼저 올라갔던 것.
그 게임이 얼마나 하기 싫은 똥겜인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