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48)
〈 548화 〉 548 업보검객
* * *
1.
해응응은 삼일을 꼬박 앓아누웠다.
주로 20여일에 걸쳐 장삼단봉 어르신의 설교를 듣는 고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튼 고생은 고생!
그 고생을 하고도 끝내 헤비쿠커(멀티모드)를 클리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 지난 며칠간의 일이다.
“길드장님. 방문요청이 들어왔는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자 병문안을 온 방문객들을 맞이할 정도로는 기력을 되찾았다.
병문안 선물은 으레 받는 이의 건강상태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한 손을 못 쓰는 환자한테 껍질부터 깎아야 하는 과일을 주는 건 못된 짓이고, 뚜껑만 까면 마시기 좋은 과일주스를 가져오는 것은 센스 있는 배려다.
그러면 종말점에 걸렸다고 추정되는 사람에게는 무슨 선물을 구해줘야 할까.
“여기 병문안 선물로 귤 한 박스를 사왔습니다.”
“저는 약소하지만 고려청자를…”
“흑의종군 간부피규어가 출시된 김에 가져왔다.”
“혹시 몬스터의 두개골은 좋아하십니까?”
“던전에서 루팅한 비급서인데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시죠.”
방문객들은 그냥 아무튼 귀한 걸로 챙겨봤다.
쏟아지는 각양각색의 선물더미.
스러운 선물테마.
해응응은 감격 받았다.
크리스마스 트리 밑을 가득 채우는 선물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지금 그녀의 병실 앞에 놓인 선물들을 나무 밑에 놓으려면 앞마당에 세계수를 심어야 할 기세다.
이렇게나 많은 선물이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계속 들어오고 있다니!
‘이런 좋은 문화는 마크2에게도 알려줘야죠.’
선물이 갖고 싶으면 한 번씩 앓아누워라.
딸에게 좋은 거 알려주는 나는 훌륭한 엄마!
“기억. 메모리 데이터에 저장했습니다.”
혼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기분도 부쩍 좋아졌다.
기분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몸도 개운하다.
말똥말똥.
눈에서는 생기마저 감돌았다.
정말로 몸이 아파서 앓아누운 것이 아니라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앓아누웠던 것인지라 기분이 풀리니 금방 최고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세간의 걱정과 달리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평소처럼 빌딩을 수직으로 뛰어다니고 비둘기를 잡으며 건강하게 강환을 던지며 놀아도 될 정도!
하지만 여기서 일어나면 모처럼 환자대접을 받는 것도 끝난다는 생각에 일어날 엄두가 안 났다.
‘환자대접이 끝나면 그걸 해야겠죠…?’
헤비쿠커.
상상만 해도 병상에서 일어날 의지가 싹 가신다.
‘수련이라면 즐겁게 할 수 있겠지만 포만감을 올리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입에 퍼다 나르는 단순노가다는 정말 질색이에요.’
그녀로서는 그나마 다행이게도 우지우와 민우성이 서로 협력하여 헤비쿠커를 대신 깨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걔들도 단단히 벼르고 있더라.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도움이 되겠다고.”
“기특하네요. 이제 저 대신 방송도 할 줄 알고.”
“스트리밍 명문정파 해남파의 간부들인데 그 정도야 당연하지.”
그들이 아니었으면 대신 할 사람도 없으니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일어나야 했을 터.
간부들 덕분에 게으름을 부릴 수 있으니 장문인으로서 보람이 느껴졌다.
잘 키운 간부 하나면 일주일 농땡이도 안 부럽다!
“좀 더 자지 그래. 아직 피곤할 텐데.”
“딱히 졸리진 않은데요.”
“몸이 안 좋잖아. 쉴 때 푹 쉬어.”
채찍시뮬레이터 이후로 잠시 소원해졌던 이소혜가 잠시 쌓였던 앙금을 잊고 곁을 지켜주었다.
“아영이는요?”
“우지우 대신 접견 중. 방문객이 워낙 많아야지.”
반쯤 일으켰던 몸을 도로 침상에 눕혔다.
어디 아영이가 귀찮은 방문객들을 얼마나 잘 추려내나 누워서 지켜보니, 평상시에 친분이 없는 이들은 모두 걸러졌다.
문파의 최고고수 장문인이 쓰러졌다고 양아치처럼 구는 이들도 있을 법 한데, 잡음 없이 잘 제어한다는 것부터 주아영의 솜씨가 증명된다.
‘마크2가 제 여리고 순수한 면을 닮았다면 아영이는 저의 성실하고 독한 면을 닮았네요.’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 할 것은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자신의 한 면모를 배운 것.
‘아영이랑 마크2를 합치면 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될까요.’
하나는 친동생처럼 키운 아이.
하나는 딸처럼 키운 아이.
어느 쪽이든 마음이 가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떨까.
그들의 사이가 조금 궁금해졌다.
막대한 공력에 힘입어 해남파 전체를 아우르는 그녀의 기감영역.
영역 내의 움직임이 제 손바닥 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머릿속에 공감각으로 새겨졌다.
개중에는 뷰티무공을 가르치는 특별수련동의 간부들도 있고, 중화팬과 중식칼을 들고 출근해서 액션 안녕하살법을 펼치는 한 무리의 무림숙수들도 있었다.
“?”
무림숙수들이 객잔은 어쩌고 해남파에는 무슨 일로 출근했지?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 출장요리를 하러 나왔나?
무림에서야 출장요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각박한 현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 발품을 파는 것쯤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솜씨나 한 번 볼까.
맛있어 보이는 건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해야지.
흑심 가득한 이유로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는데 숙수들이 향하는 장소는 요리설비가 갖춰진 주방도, 공개요리를 할 공터도 아니었다.
“??”
무림숙수들의 목적지는 우지우와 민우성이 기다리고 있는 캡슐방이었다.
2.
민우성은 조리도구를 잔뜩 짊어지고 온 무림숙수들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도구는 왜 가져왔습니까?”
“저희 무림요리 하라고 부른 거 아니었습니까?”
“우지우 씨.”
“아하. 캡슐에서 요리한다고 말하는 걸 까먹었네!”
“…하아. 뭐 오신 김에 가져온 요리재료가 아까우니 한 끼 식사부터 하고 들어가죠.”
전국구 프랜차이즈 의 대표 인금수는 관록이 붙은 얼굴로 당당하게 조리장으로 향했다.
갓 무림숙수가 되었을 때는 어린애와 노인만 보이면 벌벌 떨던 그였지만, 막상 객잔을 경영하다보니 분위기도 자유롭고 시원시원한 객잔운영 덕분에 재미를 단단히 붙였다.
사업이 커지고 확장하면서 이게 다 내가 만든 프랜차이저 왕국이다! 하는 자부심을 느끼는데 요즘은 해외에서 자기 나라에도 객잔을 만들고 싶다고 찾아온 유학파 색목인 숙수들도 늘어났다.
“아! 여기도 대회장 없을 때는 이렇게 생겼구나. 왠지 신기하네.”
“유정아, 너무 돌아다니지 마! 철없는 무림숙수가 함부로 돌아다니면 대형문파를 찾아온 사파조직원한테 납치당할지도 모른대.”
“아하하. 철봉오빠. 무협지 너무 본 거 아니에요? 해남파 같은 초대형 거대문파 한복판에서 어떻게 납치를 당할 수가 있겠어요? 지켜줄 사람도 많은데.”
그 힘든 일을 실제로 겪었던 우지우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안내했다.
“여기서 조리하시면 됩니다.”
“칼이 많군.”
“예. 다마스커스 칼로 중식도, 식도, 과도 등등 필요할지도 모른다 싶은 칼은 내부에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일단은 칼질을 배우는 문파니까요!”
“너무 짧다.”
“예? 죄송합니다. 얼마나 긴 칼을 찾으시는지.”
도광기는 식칼을 허공에 휘두르고 슈슉 슈슈슉 찔러보고는 말했다.
“120cm는 됐으면 좋겠군.”
“…요리에 쓰는 칼 구하는 거 맞으시죠?”
“안심해도 좋다. 재료 및 손질은 내 담당이다.”
인육객잔도 아니고 그걸로 안심이 되겠냐고!
불신에 가득 찬 우지우를 안심시키는 것은 냅다 달려와서 도광기의 뒤통수를 후려친 아주머니였다.
“광기 이놈아! 너가 입 열면 우리가 뭘 만들어도 인육객잔처럼 보이니까 얌전히 구석에서 허튼 짓 하는 놈들이 없는지 감시만 하라고 그렇게 가르쳐도 또 기어 나와서 대화를 하고 자빠졌니? 응?”
“…아프다. 때리지 마라.”
“그럼 아프라고 때렸는데 안 아프면 쓰겠냐? 이 미련곰탱이 같은 화상아!”
슬쩍 슬쩍 보법을 밟아가며 피하는데도 신묘하게 간격을 따라가며 등짝을 퍽퍽 내려치는 김미애 팀장의 장법에 우지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무림숙수들도 나름 무공에 일가견이 있다는 말이 정말이었구나.
저 장법의 이름이 등짝팡팡장법일지 오장파괴술일지 궁금해하던 우지우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며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기자 씨익 웃었다.
“거 보십쇼. 내가 무림숙수들 데려오면 날먹 할 수 있다고 했죠?”
“…기대 이상이기는 하군요. 인정하죠. 이번만큼은 우지우 씨가 옳았습니다.”
헤비쿠커 멀티모드 최고난이도 클리어를 위해 무림숙수를 데려오는 것은 우지우의 아이디어였다.
평소 엉뚱한 발상으로 한 번씩 사고를 치기는 해도 비슷한 빈도로 이색적인 발상을 통해 큰 활약을 펼치기도 하는 우지우.
오늘의 그는 운이 잘 따른 편이었다.
치이익.
화르륵.
지글지글.
눈과 귀, 코가 모두 즐거운 소란에 이끌려 어디선가 구한 풍선을 들고 뛰놀던 마크2까지 주방 근처를 기웃거리며 얼굴을 내비쳤다.
모두가 입맛을 다시는 통에 해응응이라고 혼자만 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도 한 상 차려주세요.”
“안 돼.”
병상 옆을 지키던 이소혜는 단호히 거부했다.
해응응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배신감 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이소혜가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의사들이 안 된다고 했어.”
“왜요?”
“자꾸 한 번씩 피 토하면서 쓰러지고 그러니까 이참에 건강검진 한 번 하재.”
건강검진 안 받고 꾀병 안 부리고 미식을 만끽하고 헤비쿠커하기 vs 건강검진 받고 꾀병 부리고 쫄쫄 굶고 헤비쿠커 안하기.
가혹한 선택의 기로 앞에서 해응응은 한참을 끙끙 앓으며 고뇌에 빠졌다.
‘잠깐 꾀병인가 싶기도 했는데 진짜 아픈가보구나.’
끙끙 앓는 소리를 들으며 이소혜는 절대로 음식은 못 먹게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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