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5)
〈 55화 〉 55 궁중비사와 어머니의 죽음
* * *
1.
동시토벌전의 전투양상은 본래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됐다.
강대한 두 보스 요괴왕비와 요괴장군.
하나둘씩 쓰러지는 동료들.
홀로 남은 플레이어를 가지고 노는 두 보스.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 패배하여
궁궐의 지하수로에 갇힌 뒤.
플레이어보다 앞서 지하수로에 갇힌
두 보스의 정적들과 접촉하여
요괴장군을 수도 밖으로 보낼 정보를 흘리고
요괴왕비의 약점을 이용해 전력을 약화시킨 뒤에
약화된 왕비만을 해치우고
요계장군이 돌아오기 전에 인계로 달아나는 것!
실패와 복수.
암습과 도주.
그것이 요계에 처음 방문한 플레이어들을 위해
반요곡에서 준비된 스토리라인이었다.
[요괴장군을 일기토로 이기는 인간을… 내 어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부질없는 싸움에 나선 들 무엇하랴. 항복하마.]결코 요괴장군을 실력으로 이기고
요괴왕비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정상적인 스토리가 아니다.
이거 이렇게 깨는 거 맞음?
몰?루
깬 사람이 한 명뿐인데 이게 정석이지 ㅋㅋ
뒤늦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 공략을 따라갈 수는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시청자들이 한 가득이었지만
그런 의문을 뒤로한 채
스토리는 계속 진행되었다.
2.
[Story mode]보스전은 끝났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우뚝 선 왕자의 앞에
요괴왕비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요계를 파탄 낸데 이어, 그렇게까지 기를 쓰며 차지하고자 했던 권력마저 잃으셨군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후후. 목숨을 구걸할지언정 내 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다. 정녕 너희 모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단 말이더냐?]요괴왕비는 말했다.
[오오가마Oogama.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전승을 깨우친 이래로, 내 주변에서는 그 어떤 자연지물도, 짐승도 살아남지 못했다.] [가까이 하는 모든 존재가 병들어 죽게 만드는 저주받은 혈통의 힘은 고독을 선사했지.]거대하고도 추악한 외형과 마찬가지로
진즉에 썩어문드러져 타락했으리라 여겼던
포악한 왕비라고만 여겼던
그녀의 내심은
뜻밖에도 겉으로 보이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그런 내 앞에 모처럼 타고난 강력한 혈통이 아깝지도 않느냐고, 자신이라면 함께 있어도 죽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는 바보가 나타났다.] [긴 고독의 끝에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요괴. 그가 바로 나의 남편, 요괴왕이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평생 누릴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여자의 기쁨을, 아내로서의 행복을, 왕비로서의 위엄을 모두 누릴 수 있었으니까.]그녀에게 과거를 그릴 자격이 있느냐고
가증스러운 입을 막으라는 듯
해응응의 눈앞에 선택창이 떠올랐다.
【상호작용 선택지】
[1. 왕비를 죽인다.] [2. 구질구질한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며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는다.] [3. 왕비를 궁궐 밖의 요괴들에게 넘긴다.] [4. (침묵을 유지한다.)]죽이고, 입을 막고, 적대적인 무리들에게 넘기고.
불행한 최후들로 점철된 선택지.
111
22
111
꿀벌년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바로 죽여야지
ㄹ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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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센 놈보다 머리 잘 쓰는 애들이 더 무서움
부하도 기회 한 번 줬다가 그 사달이 일어났는데 대장인 왕비는 얼마나 더 교활하겠음
시청자들이 강한 불신을 보이듯이
투사팀 또한 적대감을 내비쳤다.
[교활한 배신자, 죽인다.] [이번만큼은 웬디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왕비가 그간 저질러온 일들을 돌이켜보십시오. 살고자 하는 변명을 들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 [부기맨도 옷장을 끄덕끄덕하지 않습니까.]꿈쩍도 안한 거 같은데.
해응응의 실없는 생각과는 별개로
왕자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어머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 이상 왕비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선택을 종용하듯 재차 깜빡이는 선택창.
해응응의 시선이
무릎 꿇은 요괴왕비의 눈과 마주했다.
원통함이 가득 묻어나는 그 시선은
패배의 굴욕에 치를 떠는 것일까.
잃어버린 권력을 향한 분노가 담긴 것일까.
그도 아니면
진정으로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침묵을 유지한다.)]비록 한때는 남자였지만
이제는 여자의 몸으로 살아온 세월이 더 길어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해응응은 궁금해졌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왕비로서.
이 이상 성공할 수 없을 행복했던 그녀가
어쩌다 지금의 처지가 되었는지.
그녀가 왕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무언의 의사를 표명하자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투사팀 또한 불만스러운 기색을 애써 억눌렀다.
[그이가 요괴왕이 되어 요계를 통일한 뒤, 요계들은 서로 싸우는 대신 인계진출을 노리기 시작했다. 먼 옛날 일어났던 1차 요괴전쟁의 뒤를 이을 2차 요괴전쟁의 시작이었지.] [많은 영토를 점령하고, 인계의 보물을 쓸어담으며, 인간들의 영토와 나라를 복종시키고 수많은 인간들을 식량이나 가축으로 삼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들의 작은 나라의 왕이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며 자비를 간청했지.]왕자가 물었다.
[그 딸이 제 어머니였습니까?] [그렇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분하게도 아름다운 여자였지. 종을 떠나 그 미모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 또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2차 요계전쟁.
수많은 반요들이 인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된
요괴들의 피가 인계에 퍼진 원인.
무수한 인간들이 죽어나가고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던 잔혹한 역사는
요괴왕의 품에 안긴
단 한 명의 경국지색의 미녀의 간청으로
그 끝을 맞이하였다.
[인간과 요괴가 서로 죽고 죽이는 대신, 서로 함께 사는 세상. 그 덧없는 꿈을 꾸겠다는 그이의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꿈이 얼마나 어리석더라도 옳은 길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몇날며칠을 남편 없는 침상에서 홀로 외로이 잠들더라도 이 한 몸의 괴로움만 견딘다면 두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세계는 평화를 얻었을지언정
한 요괴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혔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네 나이가 다섯이 되었을 무렵이었지.] [문안인사를 올리겠다며 찾아온 너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내 안의 증오심은 사그라졌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평화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지.]왕자가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째서입니까. 그런 마음까지 품었던 당신이 어째서 아버지를 죽인 겁니까!] [그날 밤, 네 어미가 나를 찾아왔었지. 내 희생이 있었기에, 내 묵인이 있었기에 궁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인간여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요괴왕의 마음은 자신에게 있으니, 그를 제 뜻대로 조종하기란 어렵지 않다고. 지금보다 비참한 처지가 되고 싶지 않거든 제 발로 떠나라고.] [그럴 리가 없어!] [바로 내일이면 정식으로 요괴왕의 둘째부인이 되었노라 발표할 예정이지만 굳이 수치를 느끼러 올 필요는 없다는 모욕에 끝내 이성을 잃었지.]왕자가 암살검을 뽑아들었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어머니를 욕보이지 마라!] [그래, 그 눈이었다. 그 여자가 내게 지었던 표정도. 평화를 논하며 전쟁을 끝냈던 여자가 진정으로 바란 것 또한 복수였었고.] [그녀는 요괴왕을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전쟁에 패해 죽어나간 인간들의 복수를 위해, 우리 요괴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을 뿐.] [거짓말!!] [용서할 수 없었다. 한 여자의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든 것보다도, 그이의 사랑을 그런 식으로 욕보였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요괴왕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그래서 죽였다.]그녀의 말이 끝나고
【상호작용 선택창】
[1. 왕비를 죽인다.] [2. (왕비를 죽이려는 왕자를 묵인한다.)] [3. (왕자를 막는다.)]해응응의 눈앞에 선택창이 떠오르며
[▶3. (왕자를 막는다.)]왕비에게 달려드는 왕자를 막아서기까지
모든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말리지 마십시오. 제 친어머니를 죽인 원수입니다. 저 여자가 제 원수란 말입니다!]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울부짖는
왕자의 비참한 몰골을 앞두고
해응응은 요괴와 인간 사이의 이야기의
본질을 깨달았다.
요괴왕비와 사생아 왕자.
그들은 모두 피해자였다.
서로가 타인의 악의로 인해 상처를 받은.
그렇기에 가해자가 되거나
가해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한 사람만이 옳고 다른 사람이 그른 것이 아닌
원한의 굴레에 빠져버린 자들.
‘그 굴레에 한 번 발을 들인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건 모든 원한을 끝맺은 뒤겠죠.’
왕자의 칼이 노릴 사람이
요괴왕비 하나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궁궐에서 쫓겨나
더러운 인간의 피가 흐르는 반요라며
모욕과 멸시 속에 살아왔던 세월.
왕비를 향한 원한으로 뽑아든 칼이
굴욕어린 세월의 앙갚음을 치르겠노라 결심하면.
그 칼이 보아야 할 피는
요괴 몇 마리의 죽음이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피로 강을 만들고 시체로 산을 쌓는
지옥도가 펼쳐지게 되리라.
‘그런 미래를 정녕 깨닫고는 있는 건가요?’
무림계에서는 이미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원수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복수귀가 되었던 그녀의 입장에서
복수를 갈망하는 왕자를
말릴 자격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비켜, 당장 이 손 놓으란 말이야!]그래도 자신의 앞에 서서
수줍은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어머니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모성애를 자극하던 반요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해응응은 그를 막아섰다.
복수귀가 아닌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은 내 진짜 어머니도 아니잖아!!!]어머니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왕자의 입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외침을 듣기 전까지는.
“…….”
왕자를 붙잡던 그녀의 손에서
처연히 힘이 풀렸다.
[크윽……!]자신이 못할 말을 했음을 깨달았지만
분노와 죄책감이 뒤엉킨 얼굴로
왕비를 죽이러 가야 할지
묵언검객에게 사과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왕자.
[다른 이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그 솜씨 하나만은 쏙 닮았군. 그 어미에 그 자식이구나.]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이
왕비가 그를 비웃었다.
[그 여자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도 그이를 쏙 닮았고 말이야.] [그이는 그 여자의 죽음이 내 탓이 아닌, 출산으로 인해 병약해진 탓이라고 공표했지. 그리고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 여자는 당신이 아는 착한 여자가 아니었다는, 모두를 파탄 내려던 잔혹한 복수귀였다는 말 따위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왕비의 이야기 속 요괴왕이 그러했듯이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고개를 숙인 채 해응응의 옆을 지나치는 왕자.
저 저 배은망덕한!
마망 버려?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믿으면 안 돼ㅠ
와씨 내 가슴이 다 아프네;
묵언검객 우는 거 아님?
다시금 왕비의 앞에 선 왕자.
시커먼 감정이 가득 차 짙게 가라앉은
그 탁한 눈을 바라보며
왕비가 훗 하고 웃었다.
[한 번이라도 그이가 날 돌아봐주었다면, 그이의 정을 먹어치우던 기운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이는 다시는 날 찾지 않았지.] [백일밤낮이 지난 끝에 요괴왕은 죽고 너는 궁궐 밖으로 버려졌다. 이것이 네가 알지 못했던 궁중비사. 네 부모들이 죽게 된 이유다.] [그리고 당신이 죽을 이유이기도 하지.]머리 위로 암살검을 치켜든 왕자.
등을 돌린 묵언검객의 발치로
길게 비치는 알현실의 그림자.
검을 든 그림자가 두꺼비요괴의 몸을 내리쳤다.
몇 번이고, 거듭 반복하며.
반은 인간이지만
반은 요괴이기도 했던
사생아 왕자의 선택에
해응응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3.
신체의 자유가 돌아오고
검이 살에 박히는 소리가 거듭 들려와도
해응응의 입은 굳게 닫힌 채
결코 열리는 일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고민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왕자가 피로 피를 씻기로 결정지은 것은
결국 어느 쪽의 피가 원인이었을지.
절반은 요괴였기에 그랬을지.
절반은 인간이었기 때문일지.
무엇이 왕자와 그녀를 상처받게 만들었는지.
“찾으시던 귀물이 이 거울이 맞으시는지요.”
눈치를 보며 거울을 내미는 마가놈.
이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한 해응응.
강대한 요괴들의 공격을 받아낼 때에도
떨리는 일이 없었던 묵언검객의 손이
가벼운 거울 한 장을 받으면서도
저러다 거울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거울을 쥔 손이 크게 떨렸다.
[명경지수의 거울을 습득했습니다.]서고의 비밀창고를 열어 거울을 얻은 뒤.
얼마간 우두커니 서있던 해응응.
그녀는 깨달았다.
궁궐의 모든 권력자가 죽어
멸망을 앞둔 세계의 주인이 될 왕자의 복수심이
인간의 피에서 비롯되었든
요괴의 피에서 비롯되었든
그런 건 이제 어느 쪽이든 상관없음을.
어차피 떠나버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녀와는 관계없는 세계의 일이니까.
해응응은 다시금 서고 밖으로 나섰고
그녀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