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61)
〈 561화 〉 561 설산의 추억
* * *
1.
해응응이 해남파를 떠난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의문이었다.
자기가 만든 길드에 자기가 만든 문파요, 자기가 정립한 한국무림인데.
이제 막 정상급 스트리머로 등극했으면서 어떻게 갑자기 자기가 없어져도 안심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말씀 마십시오. 길드장님이 떠나시거든 모두가 슬퍼할 겁니다.”
“때가 되면 떠날 수밖에 없어요.”
그런가.
원래 본인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했다.
길드장님의 수명도 이제 끝이 다가온다.
해응응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우지우와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가 헛되지 않게 끝나서 만족하고 있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없는 겁니까?”
“시간이 필요해요.”
맛없는 진흙쿠키 포장지를 마크2에게 은근슬쩍 밀어 넘기며 해응응은 답했다.
“오직 수련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런가.
수련광인 길드장님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최후를 수련을 하면서 맞이하고 싶으셨던 건가.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세상이 멸망하면 법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고 원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가.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지던 당시, 세상의 종말이 열렸다며 범죄율이 폭증했던 시기도 있다.
하물며 종말점이라니.
인류를 위해 몬스터와 싸운 대가로 얻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테러행위를 자행하던 각성자들의 범죄도 적지 않았다.
“혹여나 우지우 비서실장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든 가끔은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럴게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돌아서는 민우성의 등은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존경하고 또 좋아하는 여자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무엇 하나 도와줄 수가 없다.
이보다 남자가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까.
없다.
적어도 지금의 민우성은 이보다 더한 절망을 떠올릴 수 없었다.
게임클리어의 짜릿함.
히든공략을 성공했다는 뿌듯함.
조금은 길드장에게 다가섰다는 자부심.
알량한 기쁨은 모두 휘발되어 사라졌다.
“그런가…”
이것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 기분이라는 건가.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을 알아버린 민우성이었다.
2.
“마마. 몸의 한기가 반쯤 잡힌 것이 느껴집니다. 병이 낫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식은 하룻밤 사이에도 극적으로 성장한다.
하물며 정령계에서 일주일 씩 방목하다 오는 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알았나요?”
“자랑. 얼음의 정령과 놀면서 얼음친화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군요. 이왕이면 모든 속성의 친구들을 전부 다 사귀도록 노력해보세요.”
“불만. 아직 마크2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구음절맥의 금제도 다소 헐거워졌어요.”
대요괴와 계약하고 언제든지 그가 원할 때 현계로 소환될 수 있게 된 지금, 해응응은 대요괴를 대상으로 지정한 축복 [생사대적의 힘]으로 전투력의 한계가 해제되었다.
【맹세】
[불구대천] 묵언검객과 대요괴는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존재. 마주쳤다면,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싸움을 회피하거나 끝마칠 수 없다.【축복】
[생사대적의 힘] 숙명의 적을 상대할 때, 모든 전투력의 한계가 해제된다. 최강의 자신을 알고 싶은가? 숙적과 마주쳐라. 그리하면 알게 되리라.맹세는 대요괴의 소환거부로 회피하고 축복은 대요괴의 존재 덕분에 패시브스킬마냥 상시적용 된다.
헬즈쇼핑호스트가 선물한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다.
클리어보상으로 얻은 내공은 없지만 대요괴를 얻은 것만 해도 능히 보상 대신으로 여길 만하다.
덕분에 구음절맥도 ‘전투력의 한계’로 분류되며 비틀린 혈도의 일부가 바로잡혔으니, 골치 아픈 게임에 끼어든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의문. 마마의 병은 호전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남파 간부 아저씨들이 마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착각하는 것을 방치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마마는 지금 초절정의 경지에서 온전한 조화경의 경지로 오르는 수련에 매진중이에요.”
그게 왜 대답이 되냐고 어리둥절해하는 마크2.
애는 역시 애구나.
생긴 건 같을지언정 이해력은 부족했다.
“제가 방송을 안 키고 수련만 하면 방송은 언제 하냐고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귀찮게 굴잖아요.”
“!”
“휴방에도 정상참작 할 사유가 있으면 방해하는 사람도 없겠죠.”
어떤가요, 제 마스터플랜이.
색목인들의 용어까지 빌릴 정도로 흥분되는 계획을 마크2는 간단히 평가했다.
“동정. 민우성 아저씨와 우지우 아저씨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불쌍하겠죠. 결국 블리자드도 못 베고 아녀자처럼 몸가짐을 조심하고 사린 덕분에 게임을 깼는데. 그런 실력으로 게임을 깨려고 하면 매번 오늘이 제삿날은 아닐지 조마조마할 테니까요.”
“…….”
마크2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서 마마를 향한 존경심이 사라졌다.
아이가 어서 무림인답게 철이 들면 이 마마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고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감격할 텐데.
육아를 한다고 무공수련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마크2가 어긋나서 장차 마음에 근심이 생기거든 등선을 막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잘 들으세요, 마크2. 세상사 모든 문제는 어차피 무공이 충분하면 해결된답니다.”
“의문. 마트에서 매번 매진되는 희귀사양 벌꿀사탕이 무공을 연마한다고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마크2의 무공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마크2가 무공의 중요성을 깨달으려면 아이에게 맞는 눈높이 교육이 필요하겠지.
해응응은 적절한 예시를 떠올렸다.
“만일 마크2의 무공이 충분하다면 매점직원이 마크2에게 맞고 싶지 않아서 물건을 몰래 보관했다가 슬쩍 판매할지도 몰라요.”
“유익. 좋은 정보를 얻은 것입니다. 매점에 가면 직원에게 안광플래시빔으로 마크2 전용 벌꿀사탕을 하나 남겨두라고 협박하겠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그 뒤에는 사탕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조금 더 강해져서 직원이 알아서 사탕을 들고 선물하러 찾아올 때까지 강해지도록 노력해보세요.”
“확인. 직원이 알아서 선물을 사올 때까지 강해진다. 새로운 목표가 수립되었습니다. 12시간 훈련프로그램 설정을 개시합니다.”
12시간 훈련한다고 강해지기는 할까?
지적할 건 지적해야겠다.
“12시간이 아니라 6시진이에요.”
무림상식은 똑바로 가르쳐야지.
3.
계절도 어느덧 겨울.
현대에 돌아와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겨울이 됐다.
겨울은 고요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무림.
눈 내리는 설산은 모든 소리가 잡아먹힌다.
낮에는 새하얗고, 밤에는 새까맣고.
세상이 마땅히 취해야 할 색을 되찾는다.
그런 마땅함을 느끼는 날에는 기묘하게도 무공수련에도 진척이 있다.
검을 휘두르는 손에도 흥이 담기고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발에는 힘이 실린다.
‘방해네요.’
모처럼 눈 내리는 날이라서 비슷한 적막함 속에 옛 기억을 향유하고자 했건만 비행기 한 대가 구름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에 흥이 깨졌다.
눈치 없이 지저귀는 새 한 마리라면 뭐라도 던져서 잡겠지만 비행기를 잡으면 안에 탄 사람들이 재난영화 한 편을 찍게 된다.
‘조용한 산이 필요해요.’
상념 속에 찾아오는 깨달음.
현실에 없다면 가상현실은 어떤가.
심법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연마하는 것뿐이라면 가상에서도 가능하다.
【상태창】
[이름]해응응???(여성, 요호, 18세) [경지]초절정(Lv200)(누적Lv1200) [직업]낭인검객 [칭호]묵언검객 [근골]50(+38P) [근맥]30(+17P) [재주]50 [지성]40 [오성]90(+42P) [매력]100(+68P) [공력]160▷잔여포인트 : 1200
모든 능력치는 10의 자리 대에서 막혔다.
능력치 하나를 올리는데 막대한 포인트와 노력이 필요한 구간들이기 때문이다.
레벨도 정체기에 도달했다.
삼류부터 경지마다 승급에 필요한 최대레벨이 100레벨씩 올라가며 초절정의 끝의 최대치에 필요한 레벨은 무려 1500레벨이 되었다.
‘500레벨 치의 무공경지를 올리는 것. 쉽지 않은 길이죠.’
덕분에 한 차례 자신의 검 아래에 정립하며 통합하였던 무공을 기억에 의지해서 해체하는 신세가 됐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기분이란, 마치 새하얀 눈밭에 자신만 홀로 걸어갔던 자리를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같은 발자국을 겹쳐 뒷걸음질 치는 기분이다.
‘여기서는 걸음을 잘못 내딛었었군요.’
‘이때는 너무 서둘렀어요.’
‘좀 더 직감을 믿어도 됐는데 두려움이 과했어요.’
때로는 조급함이 앞서고.
때로는 신중함이 과하고.
오랜 벗 파천린과의 이별 이후, 중원에 홀로 남아 무를 갈구하던 시절의 기억이란 지독하게도 무공밖에 없는 외골수의 삶이었다.
천하제일인에 도전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떨까.
잘 모르겠다.
갈 곳 잃은 분노와 초조함도.
그저 자신의 가치를 무공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던 고독한 마음도.
지금의 마음마저 그때의 것과 같을 수는 없기에.
과거를 떠나 현재의 시간을 향유할 뿐이다.
그런 현재란.
‘시시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평화로군요.’
단지 이 시간이 조금씩 지루해질 뿐.
물론 아직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겨울도 있다.
반요곡의 겨울이 그렇다.
‘그곳은 아직 일러요.’
다음 번 플레이는 아마도 현대에 돌아온 뒤로 그녀가 처음으로 플레이한 게임, 반요곡의 끝을 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착실히 무공을 연마할 시간이지, 모든 것의 끝을 볼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겨울이 필요했다.
‘스피드마스터는 어떨까요.’
세계최고속의 사내.
초절정의 신법을 웃도는 광기어린 속도의 지배자.
그와의 결전 역시 큰 기대를 품고 있다.
악성향으로 유명한 요호호.
극강의 헬스광으로 유명한 헬스몬스터.
그들도 나름의 독보적인 개성과 실력으로 유명세를 쌓은 정상급 스트리머라는 사실은 지난 몇몇 방송들로 보고 들었지만 그들로는 성에 차질 않는다.
‘제게 도달하기도 전에 팽휘룡 선에서 정리될 정도의 어중간한 재능에 불과하니까요.’
무력적인 측면을 떠나도 그 수준은 마교의 이나 무림맹의 수준에 그친다.
뛰어난 지혜로 판을 짤 수는 있을지언정 시대를 앞서는 거인들의 격돌 사이에서는 격변하는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어느새 도태되는 이들이다.
적어도 다른 정상급 스트리머들은 그렇게 보였다.
‘굳이 예외를 두자면 교수님이라는 분일까요.’
그녀보다 먼저 헬즈 쇼핑호스트 를 개발하여 공략에 성공한 인물.
그러나 그는 ‘플레이어’로서 뛰어난 지혜를 지녔을 뿐, 피지컬이 대단하다고 하기엔 아직 충분히 보여준 것이 없었다.
무림인으로서의 그녀의 호승심을 자극할만한 인물은 오직 스피드마스터뿐이다.
‘그렇지만 갈증을 너무 빨리 해소해버리면 기대할 것이 줄어들죠.’
겨울은 사막과도 같다.
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는 식량을 아껴야 한다.
야자수 나무 몇 그루와 열매가 딸린 오아시스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귀중한 식량이자 식수원.
별미는 아껴먹어야 한다.
반요곡과 스피드마스터가 그렇듯이.
그러니 그녀가 찾을 겨울의 설산이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아영. 오랜만에 같이 게임을 하지 않을래요?”
“언니… 저는 게임 하나밖에 안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 게임을 하러 왔어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존재하는 게임을.
주아영의 얼굴에 환한 빛이 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