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65)
〈 565화 〉 565 면벽동의 일상
* * *
1.
면벽수련자들의 일상은 감옥보다 심했다.
“자, 오늘은 오이 맛 벽곡단이다.”
간수가 배급통으로 데구루루 굴려 넣는 벽곡단에 면벽수련자들은 절규를 금치 못했다.
“제발 오이 넣지 마 오이 넣지 마 오이 넣지 마!”
“나정신나갈것같아 정신나갈것같아 정신나갈것같아!”
“오이가 음식이냐 씨발? 존나 선 넘네 진짜!”
면벽수련자 김만득 또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참다못한 옆방 면벽수련자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쇠창살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저 새끼 쇠창살에 머리 못 박게 막아!”
“미친놈. 자해해봤자 의료동 의사들도 다 무공 배웠어. 그런다고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
“내버려둬. 철두공 수련이 하고 싶나보지.”
“저 녀석 나중에 박치기로 대성하는 거 아니야?”
“하하. 될 거 같아. 저 녀석 대머리잖아.”
비인권적인 놀림을 감수하며 식사시간이 지나면 자율무공시간이 주어진다.
아침수련을 마친 뒤에는 일괄적으로 각 방에 배부된 캡슐을 이용할 시간.
“난 이 짓거리 못해!! 부숴버릴 거야. 이딴 고문기계 부숴버릴 거라고!!”
밖에서 조폭 노릇 좀 하다가 해남파에 들어와 옛 버릇 못 고치고 사고 쳐서 면벽동에 들어온 수련자 한 명이 캡슐에 권법을 퍼부었다.
캡슐에 일정수준 이상의 타격이 감지되자 즉시 해당 수련자의 방에 셔터가 내려가더니 치이익 소리와 함께 가스가 살포됐다.
“이, 이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뭐야. 너 신입이냐?”
“지난주에 들어왔어.”
김만득의 맞은편 수련방 면벽수련자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에 박혀서 벽보고 눈 감고 고개 숙이고 있어. 안 그러면 무서운 일 당한다.”
“오이맛 벽곡단을 먹고 억지로 수련하고 날마다 다섯 번씩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보다 심한 일을 겪을 수 있다고?”
김만득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도 살아남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쿠궁.
면벽동 복도에 간수들의 발소리보다 훨씬 육중한 쿵쿵 소리가 들렸다.
“오. 이 또라이 녀석. 캡슐을 부수려고 했다고? 안되겠군. 이거 이 몸이 친히 관리하는 면벽동 특별구역으로 데려가서 진득하게 교육해야겠어.”
“크, 크어억…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오. 마비가스를 마시고도 아직 말을 할 수 있다니. 근성이 좋잖아.”
“마, 말해…!”
“듣고 싶다면 알려주지. 넌 이제부터 하급제자들의 교본이 될 거다. 제발 캡슐로 돌려보내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권법에 맞는 인간교보재가 될 거다.”
“당할 것, 같냐! 절대 안 해…!”
“아, 딱히 네 의사는 상관없다.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거니까.”
간수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빛이 점멸하며 면벽동 전체가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번쩍. 번쩍.
크아악─.
셔터를 올리고 창살을 좌우로 구부려서 기절한 면벽수련자의 멱살을 잡아 끄집어내는 특별구역 전용간수.
그의 손에 기절한 면벽수련자가 질질 끌려갔다.
겁도 없이 힐끔거리며 간수를 엿보던 신입은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맙소사!’
입에 주먹을 쑤셔 넣고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신입.
간수가 떠나자 김만득이 신입의 꼴을 보고 물었다.
“봤냐?”
“저, 저 미치광이 인간. 빛의 정령과 계약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마리하고 동시에!”
그렇다.
간수는 검투사키우기의 고수.
스트리머 명가 해남파답게 게임을 통해서 힘을 얻은 실력자들은 해남파에 적지 않았다.
그 적지 않은 인재들 중에서도 빛의 정령을 입수할 정도의 실력과 자금력을 모두 지닌 자.
독종 중의 독종.
면벽동 특별구역 간수는 그런 존재였다.
“한 마리만 있어도 눈뽕으로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든 뒤에 가지고 노는 빛의 정령을 다섯 마리나 동시에 사역하다니,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잘 알고 있네. 괜히 눈에 띄어서 쳐다보는 표정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 눈뽕으로 시력을 조져버릴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야. 간수들이랑 함부로 눈 마주치지 마.”
“아, 알겠습니다.”
긴장 속에 캡슐로 들어간다.
어제까지는 그저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게임에서 성과를 내면 이 지옥같은 면벽동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안 뒤져. 무조건 정상 갈 거야. 간수의 정령들이 심심할 때마다 찾아와서 눈뽕을 갈겨대느라 눈을 감아도 눈이 부셔서 잠을 잘 수 없는 지옥에서 탈출할 거라고!”
절박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이런, 점프조준을 실수했어!’
점프경험이 쌓이다보면 직감이 발달된다.
뛰어오르는 순간, 자신이 어디에 착지할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이건 제대로 된 점프라고.
이건 아슬아슬한 점프라고.
이건 착지할 수 없는 점프라고.
하필이면 지금 그가 뛰어오른 점프는 착지할 수 없는 점프였다.
각도조절이 잘못되었다.
힘도 덜 실렸다.
추락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도 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야!’
묵언검객이 면벽동에 관심을 지니고 자비를 베푸는 일은 정말 흔치 않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머리가 하얗게 새는 그 날까지 절벽에서 점프만 하는, 점프밖에 모르는 점핑괴인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인정할 수 없다.
그는 김만득이다.
점핑괴인이 아니다.
잠시 손버릇이 나빴을 뿐인 평범한 사람이다.
심심하면 밖에서 사람도 패고,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야스도 하러 다니는 그런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오이맛 벽곡단이 아니라!!! 치맥을 하고 싶어어어!!!”
“괴물새끼들한테 처먹혀서 죽는 게 아니라!!! 해남파 권법으로 사람을 패고 싶어!!!”
“절벽에서 발 디딜 곳이 있으면 이게 야스지 하고 외치는 게 아니라!!! 진짜 야스를 하고 싶어!!!”
절박함 100%.
진심으로 가득한 투지.
그것이 김만득이라는 인간이 지닌 얼마 되지 않는 재능을 쥐어짜내었다.
명백한 추락각을 급격히 향상된 동화율과 고도로 집중한 오감, 순간적으로 개화한 무공과 게임스킬을 이용해 모면한다.
‘이거였구나!’
벼락처럼 찾아오는 깨달음.
그는 실감했다.
벽호공을 펼치는 방법을 자신의 손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단점프를 구사하는 타이밍을 자신의 발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육이 기억할 정도로 거듭된 수련이 성공의 기억을 재현하며 같은 플레이가 반복되니, 도달하는 층수가 차츰 높아지며 끝내 등반마저 성공했다.
[축하합니다.] [점핑레빗 필드를 클리어했습니다.] [도전모드가 해금됩니다.]해냈다.
캡슐을 나와 저녁으로 배급된 벽곡단을 씹어 먹으면서도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대신,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으로 벽을 타거나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허억…! 저, 저 사람은 정상인 줄 알았더니 이미 점프에 미친 점핑괴인이었잖아!”
어느새 신입에게서 한때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점핑괴인 소리를 듣게 된 김만득.
그는 반년 전, 면벽동에 처음 들어올 때 보았던 점핑괴인이 그랬던 것처럼 활짝 웃었다.
“너무 놀라지 마. 너도 나처럼 될 거니까.”
“거짓말!! 이유 없이 혼자 히죽거리면서 벽을 타고 점프를 하는 미치광이 점핑괴인이 되는 것이 내 미래라니, 그런 미래는 인정할 수 없어!!”
“그흐히히히. 부정해봤자 너만 괴로워질 뿐이야. 빨리 운명을 받아들이고 점핑레빗이나 열심히 하라고.”
신입은 절규했다.
“웃기지 마. 난 여기서 탈출할 거야. 부, 부상. 부상을 입으면 의료동에 갈 수 있어. 거기서 의사를 인질로 잡아서 탈출할 거라고!”
“흐흐흐. 안 그래도 아침에 너 같은 생각을 했던 녀석이 있었지.”
쇠창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간수가 들어왔다.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등을 떠밀리며 들어온 김만득의 옆방 면벽수련자.
쇠창살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했던 면벽수련자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눈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뒤뚱뒤뚱 걸어왔다.
잘 보니 힘없이 걷는 것이 아니라 하도 두들겨 맞아서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었다.
“다, 당신! 의료동에 갔다왔다면서. 거기서 뭐 좀 봤어? 의사는 납치할 수 있겠어?”
“…포기해.”
대머리 면벽수련자는 이 세상 모든 희망을 놓쳐버린 영혼까지 끌어모았다가 실패한 영끌투기파산자처럼 넋 나간 얼굴로 말했다.
“의사가 절정고수야.”
“그럴 수가!!!”
신입은 주먹으로 땅을 치고 또 치며 피가 흐르도록 괴로워하였다.
“으아아! 이 개새끼들.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면서 무공까지 잘 배운다니. 이건 사기잖아!!!”
절망하는 신입.
밤새 잠 못 드는 신입의 울음소리가 면벽동에 울려퍼졌지만 점핑괴인 김만득과 철두공 수련자, 그밖의 장기수감 면벽수련자들은 신입을 욕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다.
아무리 두렵고 증오스러워도 결국은 점핑만이 이곳을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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