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66)
〈 566화 〉 566 비슷하면서 다른 처지
* * *
1.
이제는 일상이 된 점핑레빗 플레이.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한 판 돌리고 40렙토끼 도전과제를 달성했더니 밖에서 호출이 떴다.
게임을 종료하고 캡슐 너머로 고개를 내밀자 간수가 무척 뿌듯해하는 얼굴로 뒷짐을 지며 말했다.
“축하한다. 43번 수련실 면벽수련자 김만득.”
“설마 점핑레빗을 열심히 한 보상으로 가석방을 하려는 건가?!”
“기한 내 40렙토끼 달성을 축하하는 의미로 소고기 맛 벽곡단을 배급해주겠다.”
김만득의 표정이 썩었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럴 거면 그냥 소고기 벽곡단을 줘!!”
“40렙 토끼 따위가? 소고기를 먹어? 푸하핫.”
대놓고 비웃는 간수의 행동에 오기가 들었다.
이건 할 수밖에 없다.
“까짓것 60렙토끼 만들고 오면 될 거 아니야!”
점핑레빗 고인물컨텐츠 도전과제 리스트는 20개 단위마다 난이도가 껑충 뛴다.
그러나 반년 동안 오이맛 벽곡단만 먹은 사람의 분노는 그 높은 난이도를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흐흐흐히히! 어이 간수. 깼다. 깼다고. 안 들려? 60렙깼다고. 소고기 벽곡단 내놔 당장 내놔 이 창살 부숴버리고 뛰쳐나가기 전에 빨리 내놔!!!”
창살을 붙잡고 야만스럽게 앞뒤로 흔들며 울부짖듯이 외치자 간수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얌전히 있어 이 새끼야!”
“컥!”
테이저건에 맞은 김만득.
부들부들 몸을 떨기도 잠시, 믿기지 않는 의지력으로 감전의 고통을 이겨낸 그가 손을 뻗어 간수를 붙잡았다.
“그아아아앗!”
“매일같이 몇 번이고 절벽에서 추락하고, 발을 헛디뎌서 실족사하고, 가끔은 괴물의 아가리에 몸이 씹혀서 죽는 고통에 비하면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왓! 점핑괴인님, 저도 꺼내주세요!”
“어, 어이! 여기도 사람 있어!”
“같이 탈출하자! 도와줄게!”
간수의 열쇠를 빼앗아 수련실에서 탈출한 김만득에게 사방에서 구조요청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만득에게는 저들을 풀어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병신들. 미쳤다고 풀어주겠냐? 오늘 배급으로 나온 벽곡단은 모두 내 것이다!!”
“아니 이 병신아!! 밖에 나가면 벽곡단이 아니라 진짜 소고기를 궈먹을 수 있잖아!!”
“닥쳐! 학력도 기술도 재능도 없는 나 따위가 야생에서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거야! 난 죽을 때까지 면벽동에 기생해서 벽곡단이나 받아먹고 살 거다!!”
점핑레빗에 심취한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김만득의 외침에 죄수, 아니 면벽수련자들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야이 또라이새끼야! 그건 내 몫의 벽곡단이잖아. 건들지 마. 건들지 말라고오오!!”
“알았으니까 다 처먹었으면 감옥 문만 열어줘! 야, 야! 방으로 돌아가지 말고 문 열어어어!!!”
그러거나 말거나 김만득은 제 감옥, 아니 면벽수련실에 도로 들어가 열쇠로 문을 도로 잠갔다.
간수의 위에 열쇠를 던져놓고는 캡슐에 들어가서 점핑레빗에 접속!
“아참.”
하기 전에 캡슐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니들 벽곡단 쩔더라!”
“야아아! 이 개새끼야아아!”
가뜩이나 먹을 것도 배식으로 받는데 한 끼 식사를 털려버린 면벽수련자들은 눈 뒤집고 창살 붙잡고 캉캉 때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캡슐로 다시 들어가 점핑레빗에 접속해버린 김만득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일개 의사도 절정고수인 마당에 탈출은 무슨 얼어죽을 탈출이야?’
김만득이 광증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도 이성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나갈 방법은 점핑레빗 뿐이야.
잠시나마 맛본 자유의 단맛이 그의 의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진정한 지옥은 만렙을 찍은 뒤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2.
“아니 씹 이딴 꼬챙이 하나로 피통도 안 보이는 저 미친 괴물새끼를 어느 세월에 죽이냐고!”
종말의 짐승 어스 웜Earth Worm.
가만히 내버려두면 난이도와 도전과제 설정에 따라 일정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1~10층씩을 전진하는 지형파괴몬스터.
괜히 잘못 딜 넣었다가 폭주모드에 돌입하면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층을 삼키며 전진하는데 그 상승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100층을 먹으면 한 번씩 속도가 느려진다지만 좀 지나면 다시 허기짐이 드는지 상승속도가 빨라진다.
말이 좋아 100층이지 1층이 10m인 이 게임에서는 1000m에 해당하는 높이.
정말 미친 듯이 쉴 새 없이 뛰어야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생존이 목표가 아니다.
이 괴물을 죽이는 것이 목표.
도망칠 거 다 도망치면서 딜도 계속 넣어야 한다.
파지직 콰광!
고산의 전설 필드를 만렙토끼로 깨고 얻은 뇌전창은 창을 내지르면 창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번개가 튀는 특수능력을 지녔다.
종말의 짐승이 맞으면 잠깐 멈칫하고 경직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꾸 맞다보면 벌레대가리 색깔부터 시뻘겋게 변하더니 무진장 빨라진다.
깔짝깔짝 경직 몇 번 넣으면 폭주모드 돌입이다.
자연히 딜링은 뇌전창이 아닌 지형지물로 넣어야 한다는 발상이 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뇌전창으로 번개를 날려 바윗덩어리를 밀어 밑으로 굴려 떨어뜨린다.
한바탕 돌무더기에 얻어터지면 누구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불운한 사고에 휘말렸다고 생각하고 벌레대가리를 좌우로 흔들며 혼란스러워하는 어스웜.
현재까지 공지게시판에 올라온 그나마 딜을 넣을 수 있는 공략요소였다.
[축하합니다.] [점핑레빗 필드를 클리어했습니다.] [도전과제 100단계 클리어.]죽어라 딜을 퍼붓고 안 되겠다 싶으면 정상으로 튀기만 수백 번.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혼자는 절대 못 깨.”
멀티모드가 필요했다.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과의 협력이.
“간수. 요청이 있다.”
“닥쳐! 개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안 그러면 수면가스를 살포해주겠다…!”
“왤케 과민 반응해? 오늘은 소고기 벽곡단 안 나왔잖아.”
“네놈이 벽곡단을 훔쳐 먹으려고 기절시킨 간수가 세 명이나 됐는데 방심을 할 것 같냐?!”
“아 꼴받네? 가스 틀면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 간수가 요청도 안 받고 꼴받게 해서 캡슐 부수고 창살 부수고 탈출했다고 하면 넌 무사할 것 같아?”
악행을 거듭 일삼다보니 점핑괴인의 악명이 퍼진 면벽동에서 김만득은 어느덧 간수들과의 기싸움마저도 가능해졌다.
상황도 그에게 유리했다.
시한부 인생인 길드장을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공지를 올린 주아영.
평상시라면 몰라도 지금은 점핑레빗 공략에 도움만 될 수 있다면 면벽수련자의 도움이라도 간절한 상황이었다.
간수는 결국 주춤주춤 창살 너머로 다가와 물었다.
“요구사항만 간결하게 얘기해라. 또 수작을 벌이면 그때는 해남파 간부가 이곳을 지킬 거다.”
“멀티모드를 하게 해줘.”
“불가!! 네놈들이 일반 플레이어들과 접촉해서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지 알고 멀티모드 참여를 허락하겠는가!!”
“그걸 정하는 건 네가 아니야. 됐으니까 위에 전해. 혼자서는 공략을 만들 수 없다고.”
공지를 올린 2대 매니저 주아영은 가상현실세계의 닉네임마저도 아영이는점핑레빗이좋아영일 정도로 점핑레빗에 진심인 고인물.
그녀라면 자신이 불필요한 요구를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허가가 내려왔다. 관리자 아이디로 멀티모드 잠금설정을 해제해야 하니 수련실에서 나와라.”
“흐흐흐. 벽곡단을 준다면 생각해보지.”
“오늘도 간수를 기절시키고 괴롭힐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 만일 조금이라도 내 신변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일부터는 쓰레기 같은 식감의 비트와 민트초코를 버무려 만든 민트초코비트벽곡단만 먹게 될 테니까.”
“…아, 악마냐? 어떻게 그런 끔찍한 발상을!”
“어? 큰소리?”
기싸움을 벌이기에는 패배했을 때 짊어져야 할 식감이 너무 끔찍했기에 김만득은 조용히 캡슐설정 조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 됐다. 민간인 플레이어들과의 공방접속은 불가능하지만 유사한 처지의 플레이어들과 마주칠 수 있는 사설서버 접속은 가능하게 풀어줬다.”
드디어 서버가 열렸다.
김만득은 기대와 동시에 긴장감을 느꼈다.
사설서버에는 어떤 플레이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악명높은 점핑레빗을 만렙까지 클리어 한 전국각지의 괴인들이 몰려든 방이다.
분명 보통 광경은 아니겠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접속한 김만득.
[점핑레빗 멀티모드 사설서버 에 접속하셨습니다.] [지금부터는 함께 도전할 플레이어들과 명부에 이름을 올려 멀티모드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마침내 열린 서버.
마주친 사람들은 의외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형씨.”
“오. 첨보는 아저씨구만. 아저씨는 뭐하다가 왔어?”
“하하. 저는 그냥 뭐 손버릇이 조금 나빠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들 오셨습니까?”
사설서버 사람들이 말했다.
“묵언검객이 채팅창 볼 때 몰살검객이라고 말했다가 벤 먹었어.”
“조각상은 원래 나체가 국룰 아니냐고 묵언검객 나체 조각상 깎다가 선정성 위반으로 징벌동에 갇혔어.”
“헬세살을 하지 않으면 할머니 나체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가 징벌동에 들어왔다.”
“???”
뭔가 다들 이상했다.
“와. 당신들 굉장하네. 어떻게 해남파에서 길드장님 다 보는 곳에서 그런 짓을 벌일 생각들을 다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근데 왜 면벽동이 아니라 징벌동이라고 하지?”
“무슨 소립니까? 당신들이야말로 왜 징벌동을 면벽동이라고 부르는 거죠? 우주에서 하는 일인데 해남파는 왜 또 나오는 거고.”
미묘한 엇갈림.
비슷하면서도 다른 용어.
약간의 대화 끝에 김만득은 깨달았다.
“당신들 설마 해남파 면벽동이 아니라 우주대기공간의 거다이맥스 묵언검객 조각상에 설치된 징벌동에 갇힌 우주죄수들입니까?”
“그러는 너는 해남파에 실존한다는 점핑레빗 면벽수련을 하는 면벽수련자?”
현실과 가상.
지상과 우주.
면벽수련자와 우주죄수.
각기 다른 곳에서 처벌을 받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점핑레빗 진엔딩 공략을 위해 전장에 끌려온 죄수부대마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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