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7)
〈 57화 〉 57 덩그러니
* * *
1.
삼일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돌아온 인계.
가장 먼저 그녀를 맞이한 것은
환영의 인파나
요괴들의 아우성이 아닌
지난 필드의 플레이를 검토하는 정산창이었다.
[히든루트 동시토벌전 달성완료] [히든루트 왕자의귀환 달성완료] [도전과제] [요괴왕비와 요괴장군을 동시에 토벌한다.(달성)] [제한시간 내에 필드를 클리어한다.(달성)] [사생아 왕자가 궁궐에 돌아온다.(달성)] [변곡점] [사생아 왕자가 요계의 권력을 장악한다.(달성)] [소탕랭크SSS] [토벌랭크SSS] [도전랭크SSS] [종합랭크 10★/3★(+700%)] [TOWARDS THE LEGEND] [모든 필드의 기본난이도가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돌발이벤트와 히든이벤트가 “거의 언제나” 발생합니다.] [WARNING! WARNING!] [역사개변史??의 강한 징후가 발현되었습니다.(1/3)] [두 개의 중대한 변곡점이 추가로 발현될 시, 반요곡에 안배된 조화예정의 결말이 변화할지도 모릅니다.]무엇이 기다릴지도 알 수 없는 결말의 변화.
그녀에게는 부질없는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결말을 알고 있는
몇 개의 엔딩을 보았던
반요곡의 경험자인 시청자들에게는
커뮤니티를 한 달은 불사를 떡밥이 나타났다.
‘이상한 곳에 도달했네요.’
매정할 정도로 채팅방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묵언검객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차원문의 너머에서 도착한 인계.
그곳의 분위기는 지금껏 마주해왔던
인공물보다는 자연지물이 더욱 많은
기존 필드들에 비해
부쩍 눈에 띄는 인공물들이 많았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파괴했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의 산.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잿가루와
쓰레기 타는 냄새가 감도는
쓰레기장의 둔덕 너머.
[잡귀??]종류를 가리지 않고
어떤 쓰레기든 잡히는 대로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다가 뱉어내는 미련한 반요들.
서성거리는 그들의 발치 아래
둔덕 아래로 이어진 길의 한복판에서
눈을 뜬 묵언검객을 향해 나레이션이 나타났다.
[가장 더럽고 비천하기에 그 어떤 요괴들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쓰레기장.] [그 한복판에 차원문의 출구가 이어져 있었으니,] [이곳은 왕비의 인계진출거점.]덜컹. 드르르르륵. 덜컹.
[쓰레기를 짓뭉개는 거대한 압축기의 가동음이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인 이곳.] [비천하고 역겨운 겁쟁이들의 안식처를 왕비가 거점으로 삼은 연유는 무엇인가.] [갈 길이 급한 자, 서둘러 빠져나가고] [비밀이 궁금한 자, 쓰레기장을 헤매어보라.] [불타고 뭉개지는 쓰레기더미 사이로 그대의 시체가 더해지기 전에.]보잘 것 없는 쓰레기장에
만만한 이미지와 달리
무언가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하는 경고문.
[Player mode]도시 하나를 통째로 파괴한 것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쓰레기의 산.
필드 하나 깼는데 방종을 안 해?
엄마 우리 우주 안 가?
이분 켠왕하심?
아니 잠은 언제 자는데 ㅋㅋㅋㅋ
우리가 잘못했어요 제발 게임 좀 그만하세요 무친련아
이 정도면 회광반조 아니냐? 방송 끝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봐 무서워 죽겠음ㅠㅠ
근데 여기 상인맵 아님?
맞음 방랑상인이랑 보물찾기 하는 맵
허미 퀘스트 받아야 열리는 반복퀘스트 전용 이벤트 필드가 아니라 여기도 메인필드였어?
근데 보물은 방랑상인이 있어야 보이잖아
그러네
그럼 보물도 못 찾는데 여기서 뭐함?
보물 찾으면 그거 교환해줄 방랑상인은 어딨음?
몰?루
어디서부터 수색을 시작해야할지
뭘 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설 정도로 광활한 쓰레기장에서
해응응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가구를 하나 찾았다.
‘이게 왜 여기에 있죠?’
부기맨의 옷장이었다.
뭘까.
어째서 이 옷장이 여기에 있는 걸까.
그저 비슷한 옷장이 아닌가 싶어
자세히 관찰해보면
군데군데 날붙이에 상하고 흠이 파인 모습에
부기맨의 옷장이 맞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을 바꾼 걸까요?’
부기맨의 본체는 옷장 안에 있으니
낡은 옷장을 버리고
새로운 옷장으로 갈아타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그 행위는
곤충들이 흔히 하는 탈피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똑똑
옷장을 노크하자
그 안에서 부기맨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정에, 빠졌다.”
“?”
“요력봉인지대. 이곳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침묵해버리는 부기맨.
해응응은 깨달았다.
둥실둥실 허공을 떠다니며
일행의 뒤를 따라오던 부기맨.
그의 이동은
전적으로 요력에 의지해서 이루어졌음을.
그의 말대로
이 쓰레기장이 요력봉인지대라면
지금의 부기맨은
제 힘으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옷장에 갇힌 무능한 요괴라는 사실을.
“…….”
함께 싸운 의리도 있고
유일하게 자신을 따라 인계로 넘어온
단 한 명뿐인 전우.
그가 자신을 먼저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그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기다려보면 움직이겠거니
옷장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려보고
다리가 아파서 옷장에 기대어 서보기도 하고
다시 노크를 하거나
쿵쿵 때리거나
툭툭 걷어차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5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부기맨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
슬슬 싫어도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한 가지.
부기맨을 버리지 않으려면
이 드넓은 쓰레기장에서
크기는 더럽게 커서 무겁기까지 한
인벤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이 옷장을 끌고 다녀야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부기맨 짐짝행
아니 진짜 짐이 됐네 ㅋㅋㅋ
얘 왜 왔냐?
따라오지나 말지 쥰내 귀찮게 하네ㅋㅋㅋ
버리고 가나?
슬쩍 옷장을 들어보려 힘을 주어본 해응응은
손끝에서 시작해서
팔뚝과 어깨, 허리와 두 다리까지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고는
원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옷장을 흘겨보다가
[▶게임을 종료합니다.] [▶묵언검객 님이 방송을 종료했습니다.]15500명의 시청자들을 우주공간에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옆집 옷장이 버려져서 구경하고 왔더니 우리 집이 사라졌지 뭐에요
진짜 방종 타이밍 하 ㅋㅋㅋㅋㅋ
왜지? 제발 방종 좀 하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지?
점심우주에서먹을것같애 점심우주에서먹을것같애 점심우주에서먹을것같애
엄마어디가? 엄마어디가? 엄마어디가?
무슨 재난현장 같네 시발 ㅋㅋㅋㅋ
웃음이 나와? 웃음이 나와? 웃음이 나와?
맞아 지금 웃음이 나와? 이제 다음 뱅송은 몇 달 뒤에 올라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아
앗
ㅅㅂ
엄마돌아와엄마돌아와엄마돌아와엄마돌아와
그것이 묵언검객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수귀자폭병 저거 갑자기 자폭 하네
방종만 하면 터지는 지뢰 같은 샛기들임
이번 방송 전에 방송 원래 몇 시간 했었음?
다 합쳐서 2시간
그거 몇 달 걸림?
두 달
그럼 1시간에 한 달이네?
그런가?
근데 이번에 64시간 했네?
우주공간을 가득 메우던 채팅들이 뚝 멎었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사실에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아서.
64개월???
5년 4개월???
시발 휴뱅이 그렇게 길면 그게 사람임?
그 정도면 이름도 까먹겠다ㅁㅊ
묵언검객도 생각이 있으면 그딴 짓은 안하겠지
생각이 있으신 분이 소통을 브이원툴로 할까요?
앗… 아앗…
사실 그거 영정사진이었던 거임 ㅋㅋㅋ 마지막 가는 길 이쁘게 보이려고 브이 해준 거
개새끼야
안돼이게마지막일리가없어
5년 4개월??? 5년 4개월?????
알아서는 안 될 금단의 진실을 깨닫고
광인이 되어버린
코즈믹호러Cosmic horror,
우주적 공포의 희생자.
우주미아들의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고
시청자들은 역대급 공포에 휩싸였다.
2.
게임을 마치고 캡슐 밖으로 나온 해응응.
등에 눌렸던 머리카락을
손으로 모아 습관처럼 묶어 올리며
끝맺음을 하듯이
비녀를 꽂으려던 손이 흠칫 하고 멈췄다.
‘조금 심하게 빠져버린 걸까요.’
반요곡은 저쪽 세계.
현실세계에서도 비녀가 있을 리가 없는데.
마음을 강하게 먹고
왕자를 쳐냈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중에는 아직 미련이 남아있었던 걸까.
‘조금, 지친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번만 특별한 건 아니다.
반요곡을 마칠 적에는 늘 그랬다.
무림에서의 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현실과 똑같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실감 넘치는 NPC들.
프로그래밍 된 행동패턴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대체 반요곡은 뭘까요.’
내공이 사용 가능하다는 시점에서
이미 다른 세계와 이어져있는 게임이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미 십중팔구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품고 있다.
‘이 세계를 어떻게 마주하고 대해야 할까요.’
반요곡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있는 걸까요.’
궁금해졌다.
그녀가 보는 반요곡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들이 바라보는 반요곡은 어떤지.
모두가 그녀처럼
이 게임을 하면서 이토록 진이 빠지도록
마음 졸여가며 게임을 하고 있는지.
[검색 : 반요곡 플레이영상] [검색결과 약 2,760,000개]다른 플레이어의 영상 속 반요곡.
[처형자 1데스 3트 클리어] [선검술 스킬트리 추천] [신체축복 올인 플레이]“?”
그들의 게임플레이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죽어라.
제법이군.
큭, 당했다.
기계적인 어조로
단답의 의사만을 표명하는 NPC들.
분명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수준 높은 AI로 이루어졌던 보스들이
영상 너머에서는
마치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어색했다.
‘꼭 강시 같네요.’
자아를 지녀도 제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술사에 의해 조종당하는 살아있는 인형들.
무림에서는 이를 강시라고 불렀고
그녀 또한 한때는 혈교의 혈강시로
각인에 지배당했었다.
이유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영상 시작부분마다
무엇이 그리 자랑스럽기라도 한지
대놓고 원인이 적혀있었으니까.
[이 공략은 2뎃 이후 진행되었습니다.] [초보자분들은 혈둔수로채 보스토벌전에서 최소 3뎃은 하고 시작해야 공략이 수월해집니다.] [일단 죽고 시작해야 보스토벌전 난이도가 낮아지는 건 아시죠?]사망에 의한 난이도 하락.
그에 따른 보스들의 패턴약화 및 AI저하.
그녀가 상대해왔던
그녀가 진짜 생명체처럼 여겼던
수많은 감정을 주고받았던 NPC들을
다른 플레이어들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감정적 교류도
인간 같은 NPC와의 의사소통도
몰입할 수 있는 게임도 아닌
그저 게임을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난이도.
각자의 실력에 맞는 오락거리였으니까.
같은 배경의 같은 적을 상대하지만
이를 어느 누가 같은 게임이라고 취급하랴.
‘이 기분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네요.’
해응응은 고독함을 느꼈다.
무림계에서도
반요곡에서도
현실세계에서까지도
눈치 챌 적이면 어느새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평소라면 몸에서 풀어놓을 일이 없던
검집마저 벽에 걸어둔 채로
마치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덩그러니 베란다 밖 창가를 바라보는 그녀.
중천에 도달했던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습에서
자연의 무상함과 인생사의 허망함을 느끼며
고독을 곱씹던 그녀를 깨워준 것은
한 건의 연락이었다.
주아영 : 언니!! 지금 시간 괜찮아요??
해응응 : 무슨 일인가요?
주아영 : 옷 사러가요! 가는 곳마다 눈에 띄어서 요즘 밖에서는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해응응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주아영의 연락이었다.
해응응 : 좋아요.
주아영 : 나이스!!
주아영 : (물개박수를 치는 물개 사진)
주아영 :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사진)
주아영 : (비장한 표정의 셀카)
주아영 : 그럼 9시까지 여기 주소로 와주세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코디해드릴 테니 단단히 각오하시고 오세요!!
직접 입을 옷도 아니고 남의 옷을 맞춰주는 게
그리도 기쁜 일일까.
옷쇼핑을 기분전환으로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저렇게까지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네요.’
해응응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