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71)
〈 571화 〉 571 대결의 조건
* * *
1.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실력이 부족하면 자신감이 넘치고, 실력이 뛰어나면 자신감이 부족함을 일컫는 용어.
이는 무림인에게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동화율컨트롤 하나만 믿고 천방지축 날뛰어왔다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미친 짓이었구나.”
절정지경에 올라선 점핑괴인 김만득.
깨우침을 얻은 뒤에야 그는 점핑레빗을 세 번째로 잘하는 자, 보팔레빗의 실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점핑이란 자신의 신법에 대한 지고한 확신이 있기에 행해지는 커다란 움직임.
신체에 대한 이해, 힘의 작용에 대한 이해, 변수를 비롯한 순간대처요령에 대한 이해.
그밖의 수많은 경험과 이론을 요구한다.
“뭐라는 거냐, 이 점핑씹덕아. 어떻게 해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너에게는 불가능하다.”
“…이 자식이?”
“철두공. 너는 머리를 쓰지 않고도 이 산을 등반할 수 있는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철두공은 내 시그니처 무공. 나라는 인간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다.”
“그렇기에 안 된다는 거다. 신입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기술이 너무 뛰어난 것이 도리어 독이 되었지. 기술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져 도리어 해가 되었다.”
일정수준 이하에서는 하나라도 특출한 장기가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경지를 넘어선 뒤에는 그 장기를 고집하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된다.
김만득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왔기에 아직 오르지 못한 두 사람을 평가했다.
“그럼 너 혼자 나아가겠다는 거냐?”
“선배님 혼자만 면벽동에서 탈출하려고요?! 치사해요!!”
“시끄럽다. 누가 너희를 두고 간다고 했냐. 혼자서는 무리라고 했지.”
애초에 그들이 도전하는 것은 솔로모드가 아니다.
“이제는 힘을 합쳐서 합동으로 등반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서로의 장기로 상대의 부족함을 메우는 테크닉을 연마해라.”
“그동안 너는 뭘 하려는 거냐.”
“슬슬 찾아내야지. 묵언검객에게 도움이 될 히든루트 공략, 어스웜 섬멸전의 힌트를.”
아직 진심도 아닌 아영이는점핑레빗이좋아영과 묵언검객에 비해 뒤처지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지에 올라선 김만득은 직감했다.
지금 자신의 실력이 묵언검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스펙, 진정한 출발선임을.
‘우선은 두 사람의 영상을 다시 봐야겠어.’
전에는 마냥 불가해의 신비로만 보였던 아영이는점핑레빗이좋아영과 묵언검객의 플레이.
다시 한 번 열람한 두 사람의 플레이에서 김만득은 전에는 넋이 나가 놓쳤던 고등한 기예들을 연이어 발견하였다.
‘이 사람들, 시스템을 이해했는지 본능적인 감으로 이용했는지는 몰라도 점핑이나 경공발동 직전에 바닥에 대고 역방향 이중점프를 발동하고 있어.’
그가 어렵사리 터득한 기술을 이들은 평타 넣듯이 모든 점프에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멈추지 않는 슈퍼점프나 기가 막히는 경공, 구름을 타는 사기기술을 전부 떼어놓더라도 이미 시작부터 기본이 튼튼했던 것이다.
‘바닥에서의 점프는 그렇다고 쳐도 공중에서의 다단점프에 실린 가속도 정상이 아니야.’
가속판정을 유지한 채로 구간을 주파하는 것은 역방향 이중점프의 효과가 맞다.
그러나 공중에서의 다단점프 이후 한층 더 빨라지는 이단삼단가속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그의 과제다.
“크윽!”
요령만 알면 분명 따라할 수 있을 텐데.
저배속으로 클립을 따서 저장해둔 영상.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몸으로 직접 점핑을 뛰어보건만 아영이는점핑레빗이좋아영이 구사한 기술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차라리 묵언검객의 기술을 배우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난해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럴 리는 없다.
묵언검객의 경지는 수제자 주아영보다 아득히 위인 것이 당연하니까.
해남파 내에서는 자신의 경지를 초절정이라고 드러내는 길드장의 말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조화경의 무공을 감히 모방하려 드는 것보다는 같은 절정고수의 신법을 파헤치는 것이 훨씬 쉽겠지.’
물론 같은 경지라도 실력에 고하는 있다.
신법원툴에 겨우 절정의 입문에 불과한 김만득과 달리, 주아영은 길드장에게 친히 전수받은 수많은 무공을 모두 수준급으로 익힌 육방형 완전체 절정고수.
절정지경 내에서도 숙련과 완숙을 넘어서 초절정으로의 탈각을 앞둔 도약 직전의 경지로 추정된다.
‘보통이라면 이런 고수의 무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야만적인 중세무림이 아닌 기술이 개발된 현대무림에 태어났고,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동화율이라는 안전망을 이용한 채 영상클립으로 저장한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방할 수 있다.
해남파에 갓 들어왔을 적에 들었던 무림의 역사 시간에 들었던 적이 있다.
본디 상승무공이란 같은 문파 내에서도 누군가의 성명절기나 상승기예는 사제지간의 연을 맺거나 사문에 큰 기여를 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다.
고작 상승무공조차 그럴진대 지금 그가 노리는 것은 조화경의 고수의 깨달음을 직접 전수받은 수제자의 무공, 능히 초상승무공이라 불릴 것을 연구 중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나 귀한 무공을 배우고 있는 걸까?’
면벽동에 갇히기 전에는 무공수련 따윈 질색이라고 여색만 탐하던 그였는데.
어느덧 여자 따위는 뒷전으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무공수련에 골몰하는 자신이 보였다.
“흐흐.”
그런 자신이 싫지만도 않다.
이래서야 점핑괴인 소리를 들어도 부정할 수가 없겠는걸.
오늘만 벌써 주아영의 신법 익히기에 실패하여 11번 째 강제로그아웃을 당하면서도 웃음이 그치질 않는 김만득이었다.
* *
“한 번만 싸웁시다.”
“싫다니깐요.”
주아영은 오늘도 귀찮게 질척거리는 양귀호에게 짜증을 담아 쏘아붙였다.
“제가 만만해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만했으면 애초에 대결을 요청하지도 않았죠.”
“그럼 포기하는 법을 익히셔야지 언제까지 저한테 귀찮게 이러실 거예요. 언니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제가 만만하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무림인에게 싸움은 일상이다.
얼마나 싸움이 흔한가하면 싸움의 종류를 부르는 말이 경우마다 따로 있을 지경이다.
수련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한 수련비무.
무공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한 실전대결.
자신의 신념을 강제하기 위한 생사투.
그중 해남파에 주로 유행하는 것은 수련비무였는데, 신법에 미쳐서 해응응에게도 대회 도중 신법대결을 제안할 정도로 당돌한 양귀호는 실전만 고수했다.
수련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 초식 몇 개 펼치고 정밀도와 변주를 평가받는 것은 그의 성미에 도저히 들어맞지 않았다.
“번거롭게 해드리는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재롱잔치나 다름없는 비무를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고수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하수의 마음을 부디 헤아려주십시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제안을 거절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라고 내뱉는 말에 열불이 났다.
“양귀호씨가 요즘 이렇게 귀찮게 구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녁시간.
흔치않게 입맛이 돌았는지 식사를 함께 즐기던 해응응이 주아영의 상담에 응해주었다.
“우선은 입장을 역전시켜야죠.”
“제가 도전자가 되라고요? 아하. 양귀호씨가 지쳐 쓰러져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계속 승부를 걸어서 다리몽둥이를 박살내라는 뜻이죠?”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더 세련된 방법이 있어요. 자격증명을 요구하는 거죠.”
“자격증명이요?”
“대련을 받기 귀찮은 고수들은 흔히 날 상대하려거든 이 조건을 충족시키고 와라, 라면서 상대에게 요구조건을 걸어요. 대결을 원하는 것은 상대이지 자신이 아니니까요.”
“무시하고 계속 덤비려고 하면요?”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죠.”
“…우와… 그건 좀…”
무슨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자꾸 귀찮게 군다고 양귀호의 목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통은 자기가 평소에 구하던 산해진미나 먼 지방의 특산품, 병에 걸린 사람의 치료제 따위를 조건으로 걸어요. 그걸 들어주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 선에서 승부를 겨루는 대결로 그치죠.”
언뜻 잔인하게만 들리던 이야기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이 주아영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림도 다 사람 사는 곳이에요. 현대의 법과 도덕을 대신할 율법과 암묵적인 규칙이 있죠.”
“고마워요, 언니.”
“조건을 너무 까다롭게 걸지는 말아요. 양귀호씨가 자포자기하고 생사투를 걸면 피를 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사투를 벌여야 하잖아요.”
“…일단은 가상세계에서 하는 대결이거든요? 언니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어요.”
어째서인지 해응응은 아쉬운 기색이었다.
…응애 무림인들이 넘쳐나는 현대무림과 달리 야생의 민낯을 고스란히 지닌 야생무림의 귀환자에게는 때때로 이런 섬뜩한 구석이 있다.
날아가던 비둘기도 미색에 반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모여드는 것처럼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무림을 헤쳐 나오다보면 누구나 저렇게 되는 걸까.
새록새록 떠오르는 장삼단봉 어르신의 수다를 밀어두고 주아영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양귀호가 쳐들어오기 전에 조건을 정해야했다.
“면벽수련자들은 성취가 많이 올라왔나요?”
“상당히요. 셋 중에 점핑괴인이 특히 성장세가 빠르기는 해요.”
“한 달이 지나면 얼마나 강해질 것 같나요?”
“같이 공략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는 실력이 올라올 것 같아요. 언니나 제 속도에 맞출만한 인재는 흔치 않으니 정말 놀랍죠.”
언니의 물음에 대답하다가 돌연 머릿속에 한 줄기 깨달음이 스쳤다.
최근 성장세가 대단한 점핑괴인을 역으로 양귀호의 대결상대로 삼는다면?
한 달이라는 성장기간동안 양귀호가 점핑괴인의 도전을 거듭 받아줘야 하는 귀찮은 입장에 역으로 처하게 된다면?
대결에서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다시는 그녀에게 도전할 수 없는 전승의 제약을 건다면?
“고마워요, 언니. 덕분에 대결에 걸 조건을 정할 수 있었어요.”
해응응은 내가 언제 힌트를 줬냐며 아무것도 모르는 체, 쟁반 위의 접시에 담긴 민트초코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
오독오독 초콜릿 덩어리를 깨물며 민트초코를 만끽하던 입의 움직임이 점차 줄어들더니 먹지도 뱉지도 못하고 곤란해하며 입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잠시 뒤, 접시 위로 슬그머니 올려놓아지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그러게 왜 드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초코맛 치약은 맛있으니까 치약맛 민트초코도 맛있을 줄 알았죠.”
주아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참. 근데 언니는 알고 계신거죠?”
“뭘 말인가요?”
“점핑레빗만 수련해도 절정고수가 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수련을 게을리하다가 면벽동에 갇힌 제자들에게 점핑면벽수련을 시킨 거 맞죠?”
지나친 솔직함으로 웃음을 유발한 언니가 이번에는 어색한 얼굴로 눈을 피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겨우 그치려던 주아영의 웃음이 또다시 연이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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