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80)
〈 580화 〉 580 무뎌진 감각 되살리기
* * *
1.
어떻게든 주아영과의 오후실전에서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 김만득.
발전한 성과와 달리 내심은 혼란스러웠다.
신입이 여자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는 성추행범으로 면벽동에 갇혔다.
비록 지금은 점핑에 더욱 진심이 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죄질이 나쁜 인물이다.
그런 자신에게 맞은편 방에 여자를 두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겨놓는 꼴과 다름없다.
‘심지어 같이 점핑레빗도 수천 판을 뛰었잖아!’
장시간 같은 필드에서 점핑까지 했던 사이다.
고양이 앞에 맡겨놓는 꼴이 아니라 악어 입에 손을 집어넣고 이래도 안 물어? 하고 훈련이 얼마나 잘 되었나 시험해보는 수준에 가깝다.
당연히 한 번만 헤까닥 돌아버리면 손목이 뎅강 잘리는 것처럼 참사가 일어난다.
‘뭐, 그 뒤에야 총 맞고 죽을 악어처럼 비참한 꼴을 겪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잖아!’
신입은 신입대로 눈을 샐쭉하게 떴다.
“선배~ 설마 제가 여자라고 알고 있었으면 음흉한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습니까?”
“당연히 했겠지.”
“…부정하시라고요. 선배가 그렇게 나오니까 선배를 두고 해남파 문도들이 밖에서 여자를 수십 명 강간하고 들어왔네, 수백 명이네 유언비어를 퍼뜨리죠.”
신입이야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그리 말했나보지만 김만득은 그냥 진심을 말한 것이었다.
“예전이면 분명 저질렀을 걸? 점핑레빗에 재미를 붙이기 전이었으니까.”
점핑만이 탈출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밖에 나가지 않고도 육욕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신입 따위는 사람으로도 안 봤다.
같이 감옥을 나갈 동지가 아니라 십중팔구는 욕망을 해소할 도구로 봤다.
“지금은요?”
“미쳤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푸하핫! 선배, 절 가족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이런 미친 점핑지옥을 같이 헤쳐 나왔는데 전우보다 더한 가족이 아니면 뭐냐? 넌 이제 결혼도 나한테 허락받고 해야 돼.”
“참나, 선배가 무슨 제 형도 아니고 아빠가 되려고 하십니까?”
“형이 아니라 오빠겠지.”
“아무튼 형임다.”
“근데 넌 왜 남자 흉내를 내고 있었냐?”
함께 지낸지도 꽤 오래 됐는데 신입이 뭘 하다가 잡혔는지는 들은 기억이 없었다.
이 기회에 들어보겠다고 물음을 던지는데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빨래를 하기 싫었습니다.”
“뭐어? 빨래애?”
“하급제자는 수련비를 내지 않는 대신에 잡일과 해남파 행사업무에 동원되지 않습니까. 남자가 맡는 잡일이 근력증진에 더 도움이 됩니다.”
“허, 웃기는 놈이네. 그럼 남자 행세 하느라 빨래 안했다고 잡혀온 거냐?”
“그건 아니고 제 정체를 눈치 챈 하급제자 한 놈이 엄한 짓을 하려고 해서 묵사발을 냈다가 면벽동에 갇혔습니다.”
“전치 몇 주?”
“이, 이십 주…”
“이야. 진짜 개 패듯이 팼나보네.”
신입이 멋쩍게 웃었다.
“상대가 쎈 척만 하고 무공수련을 전혀 안 하던 삼류잡배라 부상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도 신나게 패서 기분은 풀렸죠.”
“무공을 어디까지 익혔는데 그리 줘팰 수가 있냐?”
“삼재기공 8성, 반어심공 2성, 해남검법 7성, 빙령환위검 4성이요.”
듣기만 해도 맞으면 굉장히 아프게 때릴 것처럼 강하게 들리는 무공이 즐비했다.
…밖에서 신입한테 성추행 안 해서 다행이다.
살해당했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어차피 헛수작을 하면 내가 맞아죽을 것 같아서 붙여둔 건가…?”
“푸핫. 선배, 가족한테는 손 안 댄다면서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십니까? 설마 절 가족이 아니라 이성으로 의식하시는 겁니까?”
“안 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안 한다고!”
티격태격 싸우는 두 사람의 언쟁에 사이에 낀 철두공이 인상을 버럭 쓰며 말했다.
“짜증나게 썸 타면서 간 보지 말고 마우스박치기라도 하던가, 안할 거면 남의 복장 뒤집지 말고 조용히 하던가. 주화입마 올 것 같으니까 하나만 해.”
철두공의 신랄한 지적이 있은 뒤에야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겨우 끝을 맺었다.
2.
김만득이 품은 의문은 주아영도 똑같이 품었다.
“언니. 그 신입, 여자인 거 알고 계셨어요?”
“당연히 알았죠.”
“점핑괴인 김만득은 성추행으로 들어온 사람인데 맞은편에 그런 위험한 사람을 놓아도 괜찮았어요?”
“괜찮아요. 신입이 더 세니까요.”
“아아… 왠지 그런 이유일 것 같았지만 직접 들으니까 더 힘빠지네요…”
언니가 별난 짓을 하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깊은 심계가 담겨있든.
장난기를 감추지 못하고 저지른 장난이든.
언제나 휘둘리는 것이 그녀의 역할.
그래서 이번에는 어느 쪽일까.
심계? 장난?
“역시 장난삼아 집어넣으신 거죠?”
“그 신입은 가능성이 있어요.”
“…네?”
“제법 크게 자랄 거예요.”
놀랍게도 이번에는 장난이 아닌 심계였다.
“면벽수련자들의 특기는 전날의 실전특훈으로 전부 분석했나요?”
“물론이죠. 신입은 겁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점프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죽자 살자 연속점프를 뛰는 구간스킵의 자질이 있어요.”
“잘 보았네요. 안목이 늘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간돌파가 끝나면 과하게 집중력을 소모한 대가로 금방 탈진이 찾아오잖아요. 그거, 분명 내공을 동원한 강제집중향상효과 맞죠?”
“맞아요.”
“그 정도로는 따라오기도 급급한 실력인데 정말 공략에 도움이 될까요? 저는 신입이라는 분에게 언니가 기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해응응은 설핏 웃었다.
“아영. 전에는 당신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요?”
“재능을 개화시켜주기 전까지는 성장이 빠른 분야는 있어도 한계는 뚜렷한 그저 그런 검객이었죠.”
“…뭐, 예전의 저야 확실히 약하긴 했었죠. 신입도 키우기 나름이라는 건가요?”
“그 사람은 동료가 힘들어하면 덩달아 성장하는 유형의 인간이죠. 다른 둘을 몰아붙이면 금방 실력이 늘어날 거예요.”
“몰아붙인다면 어떤 방식으로요?”
“생명의 위기가 가장 좋겠죠.”
“…네?”
“맵에 있잖아요. 조금만 건드려도 알아서 득달같이 올라오는 커다란 괴물이.”
주아영의 입에 그건 좀 싶은 어색한 미소가 일었다.
3.
[경고. 경고.] [열 받은 어스웜이 전력질주를 개시합니다.]그냥 내버려두어도 무섭도록 쫓아오는 어스웜이 항시폭주상태에 돌입하며 미친 듯이 쫓아온다.
김만득, 철두공, 신입.
10층 오버 룰 특훈으로 뒤처지지 않는 끈기를 기르게 만든 것이 무색하게 몸이 굳으며 조금씩 간격이 벌어지더니 줄초상을 치렀다.
[점핑괴인 님이 어스웜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철두공 님이 어스웜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신입 님이 어스웜에게 잡아먹혔습니다.]“면목 없습니다…”
“몸이 굳었다.”
“실전의 긴장감은 이 정도였나.”
안 그래도 어려운 점핑레빗을 가장 어렵게 플레이하는 만렙토끼 모드에서의 어스웜 도발루트.
이를 한층 뛰어넘어 토벌까지 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존조차 빠듯한 처지는 빈말로도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일단 1000m 단위로 살아남으면 잠깐이라도 상승속도에 둔화가 걸려서 여유가 생기는데 그 1000m도 못 버텨서는 진도를 낼 수가 없잖아요.”
주아영은 실망이 컸다.
이번만큼은 언니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전부 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혼자서 할 걸.
그런 후회의 저편에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아영언니… 완전 짱 멋졌어요…
바보야, 말하지 마! 응급치료 하면 되니까 그냥 가만히
안돼요. 저, 물려버렸는걸.
짐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던 예지수.
좀비해저드의 동료.
해남아이돌즈의 일원.
처음에는 생존도 급급했던 아이들이 제 목숨을 바쳐가며 기회를 만들고 의지를 이어나갔다.
거기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 번 죽으면 끝.
게임에는 다시 참여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두가 주저 않고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
‘왜일까? 그때와는 비슷하면서 다른 이 기분.’
주아영은 밤새 세 사람의 플레이데이터를 리플레이로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이거였구나.’
반복되는 시청 끝에 그녀는 찾아내었다.
좀비해저드의 해남아이돌즈와 점핑레빗의 면벽수련자들 사이의 차이를.
‘죽음의 의미가 달라.’
점핑레빗에서의 죽음.
그것은 다음판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여차하면 죽고 다음 판을 위해 심신을 다진다.
위험하다 싶으면 동화율을 내리고 생존을 포기한다.
자신의 죽음이 다른 이들의 공략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개죽음으로 끝난다.
항거할 수 없는 종말의 짐승, 어스 웜.
적은 너무 강하고, 죽음은 너무 잦다.
무뎌져버리는 것이다.
강제로그아웃을 겪는 것에.
점핑레빗만의 독특한 구조가 이들에게 죽음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고, 희생의 가치를 무디게 만든다.
“특훈을 시켜야겠네.”
무딘 정신이 다시 날카로워질 수 있도록.
물론 점핑레빗에서는 안 된다.
게임 주기도 너무 길고, 이미 무뎌진 곳에서 훈련을 반복해봤자 더 무뎌질 뿐이다.
“우지우 실장아저씨.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맵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잖아.”
“누구한테요?”
“면벽수련자들 좋아하는 맵에디터 있잖아.”
“아!!”
심심하면 버전업을 하면서 이제는 반요곡 못지않게 볼륨이 커져버린 묵언검객 따라잡기 시뮬레이터.
그 제작자 엄길동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