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9)
〈 59화 〉 59 매화향
* * *
1.
한 사람만 설레는 쇼핑데이트 끝에
세 벌의 옷세트를 얻게 된 해응응.
그녀의 차림새는
365일 변치 않을 것 같던
장삼에 피풍의, 밀짚모자로 이루어진
사복세트(3/3) 대신
고른 옷들 중에는 가장 스타일이 좋다며
주아영이 강력 추천한
스판 폴라 티와 루즈핏 니트 베스트, 데님 팬츠, 웨스턴 부츠로 이루어진
주아영 코디세트(4/4)로 맞추어졌다.
“….”
“자꾸 어딜 둘러보세요. 언니가 그러면 더 주목받을 걸요?”
하복부를 꽁꽁 가리고 싶어서
시도 때도 없이 허리춤을 올리는 해응응 때문에
특단의 대책으로 니트 조끼까지 입혔건만
이제 복부보다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도무지 안정을 찾지 못하는 해응응.
이래서는 오늘 산 옷들은
당장 내일부터 영원히 옷장에 봉인되어서
두 번 다시 빛을 보지 못하겠다 싶자
주아영이 한 가지 꾀를 부렸다.
“정 불안하면 뭐라도 쓰고 다니시는 게 어때요?”
반색하며 쇼핑백에서 죽립을 꺼내드는 해응응.
“그 커다란 유부초밥 같은 모자 좀 말고요.”
“….”
오늘따라 부쩍 감정변동이 심한 언니의 모습에
가슴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괴롭혔나 싶은 주아영.
그렇다고 죽립을 허락하면
관성처럼 장삼과 피풍의까지 부활하기까진
하루도 채 안 걸릴 거라고 확신했다.
전투복으로 입을 때야 상관없지만
남들의 눈을 피해
둘이 함께 놀러 다닐 적에도
저런 모자를 쓰고 다녔다간
기껏 옷을 새로 맞춘 보람도 없이
사람들이 모두 알아볼 게 뻔했다.
“우산은 어때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별빛이 보일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지만
우산이라고
꼭 비가 내릴 때에만 쓰라는 법이 있는가.
해응응의 독특한 패션관을 겪으면서
주아영은 패션에 대해 열린 마음을 품었고
자연스레 언니의 문제를 해결할 소품을 찾았다.
“들고 다니면서 모자 대신 얼굴을 가리기에도 좋고, 어두운 색상이면 눈부시지 않게 햇볕을 가리기에도 좋고, 여차할 땐 비도 막을 수 있고요.”
우산 본연의 목적이 제일 뒤로 밀려나게 되는
기묘한 제안이었지만
해응응에게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산은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나요?]“글쎄요… 우산전문점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인터넷쇼핑으로 사는 편이 낫겠죠?”
[그럼 오늘은 죽립을 쓸래요.]“안 돼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편의점 우산을 들려주고 말지. 어? 이거 괜찮네요. 편의점 우산. 산성비 때문에 우산재고도 쌓여있거든요.”
10분만 맞아도 피부염에 걸리고
1시간을 맞으면 각종 중금속에 중독되기 딱 좋을
위험천만한 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모든 편의점은
일정량의 우산재고를 갖추고 있다.
“저희 편의점 가지 않으실래요? 저 오늘 야간조 친구랑 근무시간 바꿔서 근무 서는데. 겸사겸사요. 귀찮다고요? 아이. 같이 가요. 네?”
괜스레 귀여운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며
손가락으로 콕콕 팔뚝을 찌르는 주아영.
살가운 애교 앞에
해응응의 표정이 풀어졌다.
[좋아요. 오늘은 여러모로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편의점까지 같이 가요.]흔쾌히 따라와주는 언니의 손에
곰돌이 마스코트가 그려진 우산을 들려줄지
두꺼비 마스코트가 그려진 우산을 들려줄지
조금은 발칙한 고민을 하는 주아영.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2.
“자 그럼 오늘의 컨텐츠 고독한미식가 야방은 여기까지. 얘들아 이제 현생 살러가~”
밤 10시에 현생을 어디서 살아요ㅅㅂ
ㄹㅇ 눈뜨고 일어나면 방송하고 방송 끝나면 잘 시간인데ㅋㅋㅋ
형 쥰내 얄밉네요 한 대만 때려도 돼요?
“응 안 돼. 묵언검객님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나 진짜 끈다?”
시청자들과의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방송을 마친 이해찬.
평균시청자 4000명과 함께 끝마친 방송에
그의 편집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웬수놈 : 조회수 60만 각
이해찬 : 좀 더 써봐
웬수놈 : ㅇㅋ 인심 썼다 61만 5천
이게 어딜 봐서 월급 받는 편집자야.
한탄을 하면서도 명호동의 특산품은
편집자 몫까지 빠지지 않고 살 생각인 이해찬.
그는 좋은 방송인일 뿐만 아니라
좋은 사장이기도 했다.
“이런 동네에 묵언검객이 살고 있단 말이지?”
방송은 끝났지만
1인용 캠코더를 손에서 놓치지 않는 이해찬.
비밀리에 진행하는 특집녹방
에 써먹을 영상과 멘트를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호동 집값이 요즘 10억쯤이네? 휘유. 게이트가 있어도 이 정도면 명호길드도 나름 영세길드 치고는 힘 좀 쓰나봐.”
부동산버블을 인정사정없이 터뜨려버린
몬스터와 게이트 덕분에
대부분의 지역에서
집값이 1억 미만으로 곤두박질 쳤음을 감안하면
명호동은 엄청나게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나 방금 구글링 해봤는데 명호길드에 그 사람이 있었네? 이명호. 10대 길드 중에 하나인 태백길드의 강태백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잖아.”
방금 한 건 아니다.
방송에 써먹을 멘트는
캠코더를 키기 전에 막힘없이 멘트를 치고자
사전조사를 한 결과물이니까.
여행을 가도 여행지의 정보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수백 년 전의 석탑이나
수학여행에서나 찾아볼법한 유물보다는
여행지의 길드나 유명인물에 대한 조사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엔 훨씬 좋았다.
[입금내역]명호길드 → 내 계좌
+1,000,000원
사전에 방송컨텐츠를 설명하며
겸사겸사 명호길드의 홍보도 하겠다고 하자
통 크게 홍보비로 백만 원을 쾌척한
명호길드 홍보실의 영향도 크다만.
조금이라도 좋은 소리를 해줘야겠다며
금융치료의 효과를 살리고자 애를 쓰니
10시에 끝난 방송이 무색하게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가 되었다.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오지 말 걸.”
자세를 펴기 무섭게
우드득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는 허리.
녹방도 적당히 해야지,
이러다가 사람 잡겠다는 생각에
이해찬은 가로등 불빛에 홀린 날벌레처럼
비척비척 편의점 간판을 향해 걸었다.
“묵언검객은 목격담이 왜 이리 두서가 없지?”
명호동에 온 것까지는 정답이었다.
그런데 동네주민들의 진술이 꽤나 정신사납다.
연예인연습생들이 다니는
모 연습실에서 한 달을 살다시피 했다거나
명호길드 길드원들과 1 대 13으로 싸워서
무슨 테니스채 같은 악기로 전부 때려눕혔다거나
각성자학원의 일일강사로 나와서
교육혁신을 일으켰다거나.
“골 때리는 건 전부 증인도 있다는 건데.”
차라리 본 사람이라도 없는 뜬소문이면
말이나 안 하지.
각성자학원도, 1대13싸움도, 악기연습실도.
전부 찾아가면 묵언검객을 봤다고 하는
증인들의 진술이 우르르 쏟아진다.
“실은 내가 재능이 있는 건가? 사람 찾는 흥신소나 기사거리 취재하는 기자의 재능?”
캠코더를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자뻑 넘치는 포즈를 취하는 이해찬.
“저 사람 왜 저래?”
“취했나봐. 원래 술 마시면 남자는 다 그래.”
“큭큭. 개웃겨 진짜. 자기도 그래?”
“…에이. 난 아니고.”
“자기도 해봤구나?”
야심한 밤에 데이트를 나왔던 커플이
속 뒤집는 소리를 하며 지나갔다.
이해찬의 얼굴이 쪽팔림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아아……. 내가 이 시간에 이런 소리 들어가면서 녹방을 찍어야 돼? 못해먹겠네 증말.”
물론 성공한 브이튜버는
쪽팔림의 순간마저도 브이튜브 각을 잰다.
“시바 좆됐다. 진짜 쪽팔려 죽겠네.”
물론 캠코더가 꺼진 뒤의 부끄러움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불 속이라면 펑펑 이불을 걷어차고도 남을
나이 스물여덟에 새롭게 갱신된 흑역사.
생수라도 들이키며 진정하고자
편의점에 들어갔다.
딸랑
“어서오세요!”
계산대 안에서 활기찬 인사를 건네는
상당한 미모의 알바생.
‘사장이 돈 좀 썼네. 매출 좀 되겠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편의점 안쪽의
음료가 전시된 쇼케이스 냉장고로 향하던 걸음이
먼저 음료를 고르는 선객의 존재에
천천히 걸음을 늦췄다.
‘휘유. 뒷모습만 봐도 미녀 각이네.’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은 폴라니트조끼에
애플힙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뒷태가 완벽하게 살아나는 엉덩이에
주책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향하는 시선을 참을 수가 없는 이해찬.
달그락
음료를 고르는 소리에 올라간 시선이
우유빛깔 고운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팔꿈치까지 내려간 옷소매 아래로 드러난
붕대를 감은 손목에서 멈췄다.
‘붕대? 일반인이 감을 수준이 아닌데.’
손목 위와 손날, 엄지와 검지 사이를 통과하고
손목을 제대로 압박해서 보호하는
손목부위 스포츠테이핑.
무슨 운동을 하는 사람일까?
호기심을 담아 바라보고 있자니
음료를 고르던 손이 멈췄다.
‘어?’
냉장고 표면의 유리에 비친 눈동자가
경계의 기색을 담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본 것도 아닌
유리에 비친 모습뿐인데도 알아차릴 수 있는
심상치 않은 미모.
홀린 듯이 마주하기도 잠시.
‘너무 가까워서 놀라셨나?’
이해찬이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자신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호소하듯
얼굴 높이로 두 손을 펼치며
한 걸음 반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진짜 예쁘긴 하네.’
연예인연습생들도 많이 다니는 동네인데.
혹시 연예인인가?
두둥실 구름 위로 떠오르듯
설레는 마음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잠시.
이해찬의 코에 희미한 향기가 아른거렸다.
‘어? 이 향기는…….’
공간에 베일 적에는 은은하게 퍼지다가
코끝에 들어오면 진하게 파고드는
한 번 맡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청량감.
인공화장품 특유의
코를 찌르는 독한 향기가 아닌
자연에서 비롯된 기품 있는 꽃의 향기.
‘이거, 매화향이잖아.’
산을 타는 걸 좋아해서 알게 된 향기가 아니다.
향수를 자주 써서 알게 된 것도 아니다.
묵언검객 1인칭.
한 번 빠지면 잊을 수가 없는
코끝을 감도는 향의 정체가 알고 싶어서
방송 외적으로 찾아보다가 알게 된 향기였다.
‘틀림없어. 매화향이 확실해.’
누구보다도 먼저 묵언검객의 방송을 주목했던,
가장 먼저 묵언검객 1인칭에 빠져들었던
묵언검객 감각링크 최장시간 시청자.
그런 이해찬이기에 알 수 있는
묵언검객만의 고고한 기세와 어우러지는 매화향.
의식하고 보니
눈앞의 사람은 밀짚모자를 쓰지도 않았고
무사복 차림도 아니지만
고유의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았다.
‘잠깐. 한 걸음 반?’
여자가 자신을 경계했던 두 걸음 뒤의 간격.
그로부터 한 걸음 반을 더 물러선
세 걸음 반의 간격.
모두 검을 뽑아 몸을 돌리며
배후의 적을 겨냥하기까지 필요한 간격이다.
‘진짜로? 이거 기분 탓 아니지?’
향기야 자신이 모르는 향수를 쓸 수도 있다.
간격이야 직업병 때문에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깊이감이 다른
한 번 마주치면 눈을 뗄 수 없는
반쯤 죽어있는 특유의 눈동자만큼은
틀림없이
몇 번이고 그려왔던
묵언검객 특유의 눈이 아니던가.
“저기, 혹시….”
그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이고자 했을 때.
왜애애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리의 정체를 짐작한 이해찬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그의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듯
편의점 알바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몬스터 공습경보에요!”
명호2동의 게이트가 터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