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92)
1.
끝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은 언제나 괴롭다.
후련함도 한 번뿐.
그 뒤에 찾아올 공허의 순간들을 아는 자는 두려움을 느낀다.
해응응.
그녀라고 다르지 않았다.
‘제 손으로 권력을 이양하기 위해 시작한 점핑레빗이었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드는군요.’
이런 게 간사한 사람 마음이라는 걸까.
스스로 놓으려 했던 것을 다시 움켜쥐고 싶다.
아직은 미숙하고.
아직은 부족해 보이고.
품 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제자.
주아영이 홀로 돋보이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고 리더로서의 포용력을 보였을 때, 해응응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다가옴을 느꼈다.
길드를 만들고 보살피고 싶다고 느꼈던 아이는 어느덧 스스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갈 준비를 끝마쳤다.
더 이상의 보호는 과보호다.
스스로가 그것을 원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제자의 성장이 가로막힐 테니까.
[네놈의 제자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다연발 화산탄도 실은 혼자서 막을 수 있다는 걸.]‘조용히 하세요.’
쏟아지는 채팅창과는 다른 귓가에 직통으로 때려 박히는 요괴왕의 목소리를 제 속에 묻어둔다.
이 무대는 그녀를 위한 무대가 아니다.
[흥. 네놈은 반요곡에서도 그렇지만 손해 보는 역할을 참 좋아하는군.]‘약자의 편이 되어 싸우는 모습이 탐탁찮은가보군요.’
[강함은 곧 정의다. 강자가 약자의 눈치를 보는 것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잘못된 일이지.]‘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알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뭐지? 정 때문인가?]‘세상이 똑바로 돌아가도 딱히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단지 멸망을 향해 똑바로 나아갈 뿐이죠.’
시계바늘이 한 바퀴를 돌아 도착하는 12시에 폭탄이 터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개 시계바늘에 불과한 자신이 시한폭탄의 바늘임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는 다 함께 멸망하자며 시계바늘을 힘껏 돌리지만 누군가는 바늘을 역으로 되감아 멸망의 시간에 잠깐의 유예를 얻고자 한다.
‘제가 겪은 무림은 지옥 그 자체였어요.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보고 강자는 거리낌 없이 약자를 착취했죠. 실험체. 칼받이. 명분을 만들기 위한 포석.’
[요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것들이군.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부정하진 않아요. 그렇기에 제 방법의 한계를 느꼈을 뿐이에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홀로 등선을 이룬다고 한들, 그런 신선들이 도달한 선계를 천국이라 여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늘 위에도 가장 강한 악인이 발을 디딘다면 그곳은 또 하나의 지옥일 뿐이다.
‘사람은 어디에 속해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 정의되지 않아요.’
[그럼 무엇이 요괴와는 다른 사람을 정의하지?]‘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하지 않던 것을 하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낼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특별함을 지니게 되죠.’
황제. 맹주. 고수.
큰 힘과 권력을 지닌다고 큰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선한 의지와 행동과 결과가 일치할 때.
비로소 동물은 사람이 규정한 사람이 된다.
무의 궁극을 논하는 무림인이 진정으로 의지와 행동과 결과가 일치한 뒤에야 궁극에 도달한 무림인이 되는 것처럼.
주아영의 점핑은 그런 궁극을 담기 시작했다.
자신만을 위했던.
즐거움만을 갈구하던.
오직 자유롭기 위한 점핑에 책임이 생겼다.
그것은 그녀를 다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위기로 몰아넣었다.
누군가는 다쳐서 쓰러질지도 몰랐다.
지쳐서 주저앉을지도 몰랏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던질지도 몰랐다.
주아영은 극복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옷이 땀에 축 젖도록.
땀에 젖은 옷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발악이군. 멸망으로 향하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강자독식의 세계를 정점에서부터 부정한다 한들, 그 평화는 강자가 변화하면 무너지기 마련이다.]‘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당신을 쓰러뜨리고 반요곡에 평화를 불러왔듯이, 십대길드를 무너뜨리고 부족하나마 평화를 불러왔듯이, 누군가는 평화를 되찾겠죠.’
[그걸 위한 힘이다 이건가? 우습군. 네가 전파한 무공이 나와 같은 존재의 등장을 재촉한다면 세계는 네 것이 아닌 이 몸의 도원향에 가까워질 것이다.]‘그러지 않기 위한 수제자예요.’
백만의 시청자와 십만의 무림인, 일만의 팬이 함께 하는 공략의 끝.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용암의 폭포의 등장에 엄길동이 고산필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두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 와놓고 포기한다고?!”
“아뇨. 저와 고산필드가 여기까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희생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죠. 이제는 저와 고산필드가 여러분을 앞으로 보낼 겁니다.”
필드 전체를 운전하며 자신이 방패가 되어 용암의 폭포로부터 세 사람을 지켜주겠다는 엄길동.
그의 장렬한 희생과 함께 고산필드가 거대한 우산이자 방패가 되어 그늘을 드리워주었다.
[엄길동 님이 사망했습니다.] [사망원인 – 대인류결전병기 의 조종석에 침투한 용암에 불타 사망.]불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기판에서 손을 떼지 않고 모두에게 도움이 될 항로를 유지한 엄길동.
그의 희생 덕분에 용암의 벽 너머로 도열한 전 병력을 끌어모은 것처럼 가득한 대규모 병력을 향해 불타고 녹아내리는 고산필드가 돌격했다.
[대인류결전병기 이 용암의 벽 뒤에 집결한 최종방어선과 충돌합니다.] [고산필드의 중추 가 폭발합니다.] [코어폭발의 강력한 에너지가 최종방어선의 병기와 병력을 모조리 날려버립니다.]더는 교체할 여분의 점핑아머조차 없이 가장 깊은 심부를 향해 나아가는 세 사람.
그 여정에서 와닿는 바가 있던 까닭인가.
요괴왕은 어느덧 불만을 멈추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해응응 그녀가 논하던 경치.
그것이 단지 꿈속의 몽상에 불과한지.
아니면 실제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청사진인지.
그 결말을 목도하기 위해서.
“하… 마지막까지 이런 장난질이라니.”
[마이너스11구간 – 어스웜의 핵심동력기관] [현재위치 – 마이너스11801m(마이너스11구간, 마이너스1181층)]바보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적색의 둥근 보석.
심장처럼 맥동하며 내벽 전체로 엄청난 힘을 공급하는 의 주변부에는 회전하는 블록 파편과 레이저 더미들이 미러볼처럼 어지럽게 회전했다.
체력도 정신력도 기체내구도마저도 모두 한계에 달한 마지막에 최고난이도의 피지컬을 요구하는 난코스가 등장했다.
레이저에 걸리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은 사실상 명약관화.
원거리에서 참격을 날리는 꼼수가 통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언니… 저, 더는 남은 공력이…”
“눈을 감으세요.”
주아영의 등에 손을 얹은 해응응이 조용히 기를 끌어올렸다.
진기도인.
진기를 이끌어주어 상대의 신체를 자신의 내공으로 대신 운기행공하며 힘의 이전과 정착, 나아가 확충을 도모하는 기술이다.
혈액형이 다른 피도 함부로 수혈하면 서로를 죽일 듯이 공격하는데 내공이라고 다를 리가 없다.
기의 성질이 다르면 반드시 서로를 죽일 것처럼 붙으며 역류하고 충돌하는 기로 인해 시전자와 피시전자를 모두 파멸로 몰아넣는다.
혈관이 터지고 피를 토하며 내장이 진탕되거나 뇌에 손상을 입고 백치가 되기도 십상이다.
그런 위험한 짓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지르고 그것을 용인할 정도의 신뢰가 두 사람의 사이에는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으로 가르쳐온 아이에요. 이 몸에 제가 모르는 혈도는 존재하지 않아요.’
무섭도록 빠르게 주아영의 단전을 채우며 기력이 쇠해 마모되어가던 혈도를 지탱하는 기운들.
소주천을 끝마치고 손을 떼자 하얀 증기가 주아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가요. 이 게임의 끝을 보고 오세요.”
“언니…”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기억하세요.”
해응응이 주먹을 쥐어 그녀의 등을 살며시 밀었다.
“나중에 그것들을 제게도 들려주기만 한다면 저도, 먼저 탈락한 분들도 충분히 만족할 거예요.”
“…꼭 성공할게요.”
“신입.”
“네, 네?! 저요?!”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신입은 아쉬움과 서운함을 느꼈다.
하긴 주아영은 수제자고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지.
면벽수련자 나부랭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그런 의미로 여겼던 신입.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이어지는 말이 알려주었다.
“당신에게는 제 말보다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진 말들이 있지 않나요?”
가슴 깊이 새겨진 말…?
신입의 가슴이 작게 콩콩 뛰는 소리가 해응응의 귓가에 들렸다.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어도 몸은 솔직하다.
그녀는 점핑괴인과 철두공과 함께 하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더 높은 경지를 향해 절차탁마할 뿐만 아니라 같은 꿈을 가슴속에 품었다.
모든 것이 점핑으로 결정되는 세계.
이 세계의 끝을 보겠다고.
최고난이도의 복합적인 점핑을 요구하는 최종시련.
그것을 앞두고 그저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럴 수는 없다.
수제자분을 위한 자리를 망칠 수는 없다고 애써 외면하며 묻어두려 했던 감정이 살아났다.
“선배들의 정신과 희생, 그 의지를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먼저 레드코어에 도착해 파괴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주아영과 신입.
그것은 무의 궁극을 추구하기 위해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사문도 스승도 모두 가슴 속에 품고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무림인의 고독한 숙명이었다.
“지는 쪽은 분할 거예요. 세상을 다 산 기분이 들겠죠. 분명 몇 달은 잠도 제대로 못 잘 테니까요.”
먼저 걸어가본 길의 위에 선 두 후배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의 후회는 몇 달이 아닌 몇 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아요. 싸워서 승리하고 결실을 쟁취해야 할 이유.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골 앞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는 두 사람의 기운.
“마음이 바로섰다면 이제 망설임은 없어요. 여러분이 가는 길이 곧 길이에요.”
한 방울의 낭비조차 없이 완벽하게 제어된 두 사람의 기운에 해응응이 파문을 일으켰다.
“가세요.”
최후의 점핑.
주아영과 신입의 대결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