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593)
1.
어스웜의 핵심동력기관이 자리한 마이너스 11801m부터 시작되는 최후의 200m.
구간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 장치인 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회전하는 블록파편과 레이저들 앞에서 시청자들은 막막함을 느꼈다.
-이거 지나갈 수 있는 거 맞음?
-지나갈 수는 있지 몸 좀 썰리면ㅇㅇ
-야채세요?
-야채ㅇㅈㄹㅋㅋㅋ
-근데 저거 타이밍이 너무 미쳤는데요?
-점핑가속으로 돌파하면 처음 10m는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음
-그 뒤에는?
-몰?루
-졸라 달리고 밟을 발판 없으면 빡종해야지
-레이저 닿으면 어케 됨?
-부자됨
-저도 닿을래요;
-왜 너희만 부자 돼?
-아니 포탄부자 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cnlth치ㅜ소취소취소
-;;;;
-이미 재도 안 남기고 사라진 시청자들
-이상 고인의 유언이었습니다
-고인의 유언ㅋㅋㅋ
-고갱님 죄송하지만 환불은 불가능하시고요 착불요금은 목숨이세요
-목숨값ㅁㅊ
-다급함이 느껴지네ㅋㅋㅋ
일반인은 그저 웃음과 울음만 나오는 막막한 광경 앞에서도 주아영은 진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죽음의 위기 사이로 이어지는 한 줄기 생로.
매 순간 변화하는 삶의 길을.
다양한 기술과 능력, 배짱을 지니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정답을 연속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아.’
하지만 물결이 용솟음치고 구름이 어지럽다 하여 파용운란波涌雲亂이라 부르는 해남파 보법의 최종무극에 비견되는 구간은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발을 떼지 못하고 제자리에 선 것은 신입도 마찬가지.
[최종구간의 도전을 저지하고자 어스웜이 구간 내 모든 방어체계를 집결시킵니다.] [모든 구간의 자원이 소멸되어 해당구간에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서두르십시오. 이제부터는 물량의 한도가 없는 무한 빅 웨이브가 시작됩니다.]뒤편에서는 두 사람의 출발을 저지하려는 수많은 방어체계의 접근을 언니가 막아주고 있다.
엄길동의 희생이 무색하게도 이제는 묵언검객이라는 이름의 최후의 방어선만이 바로 지척에서 빅 웨이브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 완벽한 길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런 부탁을 꺼내기도 전에 기침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콜록, 콜록…”
검을 휘두르다 말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침을 하던 묵언검객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마처 아버지의 등처럼 든든하고 어머니의 품처럼 안락한 앞에서 봐도 뒤에서 봐도 자랑스러운 언니가.
기침을 가리는 손 위로 피를 쏟고 있었다.
각혈.
도화지처럼 새하얀 언니의 손 위로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
새하얗게 질린 머릿속으로도 피냄새가 새빨갛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저런 꽃은 피어서는 안 돼.
이미 늦었어.
언니의 건강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미적거려서.
언니가 무리해서.
그런데도 아직도 검을 놓지 않고.
문장으로 끝나지도 못할 생각들이 거듭 뇌리를 강타했다.
마치 백회혈을 두들기며 다음 경지로 향하려고 공력을 거듭 일으키는 무림인처럼.
그녀의 사고의 한계가 매 순간 시험받았다.
뚫어.
뚫지 못하면 언니가 죽어.
돌파해.
돌파하지 못하면 언니가 죽어.
할 수 있다고 증명해내.
증명하지 못하면 언니가 죽어.
헛되지 않았다고 보여줘.
보여주지 못하면 언니가 죽어.
인정할 수 없었다.
자세가 반듯하지 못한 그녀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괴롭히던 언니가.
고된 신법훈련에 지쳐 근육통을 앓는 그녀의 다리를 정성스레 주물러 풀어주던 언니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도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 근엄한 표정을 짓다가 손으로 훑어주니 수치스러워하던 언니가.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언제나 뒤에서 지켜봐주던.
그런 언니가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파지직
주아영의 전신 위로 피어오르는 푸른 귀화.
인화성의 대기에 마치 불을 붙인 것처럼 일어나는 스파크에 주변공견이 새하얗게 타올랐다.
콰과광!!
눈부신 빛과 함께 일어나는 폭발.
닌자슬레이어를 절명시켰던 폭발 속에서도 주아영의 기체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기체 전체를 둘러싼 반경 5m의 거대한 구체가 주변을 감쌌기 때문이다.
세상을 자신과 다르다며 분리부정 하고.
세상 속 자신과 같음을 투사편취 하며.
세상을 위협하는 충동이 반동형성 함에.
비로소 충동을 승화하여 용인수용 하니.
몸을 맡길 수 없는 물과 같고.
물살을 가르며 벗어나려던 무덤과 같고.
발이 땅에 닿지 않음이 무섭던 공포의 상징이던.
그런 바다에서 생명의 풍요를 느끼고 눈을 감아 몸을 맡겨 떠오르니.
일순간, 한계를 넘어선 사고가 내면의 소우주를 관통하는 사상지평事象地平,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도달했다.
사상지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외부에서는 어떠한 영향도 간섭도 줄 수 없다.
경지상승을 막기 위해 기를 쓰며 방해하더라도 외부에서는 결코 해칠 수 없는 이유.
절대적인 방어력과 안전이 보장되는 찰나의 무적.
현대에서는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의 해 중 하나인 슈바르츠실트 해schwarzschild solution의 경계면으로 알려진 수학적인 예술.
현대과학에서 일컫기를 블랙홀이라 부르는 현상.
무림에서는 경지상승이라 부르는 기적.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됨에 도리어 외부세상과 격리되는 모순 속에서 주아영은 깨달았다.
현대무림의 지금껏 탄생한, 그리고 앞으로 탄생한 무림을 모두 합치더라도 이 광경을 누릴 수 있는 이가 백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만고지상의 무수한 지혜와 깨달음이 번뜩이며 우주적 신비를 알려줄지언정 이 순간이 끝나고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조차 벅찰 것이라고.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슬퍼할 것이다.
진리와 함께 하는 깨달음의 격동에 영원히 몸을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넋과 혼이 몸을 떠나 진리의 파도 속을 정령처럼 헤엄칠 수 없음을.
그 끝에 상심어린 마음을 달래고 찾을 것이다.
지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반드시 간직하고 싶은 자신만의 깨달음을.
그 하나만을 악착같이 붙들고 기억하고자 노력하며 남은 평생을 그 하나의 기억을 되살리고 심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주아영은 달랐다.
그녀에게는 깨달음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언니와 함께 하는 마지막 게임.
점핑레빗의 끝을 장식할 단 하나의 구간.
언니는 그것에 진심이었다.
동생과의 마지막 추억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 더욱 줄어드는 것을 감내할 정도로 이 게임에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그녀 또한 진심이 될 수 있었다.
평생을 간직하고 살아갈 심득.
단 하나의 깨달음.
그조차도 저버린 채 오직 갈구했다.
점핑레빗 최후의 구간.
마의 200m.
오직 이 구간을 돌파하기 위한 방법만을.
미래영겁 다시는 도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사건의 지평선에서의 깨달음의 순간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그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그녀에게는 이 200m에 자신이 지닌 무의 길의 모든 것이, 영겁이 담겼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한 정답을 기억하겠어!’
세계의 지평선에 도달한, 도달했던, 도달할 모든 이들의 잔념이 그녀를 돌아보고 안타까워했다.
네게는 재능이 있다고.
그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당장의 객기는 남은 평생을 후회하게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같잖은 개소리였다.
그들은 몰랐다.
언니가 그녀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
아무것도 아닌 그녀가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언니가 아니면 누릴 수 없을 기적이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짐승이다.
그녀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다.
스스로가 사람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지금이라면 보여. 저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지금의 깨달음이 없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지나야 넘어설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도.’
긴 인생에서 10년은 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니에게 10년이라는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다.
10년은커녕 1년조차도 버겁다.
어쩌면 한 달, 어쩌면 일주일.
혹은 그조차도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다음은 없다.
‘지금 하지 못하면 평생 할 수 없어.’
언니에게 성장한 자신을 보여줄 기회는.
오직 지금뿐이다.
그러니 꺼져라.
나를 유혹하지 마라.
너희의 망설임과 번민, 고뇌와 후회를 나 또한 뒤따를 것이라 단정짓지 마라.
내 무학의 끝이 이 순간에 결정된다 하더라도, 영원한 정체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여기가 내 종착역임을 받아들일 것이다.
-어리석구나.
-오만하기도 하고.
-그러나 숭고한 희생이다.
낡은 죽립에 지팡이를 든 허리 굽은 노인의 형상이.
제관을 두르고 곤룡포를 입은 거대한 풍체의 황제의 형상이.
가사를 걸치고 백단 팔찌를 만지작거리는 고목처럼 마른 승려의 형상이.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며 경의를 보였다.
하나의 별이 하늘 높이 떠오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저무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노인은 등을 돌렸고.
황제는 눈을 감았으며.
승려는 염불을 외웠다.
파아앗!!
빛에 덮여 흐릿해져가는 깨달음의 순간.
마지막까지 다른 깨달음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최적의 200m만을 지켜보았던 주아영.
그녀의 의식이 영원 같던 찰나를 벗어나 현실세계의 흐름을 되찾는 순간, 허공을 부유하던 한 걸음이 마침내 땅을 딛고 쏘아졌다.
[현재위치 – 마이너스 12000m(마이너스12구간, 마이너스1200층)] [당신은 마의 200m를 돌파했습니다.] [레드코어를 눈앞에 둔 당신에게 어스웜이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레드코어를 파괴하지 않고 섭취할 시, 영구적인 무한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림비망록의 상태창에 레드코어가 인식됩니다.] [레드코어의 명명이 변경됩니다.] [신화등급 영약 을 발견했습니다.] [혈마보옥을 섭취할 시, 한 세계의 모든 피와 절망으로 빚어낸 무량대수의 공력을 영구적으로 영원히 얻을 수 있습니다.] [영약을 섭취하시겠습니까?]웃음만 나왔다.
“너무 작잖아. 평생을 간직해나갈 언니와의 추억에 비하면.”
주아영의 점핑킥이 레드코어를, 혈마보옥을, 무한의 공력을, 영원의 유혹을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