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09)
1.
나레이션을 빙자하여 플레이어의 심리와 시야에 개입해왔던 양성의 인형.
스토리모드를 빙자하여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에 개입해왔던 폭군.
-헐ㄷㄷㄷ
-와 진짜 이런 개꿀잼 기믹을 님들만 알고 있었어?
-아니 ㅅㅂ 우리도 몰라;
-?
-왜 우린 저런 거 안 나왔어? 왜 우린 저런 거 안 나왔어? 왜 우린 저런 거 안 나왔어?
-조건이 충족 안 된 듯
-최고난이도?
-그것도 있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도 있고.
-세력장이 된다거나 대요괴를 무찌른 뒤에 찾아온다거나.
-정석공략에선 폭군부터 꺼내고 그 다음에 같이 힘을 합쳐서 대요괴를 잡긴 했지
전인미답의 경지.
누구도 모르는 비밀.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장본인은 그 정도 사실에도 조금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즐거웠나요? 아니면 슬펐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옥좌에 앉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분은.”
놀람이라는 감정이 없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걸까.
그 목소리에는 다소의 엄격함마저 느껴졌다.
[즐겁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 슬프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이겠고. 오래 산 사람에게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순간이 그리 많으니.]“목적을 물어봐야 할까요?”
[억겁의 굴레 속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진실 된 기회다. 조금만 더 사담을 나누며 이 순간을 누리는 기쁨을 허락해주지 않겠나?]한없이 진중한 목소리, 부리부리한 눈매 속에 보이는 짙은 피로와 미약한 기대감.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정보를 말하고 있다.
이 남자는 예측 가능한 모든 순간들에 너무나도 지쳐버렸다고.
“잠깐이라면 어울려드리죠.”
인계최강의 검객과 인계최강의 인간.
두 인계최강의 만남은 치열한 칼부림이 아닌 대화로 시작되었다.
2.
스피드마스터는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할 땐 저런 기믹 없었는데…”
-묵언검객 > 스피드마스터 공식 떴죠?
-일광신속 스피드마스터는 다르다!
-묵언검객이 님보다 잘하니까 그렇죠
할 말은 없었다.
통렬한 팩트를 지적당했으니까.
묵언검객이 그보다 뛰어났다.
그렇기에 ‘골라서는 안 되는 수순’으로 게임을 진행하고도 전개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전대미문의 루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기믹.
스토리 모드와 나레이션의 실체로 폭로되었다.
‘내가 아는 폭군에게 저런 모습은 없었어.’
지금껏 자신이 최고난이도라고 여겼던 것은 진정 최고난이도가 아니었다.
옥좌 앞에 무덤처럼 늘어선 수많은 해골더미.
그 위에 살포시 놓인 인형 두 개.
스피드마스터는 그것들을 폭군의 잔혹함과 모두가 그를 싫어하지만은 않았음을 암시하는 센스 있는 설정 정도로 여겼다.
그의 공략에서는 저런 충격적인 실체는 드러나지도 않았고, 인형이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일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폭군에게도 지치고 피로한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독한 권태로움.
강한 실망감.
세상을 향한 커다란 분노.
고작 그 정도만이 그가 읽어낼 수 있는, 폭군이 보였던, 그에게 허락된 감정이었으니까.
[기뻤다. 오랜 과업 속에서 반복되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 네가 해왔던 모든 여정이 그렇듯이 오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지.]“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아득히 긴 시간에 걸쳐서.”
폭군은 부정하지 않았다.
[■■■■의 권능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내게서 비롯된 권능이다.]“그렇다면 당신 또한 처형자겠군요.”
[한 세대 전의 실패한 처형자였지. 세계의 종언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그 대가로 영원한 실패를 반복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했지만.]루트에 따라 격퇴해야 할 최종보스가 되는 자.
혹은 최종보스전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든든한 조력 NPC.
폭군은 그런 식으로 소비되어 끝날 존재가 아니었다.
“대요괴를 꺾지 못했기 때문인가요?”
[녀석은 호수 속의 달에 불과하다. 몇 번을 지워도 다시 비치는 허상에 불과하지. 지우고자 한다면 없애야 할 쪽은 따로 있다.]“선각자인가요?”
[선각자란 남들보다 먼저 깨달은 자를 뜻하니, 어찌 그 사악한 존재를 선각자라 부를 수 있는가. 그는 선도의 길을 저버린 거짓선각자에 불과하다.]“등선에 문제가 있는지 신선에 문제가 있는지, 신선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상태가 이상하군요.”
세계의 비밀을 우스갯거리로 삼으며 웃음을 공유하는 두 사람.
스피드마스터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반요곡이 완전히 묵언검객의 손에 넘어간 것을 실감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수많은 비밀을 파헤치며 느꼈던 즐거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빠르게 지나쳐버렸어.’
누구도 구하지 않고.
무엇도 돕지 않고.
그저 최단공략으로 맵을 주파할 뿐인 스피드런.
한때는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플레이였건만.
더는 스피드런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다.
“…안되겠어. 승부욕이 너무 불타올라.”
-님이 불타서 뭐하시려구요
-더 빠르게 자멸할 듯
-네 다음 일광신속
“님들 두고 봐. 나도 이제 폐관수련 할 거야. 저런 플레이는 묵언검객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
-않이 중계리뷰 하다말고 어디가요;
-돌아와 스센세!
-진짜 폐관수련하러 감?
지금까지는 없어서 못 보던 방송이었던 묵언검객의 방송을 자신의 의지로 먼저 종료했다.
3.
대요괴와 백령신군.
반요곡의 후반부를 이끌던 두 강자들.
그들의 너머.
반요곡의 종반부에는 또 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폭군과 선각자.
스토리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를 조종하고 관찰해왔던 폭군.
그와 짐꾼, 다른 모드의 보스전 양상으로 알 수 있는 백령신군을 적대하는 수상한 가짜선각자.
“옳고 그름이란 타인의 말만으로는 알 수 없죠. 사람도 요괴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결국 힘으로 묻겠다는 건가. 그대가 지금껏 걸어왔던 것처럼.]“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실력을 보이세요. 듣는 건 겨뤄본 다음으로 하죠.”
동굴 벽에 박혀 흐릿하게나마 조명을 제공하던 야광주들이 저 멀리서부터 하나씩 꺼졌다.
팟. 팟. 팟.
모든 조명이 사라진 암흑 속의 지하대공동.
적대표시와 함께 되돌아오는 제어권.
[Player mode] [Story mode]“!?”
돌아오려던 제어권이 강제로 박탈당하며 폭군의 주먹이 몸통을 후려쳤다.
쾅!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검집의 손잡이와 첨단을 양 손으로 쥐어 공격을 받아낸 묵언검객.
자세를 고쳐 쥐며 달려들기 무섭게 또 다시 제어권이 흔들렸다.
[Player mode] [Story mode]마치 스위치가 깜빡거리듯이 흔들리는 제어권.
되찾았던 제어권이 스토리 모드로 돌아갈 때마다 일순간 내공이 뚝 끊기며 무방비상태가 되었다.
타이밍으로 따지자면 고작 컴마초 단위의 시간.
그 짧은 시간이 거듭 쌓이자 내공의 흐름을 초식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뜻밖의 열세가 펼쳐졌다.
-와 저런 개사기 기술을 봤나;
-저 새끼 왜 혼자 치트 쓰고 난리야?
-몰?루
모드 셀렉터.
원하는 모드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
폭군의 뜻밖의 공격패턴에 묵언검객이 속수무책으로 방어태세만을 굳히기를 십여 합.
“괴이한 사술을 쓰는군…”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지면을 갈아엎으며 날아드는 거대한 대검을 자루 속에서부터 나온 새카만 암흑의 손이 틀어막았다.
우드득!
부기걸의 손목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렸다.
강하다.
고작 일격을 받아냈을 뿐인데도 버겁다.
부기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꺾이려는 손목을 재빨리 뛰쳐나온 수어 개의 손목으로 지탱해내기는 했지만…
힘을 분산하여 받아낸 손목들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괴물 같은 힘이군…”
부기걸이 번 시간을 이용해 모드변환의 공백시간을 좁혀낸 폭군의 지척까지 침입한 묵언검객.
[Player mode] [Story mode]내공의 발현을 모드전환으로 끊어버린 폭군이 반격을 가하려 손을 들자 강한 저항감이 그의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속했다.
우지지직! 팡!
가볍게 팔에 힘을 주어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산산이 터져버리는 염주들.
옆을 스치는 거대한 염주알에 볼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짐꾼은 이를 악물고 또 다른 도구를 꺼냈다.
폭군의 발치에서 기울어지며 주저앉는 지면.
힘의 전달이 흔들리며 그의 손이 묵언검객 대신 허공을 가격했다.
쾅!!
튀어오르는 돌무더기.
파편 너머로 새카만 검격이 번뜩이더니 폭군의 팔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강하군요.”
[그대도 훌륭하군.]둘은 서로의 강함을 인정했다.
시스템의 힘을 이용한 사기적인 내공캔슬기.
비겁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공평하지 않다며 항의할 수도 있다.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방법이야 어쨌건 이 또한 폭군의 힘.
더욱이 저런 능력을 지녔더라도 개인의 실력이 미천하다면 찰나의 내공캔슬 따위로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전투를 펼칠 수는 없었다.
고작 한 번의 공격을 받아냈을 뿐임에도 대요괴 토벌전처럼 초긴장 상태가 된 부기걸과 짐꾼.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버틸 수도 없었거니와 앞으로 몇 번을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기회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해응응 또한 만만찮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공캔슬 탓에 많은 내공을 모아서 고위력의 공격을 펼칠 수는 없다.
그러나 순간적인 가속을 이용한 쾌검이라면 능히 한 호흡, 한 마디의 힘의 전개로도 폭군에게 막심한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
“더 해볼 텐가요? 이 교환.”
[아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군.]짐꾼의 부적이 새파랗게 불타며 밝혀낸 시야.
옥좌에서 일어선 폭군을 중심으로 또 다른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모드전환에 이어서 게임의 옵션창에까지 개입하는 또 다른 권능.
폭군이 강하게 손으로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자 묵언검객의 시야 앞으로 이 드르륵 내려왔다.
“!?”
폭군의 시야가 향하는 곳을 따라 눈을 돌린 그녀는 ‘밝기조절막대’에 시선이 닿는 것을 눈치 챘다.
손을 들어 좌로 움직이는 폭군.
그와 동시에 묵언검객의 시야가 물리적인 어둠을 넘어선 시스템적인 어둠에 의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으니.
-아니 미친
-폭군선생님 앞이 안 보여요!
-칼소리는 왜 남?
-뭘 보고 치는 거임?
-아니 왜 니들끼리 싸우시냐고요;
-묵언검객 반요곡 공략 생방송(안보임)
-아니 이제 보스까지 악질이야?
-팩트> 작정하고 만든 개악질 패턴이 맞다
-존나 개폭군이네;
-폭군이 이래서 폭군이었음?ㅅㅂㅋㅋ
-묵언검객님 제발 밝기 좀 켜주세요ㅠㅠㅠ
-매지컬구미마왕검객님은 앞이 안보여도 싸울 수 있어서 안켜주신대!
영화 한 편 관람하는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시청자들만 날벼락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