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1)
〈 61화 〉 61 이딴 게 각성자
* * *
1.
인류의 적 몬스터.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영물에 빗대어서
상당한 전투력을 예상하기도 했다.
정작 직접 겪어본 소감은
영 아닌데에 가까웠다.
‘정말 이 정도 몬스터들 따위에 인류가 위기를 겪은 건 아니겠죠?’
이족보행 도마뱀들.
창칼을 들고 무기도 쓰기는 하는데
그 무기술도 참 조잡하다.
휙
가볍게 거는 페이크에 줄줄이 낚여서
자세가 무너지고.
슥
우산을 쥔 손의 위치를 조절하며
무기의 간격을 바꾸니 연달아 썰려나가고.
깡
작정하고 무기만 연달아 치니
점점 뒤로 꺾이던 도마뱀의 팔이
완전히 뒤로 젖혀져서 몸통이 노출됐다.
‘김이 다 새네요.’
지성은 있지만 야성이 앞서는
인간과 닮았지만 괴물의 본성을 지닌 존재.
‘최하품 영물만도 못하다니.’
해응응의 표정에 떠오르던 미미한 열기가
완전히 식어 사라져버린 직후.
그녀의 우산이 거침없이 살초를 펼쳤다.
손가락과 손목, 팔, 어깨, 목.
우산의 경로에 걸리는 족족
허공을 나는 리자드맨의 신체부위들.
학살극을 펼치던 그녀가
움찔하고 멈춰 섰다.
‘뭐죠? 이 더러운 기운은.’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역하고 메스꺼워지는 불쾌한 기운.
그것들이 방금 죽인 시체로부터
역한 기운이 그녀를 향해 모여들며
난자를 노리는 정자마냥
체내에 파고들려고 시도했다.
외부의 독이나 오염된 공기를 차단하고자
기를 차단하는 기막 형성의 묘리.
그 재주를 발휘하여
불온한 기운의 침투를 막아내니
반투명한 창이 그녀의 앞에 떠올랐다.
[리자드맨 다수를 죽였습니다.] [각성자의 기본요건을 충족합니다.] [경험치를 흡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레벨업에 실패합니다.] [당신은 0레벨 각성자입니다.] [상태창이 개방되지 않습니다.]그녀의 눈에 비쳤던 불길한 기운.
한없이 혼탁한 탁기.
그 정체는 황당하게도 각성자들이 흔히 말하는
경험치라 불리는 존재였다.
‘탁기를 정화해서 온전한 내공으로 흡수하는 심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뒤늦게 호기심도 들었지만
경험치라는 생각에
보다 먼저 떠오른 발상이 있었다.
똑똑
[잠깐 나와봐요.]싸움 도중 편의점으로 돌아가 노크를 하는
황당한 그녀의 행동에도
리자드맨들은 도저히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그만큼 해응응에게 덤벼들었다가
쓰러진 리자드맨들의 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괜찮으세요, 언니? 우산이 더 필요하시면…”
우산통을 통째로 들고와서
예비용 검으로 쓰라며 내밀려던 주아영.
그녀의 눈이 바닥을 나뒹구는
아직 살아있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해응응을 돌아보았다.
“언니가 한 거예요?”
[레벨 업, 하고 싶다고 했었죠?]“저거 제가 잡아도 돼요? 정말요?”
해응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그녀도 알 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경험치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에이, 설마요. 각성자가 되면 능력치를 투자해서 강해질 수 있잖아요.”
[당장은 강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정순하지 못한 탁기에요.]내공도 아무 기운이나 받아먹으면
당장의 총량은 수월하게 늘릴 수 있다.
그러나 기의 순도가 낮으면
체내를 순환하면서 근맥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혈관이 찢어지거나 파열되며
돌연사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소위 무림에서 일컫기를
주화입마라고 불리는 현상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 힘을 사용하다가 심장이 멎을 수도 있어요. 각성자들이 동력원으로 삼는 탁기는 그 정도로 위험해요.]무림비망록의 상태창이 빛의 상태창이라면
각성자들의 상태창은 어둠의 상태창.
정순한 내공이 아닌
더러운 탁기를 다루는
사파식 상태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각성자가 될 각오에 변함은 없는가.
해응응의 그런 물음에
주아영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사는 서러움은 충분히 겪었어요. 단명할 위험이 있더라도 각성자조차 되지 못하는 삶이 훨씬 더 비참해요.”
그 굳은 결의를 본 이상에야
더는 주아영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해응응은 리자드맨들을 초죽음 정도로 제압했고
주아영이 뒤를 따르며 확인사살을 했다.
[경험치를 흡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레벨업에 실패합니다.] [차순위 공헌자에게 경험치가 양도됩니다.]덕분에 주아영의 경험치는 폭발적으로 쌓여가니
마지막 리자드맨의 목에 우산을 찔러 넣으며
주아영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언니, 저 각성했어요! 이제 저도 1레벨이에요!”
[경험치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요?]“설마요.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던전쥐 한 마리만 잡아도 채워지는걸요.”
주아영은 각성자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밝혔다.
“첫 각성에 필요한 경험치는 초과습득하는 양만큼 특성이나 직업강화, 능력치 상한상승 따위에 사용된다고 알고 있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어딘가에는 쓰인다는 건가요.]“맞아요. 그래서 보통 단순히 레벨업을 하는 것보다 특정 업적을 달성하는 각성자의 성장폭이 훨씬 높아져요.”
한 번에 오르는 레벨은 무조건 하나.
그 대신,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의 초과분만큼
재능확장이나 능력치상한확장이 발생한다.
“직접 잡는 것만큼은 못하겠지만 언니 덕분에 저도 엄청난 경험치를 얻었어요. 이 정도면 대형길드의 유망주들도 못 받을 대우일걸요?”
게이트 폭주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한 자리에 모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걸 모두 제압해서 막타만 치도록
먹기 좋게 상을 차려놓기도 어려움을 감안하면
주아영은 속된 말로 기연을 얻은 셈이었다.
‘기연하니까 제가 만들어둔 그곳이 생각나네요.’
혈교의 옛 성지.
타클라마칸사막 유적지의 기연.
그녀가 무림계에서 현실세계로 복귀하기 전.
쌓아왔던 내공과
그간 습득했던 무공비급
각종 금은보화와 자신의 길을 뒤따라 걷게 될
매력 올인을 찍은
멍청하고도 가엾을 빙의자들을 위한 안배.
‘기연이 괜히 기연도 아니고 상점창에서 구매하지 않는 이상에야 쉽게는 찾을 수 없겠지만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세계의 일보다는
눈앞의 일이 더 신경 쓰였다.
‘저 사람, 폼만 잡을 줄 아는 게 아니라 싸움도 제법 괜찮네요.’
골목길로 몬스터 무리를 유인한 남자.
그 검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딸칵.
“윽!”
“언니, 사람한테 손전등을 겨누면 어떡해요?”
날아드는 핀잔 속에서도
유심히 남자를 지켜보던 해응응은
그가 입은 상처부위가
모두 공격을 흘리면서 비껴나간 생채기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다.
[검 다루는 솜씨가 괜찮네요.]해응응이 타인의 실력을 인정했다.
2.
해응응이 인정한 사람.
그 명예를 누린 게 이해찬이 최초는 아니었다.
주아영도 일찍이 그 실력은 인정받았으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위치 자체가 달랐다.
주아영이 일개 각성자연습생으로서
훈련법과 장래의 성장가치를 인정받았다면
이해찬은 당장 무림계에 떨어져도
능히 칼밥만으로 먹고 살 실력이었다.
“뭣 좀 물어봐도 됩니까?”
[아니요.]매정한 글씨체에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로 당황하는 이해찬.
슬쩍 웃은 해응응이 수첩을 뒷장으로 넘겼다.
[농담이에요.]역시 컨셉이 아니었어.
이 인간 네츄럴로 악질이야.
치를 떨던 이해찬이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잠깐 인터뷰 좀 해도 됩니까?”
[기자세요?]“저 누군지 몰라요?”
[알아야 되나요?]“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댁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제일 처음에 시청자 몰아준 스트리머잖아.
따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저 악질의 성격 상
괜히 눈 밖에 났다간 숏츠 영상으로나 올릴법한
30초짜리 영상도 못 건지게 생겼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저기, 도와주신 건 고맙지만 지금 저희 언니한테 작업 거는 건 아니죠?”
“하참. 누가 뭐랍니까. 같은 유명인이니까 하는 소리지. 거참 섭섭하네. 그래, 얼굴은 모른다고 쳐. 국뽕검사 이해찬까지 처음 듣진 않죠?”
도네를 내가 몇 번을 쐈는데.
이것도 모르면 진짜 사람이 아니지.
“잠깐 검색 좀 해보고요. 어? 진짜네. 구독자수가 122만 명… 122만? 와, 이 정도로 유명한 브이튜버셨어요?”
주아영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하는 이해찬.
[유명한 거예요?]그의 어깨가 주저앉기까지는
고작 수첩 한 페이지면 충분했다.
“백만 브이튜버면 인생 편 수준이죠!”
“그럼 뭐해요. 두 분은 저 모르는데.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도 묵언검객님이 모르는 건 진짜 충격이네.”
“묵언검객이요? 아, 그 언니가 게임에서 기록 세웠을 때 지었다던 닉네임?”
차라리 주아영이 이해라도 못했다면
이해찬이 어떻게 본인이 방송하는 줄도 모르냐며
어쩌면 해응응이 자신의 방송송출을
깨달았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나 주아영의 어설픈 이해에서 비롯된 멘트는
이해찬에게도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뭐야. 역시 다 알고 있었잖아.”
“?”
“그냥 혼잣말입니다.”
숨이라도 돌릴 겸 땅바닥에 주저앉은 이해찬과
그의 앞 가드레일에 걸터앉은 해응응.
교전 후의 휴식을 치르며
자칫 무방비해질 수도 있는 와중에도
청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은 것처럼
조신하게 모은 두 다리.
‘의외로 여성적이시네.’
어디 가서 실력으로 밀리는 일이 없는 이해찬이
진심으로 인정할 정도의 실력자의
여성스러운 모습은
압도적인 활약상과 비교하여
갭모에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상당한 반전매력을 선사했다.
‘어?’
심지어 갭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허리와 골반의 S라인과
얼굴의 V라인에 필적하는
회음부와 허벅지 사이의 삼각라인.
사이 갭Thigh gap이라고도 불리는
이 황금영역은
단순히 마른 체형에만 어울리는 게 아니다.
적절한 골반과
발달된 둔부
튼실한 꿀벅지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완성되는 몸매.
그 아름다움에 홀려
넋 놓고 바라보던 이해찬이
뒤늦게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해응응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 그 자체인 얼굴로.
“아, 저기…, 그게…….”
“….”
“죄송합니다. 긴장이 풀어져서 시선관리를 그만.”
뺨 맞을 각오를 하며 솔직하게 사과하는 이해찬.
차라리 뭐라고 매도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경멸하는 표정을 지어도 이보단 나을 텐데.
정작 그에게 주어지는
당신 이런 사람이었어요? 하고 묻는 듯한 시선에
이해찬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이 이상 숙연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 있던 주아영이 해응응 대신 입을 열었다.
“으이구.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언니 많이 화났어요?”
해응응이 고개를 저었다.
살았다.
유명 스트리머 성희롱 논란이 사라진 게 어딘가.
이해찬이 겨우 한숨을 돌리는 그때.
긴급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온
협회 소속 각성자, 코드네임 거미인간이
공중에서 몬스터 시체 몇 구를 내던지며
히어로랜딩으로 착지하려다가
바닥에 가득 깔린 피에 발이 미끄러져
우당탕탕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볼썽사나운 착지를 선보이며 등장했다.
“끄으으…… 가, 각성자협회에서 긴급지원호출을 받고 출동한 거미인간입니다. 죄송하지만 잠깐 다리가 저려서, 으으… 좀 누워있겠습니다.”
“가지가지 한다. 에효.”
“….”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주아영이나
거미인간 우지우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해응응.
이렇게까지 독특하게 등장하는데
시선이 안 끌릴 수가 없으니
두 사람의 관심이 이해찬에게서 멀어졌다.
‘와 이걸 묻어가게 해주네.’
각성자협회는 오늘부터 세금도둑이 아니라
정의로운 민중의 지팡이다.
이해찬이 우지우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