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21)
1.
선계는 사실 하나가 아니다.
장삼단봉 어르신의 기나긴 수다 속에서 나온 이야기는 참 뜬금없이도 튀어나왔다.
“선계에 가거든 선인이 도를 깨우쳐 신선이 된 경우보다 영물이 깨우침을 얻어 신물이 된 경우를 자주 보고는 하지. 헌데 그 많은 영물이 무림에 있었다면 영물사냥꾼들의 손을 피할 수 있었겠느냐?”
“힘들겠죠. 당장 제 손을 피해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렇다. 하여 선계에 들어선 신수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것들이 희한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냐. 자기들이 살던 세계는 무림세계가 아니었다고.”
무림비망록의 인간계는 선계와 이어져있다.
그러나 그 인간계가 선계와 이어진 유일한 하계는 아니었다.
“선계는 복수의 하계와 이어져있는 셈이지. 추정컨대 그것들은 아마 다른 세계의 게임일 것이다. 무림비망록과 세계의 결과 거리감이 멀지 않은 세계들이지.”
“신수들이 자기들이 속한 게임세계가 어느 세계인지도 알고 있나요?”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태창을 보는 신수가 있다면 그것도 게임세계임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아주 허황된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게임 자체가 외계의 초월자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만든 게이트의 변종이다.
게이트가 대놓고 몬스터를 직통으로 쏟아 부어 깽판을 친다면 게임은 기한 내에 클리어에 실패할 시, 게이트로는 바로 투입 불가능한 강력한 존재가 지구에 강림하도록 만든다.
형태만 다를 뿐.
모든 게임은 게이트의 상위호환.
게임성과 차별화된 난이도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일반 게이트보다 강력한 최종보스를 물리쳐야 하는 대지구인사기극이었다.
“세상에는 동물계 선인도 있고 자연계 신령도 있고 신선의 형태와 종류도 참 다양하죠.”
“전혀 몰랐군. 선계에 오를 수 있는 하계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며, 선계 또한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사실은. 꼭 나이를 헛먹은 기분이오.”
선각자는 생각이 깊어보였다.
다양한 신수나 신령, 선인에 얽힌 장삼단봉 어르신의 실감나는 하소연을 썰로 풀어대니 넘쳐나는 현실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어지는 수다에 정신적인 고통도 받겠지!
“실로 가치 있는 정보였소이다.”
“?”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시군.”
“정신이 어질어질하거나 속이 나빠지는 기분은 들지 않나요?”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더욱 광활한 세계가 있음에 압도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물론 충격은 받았소. 허나 그뿐이오.”
선각자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이 엿보였다.
“우물 속을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에 어찌 두려워 떨기만 하리오.”
…회귀로 만족하던 선각자에게 괜한 정보를 주어서 게임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든 건 아닐까.
이제는 공략을 실패하면 선각자가 현실세계에 나타날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건 그렇고 얘기를 꺼내며 기대했던 것과는 반응이 다르네요.’
정신방어 관통데미지로 뇌에 꽂히는 수다데미지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본인은 정삼단봉 어르신의 수다에 시달릴 때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괴로웠는데 선각자는 왜 이렇게 멀쩡해 보이지?
짧은 고민과 성찰.
무림인의 오성이 직관적인 깨달음을 허락했다.
‘경지가 부족해서 그렇군요.’
무공에도 대성과 극성은 다르다.
10성을 대성이라 부른다면 12성을 극성으로 부른다.
대성은 한 무공의 끝을 본 것이지만 12성은 그 이상의 깊은 심득을 요구한다.
한 차원 높은 경지.
무공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하는 것이다.
극성에 도달한 무공의 가능성이 개화한다면?
그때는 무공 자체의 급이 상승한다.
이류무공이 일류무공이 되고.
절정무공이 초절정무공이 되는.
경지레벨을 하나라도 더 모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뉵불묵耳衄不默. 귀에서 피가 나와도 침묵할 줄 모르는 독한 성정을 갖추는 깨달음이 부족하군요.’
애초에 그녀는 무림에서 20년, 현실에서 3년 가까이를 침묵하며 지내왔다.
말을 많이 하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고 괴로움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정이 맞지 않는 무공이기에 대성은 가능해도 극성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가 너무 착해서 사람의 귀에 피를 낼 수 없는 탓이니 어쩔 수 없죠.’
분명 성격의 순함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
아니면 혹시 다 늙은 노인네가 아니라 절세미녀라서 그런가?
내가 좀 예쁘긴 하지.
본인이 남자라도 자신 같은 여자가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몇 시간을 떠든다면 얼굴만 봐도 즐겁게 흘려들을 수 있겠다.
너무 착하고 예쁜 탓에 무공이 극성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어쩌겠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커스터마이징 외모의 선천적 부작용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러면 그대는 정말로 신선인가? 그것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제부터 제가 당신에게 권할 내용이 더욱 중요하죠.”
“말해보시오.”
떡밥을 던져서 낚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이용한다.
“반요곡의 귀물들을 모으면 그 기운으로 이계의 등선문을 열 수 있어요.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거든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이죠.”
“!”
“귀물을 모아오세요. 그러면 등선의 날, 제 수고로움을 대신해준 답례로 당신을 이계의 선계로 데려가주도록 하죠.”
선각자가 의심을 품더라도 기존의 의심에 집중할 수 없는 새로운 목표를 던진다.
퀘스트.
도전목표.
반요곡의 각 필드마다 등장했던 스토리 모드를 통해 제시되는 목표처럼 심혈을 기울여야 할 대상을 강제로 지정한다.
게임 스트리머 경력을 적극 살리는 영리한 요청에 선각자의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이상하군. 참으로 이상해. 어찌 그런 자비를 베푸는 것이지? 선계를 논하면서 선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이고?”
의심이 들 것이다.
구미도 당길 것이다.
하지만 알아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욕심이다.
“싫으면 말던가요.”
욕망을 자극당한 이상, 선각자는 이제 집념을 내려놓을 수 없다.
욕망을 자극하는 주체가 무림을 피바다로 몰아넣은 천하제일미라면 더더욱.
“나이가 들어 잡생각이 많아졌을 뿐이니 마음이 상했다면 사과하겠소. 내 한 번 귀물들을 모아보리다.”
선각자의 의심을 방지하고, 그가 아는 귀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함정귀물을 크게 줄이며, 선각자가 한눈이 팔린 틈을 타서 대이주를 무난하게 실행했다.
[선각자의 의심도가 일시적으로 정지합니다.] [선각자가 백령신군의 진영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합니다.] [히든필드 에 입장합니다.]일석삼조의 전략은 대성공했다.
2.
대공동의 정복은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단일세력으로도 충분한 강함을 지닌 묵언검객의 세력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어땠을까.
DLC 컨텐츠나 다름없는 신세력의 등장.
미지의 대형필드.
혼자 혹은 소규모 파티를 이끌고 탐험하며 새로운 정보와 비밀을 수집하고 기믹과 적의 강함을 체험하며 시행착오 끝에 히든보스와의 일전을 겨루겠지.
하지만 지하대공동의 필드보스는 페이크보스인 대요괴를 뛰어넘는 진정한 최종보스이자 흑막 선각자에 비하면 손색이 컸다.
애초에 앞서 쓰러뜨린 대요괴만도 못한 존재에게 고전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놈들…! 비겁하게 수천만 대군을 이끌고 본거지를 통째로 빼앗아버리다니. 수치도 모르는가!”
-물량으로 밀어버렸죠?
-중공군마냥 물량 미치긴 했네ㅋㅋㅋ
-이딴 게 히든필드?
“지하에 숨어서 오랜 시간 대계를 꾸몄다더니 고난의 산맥의 나락의 왕과 별반 다를 바도 없네요.”
-??? : 아.. 게임 개노잼 할거 존나 없네 컨텐츠가 부족하네
-뭐 망게임이 다 그렇죠 뭐
-토끼공듀 명언 아님?
-오ㅅㅂ 이쪽도 생각해보니 토끼공듀네
-점핑레빗 진엔딩을 본 만렙토끼ㄷㄷㄷ
해응응은 솔직하게 소감을 말했다.
“진짜 컨텐츠가 부족하긴 하네요. 천만 까지도 아니고 십만 명만 데려와도 미로쯤이야 금방 정복하고 돌파할 수 있겠어요.”
지하대공동의 기믹은 일정시간마다 변화하는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 돌파하는 미로찾기.
힘으로 부수면 천장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성가신 수단까지 존재하지만 요괴를 우르르 밀어 넣으니 미로고 나발이고 출구를 찾지 못할 수가 없었다.
간단히 미로를 돌파하고 거주구역의 적들을 무릎 꿀려 복종시킨 뒤에는 휘하 장수들의 손으로 히든보스를 무릎 꿀려 발치에 데려오기까지!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까지 불과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보스의 표정이 허탈한 것도 시청자들은 이해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우리 밤의 일족이 지하에 숨어든 이유가 알고 싶은가? 아니면 일족의 보물이?”
상호작용 선택지와 함께 나타나는 가치 있는 정보들의 나열.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소소한 정보나 보물 하나 따위에 가치를 둘 때도 아니었으니까.
“미로는 왜 바뀌다가 말았나요?”
시간이 지날 때마다 움직여야 했을 미로가 어느 순간부터 잠잠했던 점을 떠올려 물어보니, 히든보스가 격노하며 빽빽 소리쳤다.
“정원초과가 되도록 요괴들을 밀어 넣으니 미로의 기관진식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장났다! 만족하냐? 이제 만족하냔 말이다!”
-아니 십ㅋㅋㅋㅋ
-공략법 수준보소
-요괴들을 밀어 넣는다. 아주 아주 많이.
“들으셨죠? 참 대충 만든 종반부 히든필드네요. 초반에 머릿수가 적을 때나 쳐들어왔으면 재밌게 즐길 수 있었겠어요.”
-그걸 묵언검객 말고 누가 하냐고ㅋㅋㅋ
-텐련아 그 공략 너밖에 못한다고요!!
-초반엔 대요괴 타임어택 하기도 바쁜데 거길 어케 가!
아무튼 대이주는 성공했다.
다음은 대요괴와 결전을 치를 장소를 골라 함정으로 그를 유도하는 것뿐이다.
슬슬 보스의 목을 뎅강 베어 다음 턴을 맞이하려고 검을 고쳐 쥐는데 히든보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사악한 침략자들이여. 우리를 살려준다면 대요괴를 물리치기 위한 우리 밤의 일족의 비장의 수단을 너희에게 넘겨주겠다…”
“대요괴는 이미 죽었는데요.”
“…꼭 대요괴가 아니라도 괜찮다. 강대한 존재를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종반부 히든필드보스라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 사뭇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애원에 해응응은 자비심을 베풀었다.
“저도 참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네요.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니 바로 목을 베기보다 한 번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
-?
-착함 ㅇㄷ?
-너가요?
-착함의 사전적 의미가 언제 바뀜?
갈고리여왕 해응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언을 허락했다.
“말해보세요. 구미가 당기면 살려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