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23)
1.
만다라의 꽃잎은 미래를 엿보는 도구이지만 그 진정한 쓰임새는 가능성의 개화에 있다.
평행세계에서 술사가 원하는 최상의 미래를 찾아내어 그것을 현실로 불러내는 취사선택의 힘.
그 힘을 이용하여 선각자와의 결전에서도 최후의 만다라의 꽃잎을 이용해 최상의 미래를 불러낸다.
이것이 백령신군의 계획.
마선토벌전에서 그가 보일 역할이다.
하지만 백령신군은 죽을 운명이다.
어차피 그가 꽃잎을 쥐고 무슨 미래를 불러온들 곧 죽을 운명이 다음 순간으로 아주 조금의 유예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헛되이 사라질 만다라의 꽃잎만 아까워졌다.
[▶②백령신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선토벌의 작전을 세운다.]작전은 간단명료했다.
“만다라의 꽃잎을 제게 양도하세요.”
“…그것이 내가 지닌 최고의 보패임을 알면서도 하는 말인가?”
“어차피 당신의 신통력은 당신의 최후를 보고 있지 않나요?”
백령신군의 말문이 막혔다.
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대요괴와의 결전에서 너무 많은 꽃잎을 사용하여 당장 내다본 적은 없지만 선각자와의 결전에서 자신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무수히 반복된 회차반복, 영겁회귀, 마선의 유희 속에서 영혼에 각인된 영적기억Soul memory이 있다.
머슬메모리Muscle memory라 불리는 근육기억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근육에 기억이 새겨짐을 의미하는데 영혼이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의 영혼에는 이미 깊은 패배가 새겨져있다.
심지어 그것은 선각자를 향한 것도 아니다.
대요괴.
폭군.
선각자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그가 자웅을 겨루던 적수들을 상대로 새겨진 패배의 기억이다.
“인정하세요. 당신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고한 선비처럼 새하얀 백복을 차려입고 백우선을 손에 든 백령신군.
성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지는 그의 자태에서 어쩐지 세상 모두로부터 격리된 것만 같은 깊은 단절과 상실감이 느껴졌다.
“비가 쏟아지는 깊은 밤이면 등잔불에 의지하여 홀로 경서를 살펴보거나 북벌계획을 세우곤 했지.”
그는 지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 전에 인간을 저버렸기에 인생이라 부를 수도 없을 일생을.
“밤바람이 무정하다 탓한들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겨울비가 가혹하다 원망한들 비는 멈추지 않는다. 옷깃을 여미고 비에 젖은 어깨를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고된 삶이었군요. 당신이 살아온 일생도.”
“그 짐을 온전히 네게 넘기라는 말이 솔직히 그리 싫지만도 않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과업이었고, 내려놓고 싶은 짐이었지.”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전장에 나서는 자의 심정이 어찌 가벼울 수 있을까.
군을 정비하고 군량을 보급하며 북벌을 준비하는 매 순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일진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자살이 있다면 백령신군의 과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요곡의 모든 존재는 도원향을 꿈꾼다. 이 비좁은 땅의 영맥 위에 도사린 모든 요기와 선기에 일생을 걸고 하루살이 날벌레처럼 뛰어들지.”
“당신도 그랬나요?”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욱 질이 나빴지. 홀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이 백모를 믿고 따른 모두를 사지로 함께 데려갔으니까.”
백령신군의 뒤에서 수하들이 무릎을 꿇고 지면에 이마를 쿵쿵 내리쳤다.
“소신들이 부족하여 신군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주소서!”
붕대를 칭칭 둘러 온몸을 감싼 토벌대장 나인.
남부필드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필드보스들.
전선에서 함께 그를 따르던 장수들까지.
수많은 인재들이 백령신군의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주군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자.
좋은 부하들이다.
그 또한 좋은 주군이었고.
단지 그뿐이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죠.”
인성이 행복과 비례한다면 세상에 악이 창궐할 이유가 없고, 인격자들이 고통 속에 시름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불의는 이익에 비례하고 정의가 바로서지 못하는 땅에 행복은 악인들의 전유물이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불의란 요력 그 자체.
편리하게 힘을 전해주는 대신, 그 힘을 유지하거나 키우는 대가로 자신의 신체와 인성, 나아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백령신군의 무리들 또한 결국은 그런 악덕에 무릎 꿇고 더러움에 발을 들인 족속들이다.
‘익혀서는 안 될 마공을 익힌 사람들이죠.’
무림비망록의 마교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이 있다.
중원에서 밀려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개발한 마공에는 타인의 내공을 갈취하는 비열한 흡공.
제자를 자신의 공력증진용 내단처럼 사육하여 고통 속에 몸부림치도록 만드는 함공.
잘못된 운기조식 구결을 통해 주화입마를 유발하는 위서.
발각된다면 마교 내에서도 척결을 피할 수 없는 금단의 마공으로 지정된 것들은 대개 이런 것이다.
“당신들은 돌이킬 수 없는 마공을 익혔어요. 그리고 기대에 따르지 못한 많은 이들을 죽게 내버려두고, 양분으로 흡수하였죠.”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나 너무 먼 길을 걸었다.
이제 와서는 그들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반인반요의 존재.
그중에서도 인간보다는 요괴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백령신군의 군벌의 현주소이니까.
“그것을 탓하지는 않아요. 다만… 잘못된 방식으로 쌓아올린 힘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높이 쌓아올릴 수 없게 되죠.”
높이 세운 탑이 서서히 기울어지고 탑의 다음 층을 놓을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니.
현상유지조차 급급한 상황에 감히 그 너머의 경지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마공을 익힌 고수들이 절대지존의 경지를 꿈꾸지 못하는 이유이며 백령신군이 대요괴를 능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리 요괴를 모방한다고 한들, 당신들의 가능성은 요괴의 흉내를 내며 위태롭게 쌓아올린 힘이 몸을 붕괴하지 않게 지키는 것으로 모두 소모했어요.”
더 이상의 성장동력이 없는 삶.
한계점에 도달한 존재들.
그것이 백령신군의 군세였다.
“당신은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인간을 저버린 꼬리를 아홉 개나 달고 다니는 구미이면서?”
“위태로운 장대 위에 서지도 않았고, 기반이 부실하여 흔들리는 경지를 두지도 않았죠. 제 힘은 제 의지에 의해 정련되고 제 뜻을 거스르지 않아요. 아무리 높고 거대하게 힘을 일으키더라도 마찬가지이죠.”
12정경과 기경팔맥을 지배한 신체에 기가 흐르지 못할 뒷길이 없고, 소화하지 못할 거대한 힘과 무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여정이 헛되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그 여정의 끝이 이 자리에서 정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탓하며 절망하라 말하지도 않겠어요.”
“하면 그대는 우리의 끝을 고하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희망도 절망도 빼앗는다면 인간도 요괴도 아닌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남는가!”
울분에 가득한 외침.
영혼에 새겨진 수많은 패배에 지친 자의 노성.
해응응은 부드러이 그 분노를 감쌌다.
“대의가 남죠.”
“우리의 대의를 감히 외지인인 자네가 어찌 입에 담으려 하는가!”
“모든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질 권리. 폭군의 폭정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요괴의 피에 얽힌 잔혹한 숙명을 벗어던진 자유.”
“…!”
“사람의 수명에 한계가 있듯이 별의 빛남에도 한계가 있죠. 억겁의 세월 속에 총기를 잃지 않는 별은 없어요. 또 다른 별들의 빛남으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뿐이죠.”
밤하늘이 대의라면 별은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의인들의 투쟁이다.
“빛나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의 힘을 거두어도 괜찮아요. 나머지는 제게 맡겨주세요.”
백령신군의 무면의 가면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분함을 참지 못하는 분루가 아니었다.
밀려오는 슬픔에 흐르는 군주의 옥루 또한 아니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뜨듯이 시대의 흐름이 자신의 끝을 고함을 느끼는 때.
자신의 오랜 과업을 다음 주자에게 물려주고 진정으로 해방되었음을 느끼는 고행자의 눈물이었다.
“자, 잠깐!! 잠깐 기다리십시오!!!”
백령신군이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꽃잎을 손에 쥐고 내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대경실색하며 달려왔다.
“짐꾼.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도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요?”
인상을 찌푸리며 힐난하는 해응응에게 평상시의 짐꾼이라면 잔뜩 겁을 먹고 고개를 조아렸을 짐꾼이지만 오늘만큼은 반응이 전혀 달랐다.
“안 됩니다. 그 꽃잎을 받는 일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백령신군은 자신의 모든 과업과 함께 최후의 무기를 제게 건네주려 하고 있어요. 그것을 무슨 연유로 막아서며 무례함을 보이는 것이죠?”
“저것이 존재할 수 없는 꽃잎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할 수 없다?
좌중의 모두의 얼굴에 망연한 감정이 떠올랐다.
-모임?
-만다라의 꽃잎이 왜?
-우린 못 봤지만 대요괴랑 싸우면서 요긴하게 써먹었다면서
-ㅇㅇ
-그럼 완전 좋은 거 아닌가?
시청자들조차 납득하지 못한 짐꾼의 주장.
그러나 이어지는 짐꾼의 말에 모든 의문은 비로소 해결되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백령신군의 마지막 만다라의 꽃잎은 대요괴가 요괴왕의 권능을 깨우치며 모방재현했던 만다라의 꽃잎을 상쇄하며 사용되었음을!”
“!!”
“해명하십시오, 백령신군.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만다라의 꽃잎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만다라의 꽃잎의 형상을 지닌 그것의 실체는 대체 무엇입니까!”
가면을 쓴 얼굴 위로도 미처 감출 수 없는 동요를 드러내는 백령신군.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이것은 만다라의 꽃잎이다. 몇 번이고 사용했던 본인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분명 모든 꽃잎을 지난 대전에서 사용했지만 이것은… 이것은… 대체 어디서 생긴 것이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백령신군.
그의 가면 너머로 불길한 검은 요기가 새어나왔다.
“신군님?”
“신군님의 상태가 이상하다!”
“당장 어의를 불러라!”
당황한 부하들이 백령신군에게 달려가려는 것을 해응응이 검을 들어 검풍의 벽을 펼쳐내는 것으로 강제로 저지하였다.
“다가가지 마세요. 지금의 그에게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에요.”
백령신군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거대한 성스러운 힘의 발현.
백의를 두른 백령신군의 신체가 뒤틀리고 부풀어오르며 마구잡이로 형체가 무너졌다.
신군을 구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외치던 수하들도 망연자실하며 쳐다보는 가운데, 거대한 기의 분출과 함께 백령신군의 형체가 변화하였다.
달각.
흘러내리는 가면.
새카만 어둠만이 도사리는 얼굴.
“이런… 들켜버렸나?”
“당신은… 설마…”
“네 짐작대로다.”
백령신군. 한때 그런 이름의 가면을 두르고 모두를 기만했던 존재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창세 이래 지존의 위에 올라 역행위선을 반복해온 마선의 유희.”
[경고! 경고! 경고!] [백령신군의 가면이 벗겨졌습니다.]“따분한 세계에 재미를 더하고자 만들어낸 거짓구원자.”
“대요괴 타도를 이룰 수 없는 패배의 숙명을 벗어던진 가면이 맞이할 가엾은 말로.”
[마선의 분신] [가 정체를 드러냅니다.]듣는 이의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은 살인적인 농도의 요기를 흘리며 그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모두를 비웃었다.
어찌 생각하지 못했을까.
선각자의 실체란 마선이며, 분신의 사용에 능한 그에게 ‘선각자’ 이외의 분신이 더 존재하리라는 것을.
만다라의 꽃잎을 지난 대전에서 모두 사용했음에도 한 장의 꽃잎이 더욱 남아있던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사실을.
모두 방심했기 때문이다.
끝이 머지않았다고, 선각자 하나를 속이는 것에 급급했던 것이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마선의 또 다른 분신과 마주한 것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