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24)
1.
반요곡의 패권을 겨루던 삼대세력 중 하나의 수장.
만인의 구원자 백령신군.
그가 적이 되었다.
단순히 산술적인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백령신군은 지금까지의 마선토벌전 계획을 모두 공유 받았던 자.
마선의 분신이 알고 있다면 본체라고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처음부터 우릴 우롱하고 있었군요.”
“하하. 즐겁지 않은가? 힘겹게 세운 작전을 적에게 고스란히 공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란… 아아. 정말 최고였다. 이번 유희는 절대 잊지 못해.”
희열에 가득 찬 백령신군.
몸을 떨며 전율을 느끼는 그를 앞두고 해응응은 좌중의 모든 인간과 반요, 요괴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 물러서세요. 백령신군의 실체가 적이었다면 눈앞의 존재가 구사할 능력 또한 백령신군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백령신군이 대요괴에 맞서기 위해 사역한 전승은 누라리혼의 전승.
멸국의 마지막 유산을 총동원하여 얻어낸 인류 최후의 전력.
백귀야행의 힘.
죽어도 부활하는 무수한 요괴들을 이끌고 일인군단의 기적을 발휘하는 자.
그의 능력은 이제 그가 지켜왔던 모든 존재들을 위협한다.
“후후. 보이는구나. 너희가 품은 두려움이.”
“신군이시여!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할 운명이었습니다. 어찌 우리를 버리시려 합니까!”
“이 모습을 보고도 아직도 거짓된 관계에 얽매여있는가? 참으로 가엽구나. 어미를 잃은 아기새처럼 애처롭게도 떨고 있어.”
백령신군이 어서 제 품에 안기라는 듯이 보란 듯이 팔을 벌렸다.
“오라. 그리하여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내 어찌 너의 충성을 거부하랴.”
전선을 이끌던 장군이 홀린 듯이 그에게 다가갔다.
와락!
“당신은 망국을 이끌어온 국가의 어버이이자 피붙이를 잃은 이들을 거두어준 모든 고아들의 어버이십니다. 부디 눈을 뜨십시오, 신군이시여!”
그것은 기도와도 같았다.
백령신군과 거짓구원자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진심을 전해 일깨우면 마선의 분신이 빼앗은 육신 속에서 백령신군의 자아가 다시 깨어날 거라고.
오직 그 하나의 가능성에 걸고 몸을 맡긴다.
목숨을 걸었기에 가능한 숭고한 도박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신군님! 정신이 드셨…”
백령신군의 품에 안겼던 여장수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등을 뚫고 파고든 검은 손톱은 신체 주요장기가 자리할 모든 부위를 파고들었다.
“네게 베푸는 죽음이 곧 구원이니라.”
죽음의 직전에 이르러서야 믿고 싶은 것만을 믿었던 장수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백령신군이 아니다.
그녀가 존경했던 위인은 이곳에 없다.
인간과 반요, 요괴.
모두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던 마선의 분신만이 눈앞에 있을 뿐.
“인류의 도원향은… 어디에…”
여장수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아름답게 반짝이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대요괴와의 오랜 전쟁에서도 전선을 밀고 올라가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여장수는 그렇게 자신이 존경하던 이의 품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철퍼덕.
시신을 놓아 바닥에 떨어뜨린 마선의 분신이 킬킬 웃으며 물었다.
“아직도 내 품에 안기고 싶은 자가 있는가?”
-키사마아아아아아!!
-전선지대의 G컵 츤데레 큭죽여라계 여장군님을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큭죽여라계ㅋㅋㅋㅋ
-왤케 꼴림? 우린 왜 처음 봄?
-전선을 안 갔잖아요ㅅㅂ
-너희들의 G컵 츤데레 큭죽여라계 여장군 요괴 시리마마님, 연륜이 느껴지는 내정원툴 노인 고관대면으로 대체되었다!
-가성비 존나 구리네
-백령신군 이 새끼 유희 즐기는 마선이라더니 장군자리에 그런 개꼴리는 요괴를 앉혀놓은거임?
-어쩐지 이샛기 북벌을 성공한 적이 없더라니
-아ㅋㅋ 장군자리는 큭죽여라 맛깔나게 외치는 요괴로 선출한다고
끓어오르는 민심.
터져나오는 분노.
시청자들 이상으로 격노한 백령신군 세력 휘하 제장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잔혹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두 팔을 벌리는 백령신군.
그의 어깨 너머로 새카만 어둠에 물든 요괴의 형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됐다.
2.
마선의 분신은 상당히 까다로운 패턴을 지녔다.
[페이즈 1 – 백귀야행의 주인]백귀야행을 통해 요괴대군을 생성하는데 개체 하나하나마다 강함이 필드보스에 준한다.
심지어 죽여도 도로 부활하는 골치 아픈 습성까지 발휘하니, 물량으로 상대해보았자 끝없는 싸움에 휘말리기만 할 뿐이다.
전승의 주인.
백귀야행의 원천.
백령신군의 형상 그 자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끝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우리를 배신한 신군을 용서하지 않겠다. 가라, 묵언검객. 백귀야행은 우리가 막겠다.”
부활하지 못하도록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저항과 전승의 발현에 허를 찔려서 부상을 입거나 쓰러지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럼에도 제장들은 백귀야행을 막아섰다.
삼대세력의 수장.
그중 사생아왕은 자리를 비웠다.
백령신군은 마선의 분신이었다.
믿을 것은 오직 플레이어 묵언검객뿐.
삼대세력의 희망은 이제 그녀에게 달렸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결과네요.”
“저런. 묵언검객이여. 그대도 내 거짓된 그릇의 대의에 홀려 헛된 마음이라도 품었나?”
“대의는 몰라도 당신의 가면이 했던 말에는 관심이 있었죠.”
-내게는 언젠가 모든 과업을 이루었을 때, 내 손으로 요괴의 피를 마시게 한 인류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비법이 있지.
-그대가 찾던 요력이 일소된 세계. 그것은 언젠가 내 손으로 만들 인류를 위한 도원향을 세울 마지막 퍼즐조각이자 최후의 안배였다.
백령신군의 그 말을 믿고 그를 끌어들였지만 결국은 마선토벌의 계획을 공유받기 위한 그럴싸한 꼬드김에 불과했던 건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인간이 신선을 이기려 들다니, 아무리 못해도 천년은 이르다!”
귀기어린 흑도술Dark Taoist Magic을 통해 검은 부적을 쏘아 날리고 걸음마다 눈앞의 광경과 현실세계의 풍경을 왜곡시키는 백령신군.
모두를 기만해왔던 속임수의 달인답게 오감을 농락하는 재주도 대단했다.
방금 전까지 백귀야행과 싸우던 장수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늑한 굴뚝 앞에서 나른한 수마를 부르는 장작 타는 소리가 탁탁 울린다.
절로 눈이 감기는 풍경과 소리.
넘쳐나는 현실감에 속지 않을 재간이 없어보였다.
눈을 감고 오감을 닫아도 기감으로 세상의 형태를 읽어내는 무림인의 감각이 없었다면 말이다.
“흐흐. 이 정도는 통하지 않는다는 건가?”
“절 너무 얕보는군요. 이 정도는 대요괴도 보여줄 수 있는 재주였어요.”
“그런가. 명색이 백령신군인데 대요괴만도 못하다는 평을 들어서는 곤란하지.”
육감의 기감 앞에도 펼쳐지는 환상.
그것은 기로 자아낸 거대한 업의 역사였다.
백령신군이 짊어진 시련.
그가 견뎌왔던 막막함.
인류의 절망적인 미래.
생존을 위해 죽음을 강요하고.
정의를 위해 불의를 무릅써온.
모순으로 점철된 처절한 투쟁의 역사.
그 먹먹한 여정은 백령신군을 따르는 백귀야행의 요괴들의 업이기도 했다.
수많은 요괴들.
그들이 살아온 요생.
이를 머릿속에 강제로 때려 박아서 일순간이나마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발을 멈추게 한다.
기감마저 속이는 고도의 정신투영능력을 이용해 무방비사태로 만들고 현실에서 목숨을 취하는 정신계통 능력의 극한에 달한 재주!
“인간이란 압도적인 운명 앞에 경외심을 느끼고 압도당할 수밖에 없지. 그 또한 운명이니. 그대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너무 많았음을 탓하시게.”
과연, 대요괴의 호적수다운 실력이다.
잠깐이지만 묵언검객의 견고한 정신이 경직되며 쏟아지는 기억에 압도당했다.
백령신군.
아니, 마선의 분신의 재주는 분명히 통했다.
이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의 목을 베면 끝.
수하 여장군을 해치울 때 썼던 검은 손톱을 뽑아들어 목을 긋는 간단한 작업으로 모든 여정에 종지부를 맞이한다.
푸슉!
“움직…였다고?”
“3초를 300년으로 보내는 주와지시의 시간조차 견뎌낸 정신이에요. 당신들의 고행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는데 필요한 시간은 1초도 필요 없어요.”
“어이가 없군… 그것이 가능한 존재를 어찌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선계의 등선을 이미 허락받은 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세를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모든 선인과 도인의 도원향.
세속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자.
무릉도원을 노니는 신선이 될 자격을 지닌 자이니까.
“이계의 신선… 반요곡의 외부세계에서 마선의 유희에 종지부를 고하고자 찾아온 자. 볼품없는 것들과는 달라도 이 또한 결국 처형자인가…?”
삶을 포기한 것처럼 고개를 늘어뜨린 마선의 분신.
해응응은 그에게 다가가 목을 치는 대신, 원거리에서 강환을 날렸다.
캉!
세찬 불똥과 함께 튕겨나가는 강환.
왜곡된 공간 너머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강도와 속력의 검은 손톱이 강환을 쳐냈다.
“큭큭. 이미 눈치 챘나?”
“찰나지간이나마 당신의 기감속이기가 통하는 것은 밝혀진 사실. 그 좋은 기술을 방어에는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래… 틀리지는 않았다. 이것은 선술을 이용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알고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속임수이기도 하지.”
마선의 분신이 새카만 어둠을 꿈틀거리며 조롱하듯이 말했다.
“만다라의 꽃잎. 최적의 가능성을 개화하는 권능. 이것은 언제나 사용자가 바라는 최선의 결과를 불러내는 힘이다. 그중에는 만다라의 꽃잎을 아직 한 장도 사용하지 않은 미래의 자신이 정명한 인과를 얻고 차원을 넘어와 꽃잎을 양도하는 미래도 있지.”
“말장난이군요.”
“그 말장난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이것이다. 물론 백령신군은 못했지. 정당하지 못한 거래의 대가는 세계가 대신 지불해야하니까. 일방적인 거래를 통해 요계가 멸망했듯이 말이다. 큭큭큭!”
“바라는 것을 현실로 불러내는 도깨비의 힘. 그조차도 마선에게서 비롯된 힘이었나요?”
“만요의 어버이라면 자식들의 권능쯤은 부릴 수 있어야하지 않겠나?”
마선의 분신.
그의 주변반경 10m에 드리우는 암흑의 경계.
그것은 사선이었다.
[페이즈 2 – 마선의 경계]넘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선.
마선의 악마적인 상상이 모두 실현되는 공간.
“모든 상상력이 실현되며 인과가 무시되는 이 공간에서 네 공격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과연. 상상력이라… 무공의 존재에 구애받는 저로서는 그런 형편 좋게 세계에 모든 짐을 떠넘기는 불합리한 기술은 감당하기 어렵긴 하겠네요.”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항복하겠나? 아직 멸망시키기엔 아쉬운 회차야. 본신도 분명 그러길 바라겠지. 네게도 좋은 기회가 아닌가? 본신과 직접 마주하여 그 강함을 목격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이번 회차를 포기하고 2회차를 도전할 심산이라면.
당면한 죽음을 유예받고 미래의 최종보스를 두 눈에 직접 눈에 담는다.
그 선택을 어찌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평범한 플레이어와 달리 무공경지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금의 그녀라면 오히려 1회차보다 더 빠르게, 더 올바른 수순으로 이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거절하죠.”
하지만 그 대가로 지금껏 쌓아온 모든 유대와 희생을 무위로 되돌린다.
그런 형편 좋은 짓을 무림인은 허락할 수 없었다.
고행이 있기에 힘이 따른다.
죽음을 각오하기에 기혈을 타통하고 강해진다.
그것은 무림인이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세계에 공증 받은 힘의 공식.
가장 기초적이고도 원론적인 금제이다.
“어리석구나. 그 객기가 너의 여정을 더욱 길게 만들었음을 후회하라.”
단숨에 달려들어 10m의 경계 속에 묵언검객을 집어넣은 마선의 분신.
간격을 허락한 순간, 그녀의 승산은 사라졌다.
[서로 다른 가능성이 충돌한다면 쌍생의 가능성은 대치를 이루니.] [그대가 고쳐 쓴 역사를, 이 마지막 만다라의 잎이 다시금 고쳐 쓴다.]“아니, 이 목소리는…!?”
필연적인 승리였다.
마선의 분신이 세운 필승의 공식이 눈앞에서 무너지기 전까지는.
“백령신군!! 그 가면은 내 손안에 있을 텐데!?”
“당신의 입으로 먼저 말하지 않았나요? 그 경계는 모든 가능성이 실현되는 공간. 한 장의 만다라의 꽃잎으로도 억겁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그것은 세계를 속일 한 장의 꽃잎이라도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공식이다! 너희에게 그런 꽃잎이 있을 리가 없을진대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해응응은 솔직히 인정했다.
“저로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형편 좋은 잔재주를 잘 부리는 존재라면 제 곁에도 하나 있거든요.”
동등한 힘을 구사하며 마선의 분신의 힘을 막아낸 백령신군의 잔령.
그 영혼을 불러낸 주인이 해응응의 뒤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인과가 무너진 가능성에는 과정 없는 결과가 성립할 수 있으니. 백령신군의 몸으로 부리는 가능성이 승천을 이룬 대요괴의 몸으로 부리는 가능성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느냐?”
헬즈 쇼핑호스트에서 계약을 체결한 3대 요괴왕.
대요괴의 진화체가 마선의 분신이 만들어낸 혼돈의 가능성을 빌려 반요곡에 강림했다.
“묵언검객. 이 간격을 놓치지 마라. 내 힘은 경계에 있을 때에만 비롯되는 것이니.”
“무림인을 상대로 감히 간격을 논하는 건가요?”
마선의 분신이 짓던 비웃음보다도 더욱 잔혹한 비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어렸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