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36)
1.
분노조절장애.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무 때나 화를 내는 미친 사람에게 붙는 말이지만 지구인의 80%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면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되는 증세를 지니고 있다.
애석하게도 강자에게 맞아본 기억이 없거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예외다.
맞은 적이 없으니 예의를 모르고,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해서 객기를 부리기 때문이다.
‘나한테 나도 모르는 분조장이 있나?’
스피드마스터는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묵언검객을 도발하다니.
9시 뉴스에 대서특필되고도 남을 미친 짓이다.
[스피드마스터, 해남파 내원에 머리만 남은 채 심어진 상태로 발견…] [“그 형이 은근 똘끼가 있기는 했어요…” 동종업계 엄모씨의 진술] [99분토론 “스피드마스터는 자신의 의지로 자살했는가 vs 의문의 세뇌능력자에게 세뇌를 당했는가” 오늘 저녁 8시 많은 시청 바랍니다]“참 당돌하기도 하네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런 뉴스를 해남파 안뜰에 파묻힌 채로 들을 수 있겠지.
사과하자.
넙죽 고개를 숙이는 거다.
뻣뻣하게 굴다가 패배가 뻔한 내기라도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헬세살이 무림비망록보다 뛰어나다. 진심으로 그렇게 주장할 셈인가요?”
“아닐 거 뭐 있습니까? 헬세살도 은근 좋은 게임입니다. 최대한 적은 횟수로 초능력 쓰면서 깨는 법도 잘 터득하면 0회 사용으로 클리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놈의 고개.
숙일 수가 없었다.
아니, 숙이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 앞에서 약해지고 싶지 않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훌륭하다고.
인기도 많다고.
‘이 여자 앞에서 약해지고 싶지 않아.’
해응응은 용기인지 객기인지 모를 그 태도가 퍽 신기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요?”
“못할 거 없죠.”
“방식은?”
“스피드런.”
“데드엔딩을 제외한 아무 엔딩이나 빨리 보는 조건이라면 거절하죠.”
“진엔딩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는 높이 사겠습니다. 하지만 무공도 만능은 아닙니다. 이 게임에는 ‘특별한 구간’이 있으니까요.”
스피드마스터도 바보는 아니다.
질 것이 뻔한 승부에 나서지는 않는다.
해응응은 그 자신감의 원천이 궁금했다.
“어떤 구간이죠?”
“ACF. 통칭 안티크리쳐필드Anti Creature Field.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반요곡에서의 인류와 달리, 헬세살의 인류가 개발해낸 요괴와 맞설 힘입니다.”
“요력봉인지대. 쓰레기장에서 보았던 요괴왕비의 수하들이 사용하던 재주로군요.”
스피드마스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힘이 봉인하는 것은 요력만이 아닙니다. 현실 각성자의 각성능력 또한 어엿한 초인의 힘. 요괴나 크리쳐의 힘과 마찬가지로 전부 봉인당하죠.”
“지구의 능력도 말인가요?”
“이미 무림인을 고용해서 검증도 끝마쳤습니다. 무공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내공 또한 봉인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무공이 없는 묵언검객이 저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양쪽 모두 일반인의 스펙으로 돌아간다면 내공을 접목시킨 무공은 없어도 순수한 무술을 익힌 그녀의 움직임을 평범한 남자가 당해낼 리 없다.
그럼에도 자신감을 보일 이유를 해응응은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당신의 . 그 전매특허는 막히지 않았군요.”
“간단한 원리입니다. 제 능력은 초인적인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과반응증후군. 작동원리가 다르기에 막히지 않습니다.”
“비겁하지만 영리한 도전이네요. 감히 저를 상대로 승산을 논할 수 있는 승부방법을 찾았어요.”
스피드마스터는 움찔했다.
욱한 나머지 언젠가 묵언검객과 겨룰 때 사용하려고 아껴둔 비장의 패를 꺼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어차피 기회도 없다.
그녀가 시한부일때는 반요곡도 못 깬 마당에 무슨 헬세살 타령인가 싶기도 했고, 설령 반요곡을 깨더라도 곧 세상을 타계할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반요곡도 끝났고 시한부도 아니다.
신선지경에 올라 환골탈태도 마치고 현대의 반신처럼 군림하는 그녀를 어느 누가 ‘배려’를 하겠는가.
“…어라?”
“곤란한 사실이라도 떠올렸나보네요.”
“그,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봅니다만… 반요곡 끝나고 현실에서도 경지상승이 유지되고 있으시죠?”
“그래요. 앞으로는 초절정지경의 고수가 아닌 조화경의 고수라고 불러주세요.”
“그, 화경이라는 경지는 무협에서 흔히 말하는 환골탈태가 동반되는 것이 맞습니까?”
“맞아요. 덕분에 구음절맥도 고치고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되었죠.”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릴 일이기는 한데… 환골탈태를 하면 신체가 많이 강해집니까?”
이게 마음에 걸렸다.
기가 봉인되면 남는 것은 순수한 신체스펙 뿐.
무술을 이용하면 그 차이를 조금은 좁힐 수 있겠지만 과반응증후군 3기 환자의 통제되는 신경가속기술 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것이 그가 승산을 점치던 이유였다.
그런데 환골탈태가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괴물 같은 무술 때문에 방심은 못한다고 여겼는데 신체스펙의 기본치가 더 올라갔다.
저쯤 되면 그냥 신체만으로도 이능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그 스펙업이 얼마나 되었을 지가 두려워졌다.
“내공 없이 어디까지 강해지나. 그게 두렵군요?”
“하하…”
“늦었어요. 두려워도 없던 일로 물리기에는.”
해응응이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이마에 찰싹 달라붙는 감촉은 손바닥처럼 부드러운 손수건의 감촉.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던 손수건인지 이마에서부터 콧가로 퍼지는 은은한 향기에 그만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저는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도전정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죠.”
지금이 아닌 다른 때라면 참 좋았을 말인데.
그를 향하는 미소가 여우처럼 무섭다.
홀릴 때는 좋은데 본색을 드러내면?
배에 슥 손톱을 대면 혈선이 그어진다.
그 뒤에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겠지.
여우나 구미호라는 것은 그런 족속이다.
꼬리가 없을 때도 여우같던 여자가 이제는 구미까지 달리고 환골탈태까지 한 마당에 얼마나 더 무서워졌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했다.
“스피드마스터. 당신은 정말 도전적이었어요. 조금 전의 당당한 모습, 정말 좋다는 뜻이에요.”
“…!”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데.
그런데도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에 힘이 실린다.
엉거주춤해지는 자세를 민망하게 여길 법도 하건만.
자세를 본 그녀의 입가에 엄길동을 쏙 닮은 장난기 넘치는 미소가 어렸다.
“그 모습도 보기 좋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당연한 반응이니 어쩔 수 없죠. 무림인이 아니라면 혈류순환을 조종하는 기술까지는 보일 수 없을 테니까요.”
“흉한 꼴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
“훌륭하다고 생각했죠.”
“!”
애써 가라앉히려던 마음이 더욱 벅차게 뛰어오른다.
바지춤에 공손하게 모은 두 손 아래로도 더욱 커지는 숨겨야 할 마음.
그 몹쓸 마음을 부채질하듯이 여우처럼 구는 여우검객이 가볍게 피식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남자라서 어쩔 수 없는 곤란함은 이해해요. 그래도 좀 더 자제하도록 노력해보세요. 저는 저보다 약한 남자는 받아줄 생각 없거든요.”
미치겠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어떨까요?”
“…듣기에 따라서는 꼭 이번 내기에서 제가 이기면 엄한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도 된다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입니다.”
없던 가슴조차 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여자처럼 다 깨어버린 술기운마저 영혼까지 끌어 모아 빌려보는 스피드마스터의 용기있는 도전.
용기인지 객기인지.
역시나 모를 그 도전을 받으면서도 이 악질구미대마왕천마검객은 불을 지폈다.
“해보세요.”
“…진심입니까?”
“싫다면 없던 얘기로 해도 되고요.”
성인남자의 마음을 다 알면서도 불타 죽어보라고 손가락을 들어 스피드마스터의 가슴을 콕 한 번 찌르며 단단히 불을 지펴버리고 돌아서는 해응응.
가볍게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에 불씨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하죠. 까짓것 도전하면 그만 아닙니까.”
“좋아요. 그런데… 제가 이기면 그땐 어떡할래요?”
그러게. 그땐 어쩌지?
꿈에서 깨어 현실을 자각한 스피드마스터.
여자 엄길동이라도 불러도 무방한, 어떤 면에서는 엄길동조차 뛰어넘는 악질검객.
그녀가 이기면 그때는 무슨 대가를 요구할까.
그걸 내가 감당할 수는 있을까.
“실례지만 제가 지면 그때는 뭘 요구할지를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너무 쫄지는 마요. 별거 아니니까.”
애써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긴장하는 그의 어깨에 턱을 얹듯이 꼬리를 올린 해응응.
간질거리는 감각 너머로 귀를 간질거리는 목소리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해남파의 망겜공략조에 합류하세요. 점핑레빗이라거나, 헬즈 쇼핑호스트라거나, 헤비쿠커라거나. 그런 게임 진엔딩을 공략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죠.”
참 쉽죠?
절대 쉽지 않은 제안에 스피드마스터가 대답했다.
“내가요? 그런 걸? 미친. 정신이 번쩍 다 드네.”
그건 에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