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44)
1.
어둠의정령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플레이어들이 사냥터에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를 하지도, 감정표현을 띄우며 감정을 교류하지도, 아이템을 매매하며 거래를 하지도 않았다.
“아니 미친놈들아! 퀘스트템을 먹을 거면 유저한테 팔아야지 그걸 NPC 상점에 다 갖다 팔면 어떡해!”
“아 좆됐다. 피그 저 새끼 희귀약초는 몸에 좋다고 매입하는 족족 지가 다 처먹는데.”
“그냥 어둠의정령 저것들을 담가버리면 안 되나?”
“안 돼. 저놈들 레벨도 높고 전투력도 장난 아니게 강해. 어떻게 이기더라도 닉네임 깔맞춤 한 녀석들을 몇 십에서 몇 백 명씩 더 데려오느라 답이 없어.”
100레벨 사냥터에서부터 시작된 소동은 점차 레벨구간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150레벨 사냥터, 200레벨 사냥터, 300레벨 사냥터, 500레벨 사냥터.
대륙 곳곳의 온갖 사냥터에서 출몰한 들은 플레이어의 사냥터를 선점하고, 퀘스트 진행아이템을 독식하고, 이를 취하려는 플레이어를 공격했다.
사냥터 독식.
퀘스트 독식.
흔히 성장통제라고 부르는 MMORPG의 적폐 짓이 저렙구간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쟤들 진짜 왜 저럼?
-쌀먹충마냥 게임재화 팔아서 현실 돈 벌려고 저러는거면 최신대륙 넘어가서 최신템을 팔아야지
-ㄹㅇ 저거 모아봤자 채산성 1도 없음
-근데 경매장에 초보자템 다 어디감?
-?
-?
-진짜 싹 사라졌네?
-진짜 뭐임? 모가 일어나고 있는 거임?
-초보자템만 없는 게 아닌데?
-경매장 매물들이 원래 이렇게 없었음?
단순히 저렙에서 그친 해프닝이라면 별 심심한 놈들도 다 있다며 업신여기고 말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냥터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는 해프닝으로 그칠 수 없었다.
이것은 명백한 공격이자 테러였다.
에픽판타지 한국서버 플레이어들을 향한 테러.
그것도 외국인에 의한 테러가 아닌 ‘어둠의정령’이라는 닉네임 깔맞춤을 한 일만 명이 넘는 외향마저 똑같은 클론부대들의 테러!
“…한 놈 잡아봐야겠어.”
“언니… 우리 살 수 있을까요?”
“괜찮아.”
주아영은 덜덜 떠는 동생들의 모습에서 무력했던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
예전의 자신에게도 응응언니가 곁을 지켜주며 이럴 때마다 위기를 헤쳐나가고는 했었지.
언니는 어떻게 했었더라.
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곰곰이 고민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죽더라도 언니가 복수는 해줄게.”
“저희 죽어요!?”
“한이 남아서 구천을 떠돌지는 않을 거야.”
-아ㅋㅋㅋ
-살풀이는 해준다고ㅋㅋ
다른 의미로 공포에 질린 소영아와 달리, 전부터 함께 방송과 게임을 했던 기존 해남엔터 3인방은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래야 우리 언니죠.”
“죽지 않는 선에서만 지원해드릴게요…”
“한나도 같이 돌격한다요!”
주아영의 옆에 씩씩하게 나선 김한나.
그녀는 탑 너머의 플레이어군단과의 교전이 벌어진지 불과 10초 만에 스킬폭격을 맞고 사망했다.
-역시 이렇게 되겠지ㅋㅋㅋ
-레벨차이를 보라고 멍충아!
“꺄아악! 미안해요, 아영언니… 폭격이 너무 무서워서 버프 타켓팅을 못하겠어요오오…!”
“고개들지마멍충아!”
“꺄아악!”
“아악 저 딸기우유 다 떨어졌어요. 남는 우유 좀 주세요!”
“HP포션이라니깐!”
별 도움도 안 되지만 전쟁영화에서 적의 공습을 받아 비명을 지르는 육군 병사들처럼 애처롭기 짝이 없는 동생들.
그들의 비명과는 별개로 주아영은 거침없이 폭격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좀비해저드나 호러존처럼 PVE 게임만 너무 열심해 해서 얘들이 플레이어 무서운 줄을 이제 알았네
-근데 반대로 아영언냐는 어케 살아있음?
-점핑레빗 진엔딩 클리어 기록 보유자.
-와 ㅆㅂ
-사람임?
-사람 아님 묘인족임
-점핑레빗 진엔딩 클리어 기록 보유 묘인족 용사 정도면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ㅋㅋ
-ㄹㅇㅋㅋ
우스갯소리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주아영은 포화 속에서 여유를 느꼈다.
‘타이밍을 뺏는 정교한 포화가 아니야.’
스킬에는 쿨타임이 있다.
그리고 정해진 위력계수가 있다.
무공과 달리 들어가는 힘은 동등하고, 쿨타임을 줄이는 스킬이 없으면 이를 인위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단축시킬 수는 없다.
즉, 공격의 호흡을 읽어내기 쉽다.
쏟아지는 포화 사이로 드러나는 쿨타임과 화력이 약한 타이밍, 공격이펙트가 가장 덜 겹치는 자리를 모두 눈으로 읽고 머리로 계산하며 본능에 새긴다.
‘그래, 여기야.’
점핑레빗, 좀비해저드, 호러존.
그리고 반요곡.
직접 했던 게임과 눈으로 본 게임들.
모두 다른 게임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힘 대 힘으로 비교하면 당해낼 수 없을 거대한 힘도 힘이 작용하는 원리와 호흡을 읽어내면 돌파할 수 있는 구간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점핑레빗의 억까난수패턴도 점핑 하나로 극복한 나야. 같은 규격의 정형화된 패턴 따위, 아무리 힘이 세도 무섭지 않아.’
점핑레빗의 ‘점핑’이라는 형태에만 구애받지 않고 해남파의 신법을 접목하여 펼쳐지는 이동기술.
집단의 한복판에 파고들어 적의 화력을 적의 몸으로 막아낸다.
걸린 것이 없는 싸움도 아니다.
우연히 조우한 방해꾼들과의 싸움이지만 주아영은 해남파 장문인 수제자로서의 책임감을 몸에 새겼다.
남들에게는 수치의 상징인 자궁문신조차도 그녀에게는 언니와의 유대와 장문인을 상징하는 징표일 정도로 그 자긍심은 대단했다.
‘느려. 더뎌. 아무런 고민도 분석도 없는 천편일륜적인 힘 따위, 조금의 변수도 없어!’
정지된 세계 속을 누비는 것처럼 너무나도 간단히 스킬폭격을 돌파하고 적들의 주요요혈을 베어버리니, HP 수치를 퍼센테이지 단위로 깎는 슈퍼크리티컬이 쉬지 않고 거듭 터진다.
[신체절단 보너스! HP를 13% 감소시킵니다.] [혈도파괴 보너스! HP를 7% 감소시킵니다.] [칠대경락파괴 보너스! HP를 35% 감소시킵니다.]손발이 잘려나가거나 혈도와 경락이 파괴되어 우두커니 선 이들이 방패처럼 폭격을 맞아 죽으니, 경험치로 화해 흩어지고 레벨이 오른다.
폭격 사이에서 줄어들었던 HP는 매 순간 새로 보급되며 그녀의 주변을 쉼 없이 감돌았다.
-와. 무슨 춤추듯이 리듬 타더니 걸음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애들이 픽픽 쓰러지네;
-이게 무림고수지
-별 거 아닌 듯. 그냥 입시 묵언검객 수준이네요
-입시 묵언검객은 또 뭐야ㅅㅂㅋㅋ
-근데 진짜 쌔긴 쌔다. 수련만 하면서 지냈다더니 애가 괴물이 됐어
반짝이는 경험치가루를 안개처럼 몰고 다니며 적진을 와해시키는 모습은 실로 운해를 가르는 한 줄기 광명과도 같았다.
마탑잔해물 뒤에 숨었던 차지연이 고개를 배꼼 내밀고 멍하니 입을 벌릴 정도였다.
“에퉤퉤! 으으, 먼지 들어갔어.”
“바보. 그렇게 경솔하니까 흙먼지 쿨럭쿨럭좌 소리가 데뷔 이래로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
“그치만 너무 멋진걸.”
“그건… 솔직히 멋지긴 하지.”
예지수도 인정했다.
같은 게임을 했던 그들에게도 무공수련의 차이가 기존의 차이를 더욱 크게 벌렸다.
이제는 아영언니만큼의 활약을 할 일은 요행으로라도 없겠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묵언검객.
범접할 수 없는 그 이름에 조금이나마 한 발 다가선 존재를 어찌 자신들이 넘볼 수 있을까.
[하급 빛의정령이 대량의 경험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습니다.] [빛의정령의 소환시간이 연장됩니다.] [빛의정령의 출력한도가 늘어납니다.] [빛의정령의 최대출력이 증가합니다.]오죽하면 주아영을 따르는 빛의 정령마저 튀어나와 때 아닌 빛 잔치를 즐길 정도였다.
“언니, 딸기우유 받으세요!”
“HP포션이라니깐.”
소영아가 던지는 포션을 이따금 입에 물고 삼키거나 머리 위에 들이부으며 교전을 끝마친 주아영.
그녀의 몸은 거칠게 끼얹은 포션과 흘린 땀, 적들의 몸에서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이라는 것처럼 를 한 병 사용하니 모든 오염상태가 해소되며 청결한 신체를 되찾을 수 있었다.
“너희 뭐야. 어디서 왔어. 목적이 뭐야.”
주아영은 생포한 의 목에 칼을 겨누며 거칠게 윽박질렀다.
대답하지 않는 어둠의정령의 모습에 그녀의 손이 빠르게 어둠의정령의 혈도 몇 곳을 짚었다.
무표정한 낯짝으로 네가 무슨 말을 걸던 절대로 입을 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도도하게 굴던 어둠의정령의 얼굴에 충격과 공포, 고통의 감정이 스쳤다.
“말한다. 말하겠다. 그만. 제발 그만…!”
점혈을 해제한 주아영이 팔짱을 끼며 노려봤다.
“대답해. 내가 만족할 때까지.”
“우리는 어둠의정령의 클론. 건방진 인류에 신벌을 내리겠다는 성좌들의 의지에 호응하는 대신, 인계의 새로운 패권을 누리는 것을 허락받은 신의 사도다.”
“…신의 사도? 성좌들의 의지? 어둠의정령의 클론? 장난치지 말고 알아듣게 똑바로 말해!”
고통이 가라앉자 다시금 무표정으로 변화하던 얼굴에 하등생물을 내려다보는 비웃음과 멸시, 우월감 따위의 감정이 비쳤다.
“인간들이여. 종말의 날은 머지않았다. 성좌들은 수많은 침공로를 파괴한 인류에게 더 이상의 유예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침공로…? 당신, 설마…! 게이트나 가상현실게임을 말하는 거야?”
어둠의정령10300의 입이 악귀처럼 좌우로 길게 찢어져 올라갔다.
“에픽판타지는 너희 인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메탈드래곤의 강림과 함께 너희 인류는 확정적으로 파멸한다. 인류의 수호자 묵언검객. 그녀와 함께 인류가 최후의 날을 맞이할 때, 우리 어둠의정령들은 신세계의 주인이 되리라!”
어둠의정령이 스스로 목을 그으며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진하여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이것은 게임.
심지어 수많은 복제체 중의 하나의 최후에 불과하니, 타격 따위는 조금도 없다.
묵언검객의 존재 덕에 애써 불안에 떨지 않는 인류를 본격적으로 충격과 공포, 혼란에 치닫게 만들 파격적인 진실만이 남을 뿐이다.
‘공포에 떨며 울부짖도록 해라, 인간들아. 너희들의 시대가 끝나가는 소리에 소리 높여 절규해라!’
어둠의정령10300의 계획은 완벽했다.
자신을 골탕 먹인 인간들을 더 큰 혼란에 빠뜨린 채 자신은 유유히 현실로 돌아간다.
계획이야 완벽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어떤 인간인지를 제대로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에는 새로운 것을 일컫는 네오Neo라는 접두사가 존재한다.
종말 이후의 세계를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라고 부른다면 새로운 종말은 네오 아포칼립스Neo apocalypse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재해의 상징이자 걸어 다니는 종말처럼 활개치는 구미마룡매지컬천마악질검객의 자질을 지닌 새로운 여자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와 씨발 저걸 살려내?
-네오 악질검객ㄷㄷㄷ
-후계자수업 제대로 받았네
점혈로 출혈을 잡아내고 정밀한 기를 실처럼 뽑아내어 상처부위를 완벽하게 봉합한다.
“누구 멋대로 자살을 꿈꾸는 거죠?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못 죽어.”
“어라? 인간의 몸은 이 정도 했으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당신은 아직 몰라요.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무림인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로 커다란 고통을 선사할 수 있는지.”
주아영의 손에서 가느다란 내공의 기가 실 줄기처럼 마구 뻗어 나왔다.
“로, 로그아웃.”
[전투 중에는 로그아웃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30초 뒤 로그아웃이 가능합니다.]“로그아웃!”
[전투 중에는 로그아웃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30초 뒤 로그아웃이 가능합니다.]도망칠 수 없어.
검투사키우기 때와는 달라.
공포에 질린 어둠의 정령의 머릿속에 자신의 몸을 봉합한 의 기로 뽑아낸 실이 떠올랐다.
저것이다.
저것이 있는 한, 전투상태는 해제되지 않는다.
목숨을 끊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상대가 자신을 즉사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 육체에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도망칠 거면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았어야지.”
주아영의 얼굴에 잔혹한 적의가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