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8)
〈 68화 〉 68 2세대 각성자
* * *
1.
2세대 각성자 신성곽.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세상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지.”
미지의 위협인 게이트와 몬스터.
그들을 막기 위해 게이트 너머로 투입해야 하는 각성자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병기에 불과한 각성자들의 인권은 무참히 유린당했다.
우리는 더 이상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굴종하지 않을 겁니다. 나 박재호가! 각성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아저씨, 한 번만 봐주세요. 저희 군인이에요. 저희도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제발…… 컥!
고맙네, 신성곽. 자네가 앞에서 버텨준 덕분에 무사히 특공대를 보내 여당대표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냈어. 자네는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그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밤마다 스스로 되새기듯 떠올리는 기억들.
“많이도 죽였지. 많이들 죽었고.”
각성자들의 권리주장을 군대로 찍어 눌러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던 정치계와
각성자협회의 2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혁명가 박재호의 주도하에 일어난 권리증진혁명.
많은 군인을 죽이고
많은 각성자가 죽은 뒤에야
그 피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죽은 이들의 희생을 딛고 협회는 권력을 장악했고, 길드도 공을 인정받아 행정구역을 할당받고 크게 성장했네.”
명호길드의 세 명 뿐인 A급 각성자와
스무 명의 B급 각성자들이 총동원되었던
혁명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전쟁들.
길었던 내란은
여당대표와 다선의원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군의 연이은 몬스터 공습 대처 실패로
민심이 각성자들에게 크게 기울면서
각성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참 평화로운 10년이었어.”
각성자들이 협회를 통해서
독자적인 정보망과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게이트에 투입할 인원을 전문적으로 구성하고
법과 규제를 구축하며
수많은 범죄와 죽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던
각성자들의 인권을 보장해주자
게이트 폐쇄율과 성과도 눈에 띄게 급증했다.
몬스터의 위험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자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또한 회복되기 시작하고
오늘날, 2050년의 한국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 평화의 시기였기에 비로소 밝혀진 어두운 비밀도 있었고.”
얼음이 깔린 유리컵에
은은한 과일향이 풍기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채워
한 손으로 잔을 움켜쥔 신성곽.
그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말을 잠자코 들어준
기특한 침입자를 향해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와서 편하게 앉게. 그래야 보일 테니.”
두렵다면 그대로 뒤돌아 나가도 되고.
그 뒷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자박자박 걸음을 디뎌 소파에 앉는 침입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조명대 위에 얹은 위스키병을 따라
분위기 있게 퍼지는 푸른빛 아래.
흐릿하게 드러난 신성곽의 얼굴이
소파 맞은편에 앉고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마력병이라고 하네. 강한 각성자들이 줄줄이 은퇴하며 뒷방노인네 신세가 된 이유이지.”
금이 간 논바닥처럼 균열이 일어난 얼굴과
유리컵을 쥔 손등에서 툭 떨어지는
금속처럼 단단한 피부.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심상치 않은
희귀병에 걸린 환자처럼 독특한 모습이었다.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경화계열 각성자들의 말로가 이것이네. 세상을 전부 거머쥐게 해줄 것만 같던 마력이 생명을 옭아매는 처지. 우리는 이것을 종말점이라고 부르지.”
“……”
“한 번 종말점이 찾아온 각성자가 이전의 건강을 되찾으려면 레벨이 오르는 수밖에 없네. 하지만 레벨은 오르면 오를수록 요구하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지.”
“……”
“레벨을 올리고자 마력을 동원하면 종말점에 진입한 마력병은 병세가 악화되고, 남은 수명은 더욱 줄어들지. 끊임없는 악화의 고리인 게야.”
신성곽.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짙은 후회의 감정이 드리웠다.
“이 힘은 오직 몬스터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했어. 오랜 시간 동족과의 싸움에 허비하며 위로 달려 나갈 시간을 잃은 결과가 이 꼴이네.”
“……”
“자네는 어떤가. 그 몸으로 허비한 시간은 얼마나 되지. 종말점이 도래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지 가늠할 수는 있겠나?”
“……”
“야박하군. 업계선배의 이야기를 듣고도 끝내 말 한 마디 않다니. 끝내 싸워볼 작정인가.”
신성곽은 깨달았다.
젊은 시절의 그가 협회의 정의를 위해 그 어떤 외압과 중재에도 굴하지 않았듯이.
눈앞의 밤손님 또한 곱게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정녕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받아줘야겠지.”
폐부의 공기를 모조리 뱉어내듯이
길게 내쉬는 한숨.
죽을 날만 기다리던 초라한 몰골의 시한부환자는
몸을 일으킨 순간을 기점으로
끝없이 커져가는 거인처럼
천장을 무너뜨리고 집을 짓밟을 기세로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였다.
성벽.
움직이는 성채처럼 굳건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신성곽이 두 주먹을 쿵 소리가 나도록 맞댔다.
“자네가 날 죽일 유일한 기회는 넋두리를 듣던 도중에 기습을 가하는 것뿐이었네. 그 기회를 놓친 이상, 승산은 사라졌지.”
“…….”
“긴 이야기를 들어준 온정으로 자네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참아주지. 조금 아픈 꼴을 겪는 건 각오해야겠지만.”
2세대 경화계열 각성자 신성곽.
한때 라고도 불렸던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메인탱커가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키니.
해응응이 현실세계에 귀환한 이후.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처음으로 ‘진심’이 된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
2.
사원급 각성자들과 달리
100평이 넘는 거대한 주택부지에 사는
임원급 각성자 신성곽 전무.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B급 각성자로서의 자부심 때문인지
저택에는 경호원 하나 없이
오직 신성곽 혼자만이 살고 있었다.
“정말 혼자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실력에서는 밀릴지 몰라도 제 마비독은 나름 변수가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방해만 되요. 제가 나오기만 기다려주세요.]“만일 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신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드리기를 원하십니까?”
해응응은 저택부지 밖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이 풍기는 저택을 바라보며
수첩 한 장을 뜯어주었다.
[아영이에게 전해주세요. 제 유산을 받아달라고.]놀란 소경석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높은 담벼락만이 남아있었다.
‘불길하군요.’
심약한 사람이라면
가까이 다가갈 엄두도 못 낼 거대한 탁기.
발이 닿는 토양은
모두 썩어문드러지게 만들던
독왕문의 독인이 떠오를 만치 심상찮은 기세.
마나를 그저 양으로 휘두르고
주어진 스킬을 발동하는 연료로만 써먹는
무지성한 각성자들과 달리
기의 운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내공연마자인 해응응이기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탁기. 각성자들이 일컫기로는 경험치. 그 불길한 힘을 무지성하게 쌓아올린 결과를 보겠군요.’
예상은 적중했다.
신성곽.
그는 이미 신체가 변질되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시한부인생이었다.
동시에 그런 몸이 된 그가
명호길드가 벌이고 있는 범죄행각에
자의적으로 가담할 여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야박하군. 업계선배의 이야기를 듣고도 끝내 말 한 마디 않다니. 끝내 싸워볼 작정인가.”
그의 잘못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싸움.
마음만 먹는다면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호길드는 이미 선을 넘었다.
길드원의 죄를 권력과 폭력으로 덮으려했으며
그조차도 실패하자
그녀가 아끼던 동생을 함정에 빠뜨렸다.
‘무림에서 원한을 매듭지을 방법은 오직 하나.’
관아의 법이나 공자의 덕
옛 성인들의 사상이 아닌
자신의 검으로 스스로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긴 이야기를 들어준 온정으로 자네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참아주지. 조금 아픈 꼴을 겪는 건 각오해야겠지만.”
시작은 신성곽의 각성능력의 발현.
그의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탁기들이
벽돌처럼 압축되고 맞물리며
거대한 마나의 성벽을 이루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감으로만 읽어낼 수 있는 탁기의 성벽.
그 거대한 벽이 해응응을 향해
통째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콰과곽!
마룻바닥이 터지고
천장이 갈려나가며
테이블과 함께 그녀를 짓뭉갤 작정으로
거칠게 몰려오는 벽을 상대로
해응응의 검이 날카로운 검음을 흘리며
사선으로 세 번
벽돌 사이의 이음매를 끊었다.
와르르
삼각형의 모양으로 뚫린 탁기의 벽.
마나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중심부는
해응응의 돌격 앞에
물거품처럼 손쉽게 무너졌다.
‘내공처럼 밀도가 있지도, 유지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허술한 기술 따위, 그 독창성은 인정해도 한 번 베어내면 무용지물이 되는군요.’
냉정하게 신성곽의 약점을 파악하며
그의 목을 향해 검을 치켜드는 해응응의 눈이
별안간 부릅떠졌다.
“용케도 벽을 뚫었군. 젊은 나이 치고는 대단한 성과야. 칭찬해주지.”
“……!”
“그깟 벽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새로 펼칠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뚫은 게 어딘가.”
무너진 벽 너머
그녀를 향해 새롭게 밀어닥치는
한층 거대한 규모의 마나벽.
‘자원소모가 적어요.’
무절제하게 쌓아올린 탁기는
그에게서 건강과 자유를 앗아갔지만
단점만 있던 건 아니다.
그 대신 엄청난 양의 마나를 바탕으로
능력을 자유자재로 펼칠 기회를 허락했다.
후우우
길게 내쉬는 숨과 함께
폐부에 남은 공기가 공전을 일으키지 않도록
즉시 무호흡상태에 돌입한 신체.
황궁이라는 새장에 갇힌 그녀의 신세를 딱하게 여긴 하북팽가의 팽철산.
그가 직접 전수해주었지만
부족한 시간으로 요체가 빠진
팽가의 직계에게만 전해지는 심득이 없는
오호단문도五虎?門?.
본래 절정무공에 달하는 그 무술은
도가 아닌 검에 맞추며 한 단계 하락하고
불완전한 심득으로 또 한 단계 하락하며
절정무공이 아닌
이류무공으로 전락했지만
팽가 특유의 파괴적인 강공의 묘리만큼은
이류로 전락한 무공에도 분명히 들어있으니.
와그작
바위도 부수는 강공이
전보다 커다란 벽을 통째로 짓뭉개며
일격에 무너뜨렸다.
뚫려버린 벽 너머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리라 예상했던
신성곽의 얼굴은
“기가 막히는 검솜씨로군. 하지만 이 은퇴한 퇴물의 벽에 비하려면 아직 멀었네.”
조금의 놀라움도 들어있지 않았다.
뭉개진 벽의 너머.
지진파처럼 크고 작은 수십 겹의 벽들이
신성곽의 오른손 앞으로
압축된 스프링처럼 잔뜩 정렬되어 있다가
그의 손짓을 따라 일제히 밀어닥쳤다.
‘제법 재능 있는 젊은이였어.’
신성곽은 아쉬움을 느꼈다.
어떤 원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덤비지 않고 제 발로 돌아갔다면
그 재능을 꽃피울 날이 분명 찾아왔을 것을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시한부인생인 그를 죽이겠답시고 덤벼
제 미래를 닫아버리지 않았던가.
‘죽지는 않더라도 팔 한쪽 정도는 잃을 각오는 해야 할 게야.’
하나하나가 석벽과 같은 강도를 지닌 벽을
찰나지간에 연속으로 파괴하는 일 따위
남보다 조금 정교하고 강하게 검을 휘두르는
무술계통 각성능력 정도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
설령 해낸다고 한들
무리하게 동작을 쥐어짜낸 팔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다.
후두둑
자욱하게 퍼지는 돌가루.
어두컴컴한 실내와 매캐한 공기 너머.
어둠을 응시하던 신성곽의 눈에
처음으로
동요가 일었다.
자박.
부상을 입었는지 아래로 늘어진 오른팔.
예상대로 무력화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도주하지 않고 다시금 그의 앞에 섰다.
“정녕 죽음으로 끝을 볼 셈인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검을 움켜쥔 해응응.
한 번 더 좀 전의 재주를 펼쳐보라는 듯이
그녀가 좌수검의 기수식을 취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