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69)
〈 69화 〉 69 네가 자초한 짓이다
* * *
1.
오래된 기억.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일.
비급서를 내려놓아라. 놓지 않으면 팔을 잃게 될 거다.
천애단벽의 끝자락에 몰린 그녀에게
대명제국의 태후의 명을 따라
황실고수가 겨누었던 서슬 퍼런 칼날.
목숨이 경각에 달리더라도
그녀는 힘없는 자유가 아닌
복수를 위한 고행을 선택했고
그렇게 오른팔을 잃고야 말았다.
비급을 택한 대가로 치른 것은
오른팔의 허전함과 한층 끈질긴 추적자들.
세외무림까지 이어지는 긴 추격전은
당시에는 목숨을 건 절박한 순간들이었지만
모든 시간이 지나
그 경험을 반추할 수 있게 된 지금은
감히 그 시간들을 값진 희생이었노라
평가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좌수검을 들게 될 일은 평생 없었을 테니까요.’
오른팔로 검을 쥔 5년과
왼팔로 검을 쥔 15년.
오른손으로 검을 다루었던 시절보다
왼손으로 검을 다루었던 시절이 더욱 긴 그녀.
힘과 기술의 숙련치도
근육에 각인된 기억도
명백히 좌로 치우친 그녀에게
신체초기화는
또 다른 좋은 기회가 되었다.
‘어긋난 양손과 몸의 균형을 다시 쌓아올릴 기회를 허비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초기화된 신체.
삼류부터 재정립하는 무공.
기억에 남은 왼팔만을 쓰는 손버릇.
이 모두를
조화롭게 통제하기 위해서
그녀는 오른손으로 검을 쓰는 기억을
게임과 현실을 막론하고
천천히 되짚어왔다.
‘보통의 좌수검은 불균형이 걱정될 정도로 대단하지도 않았겠지만, 제 검은 특별했으니까요.’
오른팔을 잃은 그녀가
세외무림의 초고수가 되어서
중원무림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황궁비서에서 훔친 비급서의 덕도 있지만
그녀의 검술이 근간이 되었던
해남파의 검술이
본래 왼손잡이를 위한 좌수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검후의 경지까지 오른 그녀의 좌수검과 달리
절정고수로 향하는 문턱에서
그 성장이 끝나버렸던 우수검은
적잖은 어색함과 부족함을 야기했다.
‘그래도 괜찮았었죠. 지금까지 상대한 적수들은 모두 좌수검과 우수검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좌수검을 들게 만든
첫 번째 상대인 B급 각성자 신성곽.
그는 특별했다.
B급이라고 하면 약해보일지도 모르지만
무림식으로 치자면 그 강함을 빗대자면
기공술로 경지에 도달한 절정고수 수준.
판에 박힌 능력을
느려터지게 구사하던
널리고 널린 시시한 각성자들과 달리
능력발현의 다양성과
깊이 있는 숙련도를 겸비한 진정한 실력자이자
대인전에 특화되어
실전성 또한 무림인들 못지않게 뛰어난 강자.
‘이런 적을 상대로 좌수검을 들지 않는 건 자기과신이겠죠.’
그런 해응응의 결의를
신성곽은 차가운 얼굴로 무시하며
다시금 크고 작은 십여 겹의 벽을 펼쳤다.
“오른팔도 들 수 없는 몸으로 이 공격을, 이번에도 받아낼 수 있겠느냐?”
해응응은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답했다.
반걸음 앞서 움직인 해응응.
그녀를 뒤쫓듯이 일제히 사출되는 벽들.
그러나 그 경로는.
정확히 해응응을 노리던 좀전과 달리
그녀의 살기가 투사하는 검로를 따라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졌다.
‘역시 완전히 속아주지는 않는군요.’
숨 쉬듯이 사선을 넘나들었을 은퇴한 전대고수를 상대로
소경석을 상대할 때처럼 완벽한 속임수는 성공할 수 없었다.
이류의 무공
신체초기화 이후로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좌수검.
무림계의 경지와 현재의 경지의 괴리.
부족한 내공과
성장이 끝나지 않은 신체.
그녀가 불리한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이 전투에서 패배할 요인도 차고도 넘쳤다.
화산의 변화무쌍함.
하북팽가의 강인함.
하오문의 교활함.
황궁의 치밀함.
그녀를 유혹하는 무수한 선택지를 저버리고
신검일후의 본질과도 같은
사문의 무공을 꺼내들었을 때.
해응응의 검이 연달아 날아드는 벽들을
검속으로 맞받아치며 거리를 좁혔다.
따다다다당!
우직하게 부수며
정면으로 돌파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벽을 사선으로 비껴치기만 해도
이어지는 벽들은
앞선 벽과 부딪혀 방향과 위력이 어긋나니까.
첫 벽의 비껴치기.
그 하나의 수로 벽의 위력과 속도, 방향을 제어한 이상.
우수검보다 한 수 이상 빠른 해응응의 검속은
그녀에게 한 걸음의 자유를 허락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연환공격, 뒤로 물러서며 받아치겠죠.’
빠르게 날아드는 공격을
앞으로 나아가서 더 빨리 받아칠 여유 따위
보통은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
다만 그녀는 보통이 아니었고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시간적 여유와
이 걸음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따다당!
“!!”
모든 공격을 흘려낸 해응응.
그녀의 우수검을 꺾었던 신성곽의 절기가
그녀의 좌수검 앞에 돌파 당했다.
신성곽은 전율했다.
미래의 성장치 따위를 논하며
언젠가는 자신만큼 강해질 수도 있었을
안타까운 젊은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좌수검을 든 그녀의 검속과 대응력은
이미 현역시절의 B급 각성자들과 비교해도
결코 꿇리지 않았으니까.
‘네가 자초한 짓이다!’
적당히 손대중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실력.
면이 아닌 날의 형태로 벽을 세워 사출하는
신성곽의 구명절초.
벽 형태로 전개하는 공격만을 염두에 두고
무턱대고 거리를 좁힌 적들을
일거에 양단해버릴 수 있는 실전적인 살초.
한번 펼쳐낸다면
죽거나 병신이 되는 일은 예사나 다름없는
위험한 기술 앞에 살아남을 리가 없다.
그 정도의 자신감을 지닌 기습을.
수많은 실전에서 다져진 구명절초를.
까앙!
해응응이 막아냈다.
‘그 정도 기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해서야 무림인 실격이죠.’
검면을 세우고 손으로 검을 받쳐내며
기습을 차단한 그녀가
몸의 왼쪽으로 받아낸 충격을
오른발의 끝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그녀가 받아낸 충격에 5년의 공력을 더해
반격기를 펼쳐내었다.
‘당신이 각성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저 또한 무림인의 가능성을 보여드리죠.’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통해
넋 량의 힘으로 천근을 다루듯이
신성곽의 공속에
그녀의 검속을 더한 속도로 중단을 파고드는
극쾌의 일섬 찌르기.
환곡쾌점의 사대 묘리가 한 수에 실린
극한의 찌르기.
‘이번에도 살초로 흔들어볼 속셈임은 이미 간파했다!’
그에 맞서 어느 방면에서 공격이 날아오더라도
모두 막아낼 수 있는
저택이 무너지고도 남을 규모로
특대형의 벽을 일으킨 신성곽.
그의 기감에 믿을 수 없는 기척이 감지되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를 현혹시킬 수많은 허초 대신
정면에서 날아드는 점처럼 자그마한 일검.
작고 보잘 것 없는 그 점 하나의 실체를
신성곽은 완벽히 꿰뚫어보았다.
어느 방면으로 날아드는 공격도
모두 막아내고자 힘을 넓게 펼친 그와 달리
오직 한 점에 힘을 실은
일점으로 수렴된 일격이
끝내 그가 펼친 벽과 맞부딪혔다.
꽈아앙!!
저택이 통째로 터져나갈 정도로
거센 충격파를 동원하는 힘의 격돌 속에서
한 치(30mm)
두 치(60mm)
세 치(90mm)
끝내 세 치 반(105mm)의 벽을 모두 뚫은 검이
사지요혈 그 어디를 노려도
커다란 구멍을 뚫을 수 있는 파괴력을 터뜨렸다.
찌이잉!
고막이 터지며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 압축된 일격이
신성곽의 오른쪽 어깨와 팔을 집어삼키며
저택부지의 한 편을
회오리모양으로 뜯어내듯이 파괴했다.
털썩.
팔이 뜯겨져나간 어깨를 움켜쥐며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신성곽.
그가 제 앞에서
검을 내지른 채 우뚝 서있는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해응응을 향해 말했다.
“당하지 않았다면 믿지도 못했겠군. 아무리 은퇴한 몸이라도 B급 최상위권의 이 신성곽을, 제 한 몸의 실력만으로 꺾는 젊은이가 나타나다니.”
“…….”
“어째서 마지막에 검로를 바꾸었지? 그 일격, 심장이나 머리를 노린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즉사는 피할 수 없었을 텐데.”
해응응은 얼마간 무릎 꿇은 그를 내려다보다가
수첩을 꺼내들었다.
사각사각
초토화된 주택부지 사이로
차갑게 들이치는 새벽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검 대신 붓펜을 끼적거리는 해응응.
어쩐지 비현실적인 그 광경을
고통을 꾹 참으며 지켜보던 신성곽에게
그녀가 다 쓴 수첩 페이지를 찢어
암기처럼 휙 날렸다.
팟
손을 들어 수첩페이지를 받아낸 신성곽.
손바닥에 꽂힌 수첩을 뽑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자
밤하늘에 드리운 구름이 걷히며
은은한 달빛이 내려와 글씨를 비춰주었다.
[???? ?者?之]한참을 그 글자를 바라보던 그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한자를 읽을 줄 안다고 이렇게 써서 준단 말이냐.”
저택부지가 터져나가는 싸움에
뒤늦게 출동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배경삼아
신성곽이 바닥에 대자로 엎어졌다.
그 물음에 답할 당사자는
수첩 한 장만 남긴 채 이미 홀연히 사라졌다.
2.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구급차는 불렀으니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그런 건 됐고, 스크린폰이나 잠깐 빌려주게.”
“예?”
“이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거든 궁금해서 숨도 못 거두게 생겼거든.”
현장에 온 경찰의 스크린폰을 빌려
한자인식 어플리케이션을 돌린 뒤에야
그것이 ‘욕급부형 결자해지’이며
자식의 잘못이 부모까지 욕되게 하며
매듭을 묶은 사람이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뜻을 해석할 수 있었다.
자식의 죄로 대가를 치렀으니, 이제 자식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아라.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을 그에게
자식이라 취급당할 대상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명호길드를 이어받은 어린 녀석들이 터무니없는 강자에게 원한을 남기고야 말았구나.”
일선에서 물러나서
전무감투 하나만 훈장처럼 매단 채
조용히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B급 최상위 각성자와 진검승부를 벌여 이겨낸
엄청난 실력의 암살자가 찾아오게 만들고
젊은 시절 모은 돈으로 정성껏 가꾼 정원과
설계도부터 손수 공들여 만들었던
유일한 안식처였던 저택이
반으로 갈라지고
한쪽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만든
이 모든 사태의 원흉.
명호길드의 신세대 각성자들.
“도저히 못 참겠다.”
젊은 시절에 저지른 자신의 죄를 묻고자
자신이 죽인 적수의 아이가 찾아왔다면
기꺼이 그 책임을 통감했겠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잘못도 아니었으니.
“의사양반. 팔을 되찾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거동이 가능하게만 해주시오.”
“곤란합니다, 환자님! 그런 몸으로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만나야 할 놈들이 있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드드득
끓어오르는 분노에 탁기가 저절로 솟구치고
침상과 링겔이 흔들리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요동치는 병실.
“거동. 가능하게 해주겠나?”
“당장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명호길드에 새로운 암운이 드리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