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72)
〈 72화 〉 72 와 이걸 어쩐다
* * *
1.
마력폐기물을 편의점에 보관하게 했던
편의점 사장.
그가 그런 위험물품을 보관시킨 이유는
경찰조사를 거치고 나서야
낱낱이 밝혀졌다.
‘아영이도 참 안쓰럽네요.’
고졸에 고아. 장래희망은 각성자.
알바를 하는 이유는 각성자학원에 등록하고 각성자연습생이 되기 위해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알바생을 고용해준 이유를 주아영은 사장님의 마음씨가 착해서라고 믿었다.
‘그 모든 호의가 보험사기를 위해서였다니.’
은인인 줄 알았던 사장.
그가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노렸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언니… 오늘은 같이 술이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아니다, 그냥 같이 마셔요. 우리 정말 고생 많았잖아요. 네?”
인간불신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독한 경험을 한 주아영.
그녀의 물기어린 눈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림으로 치자면 무림초출도 겪지 못한 아이죠.’
그런 아이가 부모나 사문처럼
그녀를 보호하고 먹고 살게 해주었던 어른에게
배신을 당한 상황이니
어찌 마음의 상처가 깊지 않을 수 있으랴.
같은 어른 된 입장으로서
해응응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세상 모든 어른이 그런 몹쓸 종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주아영의 머리를 쓰다듬는 해응응.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던 주아영이
끝내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2.
명호동 모던바.
일 매출 이삼백만 원을 오가는 가게의
5년차 바텐더 겸 술집 주인 최주영은
칵테일을 만들며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연예인들도 있었나, 하고.
대단한 미모의 두 여인은
그 성격과 분위기도 정반대였다.
한쪽은 상기된 얼굴로 칭얼칭얼 거리며
무릎에 고개를 대고 눕거나
등 뒤에서 어깨에 턱을 얹거나
팔을 끌어안으며 동행자를 귀찮게 굴며
“믿을 사람은 언니밖에 없어!”
“오늘은 언니네 집에서 자면 안 돼요?”
“아~아. 핸드백이 되고 싶다. 그럼 언니 팔에 걸려서 집까지 같이 갈 수 있을 텐데.”
따위의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우같은 멘트를 마구 난사해대는
애교부리는 여우상의 미녀였다.
“…….”
다른 한쪽은 가게에 들어온 이후로
말 한 번 안하고 묵묵히 동행자의 말을 들어주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동행자를
매번 옆자리에 다시 앉혀놓고
종류별로 칵테일을 하나씩 가리키며
시음회라도 열 기세로 맛을 음미한다.
“으에에. 누워있고 싶은데. 똑바로 앉으라고요?”
“시러요! 삐딱하게 앉을 거야!”
“그래도 반듯하게 앉으라고요?”
“알아써요… 엉늬가 그러라면 그래야…찌☆”
점점 혀가 풀려가는 동행자의 옆을 지켜주는
쿨한 외모에 세심한 성격을 겸비한
반전매력이 있는 도도한 고양이상의 미녀.
‘근데 진짜 귀찮겠다.’
얼마나 세상 서러운 일을 겪었는지
남자한테 차인 여자들한테서나 볼법한
인생 다 내려놓고 술에 빠져버리는
괴로움을 달래보려는 시도가 훤히 보였다.
이런 식으로 술로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면
옆에서 그걸 받아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성도 좋고 술도 센 고양이상의 미녀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자리를 지켰다.
“동생 분에게 담요라도 한 장 드릴까요?”
결국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든
여우상의 미녀, 주아영.
그녀의 언니이자
바텐더에게 내심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고양이상의 미녀 해응응은
바텐더의 호의를 받아들여 담요를 빌렸다.
“한손으로 덮기 힘드실 텐데. 제가 대신..”
덮어드릴게요.
미처 다 꺼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는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한 손으로 말아 쥔 담요를
손목을 끊어치듯 휘둘러 옆으로 크게 펼치고는
자연스럽게 주아영의 몸을 덮은 것이다.
기인열전에서나 볼법한 재주에
바텐더가 와, 하고 작게 감탄하였다.
“혹시 직업이 투우사신가요? 담요를 망토처럼 잘 다루는 손님은 처음 보네요.”
바텐더 나름의 회심의 개그에도
해응응은 웃음 한 번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한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15년 간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무림에서의 일상이었으니까.
“……”
평소라면 분위기를 읽고
말없이 잔을 채워주거나
안쪽의 테이블에서 조용히 술을 즐길 수 있게
자리를 안내해주었을 최주영이지만
오늘은 유독 손님이 없는 날이기도 하고
이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손님에게 마음도 쓰였다.
‘조폭 같은 각성자들도 다니는 바에 조금 과묵한 손님 정도야.’
말수는 없지만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분위기를 타는 모습에
최주영이 조곤조곤 화제를 꺼냈다.
“이 동네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 혹시 들어보셨나요?”
“……?”
“명호길드의 은퇴한 각성자의 저택이 빌런조직의 습격을 받았다나봐요.”
상대가 호기심을 지닐법한 정보제공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대화.
흠칫 하고 놀라는 모습에서
최주영은 손님의 관심을 사는데 성공했음을 눈치 챘다.
“2세대 각성자들도 많이들 은퇴하니까 서울도 어느 동네든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자신이 범인인 것 같은 불편한 대화를
조금이라도 빨리 피하고 싶었던 해응응은
괜히 찔리는 마음에 제 앞의 잔부터 비웠다.
딸칵
주아영과 바를 찾기 전에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며
말 못하는 언니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선물 받았던 레이저포인트.
고양이들을 놀아주는데 사용할법한
그 작은 장난감을
벽에 걸린 메뉴판의 메뉴를 가리키는데에
요긴하게 써먹는 해응응의 모습에
최주영은 엄마미소를 지으며
바로 다음 칵테일의 제조에 들어갔다.
“친동생이신가요?”
절래절래.
“요즘 같은 세상에 친동생도 아니면서 이 정도로 친밀한 관계라니. 우애가 깊으시네요.”
해응응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20대는 스트리머가 아니면 각성자.
오직 둘 중 하나만을 꿈꾸는 세상.
그녀는 아직 그 두 가지에 속하지 않은
대부분의 20대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지내는지
2050년의 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주아영에게 전해들은
얄팍한 지식들을 끼워 맞춰 재단할 뿐.
상식이라는 자그마한 창문으로 내다본 세상에
우애나 우정 따위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이 관계가 그녀에게도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소중한 관계로 느껴졌다.
[이 아이만 제게 의지하는 게 아니에요.]붓펜과 수첩을 사용한 필담.
모던바 경영 5년차인 그녀조차도 겪어보지 못한
처음 겪는 상황에 얼을 타는 사이,
해응응의 유려한 손은
막힘없이 그녀의 뜻을 담은 글을 적어내었다.
[저도 이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어요.]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속이 깊은
어른스러운 매력이 묻어나는 답변에
최주영이 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사이.
해응응은 자신이 적은 필담의 한 글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의지…… 과연 제가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현실에서 시간을 지내면
‘저쪽’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도 잊을 줄 알았건만
무심코 떠올려버린 하나의 기억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팠다.
말리지 마십시오. 제 친어머니를 죽인 원수입니다. 저 여자가 제 원수란 말입니다!
비켜, 당장 이 손 놓으란 말이야!
당신은 내 진짜 어머니도 아니잖아!!!
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던 과거에 얽매여
이번에야말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진심을 다해 대했던 노력들.
그것이 면전에서 부정당하며
깨진 거울처럼 마음이 산산조각 나던 아픔.
그녀에게 의지??란
그런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처였다.
이미 아물었다고 생각했지만
만져보면 여전히 멍울이 남아있는
아직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단어.
‘그래도 아영이가 상대라면 다를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히 다를 거예요.’
어머니의 복수 앞에서 그녀를 등진 왕자와 달리
아영이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각성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이루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아이는 저를 배신하지 않아요.]그런 무거운 결의가 담긴 한 줄의 필담은
말을 고르던 최주영이 입을 열기 더 어려워졌다.
‘와, 이걸 어쩌지. 화제 단단히 잘못 꺼냈네.’
꺼내면 안 될 화제일수록 위험한 지뢰에 빗대면
이 화제는 핵폭발도 일으킬만한 핵지뢰.
사고를 쳐도 대형 사고를 쳤다.
‘엄마 도와줘. 나 너무 힘들어.’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를 찾으며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최주영.
그녀의 눈에
해응응이 제 앞의 잔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다.
해응응이 두 번에 나눠서
천천히 칵테일을 음미하다가
빈 잔을 내려놓을 때.
최주영이 새로 만든 칵테일 한 잔을 내밀었다.
“서비스에요.”
해응응이 무뚝뚝한 얼굴로 잔을 내려보다가
레이저포인트로 마지막에 마신 메뉴의 다음 메뉴를 가리키고는
다시 최주영을 돌아보았다.
“메뉴는 순서대로. 이번에는 카시스 프라페 차례였죠?”
장난스레 윙크까지 날리며
조금이라도 해응응의 기분이 풀어져서
이 무거운 분위기가 한결 나아지기를 바라는 최주영.
그녀의 눈썰미와 노력은
다행히도 해응응의 마음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고독한 미식가마냥
메뉴를 하나씩 연달아 격파해나가던 해응응이
처음으로 칵테일 자체에 질문을 던졌으니까.
[카시스 프라페. 이름의 뜻과 유래가 뭔가요?]의지라는 단어의 뜻과 유래를 풀어주며
왕자를 달래주었던 그때의 자신처럼
한 잔의 칵테일에 담긴 뜻과 유래를 통해
바텐더에게 위로받고 싶은
해응응에게는 흔치 않게도 약한 모습.
‘와. 이걸 어쩐다…….’
자신을 바라보는 해응응의 눈이
참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수록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워지는 최주영.
한결같이 자신만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그 차분한 시선 앞에
최주영이 쿵쿵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듯이
한 손으로 제 가슴팍을 누르며
조심스레 말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이건 어쩌다가 순서대로 이어진 메뉴의 뜻을 설명 드리는 것뿐이니까. 절대로 손님께 사심이 담긴 게 아니에요.”
깜빡.
알았다는 건지 몰랐다는 건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듯 바라보는 눈동자.
부끄러움을 꾹 참고자 옷깃을 매만지며
“키스하기 전에 마시는 칵테일.”
“?”
“카시스 프라페의 뜻이에요.”
그 말이 농담이라면 당장 실토하라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해응응.
“진짠데…….”
분명 자신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해응응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며 손부채질을 하는 최주영.
그녀의 얼굴을 한 번.
칵테일의 잔을 한 번.
얼굴을 한 번.
잔을 한 번.
쉽사리 잔을 들지 못하고
고개가 오가면서
시선으로 무언의 의문을 표명하는 해응응의
악질스러운 시선 앞에서
최주영은 간절히 기도했다.
‘이젠 아무래도 좋으니까 제발 빨리 계산하고 나가주세요…….’
숨막히는 어색한 시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선고문의 지옥.
“마시기 곤란하면 저 주세요.”
“어어?”
홀복에 코트를 걸친 과감한 차림의 여성이
대신 잔을 들더니
가볍게 잔을 비우고는 제 입술을 매만졌다.
“키스하기 전에 마시는 칵테일… 언제 마셔도 풍미가 좋네요. 입 안에 남는 진한 달콤한 향. 로맨틱한 칵테일이에요. 한 번 해버리고 싶을 만큼.”
“채린 씨? 오셨으면 말을 하시지.”
“미안해요. 한참 흥미진진한 모습을 봐버려서 그만. 이쪽 분에게 용무가 있기도 하고요.”
가슴골이 드러나도록 세로로 파인
섹시한 홀복 아래로 비치는 볼륨감 넘치는 가슴.
그 육감적인 몸매 위로
손가락을 튕겨 시선을 제 눈으로 유도한 여자가
당당하게 말을 건넸다.
“로얄클럽 대표 한채린이라고 해요. 취미는 예쁜 여자 각성자를 스타로 데뷔시키기. 영입하고 싶은 여자 술자리에서 술값 대신 내주기. 말 잘 듣는 여자는 예뻐해주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블랙카드를 바테이블 위에 똑 소리 나게 내려놓은 한채린.
“어때요. 저한테 잠깐 시간 좀 내주실래요?”
그 당차고도 도발적인 제안과 함께
해응응의 얼굴을 향해 내미는 손을
짝!
주아영이 매섭게 쳐내며 도끼눈을 떴다.
“언니는 제 거예요. 꼬리 치지 말아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