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8)
〈 8화 〉 8 시체언덕의 처형자
* * *
1.
스토리모드.
정해진 스토리가 기계적으로 되풀이될 뿐인 지루한 이벤트.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복수를 염원하는가. 그저 연민할 뿐인가. 그도 아니면…….] [그대야말로] [이 저주받은 협곡의 종언을 고하러 온 처형자인가.]반요곡이 빙의나 차원이동으로부터 안전한 게임인지 조사하던.
사전조사에서는 보지 못한 대사.
경멸과 피로만이 엿보이던
지친 눈의 튜토리얼 보스.
그의 눈은 지금 이글거리고 있다.
전에 없는 강렬한 의지와 열망을 불태우면서.
그 눈앞에서 해응응은 처음으로 이 게임을 가상현실‘게임’이 아닌 가상‘현실’게임으로 받아들였다.
【상호작용 선택지】
[그대가 바라는 것. 그것은…]1. 오래된 꿈, 그 이름은 복수.
2. 잔혹한 혈통의 굴레, 인류를 요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3. (말없이 무기를 겨눈다.)
진득한 감정이 묻어나는 문구들.
그 깊이 있는 문장들은 퍽 마음에 들었지만 가슴이 시키는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말없이 무기를 겨눈다.)] [그런가. 피차 긴 말은 필요하지 않겠지.]초회차.
첫 플레이.
첫 튜토리얼.
모든 것이 처음인 그녀에게.
[Player mode]공략에도 없던 튜토리얼 신규루트.
진심승부루트가 등장했다.
2.
반요곡의 보스는 보통 3개의 페이즈를 지닌다.
각 페이즈가 경과할 때마다 새로운 패턴을 사용하며, 모든 페이즈를 넘으면 보스토벌전은 종료된다.
첫 패턴으로 뭐가 나올까?
잡몹소환패턴
나무뽑기패턴
그건 허접들이나 보는 패턴이고
난이도 오르면 패턴 한 단계씩 앞당겨지잖아
뭐 끽해야 짓누르기 패턴이겠지
피지컬 스트리머들도 제일 잘 나갈 때 짓누르기 패턴으로 시작함
잡몹소환패턴
나무뽑기패턴
짓누르기패턴
채팅방의 의견은 셋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그들이 지켜보는 전장.
거구의 처형자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두 손을 땅에 디딘
짓누르기패턴의 다음 패턴
돌격패턴의 전조자세를 취했다.
와씨 시작이 돌격패턴?
그럼 삼페이즈에 뭐 나옴?
몰라 그런 거 아무도 못 봤어
미증유의 공략.
그 첫 페이즈를 맞이한 해응응.
푸화악
그녀는 혈귀를 잡아 드랍된 잿가루 주머니를 거칠게 내던졌다.
자욱히 일어난 가루먼지.
이백 마리의 혈귀로부터 나온 잿가루는 그 양이 적지 않았다.
쿵쿵쿵
거대한 덩치로 지형지물을 밀며
일직선으로 돌격하는 처형자
그 돌진경로는 잿가루의 시야방해로 인해 해응응을 잡지 못했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듯.
안에서 밖을 보는 것도 불가능.
스스로 만든 시야방해를 해응응은 영리하게 극복했다.
거구의 처형자가 달려오는 소리.
걸음마다 전해지는 진동.
소리와 진동으로 위치를 감지해 옆을 지나는 처형자의 다리를 정확한 타이밍에 베었다.
‘외공을 익힌 외공고수처럼 피부가 단단하네요.’
상처는 만들었지만 깊지는 않다.
과연 인터넷에서 악명이 높은 튜토리얼 보스.
이래서야 일반 플레이어들은 칼질 몇 번 하다가 역공에 치여 꽥 하고 드러누울 만도 하다.
‘딱 그 정도뿐이지만요.’
처형자는 영리하지 않았고.
오감을 이용할 줄 몰랐다.
시작은 깊지도 치명적이지도 않은 얇은 상처였지만.
돌진횟수가 늘어날수록 상처는 점점 깊어졌다.
베고
또 베고
유효타를 쌓는다.
같은 부위를 조금씩 찢는 참격.
그 횟수가 열 번을 넘자.
더는 무시하기 힘든 수준의 출혈이 발생했다.
이대로는 아무런 소득도 볼 수 없음을 깨달은 처형자.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스토리모드가 활성화됐다.
[Story mode]처형자가 다리에 크게 힘을 주자 근육이 수축했다.
근육의 힘으로 상처부위의 출혈을 멈춘 처형자.
그가 처형도끼를 들었다.
[요괴의 피를 받아 거대화한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 [정교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약점만을 거듭 베는 정확성 높은 검술.] [모든 것이 기대 그 이상이니.]쿵!
지면을 향해 세게 내리친 도끼.
[그 실력에 거짓은 없는지.] [정면에서 증명해보아라.]표면에 슨 녹이 떨어진 도끼.
도끼날의 광채와 함께.
[Player mode]2 페이즈가 시작됐다.
뭐지???
?
?
5분 안 지났는데 2페이즈??
이걸 딜로 밀었다고??
도끼날 가는 건 첨보네
아니 진짜 혈통 없이 심지어 리얼모드로 이걸 어케 깨고 있냐고
무수한 갈고리가 쏟아지는 채팅창.
그 혼란은 꿈에도 모를 해응응.
그녀의 모든 신경은 처형자에게 집중되었다.
기도가 변했다.
무작정 돌진하기만 하던 바보 같던 공격 대신.
커다란 도끼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만을 겨냥했다.
건물도 쪼갤 기세의 도끼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힘차게 내리찍자 땅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일격에 즉사하겠네요.’
심지어 내리친 도끼가 지면을 타고 바닥을 쓰는가 싶더니, 한층 더 궤적을 바꾸어 허리춤을 노리고 이중가르기를 펼친다.
스겅
스아앙
일련의 공세는 공격궤적을 미리 읽더라도 피하기가 어렵다.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몸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몸통이 반으로 갈라질 기세.
위태롭다 못해 당장이라도 썰릴 것처럼 보이던 해응응은 아슬아슬하게 궤적과 궤적 사이를 넘나들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기습적인 이단가속은 검으로 맞받아쳤다.
꽝!
적절한 지점에서의 공격 끊기나 흘리기가 아니라면.
도끼와 검의 충돌은 십중팔구 검의 파괴로 이어진다.
체구나 병기의 중량만 봐도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교전.
지이잉
“!!”
그러나 완벽한 타점을 노린다면.
응축된 힘이 터지기 직전.
그 힘을 무위로 돌려버린다면.
‘저 무식한 힘을 100% 모두 받아내지 않아도 되죠.’
처형자의 도끼를 한발 앞서나가 저지한 해응응의 검.
한 호흡의 틈을 노려 그녀의 검이 재차 처형자를 베었다.
지렸다
엄마 난 커서 묵언검객이 될래요
평범한 피지컬 스트리머가 아니라 초고수급인데?
저거 평타로 데미지 안 들어가지 않음?
크리티컬은 들어감
그럼 매번 크리티컬만 꽂았다는 거네ㄷㄷ 어떻게 크리티컬이 평타마냥 계속 터지지?
아니 시발 경직을 보스가 플레이어한테 거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보스한테 걸고 자빠졌네ㅋㅋㅋ
저게 돼?
와 내가 뭘 보고 있지
레전드 탄생의 순간
근데 저거 검으로 벤다고 의미가 있기는 해?
ㄹㅇㅋㅋ 1페이즈에 낸 상처 근육에 힘 빡 주니까 출혈 멎던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위태롭게 보이는 보스전.
가망 없는 교전.
강제패배가 예정된.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끝날 싸움은.
해응응의 유효공격이 늘어나면서 모두의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그냥 아무데나 베고 있는 게 아님. 모든 공격이 상처부위를 감싼 근육을 하나씩 파괴하고 있음.
와 시발 진짜다
해찬이형도 보고 있었어?
내가 영상클립 보내서 형 데려옴
착한 국뽕단 ㅇㅈ
저걸 베는 묵언검객이나 그걸 알아본 이해찬이나 둘 다 지리네
평일 평균시청자 2000.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스트리머마저 본방컨텐츠를 하다 말고 달려올 정도로 수준 높은 교전.
푸화아아앗!
끝내 누적된 검격에 상처부위를 닫던 근육이 모두 갈라지며.
출혈이 멎었던 다리에서 한층 더 거센 출혈이 일어났다.
3.
[Story mode]지면을 크게 내리치며 충격파로 거리를 벌린 처형자.
그가 해응응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대는 반요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과 갈고닦은 기술의 경지를 증명해내었다.]지금껏 반요곡을 플레이했던 어느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처형자의 진심어린 찬사.
비열한 자라거나 후일을 도모하는 재주 하나만은 봐줄만하다던 눈 높은 보스가.
해응응의 실력을 인정했다.
[요괴의 피에 더럽혀진 자들에게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지] [믿음. 그것이 어찌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심코 그대를 믿어보고 싶은 나약함이란.] [어찌나 슬프고도 허망한가.]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가 덧없는 절망으로 끝날 바에야 여기서 끝을 보겠다.] [허나 만에 하나라도 그대가 이 일격을 받아낸다면, 그때는…….]거구의 처형자의 두 눈에 깃든 깊은 상심과 좌절.
그 너머, 형형한 의지가 번뜩였다.
쿵 소리와 함께 처형자의 사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래주머니.
지축이 울릴 정도의 무게가 진동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진심이 된 처형자가 다시금 도끼를 쥐었다.
[Player mode]해응응이 가상현실게임에 빠삭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가벼운 밑천으로도 확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진심이 된 처형자를 당해낼 수 있는 게이머는 극히 드물 거라고.
상대는 무공이 없어도 이류 수준의 외공고수.
모래주머니를 해제한 지금은 일류 수준의 외공고수와 같다.
장기전은 어림도 없다.
단기전의 접전 또한 가혹하다.
처형자의 품안으로 몸을 비튼.
전신의 회전을 꽉 눌러 담은 일격필살의 태세.
휩쓸린다면 일격에 즉사고.
스쳐도 몸이나 무기를 잃는다.
공격범위는 전방 전체를 아우르니.
이 무자비한 필살기를 앞두고.
가능한 승부수는 오직 하나.
지금껏 만들어낸 상처.
다리의 출혈부위를 이용하는 것.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치 않고자.
뒤로 뺀 상처가 난 다리.
저곳을 노려야한다.
‘뭘 이리 시험해보고 싶은 게 많은 보스인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튜토리얼 보스인 걸까요?’
다리를 노리기 위한 전제조건.
그것은 처형자의 일격필살의 태세를 돌파하는 것.
ㅈ 됐 다 ! !
모래주머니 실화냐
다 피하고 다 때리면 이런 패턴도 나오는 구나
여기까지만 와도 잘했다 ㄹㅇ
처형자 원래 첫 필드에서는 얼굴만 비치고 진검승부는 나중에 다른 필드에서 하자너
처형자를 ‘진심’으로 만드는 검객
그냥 도망쳐! 과다출혈로 죽일 수 있잖아!!
안돼 우리 방장 13남자라서 한 번도 빠꾸 안했어
ㄹㅇ노빠꾸임 혈귀 잡을 때부터 방송 내내 전진만 박았음
역대 최강의 튜토리얼보스
역대 최강의 1회차 플레이어
어느덧 2500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방송.
모두가 하이라이트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은 처형자의 최종페이즈, 일격필살패턴.
그에 맞서 해응응은 완벽한 자기관조에 들어갔다.
‘육신과 감각의 괴리가 아직 완벽하게 줄어들지 않았어요.’
[현재 동화율] : 40%(상한치 도달)보급형 캡슐이 제공하는 동화율의 천장이 있는 한, 승산을 찾기는 극히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천장 따위, 부숴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나요.’
최고조로 솟아오른 집중력을 날카로운 칼처럼 연마해 동화율 40%의 벽을 연신 두들긴다.
‘지금의 제게 필요한 것은 최선의 세 걸음.’
쿵.
심장박동을 따라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지는 피를.
쿵.
전신세맥과 이어지는 신경과 근육의 움직임을.
쿵.
혈맥과 근맥, 번개처럼 뻗어나가는 내공의 길을.
최단거리로.
완벽하게.
상상해낸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미친 듯이 반복되는 심상구현.
감각의 괴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위적인 감각고조.
기초심법 의 효과가.
동화율 상한의 벽을 부쉈다.
[OUT BREAK!] [강한 정신력에 동화율이 일시적으로 한계치를 돌파합니다!] [현재동화율 : 90%]‘하나.’
해응응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도달했음을 읽어낸 처형자.
그가 움직임의 전조를 읽자마자 반사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한계까지 눌린 스프링이 펼쳐지듯.
폭발적인 회전력을 펼쳐내는.
처형자의 일격필살.
파아앙
가르기의 경로를 따라 사라진
시체언덕의 일부.
흙먼지조차 내려앉지 못하는
공간의 여백.
그 사이로
토막이 난 채 흩어지는 신형.
그렇다.
해응응의 순간가속은.
처형자의 일격필살을 뚫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전력이 통했음에 기뻐하는 한편.
끝내 제 손으로 허물어버린 희망에 절망을 느끼는 처형자.
헐
이런
아
시청자들마저 아쉬움을 토로하는.
1초의 탄식.
어어?
와
이걸?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고 생각한.
해응응의 첫 걸음.
처형자의 가르기가 모두 지나간.
공백의 공간 바로 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피한.
삿갓모자의 일부와 머리카락만이 잘려나간.
두 걸음 째의 해응응.
그녀가 속으로 수를 헤아렸다.
‘둘.’
뒤늦게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을.
유도 당했음을 알게 된 처형자.
궤도를 되돌려야 한다.
본능적으로 펼친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처형자의 이중가르기.
일격에 모든 것을 걸었던 처형자의 뒤늦은 응수.
그 공세의 절반을 뻗어내기도 전.
폭발적으로 최단거리를 좁힌
이미 공격범위의 안을 파고든
호흡의 틈을.
무기의 궤적을.
시야의 사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어낸.
세 걸음 째의 해응응.
‘셋.’
그녀가 검을 거두었을 때.
처형자의 다리가 떨어져나갔다.
기나긴 침묵.
비현실적인 정적의 끝에.
비로소 시청자들도 깨달았다.
모두가 강제패배이벤트라고 여겼던
토벌이 아닌 생존에서 만족한
튜토리얼 보스 처형자.
그로부터 진정으로 승리를 거둔
첫 번째 플레이어가 탄생했음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