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86)
〈 86화 〉 86 타산지석
* * *
1.
【묵언검객】
[레전드 뉴비영상][영상길이 00:19:12] [혈둔수로채 원클][영상길이 00:33:01] [대수림 히든루트][영상길이 01:12:56] [64시간연속방송][영상길이 64:02:25] [묵언검객방송통합영상][영상길이 66:07:32]폴더를 연 해응응의 눈이 꿈틀거렸다.
초조함을 느끼는 손이 마우스패드를 연신 툭툭 두들겼다.
풀어졌던 표정이 팽팽한 긴장감에 조여졌다.
목덜미가 보이도록 올려 묶은 뒷머리도,
흘려 내린 몇 가닥의 옆머리도.
그 모습을 본 정요한과 소경석이 두근거림보다는 무언가 잘못을 했나 고민될 정도로.
그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두 남자는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눈치를 봤다.
딸칵.
영상이 재생됐다.
캐릭터를 만들고 반요곡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그때부터 시작되는 방송.
그 무렵의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방비한 모습으로 게임 속을 누비고.
천장과 바닥에 꽁꽁 숨은 혈귀를 찾아 죽이며.
더 강한 적을 갈망한 끝에 처형자와 마주해 비로소 검을 겨누며 미소 짓던 그 시절.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녀가 보지 못했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청자들의 채팅창이 더해져있었다.
역대 최강의 튜토리얼보스 vs 역대 최강의 1회차 플레이어 ㄷㄷㄷㄷ
빅 매치ㅇㅈ
제발 토토 열어 추억도박 하게 해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도박중독입니다
아닌데? 내기할래? 난 도박중독 아니다에 1000포인트 걸 수 있음
이미 도박중독 말기환자신데요
깊은 상심과 좌절, 그 너머로 형형한 의지를 번뜩이는 처형자.
그 진심어린 기백과는 결이 다를지라도
그녀의 일거수일토족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채팅은 그녀의 두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걸?
칼끝의 흔들림 하나에 생사가 갈리던.
누군가의 죽음이 분노나 절규, 공포로 이어지던.
시체 너머로 더 많은 시체가 쌓이던.
무림에서의 나날.
그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채팅창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묵언검객 그는 신인가? 묵언검객 그는 신인가? 묵언검객 그는 신인가?
밀집모자 간지 오지네 내가 쓸 땐 시야 가리는 쓰레기라 중간에 갖다버렸는데
고인물 전용룩을 초보자가 끼니까 그렇지ㅋㅋ
빨리 가서 주워와ㅋㅋ 그거 써야 강해진다고
안 주워도 됨 방랑상인이 듀듕등장 ㅇㅈㄹ박고 노상에 돗자리 피더니 그 모자 10혼에 내놓더라고ㅎㅎ;
방랑상인 듀듕등장ㅅㅂㅋㅋ
그녀를 화제 삼아 채팅을 치며
추억을 떠올리고
감정을 나누는 시청자들.
‘어렴풋이 기억났어요.’
게임 속에서 무술을 쓰는 사람을 무림인이 아닌 플레이어로 바라보는 현대사회.
그녀가 아직 그였던 시절.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남자일 적의 이름을 지녔던 그는 게임에 미쳐 지냈다.
‘다른 사람의 게임을 본 기억은 없지만… 이야기 정도는 들어본 적 있었죠.’
사람들이 게임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이유.
그것을 분석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음은 상향평준화.
뻔한 게임에 질린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쉬운 게임을 찾지 않았다.
게임 제작사는 보다 어려운 게임을 출시했고
어느 장르 어떤 게임이든
2030년의 게임은 상향평준화가 이뤄졌다.
다음은 유행의 변화.
로그라이크와 2D감성의 복고게임.
지난 세대의 추억팔이 컨텐츠가 모두 소진되고.
더 이상 과거의 추억이 소비되지 않을 무렵.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을 원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자극을 뛰어넘는,
보다 재밌고, 풍성하고, 뛰어난 게임.
많은 플레이타임.
방대한 세계관.
경쟁요소.
수많은 요소가 더해지며 용량이 불어난
극단적인 초고사양 게임은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설치할 수 있는 수백 개의 게임리스트에 속할 수 없었다.
하나의 컴퓨터에 하나의 게임.
그런 슬로건이 자리잡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어서 게임의 영화화.
게임산업의 미래는 영화화라는
2010년대 후반 유명 게임제작자의 말마따나
게임은 볼거리가 부쩍 풍성해졌다.
구매해서 플레이하지 않아도
남이 플레이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보는 재미를 선사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스트리머들의 뛰어난 실력.
피지컬과 뇌지컬.
어느 쪽에서든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스트리머들은 게임진행이 속 시원했다.
어려워진 게임에서도 거침없이 진도를 뽑고.
히든루트를 개척해나간다.
플레이어들에게 무수한 시간소모를 요구하는 ‘시행착오’의 벽을 방송을 보면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게임이 나오기 직전.
그 과도기에 일어난 이와 같은 요소들은 시청자들이 게임방송을 볼 이유를 만들었다.
‘저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요.’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았던 해응응.
그녀는 외로움을 달랠 무언가로 게임을 골랐다.
자신이 직접 플레이하고
게임 속 NPC들과 상호작용을 나누며
그 시간 자체를 오롯이 즐겼으니.
그 사이에 방송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남들보다 실력은 그럭저럭 있었지만
뛰어나다고 하기에는 부족했고.
그 자신도 방송을 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설치한 적 없는 무림비망록이라는 게임을 찾고
무림에서 20년을 생존한 끝에 귀환했다.
‘지금의 제게는 우선순위가 달라졌어요.’
게임이 세상을 살아갈 첫 번째 이유였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무술이 게임의 빈자리를 대신 채웠다.
그렇기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무술이.
혼자만의 작은 세계가.
불특정 다수에 의해 관측되고, 공유 당한다.
그런 경험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분명 그런 불쾌함을 느꼈는데.
자신의 무공이 엿보였다는 사실에 살심마저도 품었는데.
도중부터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더니.
어느새 잠자코 채팅방을 지켜보는 자신이 있었다.
계파와 소속, 거주지와 신분에 따라 갈라졌던.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야만 했던.
강호의 노괴들과 위선자들의 뜻에 좌지우지되던.
하나가 될 수 없던 군중들이나
친구가 될 수 없던 무림인들과
눈앞에 펼쳐진 채팅방의 시청자들은 달랐다.
와 처형자 원트가 가능한 거였어?
반요곡 요괴엔딩만 7번, 반요엔딩 5번 봤는데 12회차에서도 처형자 패턴 밀고 깬 적 없음;
실력을 넘어서 재능의 영역이누ㄷㄷ
계파와 소속, 거주지와 신분에 구애받지 않으며
개씹레전드다 진짜 이 기세면 오늘 켠왕도 쌉가능
신규 스토리 개방ㄷㄷㄷㄷㄷ
아니 처형자가 여기서 죽으면 쟤 나오는 후반필드는 어케 되는데ㄷㄷ
방송 앞에 하나가 되어 몰입하고
그래서 다음 필드 언제감?
강적을 향한 애도도 잊지 않는 참된 검객
애도고 자시고 이분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데 ㅈ된 것 같습니다만
한 마음 한뜻으로 채팅을 치며
문 열어!!!
아니 씹 방종 타이밍
이거 순 악질 아니냐?
무림에서도 이루지 못한 대통합을 이룬다.
영상재생이 끝나고 화면이 멈추어도
그녀의 눈에는 생생하게 보였다.
하나의 무림을 꿈꾸었던 거대문파의 문주들과
더 많은 무림을 강요했던 황실의 황제.
그들 사이에서 죽어나간 무림인들.
사람조차 아닌 재산으로 다뤄지던 양민들.
그런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어 멸문했던 해남파.
‘지고한 힘을 지니고도 이루지 못했던 무림고수들의 뜻이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정요한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 묵언검객님? 영상 끝났는데요. 두 번째 방송 영상도 틀까요?”
해응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방송도 전부 보고
세 번째 방송도 전부 보며
64시간어치 네 번째 방송까지 보려던 그녀를 소경석이 만류했다.
“죄송하지만 그것까지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꼭 보셔야한다면 영상만 복사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해응응이 그래도 되겠냐고 정요한을 돌아보자 그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묵언검객님의 청이라면 얼마든지 보내드려야죠! 메일 주소만 알려주시면 바로 보내겠습니다!”
[메일이요?]“아, 맞다. 묵언검객님은 VR 이번에 처음 하시는 뉴비셨죠? 여기서 이거 누르고 이거 누른 다음에 여기로 들어가면 VR개인메일이 나와요.”
정요한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VR계정에 연동된 메일에 접속한 해응응.
소경석과 정요한이 헛웃음을 지었다.
“메일을 오늘 처음 보셨나봅니다.”
“와… 어쩐지 매니저랑 편집자 지원하는 애들 합격하는 사람이 없다 싶더라니…….”
+999통을 채우고도 넘쳐흐르는 읽지 않은 메일들의 향연.
먼지 먹은 메일함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제 나한테 메일쓰기 누르면 여기서 메일주소가 나오는데… 잠깐 복사 좀 할게요. 이제 여기로 파일을 보내드릴게요.”
첨부메일로 영상을 올리는 정요한.
그가 메일을 작성하기 직전.
해응응이 그의 수련복을 슥슥 잡아당겼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정요한.
그가 묵언검객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방송에서도 현실에서도
언제나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고독함이 느껴지는
묘한 눈을 하던 그녀의 자색눈동자가
그 아름다운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팬심이 아닌 남심으로서도 견디기 힘든 아름다움이었다.
“왜, 왜요?”
[나무발발이도 보내주세요.]“아, 안돼요!”
[왜요?]“왜, 왜냐니요. 이건 달라요!”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인가요?]“다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다르다고 할까, 방송은 맞지만 핀트가 다르다고 할까… 아, 아무튼 안 돼요!”
[?]“묵언검객은 애기인 거예요! 지켜줘야해요!”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어안이 벙벙한 해응응과 달리.
사정을 짐작한 소경석만이 큭큭 웃었다.
“한 번만 봐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길드장님께 보여드릴 수 없는 영상이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야구동영상이라든가 말입니다.”
야구동영상? 야동? 아.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말부터 새로 배우며 20년을 굴렀던 무림.
컴퓨터도 없는 세계에서 자연스레 잊고 지냈던
남자였을 적에나 친숙했던 야한 동영상.
면전에서 그것을 달라 했으니 얼마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울까.
정요한은 수치심에 죽고 싶은 표정이었다.
‘경멸할까? 더럽다고 무시할까? 분명 혐오하겠지?’
울상을 짓는 정요한.
해응응은 그를 탓하는 대신, 야동을 본 자식을 애써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조용히 수첩 페이지를 펼쳤다.
[수련을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해보세요. 그러면 음심이 들지 않아요.]다 이해한다는 투로 대범하게 조언까지 건네는 해응응.
그녀 나름의 상냥한 배려에 정요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소경석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 참담한 광경에 눈 위를 손으로 덮었다.
‘불쌍한 녀석. 진짜 자살 마렵겠네. 나도 집에 가면 오목눈이 폴더부터 지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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