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94)
〈 94화 〉 94 백목귀의 힘
* * *
3.
[Player mode]예상보다 강력한 백목귀.
그녀의 저항 앞에 해응응은 모든 알림을 껐다.
‘잡념을 품고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에요.’
주술사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요령은 정신통일을 유지하는 것.
마음에 미혹이 생겨나는 순간, 그 빈틈을 파고들 방법을 주술사들은 열손가락을 가득 채우고도 남도록 지니고 있다.
[저와 같은 요괴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나보군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두 눈의 초점을 흐리고, 귀를 봉하는 기형적인 태세…] [아아, 그 애처로운 저항마저도 사랑스러워. 두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나신의 백목귀.
그녀의 허벅지에 새겨진 눈들이 안광을 빛냈다.
가슴이 저며 들도록 격하게 밀려오는 감정들.
해응응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어렸다.
저로는 부족했던 겁니까? 응응소저, 이 마음은 정녕 보답 받지 못한단 말입니까…!
쿨럭…! 미안하다, 사매…. 사문을 지키지 못하고 이런 못난 꼴을 보여서…. 네 탓이 아니다…. 그러니, 울지 말거라…….
대명제국의 황제. 그 허울뿐인 옥좌에 저를 앉혀서 만족하십니까? 남은 일생을 쇠락해가는 국운과 함께하게 만들어서 만족하냔 말입니다!
몸이 아닌 마음을 강제로 헤집는 공능.
정신통일이 강제로 파괴되자
외면했던 의식이 백목귀의 눈으로 향했다.
[그래요, 여기를 바라보는 거예요.] [당신의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백목귀의 두 다리 전체가 빛이 나며 이십여 개의 눈들이 그녀의 마음을 무참히 헤집었다.
마음이 상처가 더욱 격하게 벌어지며
알아서는 안 될 감정이 범람하며
보아서는 안 될 감정에 눈을 뜬다.
[눈을 감지 말아요.] [당신이 버렸던 감정들이 돌아오고 있잖아요.] [너무 오랜 기다림에 당신은 지쳤죠.] [이제는 전부 마주하고 받아들일 시간이에요.] [뒤틀린 과오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곧 그렇지 않게 될 거예요.]손수 떠나보낸 지나간 기억들.
존재하지 않은 상심의 흔적들.
현실과 망념이 혼재되며 강제알림창이 울렸다.
[경고. 경고. 플레이어의 뇌파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정신안정에 실패할 시, 동화율이 강제적으로 폭락합니다.] [카운트다운 10…] [9…] [8…]묵언검객이 쌓아온 경험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음을 간파한 순간.
백목귀는 그녀의 육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던 경험과
그 경험의 근간이 되었던 실패의 역사들을.
강인한 정신 아래에
겹겹이 쌓인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을.
그녀의 것은 아니지만
그 고통과 상심을 이해할 수 있는
무수한 눈에 새겨진 비애와 비탄의 감정을
강제로 망막과 뇌리에 심었다.
[인간, 당신은 너무 강해요. 그래서 늘 혼자가 되었겠죠. 당신에 비해 다른 이들은 충분히 강하지 못했으니까요.]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짊어진 뜻은 얼마나 많죠? 스러진 이들의 유지에 등이 굽지 않았나요? 그 허리가 부러지기까지 얼마나 남았죠?] [그래요. 당신은 알고 있어요. 단지 외면해왔을 뿐. 마음은 이미 병들고 몸은 썩어가고 있죠.]몸이 아닌 마음부터 무너지며
지면을 지탱하는 두 다리가 흔들린다.
자신이 서있다는 자각마저 잃게 만드는
마음 속 깊이 무너지도록 만드는
단순한 현혹 그 이상의
근원적 환몽fantasme originaire.
‘이건 위험해요.’
물질적 현실을 외면하고
심령적 현실을 강요하는
중개적인 환몽을 형성하는 백목귀의 동술과
이에 빠져드는 속도와 몰입감 자체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최면.
세뇌와 각인에 당하며
마음이 몸을 강제하는 경험을 해왔던 그녀이기에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자신을 놓고 통제력을 상실한다면 반 강제로 심마가 찾아올 거예요.’
무림인의 악몽과도 같은
절대로 마주해서는 금기, 주화입마.
그것을 정신적으로 강제하며
특정 행동원칙을 강요하거나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사술.
그것이 한때 그녀의 심령을 사로잡은
황궁의 세뇌와 혈교의 각인.
그리고 지금
그 가증스러운 두 제약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짐이 없을 새로운 공포가 몰려왔다.
[5…] [4…] [3…]환몽에 실체는 없다고
그 모든 감정적 착란의 기반은
마음 속 깊이 내재된 실패의 트라우마와
고쳐 쓰고 싶은 기억에서 비롯된 욕망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채찍질하려 해도
해응응의 동공은 점점 거칠게 떨렸다.
[마음은 기억을 비추는 창.] [억압된 상실의 기억이 자아내는 표상.] [얼룩진 창이 보이나요?] [더럽혀지고, 버림받고, 방치된 채 오랜 시간 잊혀져버린 당신의 과거가.] [그래요. 당신은 고통을 이겨낸 적이 없어요.] [그저 외면했을 뿐이죠.] [이제는 버림받은 고통들이 돌아오고 있어요.] [당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려줄 기억들 말이에요.] [파멸의 기수가 찾아왔어요.] [거짓과 기만으로 쌓아올린 성공신화에 끝이 찾아올지언정,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요.]백목귀의 눈들이 그윽한, 아련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언젠가 찾아올 파멸의 그 날이,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니까요.]백목귀의 심령을 뒤흔드는 말들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마음속에 굳게 박힌 채 자라나기 시작했다.
지독한 향기를 피어내며 자라난 그 꽃의 이름을
해응응은 알고 있었다.
[죄악의 꽃이 피고 있어요.] [당신의 실패와 고통을 양분삼아 자라나고 있죠.] [아무것도 하려 하지 말아요.] [누구도 당신의 도움을 바라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요.]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죄악에 몸을 맡겨요.] [조롱과 멸시를 귀담아 듣지 말아요.] [실패와 과오를 뉘우치지 말아요.] [더럽혀진 순수 속에도 내일은 찾아오잖아요.]3.
2.
1.
어딘지 아득히 먼 꿈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몽롱하게 멀어져가는 수를 헤아리는 소리.
[동화율이 0%까지 강제로 드랍됩니다.] [A VERTICAL DESCENDING ASSIMILATION RATE HAS BEEN DETECTED] [CODE :BLACK] [심도 동화율이 마이너스로 잠항합니다.] [정신계수 연결지표가 변경되었습니다.] [심도 그래프가 역전됩니다.] [동화율 마이너스 진입] [현재 동화율 : 1%]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의지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처 입은 마음의
가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백목귀의 의지 앞에
서서히 몸과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동화율이 백목귀의 의지에 잠식됩니다.] [정신오염의 강력한 위험징후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장기적 후유증이 예상됩니다.] [시청자들의 감각링크가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지금 즉시 게임진행을 포기하고 강제 로그아웃 하십시오.] [지금 즉시 게임 진행을 중지하십시오.] [게임 진행을…]팟.
리모콘으로 전원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망막에서 사라지는 중요알림들.
[쿠후. 쿠후후후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저 조용히, 조용히 느껴보는 거예요.]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제 손길을.] [이 손끝의 온기를.] [온기가 점점 멀어져도 걱정하지 말아요.] [그저 쫓아가면 되잖아요?] [서두르세요.] [이 온기가 다하기 전에.] [쫓아가세요.] [이 손이 떨어져나가기 전에.] [당신이 머물러야 할 곳은 죄악에 깃든 몸이 아닌, 그저 조금, 아주 조금의 위로를 베풀어줄 한 줌의 온기. 그렇죠? 쿠후후. 쿠후후후후.]그녀의 의식 바깥에서
시스템의 카운트다운이 다시금 제로로 향하며
강제로그아웃 활성화가 발현되기 전.
“가소롭군…. 카발라의 문양을, 거꾸로 뒤집은, 역천의 나무. 그 더러운 힘은, 너로부터 비롯된 힘이, 아닐 텐데.”
드드득.
드드드드득.
굳게 걸어 잠긴 채
보스전 내내 꼼짝도 하지 않던
백목귀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부기맨.
그의 문이 요동치며
한없이 불길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백목귀의 몸에 달린 수많은 눈에서 핏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일생일대의 기회.]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되어요.]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백목귀의 공능이 급격히 강화되며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 동화율.
[현재 동화율 : 13%] [현재 동화율 : 27%] [현재 동화율 : 42%]카운트다운이 제로로 치닫는 것보다도
한층 빨리 정신오염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그런 짓은, 허락할 수 없다.”
덜컹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세차게 열린 옷장.
전력으로 요력을 발휘하고자
요력봉인지대의 힘마저 거둔 백목귀 덕분에
자신의 힘을 되찾은 부기맨.
“이런 곳에서 쓰기에는, 아까운 힘이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지.”
일백 개의 전승을 지닌 백목귀에 맞서
부기맨 또한 백 개의 검은 팔을 뻗어내며
절반의 손으로는 해응응을 감싸고
절반의 손으로는 백목귀를 덮쳤다.
[말도 안 돼! 이 쓰레기장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기물의 힘을 흡수했는데. 그런 내 힘을 대요괴도 아닌 요괴가 호각으로 막아낸다고?!]“아둔한 정도로, 정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 그 어리석음에 진 빚을, 갚기 전에는. 멋대로 무너지도록, 놔둘 순 없다.”
지금까지는 해응응이 부기맨을 지켜줬다면
이제부터는 부기맨이 해응응을 지켜줄 차례.
해응응의 우정과 헌신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