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96)
〈 96화 〉 96 다음 생에는 꼭 기억해두세요
* * *
1.
백목귀는 생각했다.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2대 요괴왕의 오호대장군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당신 같은 요괴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어째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방해하는 거야. 나만 아니면, 지금만 아니면 괜찮았는데!]격의 상승을 목전에 두고 방해받은 백목귀.
그녀가 증오를 담아 부기맨을 노려보며
수많은 눈의 공능을 발휘했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부기맨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제 것도 아닌, 빌려 쓴 힘 따위로, 감히 내게 맞서려 하는가.”
불처럼 타오르며 주변을 넘실거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불길함을 선사하는 어둠.
그런 어둠을 전신에 두른
부기맨의 저력 앞에
백목귀의 동술은 맥도 추리지 못했다.
[끝없이 늘어나는 팔.] [모든 종류의 동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견고함.] [이제야 알았어요.]무수한 팔들이 벌여내는 난타전에 휘말려
태세를 굳히며 수비일변도로 버티면 백목귀.
그녀의 눈이 요사한 빛을 띠었다.
[당신. 정령계통의 요괴군요?] [삿된 영혼에 삿함은 통하지 않으니.] [본질이 물질에서 비롯되었다면 동술에 흔들릴 마음 따위, 존재하지도 않겠죠.]백 개의 전승을 제 한 몸에 수집할 정도로
무수한 요괴행을 겪으며
식견과 안목을 쌓아올린 백목귀.
백 개의 눈을 지닌 그녀의 안목은
짧은 교전으로도 부기맨의 정체를 추정했다.
[재미있나요?] [알지도 못하는 감정을 흉내 내는 게.] [한심한가요?]감정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발언.
가장 깊은 상처를 헤집는 근원적 환몽.
해응응이 신체의 제어권을 내려놓았을지언정
그 견고한 몸에 단숨에 뿌리를 내릴 정도로
백목귀의 강력한 정신오염이 부기맨을 노렸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요괴왕비의 오른팔다운, 성가신 혓바닥이군.”
부기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신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던, 통해서도 안 되던
그런 자신조차도
아주 잠깐, 아주 조금이나마
백목귀의 힘에 흔들리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 정도면 약점포착이 아닌
약점창조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의 달변.
백 개의 눈보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백목귀가 지닌 단 하나의 입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정신을 수복하다니. 무서울 정도로 빈틈이 없군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기맨은 백목귀보다 강했다.
부기맨의 신체가 그녀의 신체를 파괴하기 전에 그녀의 달변이 먼저 부기맨의 정신을 파훼하려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이미 물거품으로 끝났다.
‘이제는 무리해서라도 돌파할 수밖에 없어요.’
백목귀의 눈이 부기맨의 팔들에 휘감긴
수많은 손에 전신이 뒤덮여
얼굴을 제외한 그 어떤 부위도 보이지 않는
인계최강의 검객.
묵언검객에게로 향했다.
‘저 인간의 몸만 취할 수 있다면 격의 상승은 따 놓은 당상이에요.’
어차피 지금의 몸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저만한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그릇은
다음 백년이 지나도 마주치기 힘들다.
그렇다면 여기가 분수령이다.
겁쟁이처럼 달아나서 다음 백년을 기약할지.
아니면 천천히 길을 들여서 잡아먹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신 전체를 이전시켜서
저 검객의 정신을 찍어 누르고 강제로 심신을 지배할지.
‘어느 쪽을 고를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백목귀의 백 개의 눈이 동시에 눈을 뜨며
전신에서 핏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같잖은 수작을.”
[당신의 암흑요력이 대단함은 인정하죠. 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했어요. 그릇을 버리면서까지 발휘하는 제 전심전력을 막아내기에는.]백목귀의 육체가
모든 눈을 동시에 뜨며 공능을 발휘하는
백목중첩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펑 소리와 함께
신체 전체가 폭발해버렸다.
육체의 사멸을 각오할 정도의 특공은
역상성의 부기맨조차도 밀어내며
순간의 우위를 점했으니.
[쿠후. 쿠후후후후!] [돌아왔어요. 이제 누구도 절 막을 순 없어요!]필드보스급 요괴 백목귀.
그녀의 정신이 재차 해응응의 정신에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2.
더는 돌아갈 길도 없다.
[빙의령에게 있어서는 뒤가 없는 배수의 진이죠.]실패한다면 영혼의 소멸은 피할 수 없지만
그만한 위험을 감수한 도박은
확실하게 통했다.
부기맨의 백 개의 팔이 속절없이 밀려나며
벌어진 틈 사이로 비치는 묵언검객의 머리.
고요하고도 적막한
자연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색을 띤
깊은 밤처럼 내려앉은 그윽한 눈을 통해
백목귀가 묵언검객의 정신에 침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상대가 제 정신조차 가누지 못하는 허약한 인간이라면, 낙승이나 다름없지만요. 쿠후, 쿠후후후후!]묵언검객은 부기맨과는 다르다.
요괴로서는 천부의 재능이나 다름없는
방대한 영단과 드넓은 영성의 길.
다룰 줄 아는 이의 수중에 들어온다면
격의 상승은 따 놓은 당상인 영약.
이런 탐스러운 존재를
가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조리 죄악의 꽃을 피우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어야 했다.
[가여운 인간. 마지막 자비로 고통 없는 최후를 약속해드리죠.]절대적인 승리를 확신하며
묵언검객의 체내를 관조하던 백목귀.
[어?]그녀는 당황했다.
자신의 요력의 일부를 주입하여 빚어낸
요괴의 영단에 맞게 길을 들였던
요괴화가 이루어져야 했을
세포와, 근육, 내장에서.
먼저 투입한 요력의 흔적이.
단 하나조차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거짓말. 이럴 수는 없어. 무언가 착각한 분명해.]동요하는 정신을 애써 추스르며
전신 이곳저곳으로 정신을 퍼뜨려보는 백목귀.
[어어?]백목귀는 동요를 넘어선 공포에 사로잡혔다.
단순히 기만 사라진 게 아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영혼이 답답해지는 중압감이
마치 넘볼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돌아왔군요.
그녀가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괴물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좀 전에는 여러모로 신세를 졌었죠. 우선은 감사인사부터 드리고 싶네요.
거대한 괴물이 말했다.
아무리 저라도 요괴가 영물처럼 영단을 만들어서 힘을 얻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덕분에 여러모로 참고가 되었어요.
차분하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거대한 괴물.
아니, 묵언검객.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함과 더불어
길을 헤매다간 영영 이 몸 안에 갇혀
서서히 정신이 붕괴되며
모든 요력과 영력을 상실하게 되리라는
아득한 공포심을 선사했다.
[당신…… 정말로 인간이 맞나요?]묵언검객의 정신이 의아해하더니
그녀를 타이르듯 말했다.
당신이 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럴 때는 살려주세요, 라고 해야죠.
아주 조금.
그녀가 살의를 품는 것만으로 격변하는 정신.
광활한 바다와도 같던 정신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가 거세지며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부터
세상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맙소사]인간의 정신이란 본래 이토록 격렬할 수 없다.
일상의 사소한 장애물과 마주쳐도
쉽게 꺾이고 구부러지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 작고 나약한 이들의 정신이란
이루지 못한 욕망만을 하염없이 떠올리며
질시하고, 원망하며, 절망에 빠지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를 번민에 빠뜨리는
절망의 구렁텅이여야 했다.
세계의 끝을 넘보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모든 욕망을 휩쓸어 초토화시키는
재해와도 같은 정신력을 지녀서는 안 됐다.
[인간이 아니야.]바다의 색이 점점 짙어지며 붉게 변하고
[인간은 이런 정신을 지닐 수 없어.]몰아치는 파도 사이로 수많은 주검이 떠오르며
[이런 걸 인간이라고 불러서는 안 돼!!]피바다의 한복판에 선 백목귀를 향해
수많은 주검들이 원망어린 눈으로 쳐다보니.
[보지 마,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란 말이야!!!]백 개의 눈과 백 개의 전승을 쌓아올린
사악한 요괴 백목귀조차도 겁에 질릴 정도로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죽은 자들의 향연.
그 원한과 망념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자들이 백목귀를 향해 몰려들며
팔을 뻗고 다리를 끌어당기며
꿀렁꿀렁 피가 새어나오는 입으로 외쳤다.
“죽고 싶지 않아”
“자화요녀.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
“네가 죽였어. 전부 네가 죽인 거야!”
“너만 아니었으면 사문이 사라질 일도 없었어.”
“전부 너 때문이야.”
“죽어.”
“너만 살아있는 꼴은 볼 수 없어.”
“어서 죽으라고.”
“뭘 행복하게 웃고 자빠진 거야.”
“안온한 내일? 그딴 걸 누릴 자격이 네게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드높은 성취를 이룬다고 한들 넌 행복해질 수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죽어.”
“죽어.”
“죽어!”
“죽을 수 없다면, 우리가 죽여주겠어!!”
“잠들지 않아도 되는 몸이라고?”
“웃기지 마.”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넌 그저 두려울 뿐이야.”
“지나간 참상들을, 돌이킬 수 없는 과오들을 다시 보기가 두려운 거야.”
“항원검문의 23인이 널 증오한다.”
“남궁세가의 85인이 널 증오한다.”
“산서 양천의 민중 388인이 널 증오한다.”
“사천대첩의 망자 1124인이 널 증오한다.”
“너로 인해 죽은 모든 자들이 널 증오한다!”
백목귀가 주입하였던
타의로 인해 유발된 공포와 절망과는
그 밀도부터가 다른 외침들.
백목귀는 눈치 챘다.
자신이 몸을 담그고 있는 이 바다가
무엇으로부터 기인된 형상인지.
[사자의 망해]무수한 살겁을 일으킨
요괴전쟁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그 악명이 역사에 남을 정도로 악명 높은
가장 위험한 요괴들만이 지니는
고유한 정신세계.
몰려오는 것은 파도가 아니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해서도 안 되는
무수한 저주가 쌓여 치솟은 거대한 집단저주.
[원념의 해일]휩쓸린다면 백목귀의 의지 따위.
고작 백 개의 원념으로 쌓아올린 모래성 따위.
한 순간에 쓸려나가고
사자의 망해에 스며들어
두 번 다시 그 자아를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제야 겁에 질린 백목귀가 애원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두고 간 요력을 돌려달라는 말은 안 할게요.] [당신을 멋대로 제 것으로 삼으려던 것도 사과할게요!] [제가 힘을 빼돌리던 귀물의 위치를 알고 싶지 않나요?] [절 살려준다면 귀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제발.] [절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요!!!!]사과로 시작해서
애원으로 이어지고
끝내 절규로 끝나는
백목귀의 처절한 목숨구걸을 들으며
해응응은 찬찬히 의지를 투영했다.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백목귀는 해응응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서
수십 마디의 공들인 주언?을 외우며
통제하지도 않는 정신을 무너뜨리고자
심혈을 기울였지만
해응응이 백목귀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말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미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눈치 챘으니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했음을 깨달았으니까.
그러니 이것은
애원이라고 표현하기도 과분했다.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담기지 않은
그저 겁에 질려 아무렇게나 내뱉을 뿐인
무의미한 망언.
다음 생에는 꼭 기억해두세요.
타인의 정신이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여도 나갈 때는 아니라는 걸.
해응응은 늘상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는
지옥과도 같은 정신 속의 참상.
무수한 망자의 손에 집어삼켜져서
거대한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백목귀.
그녀의 정신이 원념의 해일에 집어삼켜져서는
무수한 망자들과 함께
피로 물든 사자의 망해에 가라앉았다.
무림인의 정신을 함부로 탐했던
어느 어리석은 요괴의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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