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예. 어떤…….”
“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습니까? 검성이라곤 해도 저는 일개 검객. 눈앞의 적을 베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윽!”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못 느끼는 건 아닙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세상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촌장이 말했듯이 여기는 고블린이지만, 다른 변경 영지들은 ‘베른카 제국군’에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납치되고, 인체 실험 재료로 쓰이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지요.”
“이, 인체 실험이요?”
[시스템-‘레오나 앱솔’은 당신의 말을 듣고 크게 동요합니다.]“예. 저는 이 근처에 있던 제국군 비밀 요새도 토벌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괴한 괴물들을 만들어 내더군요.”
말함과 동시에 찬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때의 풍경.
근손실보험과 전국건강협회와 3인이서 힘들게 공략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상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니. 나는 전혀 몰랐어요. 왕국을 지탱하는 앱솔 공작의 동생인데, 나는…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이자 온실 속의 화초였군요. 이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안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알았어야만 했어요! 대체… 대체…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생각해야겠지?’
레오나 앱솔의 슬픈 표정을 보며 찬성은 어떻게 해야 그녀의 생각을 바꿀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그 때문에 찬성은 필사적으로 생각을 끌어내 말을 이었다.
“레오나 아가씨, 하지 못함과 할 수 없음은 다른 개념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늘을 벨 수 없음에도 하늘을 베지 못하였다고 한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모름과는 관련이…….”
“하지만 결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요. 그저 마음만 아플 뿐입니다. 앱솔 공작님은 그래서 아가씨에게 알리지 않은 거겠지요. 그리고…….”
“그리고……?”
“이런 지옥도도 많이 보면 결국 익숙해져 버리게 됩니다. 나중엔 아무렇지 않게 여겨 버리죠. 인간의 신경이란 그렇게 적응하고 무뎌져 버립니다. 제 스승께서도 그걸 ‘익숙함’이라 부르고 주의하라고 하셨죠.”
“…이런 광경도 결국… 익숙해진다는 거군요.”
물론 생명으로서 갖추어진,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적응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정식적 개체로서 볼 땐 그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은 어떻게 보면 가혹한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순응하게 된다는 단점도 컸다.
“그러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전에 움직여야겠군요.”
“어? 어어? 잠깐만… 어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 아니, 맞나? 어라?”
[시스템-‘레오나 앱솔’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찬성은 당황하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그러니까 익숙함을 이야기하려다가 갑자기 훅 돌아서는 익숙해짐을 주의하라는 말로 회전해 버려서 원래 말하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것도… 경험인 걸까? 하하.’
“음, 눈이 뜨였어요! 조언 감사해요! 하긴 비탄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야 한다는 걸! 그것이 귀족의 의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시무룩했다가 찬성의 의도치 않은 말에 갑자기 눈을 번뜩이면서 의욕을 불태우는 레오나 앱솔.
찬성은 그것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저, 저기… 모험가님은 앱솔 공작가의 귀족분이셨습니까? 그러면 큰일입니다. 여기 이첸성의 주인이신 이첸 자작님은 자르엔 백작가 파벌 분이셔서…….”
“역시 자르엔 백작가의 파벌! 제대로 하는 일이 없지!”
“그, 그분들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입니다! 자작님도! 자르엔 백작님도!”
촌장은 떨면서도 용기 있게 레오나 앱솔에게 대들며 자르엔 백작과 이첸 자작을 두둔했다.
보통 평민들은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다른 귀족이 비방하는 귀족을 두둔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는 감히 앱솔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도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촌장의 당당한 행동에 레오나 앱솔은 깜짝 놀랐다.
“…대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는 겁니까? 협박이라도 했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귀족님.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 아무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마을을 정비해야 해서 이만!”
“……?”
촌장은 급히 둘러대면서 그 자리를 도망쳤다.
레오나 앱솔은 물론 찬성도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보면서 따라가려고 했지만, 어느새 사라져 버린 촌장을 찾을 순 없었다.
“엄청 잽싸네요! 이게 무슨 마을 촌장이지?”
“아마 비밀 통로 같은 거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아무튼… 여기 고블린들은 토벌한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른 고블린들이 있는 곳이라면…….”
“지금 고블린이 중요한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이첸 자작과 자르엔 백작이 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가… 저건?”
“레오나 아가씨?”
“따라와요!”
[시스템-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레오나 앱솔(2-3) 긴급 상황]레오나 앱솔 아가씨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한다. 그녀를 따라가자.
조건:레오나 앱솔을 따라가기
‘이게 무슨 일이지?’
“거기 서! 이 수상한 놈! 라이오넬 가드인 내 후각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거기 서라!”
찬성이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가 외치는 방향을 자세히 바라보자 거기엔 수상한 망토를 두른 사람이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오오! 이건 뭔가 재미있어! 이번엔 내가 추적자구나!’
“망토에 검은 개의 문양? 네놈! 자르엔 하운드구나!”
‘아! 자르엔 하운드!’
자르엔 하운드.
‘자르엔 백작가’의 첩보 수집을 비롯한 더러운 일을 맡고 있는 암부 조직이다.
조직원 모두 개들의 종 이름을 사용하는 특징을 가진 이들로, 자르엔 백작 루트로 진행할 때 만나 봤던 이들이었다.
“젠장! 역시 망할 고양이 집안! 어쩔 수 없지!”
아우우우우우우우!
쫓기던 조직원이 품에서 무언가 피리 같은 걸 꺼내 불더니, 이내 늑대의 하울링 같은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백작의 개들답게 개 소리를 내는군요!”
“그러네요. 참 신기하네요.”
“아무튼 점점 거리가 좁혀지니! 반드시 잡아서! 자르엔 백작의 음모를 밝혀내고 말겠어요!”
열의를 불태우며 쫓아가는 레오나 앱솔.
찬성은 따라가면서도 슬슬 뭔가 나올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몸의 긴장을 끌어올렸다.
‘무협 소설 같은 데서 꼭 이런 추적자를 쫓으면 나오는 패턴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겠…….’
아무리 수련이 일상이라곤 하지만 휴식 시간은 있는 법이고, 그동안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유희거리는 제공되는 삶이었다.
고전 무협 소설도 그중 하나로, 실제 ‘파성검각’이라고 하는 한 유파에 속하였기에 허락된 유희 중 하나였다.
그렇게 수풀과 나무로 가득한 숲을 헤치면서 추적자를 쫓고 쫓다가 넘어가자 한 공터에 도달했고, 거기에는…….
‘아, 역시 이 전개다!’
“멍청한 앱솔 가문의 졸개 놈들! 우물쭈물 쫓아오면서 호출 피리를 분 걸 생각 못하다니!”
숲속 공터에는 자르엔 하운드의 망토를 걸친 레인저들이 수십 명.
각자 석궁을 비롯한 무기를 들고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아, 그렇지! 이거지! 천라지망(天羅地網)! 거기에 후방까지 척척 자리 잡아서 막는 센스!’
두근두근!
절정 고수인 주인공을 없애기 위해서 구성하는 포위망, 천라지망!
무협 소설을 보곤 하던 찬성이 꿈꾸던 상황으로, 그의 눈빛엔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찬성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포위망을 촘촘히 구성한 자르엔 하운드들을 바라보았다.
‘우와아아아앙!’
그러는 사이, 자르엔 하운드들 사이에서 키 큰 여성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 말을 걸었다.
아마 그녀가 자르엔 하운드를 통솔하는 대장일 것이다.
“오오? 이게 누구야? 라이오넬 가드의 일원이자, 노예 수용소 관리소장을 맡으셨던 레오나 앱솔 아니야? 엄청난 거물이 이런 변경에 나타날 줄이야!”
“그러는 너희 자르엔의 개들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다. 앱솔 공작의 영지에서 느긋하게 지낼 놈들이 이런 변방엔 웬일로 행차하셨는지?”
“다, 당연히 너희가 저지를 일들을 막으러 온 거지!”
“우리가 저지를 일? 푸, 푸붑,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는 자르엔 하운드의 대장.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과 동시에 더러운 것을 보는 것 같은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 반응을 보니 우리가 하는 일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군. 아무튼 앱솔 공작가의 고양이, 각오는 되었겠지?”
“자르엔 백작가의 개들 주제에! 올 테면 와라!”
콰아아아아아!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레오나 앱솔의 황금빛 아우라와 보호막이 활성화되었고, 찬성의 눈에는 그녀의 상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Lv.40 레오나 앱솔] [생명력:1,500/1,500 보호막:2,500/2,500]‘어라? 능력치가 의외로 평범한데? 아! 지금은 그 라이오넬 가드 장비를 착용한 게 아니구나!’
찬성은 스토리에 따라서 NPC가 보스 몬스터 버전과 일반 NPC로 합류했을 때 능력치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녀가 전용 무장을 착용하지 않아서 약해진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일반 NPC 버전이라곤 해도 주요 NPC답게 유저보단 월등히 강력했지만 말이다.
[시스템-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레오나 앱솔(2-4) 포위망 돌파]자르엔 하운드의 포위망에 갇혔다. 레오나 앱솔을 지키면서 포위망을 돌파하라. 물론 할 수 있다면 싸워 이겨도 좋다.
조건:자르엔 하운드 전원 처치 0/100, 혹은 포위망을 뚫고 해당 위치로 도주
‘…이것도 100명이네. 고블린 퀘스트는 이것의 복선이었던 건가? 아무튼 신나겠는데?’
채챙!
찬성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석궁 화살을 검으로 튕겨 내고, 레오나 앱솔의 등 쪽에 가까이 붙었다.
그녀는 보호막을 두른 채로 작은 버클러로 앞을 막으면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고 있는 상태였다.
“아가씨, 이제 어쩌죠?”
“제가 도주로를 뚫을 테니 당신은 그쪽으로 도망치세요. 애초에 제가 무모하게 자르엔 하운드를 먼저 쫓은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미안해요.”
“아뇨. 개의치 마십시오. 오히려 저로선 반기던 상황이니! 아, 날아오는 화살은 제가 막아 드릴 테니, 그 ‘용맹의 빛’으로 놈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찬성 님…….”
[시스템-당신의 언행으로 ‘레오나 앱솔’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시스템-당신의 행동으로 ‘레오나 앱솔’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시스템-‘레오나 앱솔’의 당신에 대한 호감 상태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상승합니다.]이런 목숨이 위험한 상황을 만든 자신을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용기 있게 나서며 개의치 않는 모습.
거기다 동시에 끝까지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든든한 말까지…….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찬성의 행동과 말에 단숨에 호감도가 오르고 호감 단계가 급상승했다.
“그럼 어디, 둘이서 전설 한번 만들어 볼까요? 오호호호홋!”
“100명으로는 전설이라기엔 모자라지 않을까 싶지만요!”
“오호호홋!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용맹의 빛’!”
“은하검법 비전 2식-펼쳐지는 성운(星雲)!”
자르엔 하운드들을 향해 날아가는 빛의 폭포.
그리고 공격에 전력을 다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찬성은 후방엔 ‘비전 2식’으로 별 구름의 벽을 일으켰다.
이어서 좌측과 우측에서 수도 없이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두 막아 내며 그녀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아… 이거 완전 쩐다!’
물론 찬성은 지금 레오나 앱솔의 호감도 상승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찬성은 그저 자르엔 하운드 100명이 펼친 이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맞서는 것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