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인간은 감수성과 상상을 통해 실재하지 않는 것, 생명이 없는 것에도 감정을 이입하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글자의 혼합물인 시나리오’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엮은 음악’을 느끼며 감상에 젖고, ‘어느 순간의 형상을 고정시켜 놓은 그림이나 사진’을 보며 추억을 상기하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의 죽음’을 보며 슬퍼할 수 있다.
지금의 찬성처럼…….
“안 돼에에에에!”
가슴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레오나 앱솔을 보며 그는 생애 처음으로 절규라는 것을 내뱉으며 손을 그녀에게 뻗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땅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
사실 복선은 사전에 미리 플레이어들에게 암시되어 있었다.
자르엔 백작의 최측근 자르엔 울프의 ‘진도’가 배신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앱솔 공작의 최측근에서도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네 이노옴! 감히!”
“자즈엘! 자네가 어떻게!”
“이런 제길! 다 잡았는데! 여기서 방해가 들어오다니! 하지만 이걸로 알겠지! 네놈들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걸! 베른카 제국이 이 대륙과 세계를 모두 지배할 것이다! 컥! 커컥… 커커커거거거걱!”
그리고 배신자는 퀘스트 여정의 피날레에서 가장 기쁜 순간 나타나서 흉수(凶手)를 뿌렸지만 정작 앱솔 공작과 자르엔 백작을 노리는 데 실패하여 그대로 독을 삼키곤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레오나! 오… 안 돼!”
“레오나아!”
결국 남은 건 그 흉수(凶手)를 대신 몸으로 받아 내고 쓰러진 레오나 앱솔뿐. 앱솔 공작가의 최정예인 ‘라이오넬 가드’가 휘두른 검을 막기엔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강철 갑주는 너무나 약해서 쉽게 뚫려 버린 것이었다.
“아… 찬성… 니임? 목소리… 어디… 계세요.”
찬성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는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눈의 빛은 꺼져 있어서 시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고, 어떻게든 찾으려고 손을 힘겹게 들어 올리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나, 나 여기 있어. 일단… 일단 이런 상황에서 치유… 아니, 포션… 잠깐, 아무튼 뭐라도! 뭐라도 해야……!”
아직 그녀에게 생명의 불꽃이 작게라도 남아 있다는 걸 안 찬성은 다급히 인벤토리를 뒤져서 포션을 꺼내려고 하지만,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천부적인 그의 본능이 알려 주고 있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찬성… 님… 부디…….”
“……!”
그 시간이 너무나 짧았기에 레오나는 결국 마지막으로 하고자 하던 말도 모두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는 동시에 팔이 땅에 떨어졌다.
‘죽음’.
리얼하게 구현되어 실제같이 느껴지던 호흡, 생기(生氣)가 사라지자 확실하게 그녀의 죽음이 느껴졌다.
“…….”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던 자신을 제외하고, 생전 처음 겪는 가까운 타인의 ‘죽음’.
그것을 인식하였을 때, 찬성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동안 그녀와 함께해 온 시간들이었다.
노예 수용소에서 보스로 만난 일, 같이 100명의 자르엔 하운드를 쓰러뜨린 일, 둘이서 수안 영지를 돌아다니며 벌인 일, 후회하면서 나아가고자 한 일…….
모든 회상이 스쳐 지나감과 함께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레오나의 시신과 배신자의 시신을 거두는 다른 라이오넬 가드들과 자르엔 울프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망할 제국 놈들…….”
“……!”
그것을 보자 드디어 충격 속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슬픔이라는 감정이 받아들여지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아!”
“멈춰! 가실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턴 가문의 일입니다!”
찬성은 손을 뻗으면서 그곳으로 가려 했지만 다른 라이오넬 가드와 자르엔 울프가 그를 가로막고 그냥 지나가려 하자 붙잡았다.
“어… 어어… 으아아아아!”
사무치는 슬픔 속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그는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3층 아래에서 기대하고 있던 일행에게도 들려왔고, 그들은 모두 죄책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퀘스트엔 변동이 없는 것 같네요. 그… 레오나 퇴장…….”
“쿠룩, 근데 저 반응을 보면 아주 제대로 스토리 맞으신 거 맞긴 한데…….”
“지지직… 보통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면서 기뻐해야 하는데… 지지직… 어쩌면 좋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미니멈실버에게 향했다.
현실의 찬성과 접점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팀의 브레인인 만큼 찬성에 대한 대책을 정할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크릉~ 이 일에 대한 대책은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경험이 필요해요. 자, 다들 지금 찬성이처럼 누군가의 서사적 죽음이 심금을 울리고, 후유증이 깊게 남을 정도로 슬퍼한 기억이 있나요?”
“쿠룩, 최근이라면 역시 귀멸의 렌ㅁ쿠 상이죠. 쿠룩… 훌쩍.”
“우리 조카랑 같이 그거 봤는데, 한 2주 정도인가… 난리였지. 아, 나는 한 3일 정도…….”
“지지직… ‘저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요. 지지직… 보고서 인생이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마음이 혼란스러웠죠… 지지직…….”
“크릉, 갑자기 고전 문학이…….”
예상을 능가하는 ‘살덩이는나약하다’의 기묘한 고백에 다들 당황했지만, 아무튼 사람이라면 감명 깊게 본 작품에 의해서 얻은 감동, 슬픔의 후유증은 결국…….
“크릉… 시간으로 치료해야죠. 주변에서 어떻게 뭘 깝죽거린다고 위로가 될 리가 없어요. 가능한 한 조심하며 말이죠.”
“쿠룩, 레오나 코스프레라도 하시려는 줄 알았죠. 쿠룩.”
“크릉, 그거 역효과예요. 말이 되는 소리를…….”
“지지직… 코스프레… 지지직…….”
“농담이라기엔 이번 건 질이 안 좋다, 야. 어? 문이 열린다.”
저택의 문이 열리고, 찬성의 모습이 드디어 드러났다.
그는 잔뜩 울어서 팅팅 부은 눈과 영혼이 빠진 것 같은 힘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나왔다.
그러곤 일행에게 다가와서는 입을 열어 물었다.
“…이거… 이렇게 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어조였지만 파티원들은 전부 피가 마를 것 같은 공포를 일제히 느꼈다.
다들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면서 아까 말한 ‘아무것도 안 한다.’를 지키기 위해 일단 입을 닫는데, 미니멈실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릉, 대강은… 알고 있었어. 나는 이미 다른 캐릭터로 반대쪽 루트를 탔으니까 말이지.”
“그렇군요. 후우우우…….”
그 말을 끝으로 찬성은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없이 인터페이스 창을 열고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퀘스트:화합을 향하여(8)]자르엔 백작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에서 눈치채야 했을까? 앱솔 공작가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었다. 자르엔 백작과 앱솔 공작을 노린 흉수는… 레오나 앱솔의 희생으로 막아 내었다. 슬픔과 비탄, 그리고 놀라운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제국은…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조건:세이온으로 가서 앱솔 공작 만나기
“세이온으로… 가죠. 저는 세이온 귀환이니까 문제없으니 거기서 보죠.”
침착을 넘어서 무채색 같은 어조로 말한 찬성은 먼저 가기 위해서 귀환 스크롤을 찢고 사라졌다.
“저거… 무슨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지지직… 저는 막 원망하거나 분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지지직…….”
“크릉, 우리가 그동안 뉴비라는 면만 보고서 미숙한 것처럼 여겼지만… 쟤, 엄연히 한 검의 문파에서 심신의 수양과 격을 인정받아 면허 개전을 이룬 아이라서 견디는 게 아닐는지.”
“쿠룩, 아뇨. 저건 견디는 게 아닙니다. 아마……! 아, 우선은 따라가 보죠. 너무 오래 머물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요.”
근손실보험의 말에 동의하듯 일행도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서 우선 세이온으로 귀환했다.
그러곤 곧바로 공작가 저택 내에 마련된 찬성의 방으로 집결하고자 하는데… 알다시피 찬성의 방은…….
“…….”
‘하필이면 레오나 앱솔 옆방!’
‘지지직… D.E사, 정말 악마 같네요! 지지직…….’
‘쿠룩, 살덩이 님 말에 공감입니다.’
“크릉, 우리 왔어. 가자.”
끄덕.
미니멈실버는 멍하니 레오나 앱솔의 방문을 바라보고 있던 찬성을 깨우고 다 같이 앱솔 공작의 방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검은 상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서류를 무섭게 처리하고 있는 앱솔 공작의 모습이었다.
“자네들 왔나?”
“…….”
“그래, 자네도 왔군. 레오나와 함께 일하고 저택으로 올라왔던 친구. 후우우… 그래.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지금 제정신인 상태가 아닐세.”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담배를 쫘악 빨아들인 그는 바닥에 그대로 재를 털어 버리고, 숨을 내뱉은 다음 계속 이야기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혈육… 그것도 조금 의욕적인 게 탈이지만 뜻을 같이하고, 긍지 있던 아이가… 제국의 손에 떠난 충격이… 매우 크네. 후우우우… 안 피우곤 못 버티겠군.”
탁… 탁!
그가 받은 충격이 크다는 걸 보여 주는 장치로 앱솔 공작은 담뱃재가 고급 카펫과 책상을 더럽히는 걸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털어 버리곤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 버리기까지 했다.
“후우우… 잃고 보니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금 깨닫고 있어. 아무튼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해야겠지. 우선… 그 아이는 일단 가문의 묘에 매장은 해 두었네. 장례는 혈족 일원들을 모아서 조용히 치르기로 했네.”
“…….”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의 죽음을 헛수고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제국 놈들을… 엿 먹여야 하는 거니 말이지. 후우우…….”
담뱃재가 또다시 땅에 떨어진다.
가족을 잃은 그 또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슬픔보다도 더 중요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어쨌든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보수는 건네줘야겠지. 받게나.”
[시스템-‘퀘스트:화합을 향하여’를 완료하셨습니다.] [시스템-‘업적:시즌1-화합의 시작(조건:시나리오 클리어)’을 달성하셨습니다.] [시스템-새로운 사이드 퀘스트들이 개방되며 일부 전직 조건을 달성합니다.] [퀘스트 보상]대량의 경험치(31퍼센트), 금화 32개, 은화 50개, 대량의 앱솔 공작가 평판
(영웅)사자 문양의 백금 훈장 장신구
[시스템-레벨 업! 당신은 39레벨이 되었습니다.]이야기가 일단락되어서 주르륵 올라오는 각종 시스템 메시지와 보상. 일반적이라면 좋아하거나 아이템 보상에 대해 떠들거나 할 텐데, 다들 숨소리도 내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였다.
“…이걸로 끝입니까?”
“일단 공적인 거는 끝났고… 이제 사적인 게 남았지. 후우우… 찬성이라고 했나? 자네에게 줄 게 있네. 이리 와 보게.”
찬성을 직접 부르는 공작. 찬성이 천천히 다가가자 공작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