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알다시피 검을 들고 기사가 되기로 맹세한 자라면 언젠가 급작스럽게 맞이할 죽음을 대비해서 유언 혹은 유품을 남기도록 하고 있네. 그것이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지.”
“유품…….”
“그래. 그리고 그 아이는 노예 수용소 소장직에서 내려온 뒤, 기존에 적어 두었던 유언장에 추가로 하나의 유품을 맡겼네. 혹시 자신이 어떻게 될 경우 자네에게 주라고 말이지.”
[시스템-‘(일반)작은 상자(귀속)’를 입수했습니다.]앱솔 공작이 건넨 것은 작은 상자였고, 찬성의 손에 올라가자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수납이 되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 줄 건 줬으니… 이제 나가서 열어 보게나. 나는 더 이상 슬픔에 젖어 있을 시간도 없으니 말일세.”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것과 달리 앱솔 공작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의무가 있기에 슬픔도 모른 척해야 하는 현실. 그는 이제 목까지 잠기기 시작했는지 찬성과 일행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하고는 일에 몰두했다.
“…….”
끼익…….
공작의 방을 나온 찬성. 일행은 여전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고, 찬성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았다.
“…반지?”
[시스템-‘(유일)알기에바(Algieba), 쌍성(雙星)의 반지(귀속)’를 획득하셨습니다.] [시스템-‘업적:유일무이(唯一無二)(조건:유일 등급 아이템 획득)’를 달성하셨습니다.]“……!”
“헙?”
“지지직……!”
“……!”
두 개의 별과 사자의 문양이 작게 새겨진 황금의 반지. 심상치 않은 마력이 맴돌면서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게 보통 아이템이 아닌 듯 보였는데…….
‘유일 등급’!
파티원이라 공유되는 획득 메시지를 보곤 다들 소리를 낼 뻔할 정도로 번뜩 놀라며 기겁했다.
‘유일(唯一)’. 이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에서 오직 하나뿐인 아이템이라는 의미의 등급.
소유자에게 귀속되어 거래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절대로 판매, 파괴가 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유저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모든 유저들이 선망하는 등급의 아이템으로서 특수한 고유 옵션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레오나 앱솔과 어울리면서 주어진 일반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급의 전용 퀘스트 라인을 모두 돌파하고, 그녀와의 친밀도도 높게 쌓아서 메인 퀘스트 시나리오를 마친 자에게 주는 ‘D.E사’의 선물. 일반적인 유저들이라면 뛸 듯이 기뻐하면서 바로 옵션을 확인하고 난리가 났겠지만…….
찬성은 아직 그 정도로 게이머는 아니었다.
“…하아아~”
아이템의 가치보다는 레오나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 찬성은 한층 서글퍼진 표정으로 한숨을 푸욱 쉬며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 말을 남긴 뒤 그대로 게임을 종료하는 찬성. 파티원들은 그제야 주박에서 풀려난 듯 숨을 몰아쉬면서 한결 편한 모습이 되었다.
“후아아아아아…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쿠룩, 유일 아이템이 나왔는데! 와아아아! 보통 게이머들이라면 미칠 건데… 이거 우리가 미쳐 버리겠네! 쿠룩.”
“지지직… 그래도 아이템보단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역시 궁금하긴 하네요. 하아아아~”
“크릉, 엄연히 기삿거리급 이슈니까요. 너튜브, 인터넷 신문은 물론… 공중파까지 탈걸요?”
미니멈실버의 설명대로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의 ‘신화’와 더불어 최고 아이템 등급 중 하나인 ‘유일’은 그 가치를 따로 매길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점만으로도 공중파 뉴스까지 올라갈 만한 대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찬성 님의 전설이 또 한 페이지 추가…….”
“쿠룩, 이거 너튜브에 올리실 겁니까?”
“저도 정도라는 게 있어요. 조회 수에 미치긴 했지만 말이죠. 크릉…….”
적어도 찬성이 멘탈을 회복하고 나서 차후에 승낙을 받아도 될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아픈 상처를 쑤실 생각은 없는 그녀였다.
“으음, 찬성 님이 회복할 때까지는 일단 다들 각자 사이드 퀘스트랑 파밍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쿠룩, 이런 건 사실 만나서 같이 술 한잔 걸치면서 위로 타임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야. 쿠룩.”
“은근슬쩍 정모 각 잡냐? 헛소리 말고, 야, 같이 전문 기술 퀘나 하러 가자.”
“쿠룩, 아니…….”
허튼소리를 하는 근손실보험을 자비 없이 끌고 나가는 전국건강협회였다.
결국 해산되는 분위기에 미니멈실버와 살덩이는나약하다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퀘스트를 하러 움직였다.
‘휴우~ 나는 일단 도적 길드에 갖다 놓고 나가서 확인해야겠어.’
‘지지직… 조심스럽게 귓말 보내 볼까…….’
물론 기묘한 동상이몽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
찬성에게 있어 상실의 아픔은 딱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양다리를 잃고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은 절망감을 겪었던 때와 비교하면…….
“견딜 만은… 하긴 한데…….”
그는 해가 져 가는 오후의 빛에 어두워진 방 안에서 나와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그저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아…….”
작게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보면서 여기저기 ‘레오나 앱솔’이라는 키워드를 쳐서 정보를 하나둘 찾아보면서 그녀가 어떤 존재였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필연(必然)이었다는 건가…….”
위키,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레오나 앱솔’은 어떻게 해도 그곳 혹은 다른 곳에서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하아아…….”
마음의 먹먹함과 갑갑함이 더 커지는 찬성. 이렇게 될 운명이라면 대체 자신과 그녀는 왜 존재하는 거란 말인가?
대체 D.E사는 왜 이런 시나리오를 준비했단 말인가?
“하아아…….”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오가면서 찬성은 여전히 시나리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후유증이 어느 정도냐면, 평소 같았으면 그의 예리한 감각이 진작 눈치챘을 문틈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희의 시선도 못 느낄 정도였다.
“생각보다 중증이네. 금방 풀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더 오래 걸릴지도?”
그녀는 퀘스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찬성이 걱정되어 결국 게임을 나와서 보러 왔는데… 예상대로 중증이었다.
그가 게임 뉴비라서 보다 더 순수한 심성을 가진 점도 있었지만, 초인적인 집중력 및 감각을 가진 만큼 더 깊게 빠져 있을 테니 빠져나오는 것도 오래 걸릴 것이다.
‘…진짜로 레오나 앱솔 코스프레라도 해 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자 진짜 큰일 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진 그녀는 일단 분위기 환기라도 시켜 주기 위해서 근손실보험이 말한 ‘무리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가격 비싸! 이러면 그냥 내가 직접 만들고 말겠다. 옷감이랑 소재 내가 모아서 만드는 게… 아, 그럴 시간이 없지! 포기해야겠네.’
이미 생활 유지, 게임, 너튜브 편집 등등… 하루 24시간을 빠듯하게 사용 중이라서 그녀에겐 코스프레용 옷을 만들 시간의 여유 따윈 없었다.
“…그럼 결국 쟤가 스스로 빠져나오길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에휴… 히익?”
“…….”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고개를 돌리자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와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찬성이 있었다.
“어, 언제 왔니?”
“누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응? 부탁? 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엔 아까 전 보았던 ‘레오나 앱솔 코스프레’ 복장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찬성 쪽에서 먼저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는 생각을 한 그녀는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아, 아무리 위로를 위해서라지만… 미쳤어. 미쳤어. 내가 미쳤어! 정말! 아으으으으!”
그리고 여기 민희가 도저히 실행하지 못한 벽을 넘어 버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결제를 마치고 난 뒤 부끄러움이 올라온 건지 머리에 쓰고 있던 고글을 벗어 던지고 작은 가방같이 생긴 기계를 내려놓곤 침대 위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굴렀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너무 무모하며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실의에 빠진 그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아아… 진짜로 한번 만나 보고 싶은데… 무리지.”
저 기계가 없으면 현실에선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몸이다.
“하아, 그래도 뭐라도 해 드리고 싶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지금 이어진 이 귀한 인연을 소중히 하기 위해 다시 일어나 기기를 머리에 쓰고 시야를 회복한 다음 휴대폰을 열었다.
***
다음 날 오전.
‘부탁이 이런 거일 줄은… 하아아~’
찬란한 햇빛이 눈을 부시게 만드는 가운데 최민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찬성의 휠체어를 밀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제 찬성이 한 부탁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어느 산에 데려다 달라는 것. 산 입구엔 ‘이곳은 사유지입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철책이 쳐져 있었는데, 찬성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금 후회가 되긴 하지만… 승낙했으니……!’
실의에 빠져 무기력해질까 두려웠던 그가 한 부탁이기에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차량으로 산 밑의 주차장에 데려와서 지금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 그녀는 찬성의 휠체어를 밀면서 엄청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젊다고 하더라도 늘 집에만 있고, 운동은 따로 하지도 않으며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는 그녀가 갑자기 대비도 없이 산행을 하게 되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생각해 보니 누님에게 이 산은 좀 힘든 곳이라는 걸 깜빡했네요.”
“아, 아냐… 괜찮아. 하아… 하아…….”
“그냥 저 혼자 올라가도 되니까 쉬었다가 내려가심이…….”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다친 사람을 혼자 둘 순 없지. 하아… 하아…….”
말은 이렇게 해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찬성 혼자 올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근성으로 찬성의 휠체어를 밀면서 쭉 올라갔다.
‘내가 받은 은혜도 있고, 얘가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도움을 청하겠어! 죽더라도 여기서… 어?’
“멈추십시오.”
그렇게 힘겹게 올라가는데, 길 위에서 갑자기 낯선 목소리와 함께 하얀 도복을 입은 듬직하고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나타나 찬성 일행에게 경고를 보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모르지만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그러니 법적 처분 및 신고가 두려우시다면 당장 내려가십… 어? 잠깐만… 설마? …대, 대사형(大師兄)?”
“오랜만이야, 빌궁(Bilguun) 사제.”
자신을 알아보고 놀라는 그에게 찬성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의젓한 태도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파성검각의 제자 빌궁, 무사히 돌아오신 대사형께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빌궁이라 불린 사내는 당황하며 뛰어 내려와 그대로 찬성의 앞에 엎드리고는 산이 떠나가라 외치며 예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