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스승님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건 없어. 어서 일어나, 빌궁. 더구나 무사히라고도 할 수 없지. 이런 상태인지라. 검각을 나온 이상 대사형도 아니고…….”
“아, 아닙니다! 그래도 대사형은 대사형입니다.”
“아무튼 빌궁, 스승님을 뵈러 왔는데… 안내해 줄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아, 아니! 저기, 그 휠체어! 제가 모시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자신에게 허리를 숙여 가며 부탁하는 거한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휠체어를 그에게 맡겼다.
‘평소 보던 거랑 너무 달라서 놀라울 지경이야.’
찬성이라는 인간이 대단한 것은 알았지만 위엄이 이 정도였나 싶은 민희는 어안이 벙벙했는데, 저 건장한 체구의 빌궁이라는 사내가 꼼짝도 못하는 걸 보니 새삼 그가 다시 보이는 그녀였다.
“다들 잘 지내고 있어?”
“물론 모두 수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양 사저(師姐)랑 아사쿠라(浅倉) 사제는 좀 어때?”
“그… 다 같이 문병 갔을 때, 생명이 끊어진 것 같은 대사형을 보고 깨어나라고 그 난리를 쳤는데… 눈치 못 채셨습니까?”
“어. 병원에서의 일은 거의 기억에 없어서 말이지. 하하, 미안하네.”
깨어나서 자신의 처지를 알아채고 절망했을 때부터 마치 인형처럼 모든 것을 놓아 버린 그는 정말로 그때의 일을 기억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튼 다들 대사형을 보시면 기뻐할 겁니다.”
“그건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나저나 같이 오신 분은 대사형의 아내분이십니까?”
푸우웁!
빌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희는 한숨 돌리면서 챙겨 온 물을 마시다가 허공에 뿜어 버렸다.
아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저… 얘, 도, 돌봐 주는 사람이에요!”
부친이 말한 숨은 진실이 있긴 하지만 저쪽이 직접 언급하는 게 아닌 이상 분란거리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일단 둘러대는 그녀였다.
“빌궁, 애당초 입원했다가 요양 중인 내가 갑자기 말없이 결혼 같은 걸 할 리가 없지 않느냐.”
“하지만 스승님 말씀으로는 약혼자가 생길 거라고 하셨는데요? 전 그분인 줄 알았죠.”
“그렇다고 해도 한 스텝을 더 간 게 아닌가? 그나저나 난 그 약혼자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데?”
“어라? 그럼 제가 잘못 들었거나 이야기가 잘못 전해진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대사형.”
“아니다. 괜찮다.”
그렇게 빌궁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약 20분간 산을 더 올라가고서야 드디어 수련하던 곳에 도착한 찬성과 민희였다.
‘생각 외로… 현대적이네?’
민희는 처음엔 ‘파성검각’이니 하는 무협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도복까지 입은 걸 보고는 대뜸 전통식 건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있는 것은 깔끔한 콘크리트 건물들이었고, 바닥은 블록으로 되어 있고 수련하는 곳엔 탄성 있는 재질의 바닥재가 깔려 있어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아니, 근데 얘 하는 행동이 완전 산골 촌놈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저기… 오! 다 수련하고 있네?’
“하나! 둘! 하나! 둘!”
“자세를 똑바로! 그래서야 비전 1식도 배울 수 없다! 다시!”
그리고 수련장에서는 약 100여 명의 소년, 소녀들이 목검을 휘두르면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와… 인종이 다양하네? 찬성이랑 저 사람만 봐서 동양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이는 전부 어리네?’
한참 목검을 휘두르는 100여 명의 소년, 소녀들은 백인, 흑인을 비롯해서 세계 각지의 인종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이런 무협풍의 집단은 뭔가 폐쇄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반적인 체육 교습소 같은 모습이라서 상상하던 것과 달라 민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실은 냉혹하다는 건가?’
“이봐! 다들! 대사형이 돌아오셨어! 어서들 와 보라고! 하하하!”
‘힉!’
빌궁이라는 사내가 휠체어를 밀고 가며 큰 소리로 수련하는 이들을 향해 외치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찬성과 민희 쪽으로 일제히 몰렸다.
“외지인? 허가 없이 아무도 못 오는 거 아니었어?”
“대사형? 찬성 대사형?”
“교통사고 당했다던 대사형이?”
“어? 정말이다! 진짜 대사형이다!”
“와아아아아아!”
10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두 찬성을 알아보고는 함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개중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반응하는 모습도 섞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대사형’이라는 단어만큼은 한국어로 쓰고 있는 게 신기했다.
“자, 다들 정렬! 대사형님께서 돌아오셨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대사형!”
“음, 고마워. 윌리엄 사제.”
‘와아아… 영어식 이름에 사형, 사제가 들어가니까 더럽게 어색해!’
정통 무협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민희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윌리엄이라는 이가 양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것에서 엄청난 어색함을 느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대사형!”
그의 뒤를 이어서 지시대로 정렬한 100여 명의 소년, 소녀들 또한 손을 모으고 동시에 인사하며 찬성에게 예를 표했다.
그것을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받는 찬성의 모습이 너무나 남달라 보여 민희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얘가 이렇게 위엄 있는 애였나?’
아까도 다시 보였는데, 이제는 찬성이 고고한 왕좌의 주인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민희였다.
“다들 고맙다. 나는 그럼 스승님을 뵈러 갈 터이니 계속 수련하도록 해라. 빌궁, 여기서부턴 누님의 도움을 받거나 내가 직접 가면 될 것 같으니 너도 네 볼일을 보거라.”
“아닙니다. 계속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엄연히 손님인데… 수고를 끼칠 수 없습니다요. 더불어 오랜만에 만난 대사형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으음, 알았다. 그게 맞는 것 같구나. 누님은 엄연히 손님이었지. 내 생각이 짧았다. 빌궁, 그럼 좀 더 부탁하마.”
“아닙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사형!”
대체 찬성의 위엄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 빌궁이라는 남자는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찬성을 계속 모셨다.
그리하여 빌궁과 함께 찬성과 민희는 우뚝 솟은 건물 내로 들어가는데… 밖은 현대적이었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단숨에 문화가 바뀌어 버린 듯 고전 동양풍의 풍경이 보여 민희는 깜짝 놀랐다.
‘…그래, 이거야. 이게 무협이지.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좀 깨네.’
그러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최상층으로 향하는 세 사람. 최상층에 도착한 그들은 ‘파성검각’이라 적힌 나무 현판이 걸려 있는 커다란 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스승님은 계시나?”
“늘 계시죠. 따로 손님을 만나러 가시는 일이 적으니까요. 대사형이 쓰러졌을 때 가신 걸 제외하고는 말이죠.”
“음, 그렇군.”
“그럼 노크하겠습니다. 스승님! 저 빌궁입니다. 찬성 대사형께서 찾아왔습니다.”
노크를 하면서 찬성의 방문을 알린 빌궁.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한차례 들리더니 급하게 문이 열렸다.
“차, 찬성이가 왔다고? 아, 아니, 오면 온다고 기별을 하고 올 것이지!”
‘커?’
문을 열고 등장한 찬성의 스승을 본 민희는 깜짝 놀라는데, 일전에 보았던 대로 자애롭고 연로한 노인의 모습인 건 알고 있었다. 그래, 얼굴만 보면 새하얀 머리칼과 긴 수염, 자애로운 인상, 전에 봤던 그대로였는데…….
‘얼굴이랑… 몸이 너무 달라!’
인상만 보면 신선 같은… 그런 느낌인데, 갑자기 나타난 육체는 2미터가 넘는 키에 전신에 근육이 우락부락한 무시무시한 거인이었던 것이다.
핏줄이 선명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 입고 있는 도복이 터질 것 같은 모습이 경악스러운 민희였다.
그는 찬성을 보고 반갑다는 듯 인사하며 휠체어째로 그를 들어 올려 눈을 맞추며 말했다.
“요호호! 화상 통화로 보았을 때보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예. 조금 놀래 드리고 싶었습니다, 스승님. 불초 제자 윤찬성, 인사 올립니다.”
“오, 그래. 일단 들어와라. 빌궁 너는 가서 소식을 모르는 다른 제자들에게 기별을 넣고 오거라. 양이랑 아사쿠라가 특히 반길 게다.”
“두 사람은 지금 어디에 갔습니까?”
“둘 다 내 심부름을 하러 산에서 내려갔단다. 자자, 거기 처자도 어서 들어오시오. 허허허.”
스승의 안내에 따라 내부로 들어간 찬성과 민희는 손님맞이용 소파에 앉아서 스승이 직접 차를 마련해 오는 것을 기다렸다.
본래라면 찬성이 움직여야 했지만 스승은 찬성의 다리 사정을 알고 있기에 한사코 거부하면서 끝내 직접 차를 타 와 그와 민희에게 내밀었다.
“자, 일단 들거라. 정말이지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 같구나.”
“호전되었다고도 할 게 없습니다, 스승님. 애당초 이 다리를 잃은 게 문제이니 말이죠.”
“그건 정말… 불행한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내 제자들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별인 네가 그렇게 되니 나는 물론이고, 다른 제자들까지 모두… 네가 살아 있지만 죽은 것 같은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지.”
“면목 없습니다.”
“특히 ‘양’과 ‘아사쿠라’가 비통해하는 게 가장 컸지. 둘 다 널 목표로 노력하던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둘은… 지금 괜찮습니까?”
“일단은 전에 네가 걸었던 통화를 녹화해서 보여 주니 기뻐하더구나. 그 덕에 그 둘도 다시 회복한 상태란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 그러면서도… 정말 죄송합니다. 저만 생각해서…….”
“아니, 너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셈이다. 사실상 아이나 다름없지.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찬성은 ‘양’ 사저와 ‘아사쿠라’ 사제를 떠올리자 죄책감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대사형이나 되는 몸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둘의 근심을 덜어 주지 못하고, 그저 게임이나 즐기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닿았지만…….
‘찬성 님!’
‘아니, 아니야. 레오나… 너도… 너도 나에겐…….’
머릿속에 레오나 앱솔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자 찬성은 자신이 했던 생각을 바로 부정하며 혼란스러워했고, 그녀에 대한 기억에 괴로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구나. 제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이야기하자면 꽤 깁니다, 스승님.”
그렇게 찬성은 본격적으로 병원에서 퇴원하고 갔을 때의 일과 ‘게임’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스승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