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거기서 그… 그 뭐더라? 누님, 그 쓰러지거나 무력화되었을 때를 공격해야 하는 거… 뭐였죠?”
“그로기… 라고 부르지. 남들은 전력을 쏟아붓는 타이밍인데, 거기서 넌 오히려 비겁하다면서 기다렸지만…….”
“요호호~ 그것참… 우리 찬성이다운 일이로고…….”
물론 찬성은 말재주가 그리 좋지 않았고, 아직 미숙한 게이머라서 중간중간 게임 용어는 민희가 해석해 줘야 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스승은 다 알아듣는 것도 모자라서…….
“과연 그 게임은 구현도가 높아서 그렇게 되는 거였구나. 더구나 ‘검성의 경지’라는 스킬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면… 요호호… 나중에 밸런스 패치가 될 가능성도 있을 텐데…….”
“불초 제자… 게임이라곤 해도 감히 ‘검성’이라는 지위를 받게 되니 당혹스러웠습니다.”
“음? 허허허, ‘양’이나 ‘아사쿠라’였다면 몰라도 너는 충분히 ‘검성’이라 자부해도 된다.”
“…아닙니다, 스승님. 전 여전히 갈 길이 먼 자입니다. 그것을 절실히 깨달은 게…….”
게임에 대해 이상하게 밝은 스승의 반응을 제쳐 두고, 찬성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갈수록 대부분 던전을 잘 돌았다는 이야기와 적대적 유저와 PVP를 했다는 것들뿐이라서 순식간에 넘어왔고, 대망의 레오나 앱솔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시작은 그저 ‘가슴 뛰는 강적’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여태껏 상대했던 보스급 강적보다도 월등히 강력한 존재였으니까요…….”
“외모라든가? 그런 건?”
“네? 아…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미인이지만 저는 그리 상관하지 않아서…….”
“그렇군.”
“하지만 그 이후…….”
퀘스트의 이야기, 그녀와 함께한 격전, 모험, 그것들을 통해서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는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나갔고, 그 뒤 결말까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만… 그 이후 그녀의 죽음이 필연(必然)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먹먹함, 그 모든 혼란들이… 제 눈앞을 가릴 때에야, 그제야 스승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이리로 온 것입니다. 정말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모습만 보이는군요.”
“요호호, 아니다. 네 상태를 알고 있은즉, 오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 할 자가 없다. 오히려 인간미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검사’여서 걱정될 정도였지. 물론 내 입장에선 다른 아이들에게 보일 완벽한 모범이 있어서 편했지만 말이야. 대부분은 한눈을 팔거나 ‘검’ 이외의 것에 시선을 돌리거든. 시대가 시대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허허.”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나도 얘만 보면 진짜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대강 집만 지어 놓은 곳에서 온 줄 알았지.’
옆에서 듣던 민희는 찬성의 스승의 말을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의 말만 들으면 무슨 무협 소설 전통인 양 낙후된 시설에서 수련할 것처럼 생각됐는데, 실제로 와 보니 인테리어는 전통을 따른 무협풍이지만 시설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곳이었다.
찬성이 별종 중의 별종일 뿐, 생각해 보면 다수의 수련생들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면 여러 관리 측면에서 봤을 때 시설이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그동안 찬성이 보여 왔던 모습 때문에 이곳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인데… 근데 몇 번인가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낙후된 곳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것이냐면?
“특히 가관이었던 건… 허허, ‘비검’을 깨우친다고 혼자 또 올라가서 동굴에서 야숙 생활을 한 점이었지. 그때 귀기 어린 눈으로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더구나.”
“그거야 정말 잡힐 것 같은 그 찰나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한눈팔다가 그 귀한 순간을 놓칠까 봐서 그랬죠. 하나 그것도 옛이야기… 지금은 그저 슬픔과 혼란 속에 괴로워하며 방황하여 가르침을 구하는 못난 제자일 뿐입니다.”
“흐으음… 아무래도 이건 단순히 말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그렇다면…….”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읏챠…….”
자리에서 일어난 찬성의 스승은 자신의 책상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갑자기 방에 있던 책장이 움직이더니 비밀의 방 같은 게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무슨 비밀 기지야? 게다가 저건… ‘팬텀 드라이브-2’? 심지어 2대?’
찬성은 담담한 반면 그 안에 있는 것을 본 민희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한 대도 겨우겨우 구한 ‘팬텀 드라이브-2’가 무려 2대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찬성이 쓰는 것과 같은 기종으로 그녀의 부친이 다시 구해 준다고 했는데도 해외 배송이 밀려서 오지 않고 있는 그 캡슐이었다.
“자, 들어가자. 참고로 둘 다 외부 네트워크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기본 스캐닝과 디폴트 존 설정만 되어 있어서 그냥 들어가면 된단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신선 같은 얼굴로 저런 말 하니까 완전 사이버 펑크! 하지만. 오오… 사제 간에 역시 ‘검’으로 대화를 한다는 건가?’
역시 ‘검사’끼리는 말보다는 ‘검’으로 대화한다는 것인가?
무협의 왕도 중의 왕도, 첨단 과학과 무협의 만남, 다리를 잃어 현실에서 검을 휘두를 수 없는 제자와 가상 세계에서 다시 ‘검’으로 대화!
“요호호, 거기 손님은 잠시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길지도 모르지만… 되도록 짧게 대화하고 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누님.”
“아, 예!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편하게 대화 나누고 오세요.”
그리고 스승과 찬성은 나란히 놓인 캡슐에 들어갔고, 둘이 누워 있는 캡슐을 바라보며 민희는 과연 어떤 경이로운 ‘검’의 대화가 오갈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서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아, 정말 궁금하네. ‘팬텀 드라이브-2’, 음… 아, 역시 이거 기본 설정 상태로만 쓰고, 딱히 암호라든가 걸지 않아서 인터페이스가 그냥 열려 있네.”
외부 패널과 상태를 보자마자 그녀는 아무런 보안이 걸려 있지 않은 걸 알게 되었다.
즉, 마음만 먹으면 내부 상황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상태. 하지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볼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포기하고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
“흠! 하아아앗! 하앗! 하앗!”
“더 크게! 기합을 넣어서! 요호호! 허이얏! 허얏!”
“하아아아아!”
어두운 공간 속 희미하고 강렬한 빛들이 현란하게 오가는 곳에서 찬성은 스승과 함께 기합을 넣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전력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휘두르는 것으로 인해 어둠이 갈라지고, 빛의 선들이 아름답게 춤추었다.
『샛별의 환생으로 당신에게 도달하고 싶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
화려한 음악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추는 핑크빛 머리칼에 새하얀 복장을 한 미소녀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최고다! 미카 짜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요호호! 좀 더 힘 있게 흔들지 못할까?”
“…스승님, 대체 이게… 뭡니까?”
“버추얼 아이돌이다! 모르는 게냐? 요호호! 그녀의 이름은 미카 짱! 가상 아바타를 사용한 아이돌이지!”
설명을 들어도 알아먹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지금 하는 행동과 눈앞의 상황에 여태껏 품고 있던 슬픔과 혼란이 싹 날아가 버리는 레벨의 충격을 받은 찬성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돌은 대중문화로서 노래하고 춤추는 소년, 소녀들이고, 이름은 미카… 짱이라는 걸 보면 일본식인 것 같고… 가상 아바타는?”
“말 그대로, 그리고 보는 그대로다. 저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핑크빛 헤어부터 시작해서 외모, 옷 모두 가상 아바타다. 물론 저 움직임과 노래 자체는 진짜지만…….”
“…그 말씀은 가짜랑 진짜가 섞인 것이… 란 말씀이신지요?”
“그렇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
순간 말실수를 했다 싶은 찬성이었지만, 그의 스승은 순순히 눈앞의 아이돌이 가짜와 진짜의 혼합물인 걸 인정했다.
저 아바타를 다루는 진짜는 저 가상 아바타의 외모 뒤에 숨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럼 어째서…….”
“요호호~ 어째서일까? 요호호~ 진짜와 가짜의 개념이 혼란스러운 것을 보며 환호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그, 그렇군요. 이 제자,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은 찬성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이면서 실언을 했음을 사죄했다.
저 아이돌을 가짜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레오나를 가짜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괜찮다. 고개를 들어라. 너는 어째서 내가 그녀의 팬이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불초 제자의 눈으로는 물론 아름답고 화려하며 노래랑 춤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찬성과 스승이 대화하는 도중에도 가상 아이돌은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가상 아바타라곤 하지만 스승의 말에 따르면 그 안에는 진짜 인간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외모를 빼고 춤과 노래는 진짜라는 것이었다.
미카 짱이라 불린 아이돌의 춤을 계속 보던 중 찬성은 무언가 번뜩였고, 스승에게 답을 했다.
“그… 노래에 대해선 제가 견식이 모자라 모르겠으나, 춤에서 ‘심기일체(心機一體)’의 경지가 보입니다. 아마 스승님께선 그걸 보시고 애호하시는 거라 사료되옵니다.”
“역시 찬성이! 너구나! 요호호! ‘양’과 ‘아사쿠라’는 전혀 눈치 못 채고는 ‘저속합니다.’라든가! ‘하찮군요.’라면서 무시해 버렸는데! 너만큼은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눈치챘구나!”
스승은 박수를 치면서 정답을 맞힌 찬성에게 감탄했다.
오악(五嶽)도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정상에 같이 올라 볼 수 있는 자가 있으면 더욱 즐거운 법.
그런 만큼 제자들 중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시야의 경치를 바라보고 눈치채 준 찬성이 대견한 것이었다.
“한데 너는 저 춤과 노래가 언제까지 갈 거라 생각하느냐?”
“예? …볼 수 있다면 언제든 아니겠습니까?”
“내가 말하는 건 저 아이돌이라고 하는 가수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니라.”
“글쎄요. 인기가 있으면 오래가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스승님이 좋아하시고, 저 정도 ‘심기일체’의 경지에 이른 아이돌이라면 필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겠지요.”
“아니. 보자, 현재 인기 순위로 치면 아마… 최고로 흥행했을 때 기준으로 순위가 15위에서 20위 정도 선. 팬덤이 서서히 쇠락해 가고, 내부자 정보에 따르면 길어야 올해 아니면 내년쯤 은퇴할 거라 예상되는 아이돌이지.”
“…내년에 은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총 활약한 기간은 3년 정도이려나? 허허… 그래서 나는 더더욱 애절하게 가상 라이브 티켓을 구하고 있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스승님은 어떻게 그걸 아시면서도…….”
팬덤이 쇠락하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곧 은퇴한다는 걸 알고도… 이별과 슬픔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필연(必然)을 마주하면서도 어떻게 태연히 전진할 수 있는 것인가?
“허허, 그 모든 게 인생을 장식하는 추억이고, 즐거움이라는 거다, 제자여.”
“추억… 즐거움.”
“그저 살아만 있는 ‘개념적인 생존’이 아니라 즐거움, 행복, 추억, 삶의 페이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지.”
“채워… 나간다.”
“그래. 수십 년간 나는 ‘검’을 단련하면서도 그것을 채워 나갔단다. 그리고 지금도 채우고 있지. 그녀의 ‘심기일체’에 반하여 환호하고, 즐기고… 그리고 은퇴하여 이별하고 슬퍼하는 순간도 모두 채워질 것이다.”
슬픔, 기쁨, 혼란 모두 다 받아들인다는 스승의 태도. 찬성은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음에도 그것을 담대하게 받아 내는 스승의 관록에 절로 감탄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그러니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다. 너의 심금을 울리고, 그 정도로 마음을 쏟고 사랑했다면 그것은 이미 진짜라고 생각해라. 밖에서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그래! 내 최애 아이돌 미카 짱은!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다! 이런 패기로 말이다!”
“제 최애 아이돌은 레오나 짱이라서요.”
“요호호호! 요 녀석!”
스승의 말에 깨달은 건지 웃으며 능글맞게 답변하는 찬성.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스승은 당부를 덧붙였다.
“아, 물론 당연하지만 이 모든 건 해야 할 ‘일’과 ‘의무’를 지켜 나갈 때만 허용되는 것이니라. 자신의 일을 방기하고 그것에 정신이 팔리면 그건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쾌락이지. 무엇이든 정도를 지키면서 하는 게 최선이니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한결 표정이 풀어졌구나. 그러면… 보자.”
뚝! …띠링!
스승이 갑자기 인터페이스 창을 열어서 조작하자 아이돌 영상이 사라지고 불이 들어와서 새하얀 공간으로 변했다.
“스승님? 종료라면 저도 스스로…….”
“받아라.”
갑자기 풍경이 바뀌어서 의아해하는 찬성. 스승은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검(劍)을 한 자루 던져 주었다.
“이건?”
“설교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부턴 실습 시간이다. 어디…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꾸나, 제자야.”
“옙!”
스릉!
청명한 소리를 내며 뽑히는 검. 깔끔하고 예리하게 서 있는 날을 보며 찬성은 이것이 진검(眞劍)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여긴 ‘디폴트 룸’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체 구현과 물리 법칙에 모든 리소스를 쓰도록 조정해 둔 거라서 얼마든지 ‘비검’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란다.”
“수련과 훈련에 적합한 곳이군요.”
“그렇지. 여기라면 나도… 부상 신경 안 쓰고, 손속을 두지 않고 상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허허허.”
“‘양’ 사저랑 ‘아사쿠라’ 사제가 고생이 많았겠군요.”
“요호호, 그렇지. 아, 참고로 통각도 현실과 똑같이 조정되어 있으니 ‘게임’과는 다른… ‘실전’과 같단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 죽일 기세로 와라, 제자여.”
“…넵!”
그 순간 찬성의 눈빛이 한순간에 변하며 완벽한 ‘검사’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러곤 스승이 원하는 대로 살의를 깨우고 미소를 지은 채 전력으로 검을 겨누고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