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그래, 그래야지!’
당당히 말하는 악귀(惡鬼)의 모습에 전율을 느끼는 ‘야만의몽둥이’. 조금이라도 겁먹거나 당혹스러워하는 게 아닌 저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면 곧바로 움직이실 건지요?”
“아니.”
“아, 역시 준비하실 게 많으신 건지…….”
“레벨. 놈이 50레벨이 되면 움직여야지.”
‘이게 무슨 소리야?’
악귀(惡鬼)의 말에 야만의몽둥이는 기가 막혔다.
50레벨? 그의 복수심은 지금 당장 놈을 때려잡아도 시원치 않을 지경인데, 왜 50레벨까지 미룬단 말인가? 야만의몽둥이는 다급히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예? 하, 하지만 그러면 놈도… 레이드를 가고 해서 잡기 더 힘들어질 거라 봅니다만… 혹여나 길드라든가 그런 게 생기면…….”
“지금 내가 39레벨인 놈을 잡아 봐야 아무런 득이 없다. 기껏해야 저레벨 괴롭히기라든가, 크게 될 싹을 자른다든가 그런 악평만 달리겠지. 내가 얻고 싶은 건… 저 검(劍)을 이 주먹으로 깨부쉈다는 사실! 내가 저놈보다 강하다는 진실뿐!”
‘하, 시X… 최정상급 플레이어 놈들은 다 어딘가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옛날 온라인 게임할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상현실 때가 되니 과몰입하는 놈들이 많아져 가지고…….’
과거 온라인 게임 시절에도 온라인에서 게시물을 쓰면서 롤플레잉에 과몰입해서 게시물 테러라든가 게임 내에서 사고 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 동화되거나 하진 않아서 극소수였는데, 가상현실 게임 시대가 되고서는 세계 곳곳에서 절찬리에 롤플레잉에 과몰입하는 양반들 천지였다.
“내 결정에 불만이 있는 건가? 그러면 지금 당장이라도 깃발 꽂아서 힘으로…….”
“아, 아닙니다! 저, 저 따위가 어떻게 대항하겠습니까? 부, 분부대로 해야죠. 하, 하지만 놈이 파밍을 한다거나 세력이 생긴다면…….”
“그럼 나는 그동안 놀고 있나?”
“아, 아닙죠.”
할 말이 없어진 야만의몽둥이. 확실히 중위권에 있던 ‘데블즈 윙’ 길드를 상위권으로 성장시킨 것도 있으니 앞으로 더 노력해서 올라갈 것이다.
“아, 드디어 포션 다 떨어졌네. 사냥 X노잼이야. 오늘 할당량 끝.”
“리얼 득템도 없고 지옥임다, 레알. 치유도 구린데, 힐만 X빡세게 해야 하고…….”
“PVP 클래스들뿐이라 던전 가기도 지랄이고~ 정부 새끼들이 빨리 플레이 타임 제약 풀어 줘야 부캐라도 파서 서로 던전 돌아 주는데 말이죠. 악귀 햄~ 저희 왔슴다.”
그리고 이 길드엔 ‘악귀’만이 있는 게 아니다.
400명 규모의 대형 길드가 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그 악귀(惡鬼)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부하들이자 길드의 간부들.
“다녀왔나? ‘리지웨이’, ‘피슈킨’, ‘헤럴드’.”
각각 Lv.53 리지웨이, Lv.54 피슈킨, Lv.54 헤럴드. 리지웨이는 광전사의 상위 3차 클래스, ‘워몽거(Warmonger)’. 악귀에 지지 않을 만큼 커다란 체구를 한 늑대 수인 아바타를 착용한 유저로 등에는 대형 도끼를 매달고 있었다.
피슈킨은 의적의 상위 3차 클래스 ‘활빈(活貧)’. 이쪽은 엘프 아바타를 착용하고 허리에 레이피어와 나이프, 등에는 활을 메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헤럴드는 신관 상위 3차 클래스로 ‘대신관(죽음의 신 종파)’이라서 그런지 거대한 책을 등에 메고 검은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예, 형님. 전문 기술 숙련은 다 올리셨습니까? 슬슬 일하러 가야죠. 이번에 자렌 왕국에서 또 일 받았슴다. 짱깨 놈들, 겁나 싸워 대서 좋네요.”
“싸움은 어디든 있는 법이지. 알고 있다. 스웨터 하나만 더 뜨면 된다.”
리지웨이의 말을 들으며 털실과 뜨개질바늘을 들고 손을 움직이는 악귀. 전문 기술도 전투력에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리지웨이는 인벤토리와 길드 본거지에 마련된 창고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정비하다가 ‘야만의몽둥이’를 발견하고 질문을 했다.
“근데 이놈은 뭡니까? 못 보던 놈인데… 신입입니까?”
“맞다. 그러면서 정보원이지. ‘검성’을 상대해 본 놈이 저놈뿐이니 말이야.”
“어? 검성도 잡으려고 노리심까?”
“이름을 떨치는 데 어울리는 놈이라면 뭐든 노리는 거지. 아무튼 좋아. 끝났군. 슬슬 가지.”
뜨개질을 마친 악귀는 그대로 일어나서 철창으로 된 옥좌에서 내려가면서 ‘야만의몽둥이’를 향해 말했다.
“놈의 동향을 잘 파악해 두고 주기적으로 보고를 올려라. 그럼… 일이 자렌 왕국이라고 했나?”
“예. 거기에 ‘건업(建業) 영지’에 영지를 두고 있는 길드가 있는데, 이름이… 아! 이 짱깨 새끼들은 한자만 가득해서 알아보기가 더럽네, 진짜아! 아무튼 거기 길드 놈들을 되도록 많이 척살해서 레벨을 다운시켜 달라고 합니다. 보수는 킬당으로 책정되어 있고…….”
“부활 포인트를 찾아서 대기하는 게 우선이겠군. 주요 길드원 클래스 구성은?”
‘제길! 그래도……! 저런 모습을 보면 믿음직스럽긴 하군.’
그러곤 프로페셔널하게 대화하면서 길드 간부들과 함께 본거지를 나가는 악귀 일행을 본 ‘야만의몽둥이’는 그들이 ‘검성’ 찬성을 때려잡아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신도 오늘의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서 길드 본거지를 떠났다.
***
다음 날, 영지 ‘세이온’.
오늘도 접속한 게임. 방송의 여파는 여전히 밸런스 패치 속에 묻힌 가운데 찬성은 오늘도 일과를 위해서 움직였다.
“보자. 먼저 검의 사원부터 가고… 접속한 사람들은 아직 살덩이 님뿐인가? 하긴 내가 좀 일찍 접속하긴 하니…….”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찬성의 아침 일과는 매우 빨랐기에 현재 접속해 있는 것은 그와 ‘살덩이는나약하다’뿐이었다.
“살덩이 님은 빨리 접속하셨네. 음?”
[귓말][살덩이는나약하다:찬성 님, 찬성 님, 저기…….]“음? 귓말? 우리 둘뿐인데 채팅방을 안 쓰시네? 아, 휴대폰으로 볼 수 있지?”
[귓말][찬성:네, 살덩이 님. 무슨 일이세요?] [귓말][살덩이는나약하다:그… 보여 드릴 게 있는데, 절대 혼자만 보셔야 해요. 이미 멘탈 회복하셨는지라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왕 산 거고, 특급 배송으로 빨리 받아서… 아무튼 보여 드리고 싶어서… 메일 주소 좀.]“…뭘 보여 준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멘탈 이야기인 거 보면 레오나 때 일인 것 같은데. 뭐, 메일 주소 알려 드리자.”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서 무언가 해 준 것 같았기에 찬성은 의심 없이 ‘살덩이는나약하다’에게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귓말][살덩이는나약하다:그… 보, 보냈긴 하거든요! 그런데! 절대로, 절대로 웃거나! 혹은 어디 뿌리거나 하시면 안 되고 혼자만 보셔야 해요! 알았죠?] [귓말][찬성:예, 알겠습니다.]“뭔지는 모르지만…….”
[귓말][살덩이는나약하다:꼭이요! 알았죠?]‘…굳이 그럴 거면 안 보내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승낙을 하고 난 뒤 찬성은 일일 퀘스트를 진행하러 ‘검의 사원’으로 향했고, 가면서 메일이 온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메일(1)이 도착했습니다.]‘세화?’
메일 주소를 보곤 기이하다고 생각하며 찬성은 일단 첨부 파일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라서 저렇게 당부에 또 당부를 한 건지 궁금했기 때문인데…….
“…뭐야, 이거? 사진? 게다가 이거 레오나의 갑옷?”
사진은 충격적이기 짝이 없는 것으로, 침대 위에 알 수 없는 여성이 레오나 앱솔의 갑주를 입은 채 몸을 기댄 포즈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체 무슨 의미로 이걸 보낸 거지? 그보다 이거… 현실 가장인가? 의미를 모르겠어. 거기다 갑옷은 뭔가 어설프고…….”
결국 코스프레였기에 금속의 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형태만 구현한 갑옷. 천은 싸구려인 게 찬성의 눈으로 구별될 정도였다.
애당초 찬성은 코스프레라는 개념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큰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살덩이는나약하다’가 이 사진을 보낸 의미를 더 떠올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의미지? 으으음… 입은 분은 모델? 으음, 많이 가느다랗지만 다리와 하체 라인이 나쁘지 않네. 과연, 게임사에서 실행한 이벤트 같은 거에서 찍은 사진인가? 으음…….’
갑옷의 구현도는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모델분의 몸매 라인은 확실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 찬성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사진들 전부 눈 부분은 손으로 가리고 있네? 생각해 보면 소품 같은 거 뭔가… 생활감도 강하고, 뭔가 공식은 아니고…….’
사진 속의 소품이나 물건, 가구들은 배경이라기엔 실제로 사용하는 것 같은 생활감 넘치는 느낌이었고, 사진 자체도 전문적인 기술이 없이 찍힌 티가 확 나는지라 공식 사이트에서 나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금방 들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애먼 사이트에서 퍼 온 건가? 이런 걸 보니 사제들이 생각나네.’
‘대사형! 대사형이 생각하는 여성의 매력적인 포인트는 어디입니까?’
‘갑자기 질문이라니 이상하네, 사제. 굳이 말하자면 난 다리. 무예의 기본은 하체니까.’
‘정하는 기준이 이상한 거 아닙니까?’
‘기준이 달라도 매력적이라 생각하면 좋은 게 아닌가?’
‘아니! 이상한 거죠! 대사형, 솔직히 말해요! 규화보전 익혔죠?’
‘아니, 애초에 그거 가공의 무술이다만…….’
‘우리 파성검각도 밖에서 보면 가공의 무술처럼 보여요!’
“훗…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떠올리니 피식 웃게 되는 과거의 기억. 잠깐 추억을 상기하던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바라보며 대체 왜 그녀가 이런 사진들을 보내 준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 으으음… 사저나 누님에게 상담해 볼… 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랬지. 신의를 어겨선 안 되는 일이고, 그러면 어쩐다. 넌지시라도 물어보면 안 될 것 같고…….”
난해한 수수께끼를 받은 듯한 기분. 찬성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그녀가 대체 왜 이런 걸 보내 주었는지 나름 열심히 추리해 보았다.
“그러니까 ‘살덩이’ 님은 나를 위로해 주려고 했는데, 방법을 찾다가 결국 사내들끼리 주고받을 법한 사진을 보내 주셨다는 건가?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느끼신 거고… 아니면 본인이 직접 사서 입고 찍었다거나?”
가능성 있는 사안들을 생각해 보다가 우연히 ‘진실’에 접근했지만…….
“음, 그건 무리지. 신원 노출도 있고, 아무리 친해도 현실에서 본 적 없고 온라인에서만 만난 사람한테 그런 걸 직접 찍어서 보내 줄 리도 없고… 더구나 모델이 촬영한 게 아니라면 직접 사서 입어야 하는데 말이지.”
하나 그 진실은 상식적으로 보면 너무나 비현실에 가까웠기 때문에 찬성은 이내 정답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뭐, 남자들의 문화를 어설프게 알아보고 위로해 주려다가 실수한 거겠지. 어디 말할 수도 없는 거지만 그래도 성의는 성의니까… 고맙다고는 해야겠는데. 으음… 남자들의 문화식으로 대답해 줘야 하나?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오버인데… 지적하자니 나름 도움이 되려고 한 분에게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끄으으으응…….”
어쨌든 결론이 나고, 찬성은 성의에 답변하기로 하며 조심스러운 조언과 함께 귓말창을 열고 그녀에게 보낼 채팅을 쳤다.
[귓말][찬성:걱정해 주시고, 챙겨 주신 것에 대해선 정말 고맙습니다. 그, 당부하신 대로 어디에도 유출하거나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하겠습니다.]“이 정도면 되겠지? 후우~ 사저라면 모를까, 여성에게 말을 전하는 건 상당히 힘들군. 하아아~”
서너 번 정도 지우고 다시 썼을 정도로 머리 아픈 고민을 한 찬성은 드디어 ‘확인’을 눌러 귓말로 답장을 보냈고, 동시에 그 귓말은 ‘연금술’ 일일 퀘스트를 하던 살덩이는나약하다에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