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그란 왕국, 이첸성.
브루탈 길드 본부.
초보자들의 스타팅 도시라고 하는 이 도시의 본래 이름은 이첸성이지만, 기묘한 어감과 특징 없는 이름 때문에 게임 유저들은 아무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비운의 성이었다.
그저 ‘초보자 도시’라고 하는 게 어감도 좋고 느낌도 맞아서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투박하고 거대한 몽둥이 모양의 엠블럼 깃발이 나부끼는 브루탈 길드의 본부에서는 현재 길드 운영진 중 하나인 탐식의망치가 부하에게 직접 보고를 받고 있었다.
“뭐? 경매장 건축물이 부서졌다고? 초보 마을에서 어떻게 그걸 부수지? 최소한 힘 스탯 100은 넘어야 할 건데? 시공 길드 놈들 짓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 경매장 벽을 부순 놈들을 잡으러 갔을 땐 이미 인식 거리 밖으로 도망친 후였습니다. 통제하는 놈들 중에 호크 아이 스킬을 가진 레인저계가 없어서… 그 바람에 통제하던 놈들이 안으로 싹 들어가서 경매장 이용을……. 지금은 다시 막았습니다.”
“음, 경우에 따라선 큰일로 보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시시한 일이군. 내가 이러니까 경매장에 씌우는 건물에 돈 좀 쓰자고 한 건데……. 그걸 아끼겠다고 낮은 등급으로 만드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쯧!”
“그러면…….”
“내가 야만 형님에게 잘 말씀드리마. 너희는 하던 대로 하고, 다른 곳에서 오는 상인 놈들이랑 시공 길드 놈들 감시 잘해. 지금 바로 수리하고 재건축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단결! [^^7]”
경례를 하면서 동시에 이모티콘까지 띄우는 예를 갖추고 부하가 물러난 뒤, 탐식의망치는 UI를 열어서 자신들의 영지 상태창을 살펴봤다.
길드장이 임명한 운영진만 열람할 수 있는 창으로, ‘경매장 건물이 파괴됨’ 알림창을 보며 한숨을 쉬던 그는 재건축 메뉴를 열어서 업그레이드를 눌렀다.
“이번엔 안 부서지게 해야 할 것 같은데… 2티어로 지어야지. 이거면 힘 300은 되어야 부서지는 사양이니……!”
[시스템-경매장 확장 커스텀 티어 2를 선택하셨습니다. 해당 건물 건설엔 1,500금화가 필요합니다.]“뭐 하는 거냐? 멍청아. 티어 1로 지어.”
한번 실수한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 이번엔 돈이 좀 들어도 2티어로 건물을 새로 지으려 하는 것을 누군가 나타나 말렸다.
탐식의망치는 즉시 UI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허리를 숙이면서 [^^7]의 이모티콘을 띄우고는 예를 갖추며 그를 맞이했다.
“아, 오셨습니까, 야만 형님. 50 찍으셨습니까? 드디어 우리 길드 최초의 3차 전직이 나오는 겁니까?”
“아니, 지금 그거 때문에 X 빠지게 레벨 업 중이다. 아무튼 묘한 소리가 들려서 정비할 겸 왔다.”
브루탈 길드장 ‘야만의몽둥이’. Lv.49 야만 전사 유저로 웬만한 사람들은 졸아붙을 것 같은 험상궂은 얼굴에 큰 체구를 가진 남성이었다.
현재 최상위권이 50레벨 초반이기에 충분히 상위권 유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는 오늘도 레벨 업에 힘써야 했지만, 묘한 소식이 귓말로 들렸기에 잠시 길드 본부에 귀환한 것이었다.
“아무튼 자식아, 금화 1,500개가 애들 장난이냐? 지금 돈 써야 할 곳 천지인데… 현금 약 150만 원이 공돈이냐고?”
“하지만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형님. 경매장을 막아 놔야 초보 유저 호구 쉐끼들이 돈 써서 세금이 늘어나는데…….”
“일단 1티어로 다시 지어 놔. 그리고 보아하니 이건 시공 길드 짓은 아닌 것 같다. 우릴 엿 먹이자고 경매장 건물을 부수는 건 너무 시답지 않아. 아마 초보 유저 중 게임 지식이 있는 놈 짓일 거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님, 그놈들… 찾을까요?”
“아니, 굳이 그럴 거 없다. 시간, 돈 죄다 아까워. 그러니 내버려 둬라. 다만 또다시 벌어지면 다음엔 꼭 저지른 놈 아이디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시켜.”
“예!”
야만의몽둥이는 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짜증 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이 일 하나에 진을 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영지를 차지한 길드라는 건 단순히 게임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작은 기업과도 같았다.
여력과 인력, 자본을 투자할 곳을 잘 고르고 운영을 잘해야만 유지할 수 있고, 또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사사로운 일엔 이 정도가 한계였다.
‘하여간 별 잡것들이 다 신경을 긁는군. 내 3차 전직도 전직이고, 이번 쟁탈전에서 이 성을 지키는 것도 지키는 거지만 새로운 성도 먹어서 확장해야 하는데 말이지. 언제까지고 이 망할 초보 도시를 지키고만 있을 순 없으니…….’
그 또한 선발 그룹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중하위권 길드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모으는 것이 늦었고, 또 누구 밑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결국 상위권 거대 길드 그룹에 포함되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언젠가 상위권 길드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금… 자금이 많이 필요해. 현질로 충당하는 것도 충당하는 거지만, 인게임에서 최대한 긁어모아서 사람을 더 모아야 해!’
그렇게 눈을 붉히던 그는 길드 UI에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는 길드 자산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금화를 벌 수 있을지 고민했다.
***
게임을 끄고 일어난 찬성은 곧바로 민희 누님의 메일 주소로 동영상을 전송해 둔 다음 식사를 하러 방 밖으로 나왔다.
식탁엔 검은 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민희 누님이 앉아서 김치찌개 및 한식으로 된 식사를 차려 두고 먼저 먹는 중이었다.
민희가 휠체어를 끌고 나오는 찬성을 보더니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왔구나. 밥은 어느 정도 떠 줄까?”
“반절 정도만 주세요. 내내 누워 있어서 생각보다 운동량이 적으니까요.”
“너 엄청 신경 쓰는구나. 전혀 살찔 기미가 안 보이는데도 말이야.”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바로잡는 건 두 배로 힘들거든요.”
“…아무튼 그래, 영상은 보냈니? 자, 그리고 게임은 어떻게 되었니?”
밥을 떠 주면서 민희는 찬성에게 영상에 대해 넌지시 질문하며 게임에 대한 것까지 물었다.
게임 밖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찬성의 레벨을 모니터링하고 있어서 그가 10레벨이 된 것까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 영상은 보냈고요. 그리고 레벨은 10! 이제 소드맨으로 전직하러 갈 거예요.”
“그래, 소드맨… 후우~”
“아! 그리고 게임 안에서 동료도 만났어요!”
“동료? 아… NPC 추종자가 아니라 다른 유저 말하는 거니? 흐음… 하긴 아직 신규 유저들이 많을 때니까… 어떻게 하다가?”
“그게 그러니까, 레벨 업 하려고 고블린의 탑으로 갔는데…….”
찬성은 근손실보험과 전국건강협회를 만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냈다.
근손실보험을 만나서 고블린의 탑을 빠르게 돈 이야기, 전국건강협회와 합류해서 대왕 쥐의 소굴을 돈 이야기, 그리고 랜덤 박스에서 전직권을 얻은 이야기까지……. 그것을 들은 민희는 자연스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보통은 파티 플레이를 하면 그냥 그 던전만 돌고 끝나지, 의기투합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사람들이 잘해 줬나 보네?”
“예! 전직하고 다시 모여서 퀘스트 하러 가기로 했어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얘가 뉴비인 거 알고 잘 대해 주는 거군. 으으음… 기본적인 매너는 있나 보네. 하지만 얘도… 얘지. 랜덤 박스 아이템을 팔아서 그냥 분배해 버린다니……. 에휴~’
“그럼 잘 먹었습니다. 치우는 거랑 설거지는 제가 할 테니 다 드시면 먼저 들어가세요.”
“아니, 내가 해도 돼.”
“신세 지는 입장이니 뭐라도 하는 게 도리죠.”
“그래. 그럼 부탁할게.”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어차피 찬성은 이 집에서 꽤 오랫동안 요양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역할을 분담하면서 서로 어색하지 않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그녀였다.
설거지 거리를 싱크대에 넣어 둔 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찬성이 보낸 영상을 틀었다.
“보자. 기본은 1인칭이네. 이걸 3인칭 카메라 모드로 해서… 됐다. 요즘은 기술이 너무 좋다니까…….”
『촬영… 되는 거 맞나? 아무튼 시작하겠습니다.』
『쿠룩… 촬영? 누구 보여 주려는 겁니까? 쿠룩? 아,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어디에 공개할 거면 아이디만 가려 주십시오. 쿠룩.』
『아, 예! 그럼 가 보겠습니다!』
“오크? 아… 아바타인가? 다들 예쁘거나 멋지게 꾸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참 특이한 유저네.”
가상현실 게임의 아바타를 비롯한 외모 커스터마이징이 활성화되면서 다들 현실에서 갖지 못한 외모로 꾸미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만 해도 장신(長身)인 콤플렉스 때문에 작고 귀여운 토끼 수인으로 아바타를 꾸며서 다니지 않던가?
‘하긴 알몸에 팬티만 걸친 팬티단이라든가? 별의별 놈들도 있으니…….’
상위 랭커 길드 중에 유사한 변태 짓을 하는 길드를 떠올린 그녀는 영상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더블 슬래시.』
『고브으으으윽!』
“…뭐야, 이거?”
그리고 이상한 것을 본 감정은 이내 찬성이 펼치기 시작하는 무용의 감상에 파묻혔다.
고블린의 공격을 회피하고, 쳐 내고 돌파하면서 모조리 베어 넘기는 찬성의 모습. 검을 휘두르는 그는 눈빛부터가 달라져서 방금 전까지 자신과 이야기하던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에… 잠깐만, 전투 로그 출력을 켜면…….”
[전투 로그-찬성 님이 고블린 약탈자의 공격을 막아 내어 무기 막기(2성)의 효과로 데미지를 경감하여 3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전투 로그-찬성 님이 고블린 궁수의 공격을 막아 내어 무기 막기(2성)의 효과로 데미지를 경감하여 2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고블린의 탑을 혼자 클리어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줄은 알았지만, 이건… 그야말로 괴물이잖아.”
『쿠룩! 세상에!』
“그래, 여기 오크(?)도 놀라네. 이게 대체 뭐야? 아, 그러고 보니… 아빠가 말했었지.”
민희는 찬성에 대해 설명해 준 부친의 말을 떠올렸다.
본래 그는 어릴 적부터 어느 유파의 후계자로 들어가서 산속에서 검(劍)을 수련했었다는 이야기.
20세가 되던 올해 드디어 진검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검을 경찰서에 등록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히 무슨 무협 소설도 아니고, 지금 이 시대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대충 걸러 들었는데…….’
『스으읍… 하!』
‘이건 진짜다!’
하나 지금 화면에서 찬성이 보여 주는 화려한 무용이 진짜라는 것을 그녀는 확신했다.
엄연히 52레벨의 최상위권 유저인 그녀는 PVP든 PVE든 괴수 같은 유저들의 전투를 익히 봐 왔다.
하지만 찬성이 검을 들고서 펼치는 기량은 그 최상위권 유저들에게 절대 밀린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대체… 나이트 비전 스킬도 없는데 저 어두운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다 쳐 내고, 고블린의 공격은 어떻게 다 피하는 거지? 심지어… 저건 뭐야?’
『주술사는… 이렇게 하면!』
“헉!”
화르르륵!
그리고 불붙인 검으로 파이어 볼트까지 베어 내고 전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땐 민희의 심장은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다음 대부분의 초보 유저들이 겁을 먹어서 소극적으로 싸우게 되는 ‘보스:고블린 챔피언’과의 격전에서도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줬다.
적극적인 것을 넘어서 마치 오랫동안 싸워 본 것처럼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지속적으로 급소에 공격을 적중시킨 것이다.
“와… 세상에!”
『저기, 쓰러진 상대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건 비겁하지 않나요?』
“…풉!”
물론 부분부분 게이머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웃픈 장면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고블린 챔피언과의 전투는 근손실보험이라는 오크 유저가 무력화 때 무지막지한 딜을 때려 넣는 바람에 손쉽게 쓰러뜨리면서 마무리되었다.
“세상에…….”
하나 그녀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눈치였다.
계속 영상을 돌려 찬성이 화려하게 싸우는 장면을 다시 보고, 또 보면서… 이 환상 같은 전투가 진실이라는 것을 두 눈에 새겨 넣었다.
‘걔를… 어떻게 하지?’
그리고 그녀는 찬성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땅에서 갑자기 발견된 엄청난 원석.
분명 다듬으면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 될 게 분명했기에 그녀는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빛나는 검무(劍舞)를 보면서 심도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