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경계심 MAX 상태로, 무기와 주문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적을 기다린 찬성 일행. 하나 멀리서 수풀을 헤치고 다가온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먼저 목소리를 내었다.
“자, 잠시만요. 저희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저기, 그란 왕국에서 오신 분들이죠? 어제 나가신 시각과 시차를 역산해서 대기하길 너무 잘했어요!”
“저는 마이클, 이쪽은 미아입니다. 우리는 마적단에 속해 있지 않은 일반 유저들입니다. 보시면 무기도 착용 안 하고, 정보 공개도 되어 있어요.”
양손을 들고 나타난 두 사람. 둘 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흑인인 마이클이 같이 나온 주황빛 머리칼에 주근깨를 가진 여성 미아를 소개하면서 다가왔다.
둘은 찬성 일행이 자신들을 경계한다는 걸 알고 최대한 배려해서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말한 대로 무기도 착용하지 않고 정보 공개도 열어 둔 상태였다.
“레벨 20 야만 주술사, 레벨 20 신관(숲 종파)… 장비는 방어구 희귀 템 1~2개. 약하네요.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크릉.”
먼저 정보를 확인한 미니멈실버가 그들의 상태를 빠르게 브리핑해 주었다.
그 말대로 둘 다 20레벨에 일반 클래스들을 가지고 있고, 아이템도 형편없어서 경계할 수준도 못 되었다.
“후우~ 뭔가 했네.”
“쿠룩, 그나저나 어떻게 우리가 온 걸 알아낸 거죠? 우리 분명히 탐지 돌리고서 접속 종료한 건데… 아직 방심하기엔 이릅니다. 저러고서 지원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희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여러분을 감지해 낸 건 여기 미아가 가진 ‘숲의 가호’로, ‘숲 지역’에서 절대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분이 들어온 것을 알아챈 겁니다.”
“그런 스킬이 있어요?”
“지지직… 예, 있어요. 숲 종파 특화 스킬인데, 문제는 진짜 ‘숲’에서만 적용되는 거라.”
궁금해하는 찬성에게 살덩이는나약하다가 대답해 줬고, 찬성 일행은 어떻게 이 마이클과 미아가 자신들을 발견했는지 확인했지만 아직도 미심쩍은 점이 없진 않았다.
“쿠룩, 우리가 들어올 건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그거야 아까 말한 대로 접속 종료하신 시간을 기준으로 역산하고, 또 시차를 계산해서 대기 타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희 둘 말고도 일행에 다른 두 사람이 더 있는데… 그 둘도 연락하면 들어올 겁니다.”
“쿠룩,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만나려고 한 목적이 뭡니까?”
아직도 완전히 그들을 신용하지 않는 듯 근손실보험이 엄중한 표정으로 나서서 묻자, 둘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면서 간절히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저희를 그란 왕국이든 어디든 좋으니 다른 왕국으로 좀 데려다주세요. 여기… 여기 메리 왕국에선 못 살겠어요.”
“여기선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저 소박하게 플레이하면서 논문만 쓰면 되는데, 메리 왕국은 영지 전체가 미친 곳이 되어 버려서… 도저히 평범하게 플레이할 수가 없어요.”
“우와아아…….”
“어우…….”
“세상에…….”
국적별 스타팅 고정의 폐해라고 해야 할까? 미국 유저들에 의해서 무법자 플레이 스타일로 문화가 바뀐 메리 왕국은 일반 유저들이 플레이할 수 없는 레벨로 심각하게 변해 버렸다.
“자유니 뭐니 하지만 결국 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짐승처럼 날뛸 뿐이에요. 막 서부극 시대 고증한답시고, 인종 차별도 고증한다고…….”
“마이클한테는 니그로니, 깜둥이니까 죽어라, 저한테는 진저 계집이니까 우리 말 따라라, 는 기본이고, 그 이상은 말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소리를… 하아아아아아~”
“어우… 세상에나.”
“자유로운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거지요. 쿠룩.”
“게다가 현실에서 요 몇 년간 논란도 크고 창작물에서 난리가 났으니, 쌓인 원한이 터진 거겠지.”
“크릉… 근데 그래도 현실에서 난리 치는 것보단 낫지 않나?”
“아뇨.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그로 인해서 얻은 정신적 쾌락과 도덕의 붕괴는 분명히 현실 정신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보기 때문에 그 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게임’은 ‘게임’이라면서 미국에서 D.E사가 막대한 로비를 하는 바람에…….”
마이클의 속사포 같은 설명. 마치 강의를 하는 것 같은 학문적 고찰까지 덧붙여져서 길어질 것 같자 미니멈실버가 먼저 나서서 그 흐름을 제지했다.
“잠깐! 크릉! 우린 강의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 결국 요점은 메리 왕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거고, 우리에게 그 도움을 요청한다 그거죠?”
“예! 부, 부디 도와주십시오. 이 무시무시한 메리 왕국에서 제발 벗어나서 정상적인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쿠룩? 하지만 일단 유저를 배척하지 않는다면 우선 갱이든 패밀리든 들어가서 레벨을 올린 다음 지역을 넘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보니까 흑인 그룹이라든가 여러 그룹이 있는데 말이죠. 쿠룩.”
근손실보험의 말대로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존재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방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RPG 게임은 레벨링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적단이든 갱이든 적당히 들어가서 레벨링을 한 다음 다른 국가로 튀어 버리든가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그게, 그렇지만 우리… 논문을 꼭 써야 합니다.”
“논문?”
“예. 저희… 저희는 대학원생입니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료인데… 이번에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에 대해 교수님의 명으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서 지금 이렇게 플레이하는 중입니다.”
“크릉, 하긴 극강의 리얼리티로 무장한 차세대 가상현실 게임인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라면 확실히 연구 주제가 되긴 할 테니… 그나저나 대학원생이라니…….”
대학원생. 그 단어를 듣자 찬성 일행의 표정이 안쓰러움으로 가득해졌다.
그들이 받는 부당한 처우와 가혹한 현실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알려져 있었고, 수많은 자학적 농담과 밈이 나돌 정도였다.
“어우우…….”
오죽하면 사회 지식이 부족한 찬성조차도 알고 있어서 그들을 안쓰럽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동안 몇 번이고 메리 왕국을 빠져나가려고 시도를 해 봤습니다만 의뢰를 하려고 해도 인종 차별로 받아 주지도 않고, 설사 받더라도 마적단, 갱들의 공격을 받으면 가차 없이 우리를 버리고 도망칠 정도라서…….”
“우리 원래 30레벨까지 올렸었는데…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레벨 다운을 반복적으로 겪어서 이 꼴이 된 거예요. 그런 와중에 저희가 있는 이곳에 외지 분들이 들어온 것을 알아채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죠. 초면에 염치없는 부탁인 건 압니다만, 저희랑 동료를 제발…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논문도 논문이고… 자료 제출을 안 하면 교수님에게…….”
털썩.
어두운 앞날을 상상하니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마이클은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옆에 있던 미아는 그런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했고, 찬성 일행은 고뇌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죠? 원래 계획은 우리, 휘트니산에 오르는 것이었잖습니까.”
“아, 아! 무언가 하러 오신 거긴 하겠죠. 그러면 그 이후에 돌아가는 길에…….”
“원래는 돌아가는 건 귀환 스크롤을 쓰려고 했는데… 음… 쿠룩. 하지만 너무나 딱한 처지군요.”
“지지직… 대학원생이라 더욱 안타깝네요. 지지직…….”
그냥 유저들의 사정이어도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대학원생’이라는 신분 4글자가 붙어 버리니 안타까움이 배가되는 찬성 일행이었다.
“쿠룩, 찬성 님, 어쩌죠? 사실상 여기는 찬성 님을 위해서 온 것인데…….”
“솔직히 안타깝긴 한데… 우리도 여기에 힘들게 온지라.”
“지지직… 으으음…….”
“크릉…….”
파티원들의 시선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찬성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었고, 결정적으로 대학원생이라는 그들의 현실이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상황.
하나 찬성의 ‘비전’ 스킬을 위해 여기까지 하루를 써 가며 온 상황이며, 실질적인 리더이니 그에게 결정권을 넘긴 셈이었다.
“…그럼 그란 왕국으로 돌아가죠.”
“크릉? 너, 너 정말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휘트니산까지 가려면 아직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장장 하루 동안 항해를 하면서 힘겹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그란 왕국으로 돌아간다는 결정을 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쿠룩, 맞습니다. 그, 생각해 보면 타협안을 낼 수도 있죠. 하루나 이틀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지. 휘트니산엔 우리를 노리는 PVP 길드 놈들이 있잖아. 거기서 귀환 스크롤을 쓰면 모를까, 갔다가 돌아온다는 건 무리 같은데…….”
“지지직… 게다가 어설프게 일정을 조율하다가 플레이 타임 조절이 꼬이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 커지죠. 지지직…….”
“크르르릉, 그렇다고 일행을 둘로 나누기도 좀 그런데…….”
찬성의 결정에 파티원들은 다들 생각을 내놓으면서 고민했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둘 다 손에 넣을 안전한 길은 없었다.
‘비전’을 포기하든 아니면 이 ‘대학원생’들을 포기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그나마 안전한 일이었다.
“어차피 저 휘트니산의 ‘비전’은 제가 생각한 것뿐이니 확실치 않은 것. 그러니 사람을 도와야죠. 특히나 이분들, 대학원생분들이잖아요.”
왠지 찬성이 뒤에 덧붙인 한마디가 천연기념물이나 보호 동물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마이클과 미아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만큼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크릉, 얘는 진짜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비전’을 위해서 왔다가 결국 삼천포인가…….”
“쿠룩, 찬성 님이 그리 정하셨으면 뭐, 난 더 말할 게 없다. 쿠룩.”
“지지직… 이하 동문이요. 지지직…….”
결국 이번 여정은 찬성의 ‘비전’ 스킬을 위한 것이라서 그가 괜찮다고 해 버린 순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순수하게 사람을 돕는 것 같아서 불안한 일행이었다.
“저러다 언젠가 사기 한번 크게 당할 것 같은데요.”
“쿠룩… 진짜 꼼꼼하고 확실한 사람이 옆에 있어 줘야겠네요.”
“지지직… 꼼꼼한 사람. 꼼꼼한 사람. 지지직…….”
“크릉, 아무튼 그럼 동선을 짜 봐야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게 되어서…….”
우려하는 파티원들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예를 표하는 찬성. 하나 후회는 일절 없었다.
‘비전’ 스킬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게 있었지만 사람의 도리가 먼저 아닌가?
“저, 정말 고맙습니다!”
“다른 동료들도 부를게요. 갈 준비하자!”
“크릉… 이러면 여기서 논의하지 말고 밖에서 메신저를 통해서 이야기하죠. 플레이 타임 일분일초라도 아껴야 하고, 그냥 무작정 서쪽으로 가서 그란 왕국에 갈 순 없으니까요.”
“아, 예!”
일분일초의 차이로 도주의 성공과 실패가 갈리기 때문에 미니멈실버는 플레이 타임을 아끼기 위해서 게임 종료를 제안했고, 마이클과 미아를 비롯한 일행은 그 자리에서 게임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너는 사람이 너무 좋은 거 아니니? 하아아~ 채팅방 새로 팠어. 거기 들어오면 돼. 그걸로 토론할 거야.”
“옙, 누님.”
캡슐에서 나가자마자 민희가 찾아와서 투덜거리면서 찬성에게 채팅방에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휴대폰을 조작해서 새로운 채팅방에 들어간 찬성은 파티원들에다가 추가로 마이클과 미아가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채팅방(7)] [Wewillneverbeslaves:안녕하신가? 나는 마이클이다. ‘미니멈실버’ 님의 아이디를 보고 당신들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승인하고, 한국말 하기 위해 번역기를 돌려서 말하고 있어서 성능이 나쁠 것이다.] [Butwewillbeconquerors:안녕하신가? 나는 미아다. 나도 마이클처럼 번역기를 써서 말하고 있다.]먼저 입을 연 것은 마이클과 미아 두 사람. 캡슐 밖에서는 역시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 번역기를 써서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미니멈실버:번역기… 아, 그나저나 아이디는 대체…….] [근손실보험: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아아아아아!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라는 전설의 오크가 한 명대사입니다. 쿠룩! 록타! 오가르!] [전국건강협회:이 새키, 동족 만났다고 갑자기 급발진하네.] [찬성:전설의… 오크?] [살덩이는나약하다:찬성 님은 모르셔도 돼요. 근손실 님, 그렇게 냉담하게 대응하셨는데 아이디 보자마자 우디르식 태세 전환을…….] [찬성:우디르?] [근손실보험:전설의 야생 주술사의 이름을 딴 말입니다. 엄연히 인터넷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신조어죠. 이럴 때 보면 찬성 님이 순수한 게 느껴지는군요.]“…하긴 게임만 해서는 세상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지.”
[미니멈실버:자자, 헛소리 그만! 본격적으로 ‘메리 왕국 탈출 작전’ 계획을 시작할 테니 집중하세요. 여기 링크로 들어오세요. 제가 실시간 방송 틀어 놨으니까 이걸로 브리핑하죠.]두서없는 잡담이 이어지려는 가운데, 미니멈실버가 채팅방을 한번 환기시키면서 따로 방송 주소를 보내 주었다.
‘방송? 인터넷 방송?’
찬성이 신기해하면서 그것을 누르자, 화면이 하나 나타나면서 충격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