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깐프는 모르겠지만 귀쟁이는 알 것 같아. 엘프에 대한 멸칭이었나? 아마 그것도 멸칭이겠네.’
깐프의 출처는 모르지만 찬성으로서는 뒤에 따라붙는 귀쟁이라는 칭호는 알고 있었기에 도발을 위한 발언이라는 걸 금방 눈치챘다.
귀쟁이. 서브컬처 및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엘프의 멸칭. 긴 귀를 특징으로 하는 엘프에 대해 막 부르는 것으로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감히!”
당연히 ‘엘프 산림청’ 길드의 남녀 모두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그 소리가 난 방향을 겨누었고, 거기엔 ‘시공 길드’ 사람들이 몰려와 있어서 ‘자유기사’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달려가는데…….
“누군가 했더니 ‘시대의흐름’ 님 아니십니까? 시공 길드와 우리가 나쁜 인연은 아니었던 걸로 압니다만? 알 만하신 분이 우리 길드에게 절대 말해선 안 되는 금기를 범하신 이유를 물어도 될는지요?”
온화한 표정이던 ‘자유기사’는 거의 부모의 원수를 만난 급으로 분노한 얼굴로 ‘시대의흐름’을 노려보면서 검에 손을 올린 상태였다.
“딱히 이유는 없고, 강압적인 엘프 덕질에 고생하는 분을 구하기 위해서 도발 좀 한 겁니다.”
“강압적이라니요. 엘프의 아름다움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 드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늘 말하지만 덕질은 좋아하는 사람끼리만 즐기십시오. 남에게 강요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 공. 조. 아.’ 하면서 다 망해 가는 게임 전도하려고 오만 커뮤니티 물 다 흐려 놨죠?”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똑같이 역린을 건드리는 것으로 갚아 주려는 듯 ‘자유기사’는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역린을 맞은 ‘시대의흐름’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반격을 준비했다.
“하하, 이거 진짜… 그냥 가볍게 도발해서 찬성 님을 구하고자 한 것뿐인데, 끝까지 가 보자는 겁니까?”
“먼저 시작한 건 그쪽 아닙니까? 어디 진짜 한번 해볼 생각입니까? 영지 지키셔야 하는데…….”
“어, 자, 잠깐만요. 잠깐! 잠깐만요.”
서로의 역린을 건드려서 서서히 분위기가 나빠지는 상황. 서로 누가 먼저 공격하면 바로 전투가 시작될 상황에서 ‘자유기사’의 압박에서 해방된 찬성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리고자 했다.
“저기, 여기 분들은 제가 불렀어요. 죄송합니다, 엘프 길드 분들. 이야기가 너무 안 끝나서 도와줄 분들을 부른 것뿐입니다. 적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허리를 숙여 가며 공손하게 예를 차리는 찬성. 그 모습에 ‘자유기사’와 ‘시대의흐름’ 사이에 흐르던 적대감과 긴장감은 살짝 내려가지만…….
“그렇습니까? 그러면, 크흠! 저희 제안은 어떠신지요.”
“어, 애초에 저는 길드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요. 엘프에 대한 인상은 좋은 쪽에 가깝지만, 아무튼 지금 파티원들과 던전 돌면서 돌아다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말이죠.”
“그, 그렇습니까?”
정중하지만 단호한 찬성의 거절에 ‘자유기사’는 시무룩해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특히나 길쭉한 어깨 갑옷이 더욱 늘어져서 침울한 느낌을 주는 게 묘할 정도다.
“하, 하지만 엘프에 대해선 싫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아까 전 주르륵 말씀하시던 엘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반지 시리즈의 엘프 정도는…….”
“크헉!”
“칵!”
“쿨럭!”
“…아, 이분들, 병 도졌다.”
“……?”
찬성은 나름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는데, ‘엘프 산림청’ 길드원들은 살충제에 맞은 벌레들인 양 지리멸렬하기 시작했다.
“왜, 왜 저러는 거죠? 내가 또 무슨 나쁜 말을 했나요?”
“…어, 그러니까 얘네들, 그냥 씹덕후 집단이라서 그런 리얼리즘 엘프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대충 이런 거 말이죠.”
시대의흐름은 인터페이스 창을 열어서 찬성에게 여러 이미지들을 보여 주었다.
흔히 말하는 ‘양키 센스’라 불리는 고전 RPG 같은 데서 자주 보던 엘프들. 아름답기보다는 기괴하고, 이질적인 느낌이 강한 삐쩍 메마른 숲의 유령 같은 모습들이 쭉 나왔다.
“우, 우리가 동경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크악!”
“뭐, 저런 겁니다. 그나마 반지 시리즈 쪽은 기존 내용도 고결하고 아름다움을 인정하기도 했고, 영화화되면서 실제 배우들도 적절하게 섭외한 것 때문에 이런 모습은 아니죠. 결국 씹덕들이라니까요, 쟤네.”
“다, 닥쳐! 망겜의 망령들보단 나아!”
반박하는 자유기사와 계속 티키타카 하는 시대의흐름. 여전히 이 사람들의 대화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찬성이었다.
‘그러면 저분들이 추구하는 엘프가 뭔지 알아봐야… 대충 대족장님 같은 거려나?’
하지만 이해를 포기하지 않던 그는 좀 전에 나온 대화와 아까 전 보았던 대족장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드디어 제대로 확인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입씨름하고 있는 ‘자유기사’와 ‘시대의흐름’에게 이번에야말로 정답이라는 듯 말했다.
“오오… 그러니까 ‘엘프 산림청’ 분들은 야한 엘프들을 좋아하시는 거군요!”
‘자유기사’가 말했던 엘프들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공식 일러스트들을 제외하면 죄다 보이는 것은 야한 그림들, 심지어 공식 일러스트도 대부분 섹시 어필스러운 것들로 가득해서 찬성은 그 방향으로 이해해 버린 것이었다.
“쿠억!”
“컥?”
“아, 아니, 우리를 무슨…….”
“그, 근데 부정할 수가 없어.”
순수한 찬성의 팩트 폭력에 ‘자유기사’를 비롯한 ‘엘프 산림청’ 길드원들은 벌레 약 맞은 벌레들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땅을 구르며 괴로워했다.
“…푸하하하하!”
“맞지, 맞지, 맞지!”
“씹덕후 새끼들. ㅋㅋㅋㅋ 봐라. 저 순수한 검왕님의 팩트 폭력에 아주 몸 둘 바를 모르는구먼!”
“와, 미치겠다. 검왕님, 저런 사람이었어? 푸하하핫!”
찬성을 가까이에서 본 몇몇을 제외하고는 시공 길드원들 대부분은 멀리서 그와 어울리곤 했기에 이미지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 강자의 포스를 가진 그가 저런 실없는 뻘소리를 하니 빵 터질 만한 요소였다.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은데요?”
“너무 직설적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꽤 플레이하셨으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검’ 이외에는 잘 잊어버려서… 하아~ 복잡하네요. 아무튼 분위기도 이제 정리되는 것 같고, 슬슬 헤어지는 게…….”
이들의 대화에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것 같은 찬성. 아무튼 대략 오해도 풀고 의사도 확실히 전달했으니 해산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이었는데…….
쿵! 쿵! 크오오!
갑자기 땅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다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랜드 드레이크 ‘초전(初戰)’을 타고 오는 미니멈실버의 모습이 보였다.
“찬성아! 이게 다 무슨 일이니?”
“아, 누님, 채팅 이제 보셨어요?”
“3분 전에! 급히 나만 귀환해서 왔어. 아무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뭐야, ‘엘프 산림청’ 길드랑 ‘시공’ 길드가 다 모여서 무슨 일이야?”
뒤늦게나마 찬성의 메시지를 보고 달려온 미니멈실버의 등장. 보통 찬성이 다급하게 메시지를 남기는 일은 없었기에 그녀는 급히 귀환해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찬성은 차분하게 설명했고, 이야기를 대략 들은 그녀는 ‘엘프 산림청’ 길드원들을 보면서 빵 터졌다.
“결국 찬성이 널 꼬드기려다가 실패했고, 엘프에 대한 진실을 들키니 저 난리가 났다는 거구나. 푸후후훕! 거기, ‘자유기사’ 님, 이리로~ 와 보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의 목적은 이미… 실패한 것 같은데…….”
“다른 건 아니고, ‘엘프 산림청’이 굳이 얘를 영입하려던 이유가 궁금해서 말이죠. 엘프 사랑에 대한 전도는 그렇다 쳐도, ‘검왕’을 굳이 길드에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흠… 그냥 용병 일 하는 길드에서 ‘네임드’를 섭외하는 데 다른 이유가 없죠. 솔직히 ‘검왕’님이라면 어떤 길드라도 데려가고 싶을걸요? 안 그렇습니까? 시대의흐름 님.”
시대의흐름을 향해서 되묻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했다.
‘검왕 찬성’. 그 별호가 없을 때도 30레벨대에 자신들 ‘시공 길드’의 영지를 구해 준 구원자. 브루탈 길드의 길드장과의 일대일에서 승리했을 정도로 고수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게다가 다음 공성전 시기도 다가오니… 우리도 준비해야 해서 엘프 사랑에 대한 전도도 전도지만 뭐, 그것도 목적이긴 했습니다.”
“다음 공성전이라. ‘KOREA’ 길드는 지금 뭐 하고 있죠?”
“‘국뽕’ 양반이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여러 길드들을 모으고 있고, 용병 길드도 계속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연락이 왔었죠. ‘세우르’, 아니 ‘교토 특구’를 되찾자고…….”
“거기야 당연히 그러겠죠. 묶여 있는 기업 계약이 몇 개인데…….”
“그것도 그거지만, 일본 유저 길드가 요새 난리도 아닌지라. 그놈들, 아주 기세등등해서 무차별 PVP도 하고 난립니다. 에휴~”
자유기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한탄했다.
나름 이름 좀 난 이 ‘엘프 산림청’ 길드에서도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웬만한 길드나 일반 유저들이 입은 피해는 보통이 아닐 것이다.
“이미 커뮤니티에서도 난리일 건데요? ‘이첸성’ 먹히고 나서 초보 지역에서도 신규 유저들이 지금 일본 유저인 척 안 하면 게임을 못한다고 난리라고…….”
“흠… 우리 영지 쪽도 난리가 아니죠. ‘이첸성’ 바로 옆에 있어서 노리려고 준비하는 게 금방 티가 나니까요.”
“메리 왕국에 다녀온 며칠 사이에 상황이 묘하게 진행되고 있나 보네요.”
웅성웅성…….
갑자기 찬성 영입 전쟁 및 엘프 사랑 전도회장의 분위기가 바뀌어서 이곳 그란 왕국 내부 현실 성토회장으로 변해 버린 상황. 찬성은 계속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른 길드에서 대책 같은 건?”
“없죠. 지금 길드 다 중구난방인데요. ‘화신 길드’처럼 일본 길드 아래로 들어가서 충성하자는 애들도 있고 말이죠.”
“화신이라면… 아, 포트리스 그 인간. 하아아~”
“근데 그 역배가 대박을 터뜨린 셈이라서, 소문에 따르면 전쟁에 참여한 길드원들 다 짭짤하게 돈 받았다고 홍보하니까… 다들 친일파 노선 타려고 난리죠.”
“당장 우리 ‘시공 길드’ 안에서도 그냥 일본 길드 라인 타서 영지 보존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니…….”
‘교토 특구’ 함락을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그란 왕국을 일본 유저들 대세로 만들려는 일본 길드의 공세.
거기에 화신 길드의 흥행, 그리고 그동안 서로 대립하느라 쌓인 감정이 많았던 한국 길드 간의 분쟁으로 인해서 대혼란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사실상 그란 왕국은 일본 유저들 손에 들어가는 거고, 그렇게 되면…….”
“뭐, 여기 안에서 일본인처럼 살아야겠죠. 씹덕들에겐 천국이 되겠군.”
“근데 그래 봐야 결국 스타팅 지역으로 이제 차별이 시작될 거 아니야. 이미 사냥터에서 분쟁도 장난 아니었지.”
“효율 사냥터는 사실상 일본 길드가 점령했고, 레이드 던전 입구도 슬슬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그동안 쌓아 둔 게 많았는지 성토는 끊이질 않았고, 다들 이대로 가다간 ‘그란 왕국’에서 제대로 게임 못하고 일본 유저와 길드의 압박에 짓밟혀서 ‘일제 강점기’ 비슷하게 게임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아무튼 뭐, 그래도 대륙은 넓고 그란 왕국도 넓어서 여기저기 잘 숨어 다니거나, 우리는 일본 유저인 척하기도 쉬우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이만한 가상현실 게임이 다른 데는 없으니… 엘프의 생동감이! 넘치는 게임은 여기뿐이라!”
“우리도 영지 소유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본 길드 아래로 들어갈까 생각 중이긴 한데… 문제는 길드원들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좀 있어서 반발이 클 것 같아 문제군. 하아아~ 그분들은 다른 게임으로 갈 것 같지만. 뭐, 다들 떠나면 대충 영지라도 팔아 치우고 갈까 하는데…….”
“그럼 차라리 싸워 보는 건 어떨까요?”
‘자유기사’와 ‘시대의흐름’ 둘 모두 암담한 앞날을 예감하는 가운데, 미니멈실버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제안을 던졌다.
“싸움? 누가요? 우리가요?”
“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수십억을 게임에 때려 박은 ‘국뽕’이랑 KOREA 길드도 그 유리한 공성전을 못 지켜서 ‘세우르’를 빼앗기고 난리인데… 우리가 어떻게 싸웁니까?”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계속 얕잡아 보이게 되어서 이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 게임’을 못하게 되는 것보단 나을 거고… 또 자세한 이야기 정도는 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우리에겐 이분도 있고요.”
그러면서 슬쩍 찬성을 눈짓으로 가리키는 미니멈실버. 그것을 본 두 사람의 눈빛은 살짝 바뀌었다.
가슴속에 떠오르는 일말의 기대감. 메리 왕국의 ‘필란데스 영지’를 단신으로 뒤집어 버린 전설을 찍은 ‘검왕 찬성’. 그가 함께한다면 적어도 일본 길드에게 일방적으로 짓밟히면서 탄압당하는 것보단 나은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죠.”
“음… 나도 그게 좋을 것 같군.”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앉아서 미니멈실버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