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그러고 보니 저희 이제 본격적으로 길드를 운영하게 되면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 좋을 것 같으니 혹시 내일 아니면 다음 주 중에 현실에서 만나실 수 있으신가요?”
“네?”
“쿠룩?”
“지지직……!”
난데없는 미팅, 아니 현실 모임 제안에 세 사람은 눈을 크게 뜨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그래도 됩니까?”
“쿠룩, 너무 급작스럽군요.”
“생각해 보니까 이제부턴 시간을 내는 게 잘 안 될 것 같아서요. 원조 파티원들끼리 단합 대회라고 해야 할까?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죠.”
한 달 넘게 파티 플레이를 하는 동안 큰 논란이나 분쟁 하나 없을 정도로 궁합이 좋은 건 판명 난 셈. 정모를 해도 진작 했어야 했지만, 서로 예의라든가 찬성의 문제라든가 하는 것 때문에 제안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희야 좋죠.”
“쿠룩, 만세죠, 만세.”
“지지직… 저는… 지지직…….”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승낙하는 전국건강협회와 근손실보험. 하지만 살덩이는나약하다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미니멈실버는 곧바로 그 부분을 보충했다.
“아,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거부하는 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그저 지금 우리 초기 멤버의 인연을 좀 더 돈독히 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지지직…….”
“아마 사정이 있으셔서 참여가 어려운데 우리끼리 모이게 되면 혼자 소외될까 봐 그러시는 것 같은 느낌인데…….”
“쿠룩, 만남 하나의 차이가 또 은근 균열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쿠룩.”
“그 말도 맞네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여러 길드원들과 섞이고 대화 나누면서 이 구성만으로 만나지 못할 것도 사실이라.”
괜한 제안을 했나 싶은 미니멈실버. 살덩이는나약하다는 그런 파티원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감각의 한계를 넘어 이야기도 하고, 서로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자신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나마 기계의 힘을 빌려 볼 수는 있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저기, 저기요. 길드원분이 채팅창에 말을 쳤는데, ‘검왕님, 오팬무?’ 이거 무슨 뜻이에요? 숨은 메시지인가요? 다른 뜻을 내포한 건가요?”
“크릉, ‘오늘 팬티 무슨 색이야?’라는 뜻이야.”
“쿠룩, 그거 그냥 강퇴시키면 됩니다.”
“남자 팬티 색깔이 왜 궁금하대요?”
“…그냥 성희롱, 개드립입니다. 깊게 생각하지 마십쇼.”
역시 한꺼번에 많이 들어온 길드원들의 관리에 아등바등하는 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살덩이는나약하다’. 그에 대한 호감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쩌면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에 대해서 실망하면 어쩌지?’
다리를 잃은 그와 눈을 잃은 자신. 현실에서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건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과 다리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더 생기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 보고 싶어.’
비슷한 상처로 인해서 찬성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점점 커져 가면서 현실에서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목소리일지, 어떤 사람일지 궁금증이 나날이 늘어 가던 그녀. 실의에 빠진 그를 위로하고자 이상한 사진까지 찍어 보내면서 무리할 정도였으니 갈등하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면 파티원들의 관계도 있고, 무리해서 모임을 안 가져도 되니까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지지직! 아뇨. 갈게요!”
“헉?”
“…쿠룩… 아, 예.”
결국 제안 자체가 엎어지려고 하자, 살덩이는나약하다는 질러 버리듯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어찌나 다급했던지 평소 기계음 노이즈로 덮는 아바타 소리가 깨질 정도여서 다들 놀랐다.
‘아아… 저질러 버렸어.’
“크릉, 그러면 일정은…….”
“내일로 하죠. 쿠룩.”
“길드원들도 많아지니까 빨리 처리합시다. 다들 어차피 내일도 게임할 거였고… 만나는 건 어디로 할까요? 조용한 곳이 좋을 텐데…….”
그녀의 승낙과 동시에 바로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찬성 일행.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어차피 다들 내일도 게임을 할 예정이었기에 그 일정을 조금만 조율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얼른 사냥이랑 퀘 마무리하죠. 오늘은 일찍 자야 하니까…….”
“찬성아, 너는 길드원 관리 계속해. 그러면서 우편으로 보내 준 서적 감정하고. 퀘스트는 우리가 밀 테니까…….”
“으엑… 이걸 언제 다 한대요? 인사하는 것만 해도 벅찬데… 하아~ 이름도 다 기억해야 하고…….”
언뜻 보면 파티원들이 사냥과 퀘스트를 밀어 줘서 편하게 진행하는 것 같지만 길드장이라는 무거운 짐과 채팅, 전문 기술 숙련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가장 힘든 입장이었다.
“누님, 저… 전투가 하고 싶어요.”
“그거 다 하면… 크릉.”
“지금 우편함에 ‘미확인 고서’들이 계속 쌓이는데요? 길드원들과도 인사해야 하고…….”
“힘내렴. 파이팅! 그리고 고고학 숙련도 오르면 아이템 탐사에도 좋으니까… 좋잖니.”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찬성의 고됨에 애도를 보내는 그녀. 파티원들을 둘러보니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쿠룩, 원래 고레벨로 갈수록 노동의 비중이 높아지죠.”
“길마는 또 길드에서 할 일이 가장 많은 사람이기도 하죠. 근데 그러면서 명예직이고… 아무튼 파이팅입니다.”
“킁, 근데 너 산에 있을 때 비슷한 거 하지 않았니? 대사형으로서 애들 관리라든가…….”
“산에서야 검으로는 대사형이었지만, 양 사저랑 아사쿠라 사제가 워낙 유능해서 다 맡겼죠. 저는 그저 ‘검’만 잘해서…….”
“정말 ‘검’ 말고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너.”
“끄앙.”
미니멈실버의 직설에 찬성은 내심 찔리는지 묘한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떨군 채로 계속해서 ‘고서 감정’과 채팅방의 길드원들에게 인사와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진행했다.
***
결국 8시간의 플레이 타임이 끝나고 찬성 일행은 모두 로그아웃, 개별 채팅방에서 내일 만날 계획을 정하기 위해 찬성과 민희는 오랜만에 같은 방에서 나란히 앉아 휴대폰을 놀리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너 못 먹거나 알레르기 있는 음식은?”
“전혀 없어요. 근데 장소는 어디로 잡으시게요?”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도록 파티 룸 대여할 거야. 대신 음식은 모두 배달시키겠지만 말이지. PC도 마련되어 있는 곳이면 노는 데 충분하겠지.”
“아, 그건 감사하네요. 하하.”
게임 내에선 자유롭지만 밖에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찬성인 만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에 일부러 파티 룸 형식으로 정모 장소를 대여해 준 민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받은 길드원들, 너무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네요.”
“원래 그게 평균이야. 지금 우리 메인 파티의 세 사람이 정상인이라니까…….”
“그러고 보니 메리 왕국 수도, 간신히 지켰다면서요?”
국경 부근에서 분쟁이 생긴 메리 왕국과 자렌 왕국 유저들 간의 분쟁, 그리고 일본 유저들의 추격 등등… 사고가 터진 메리 왕국에 대해 떠오른 찬성이었다.
“어. 원래는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는 자렌 왕국 사람들에 의해서 밀리기 시작했는데… 오늘 공성전 날이라서 다들 돌아갔대… 그래서 수도가 따이는 건 아슬아슬하게 지켰다나?”
“어, 결국 공성전이 중요하긴 한가 보네요.”
“그렇지. 실질적인 이익이 교차하는 곳이니까… 아, 그나저나 공성전 결말이나 볼까? 어디 보자… KOREA 길드 방송이…….”
태블릿 PC를 하나 더 꺼내서 방송을 트는 민희. 화면에는 한창 떠들면서 공성전에 힘쓰는 ‘KOREA 길드’의 모습이 보였다.
『개새끼들아! 왜 못 미는 건데! 이 개X새끼들아! 암만 그래도 첫 문을 못 뚫는 건 에바참치 아니냐?』
『우리가 뚫기 싫어서 안 뚫는 게 아니라니까요.』
『어디서 돈을 퍼부은 건지 문을 최종 티어까지 올렸다니까요.』
『그럼 벽이라도 올라갔어야지!』
『용병 애들도 역시 각이 안 나오는 건지 소극적이고…….』
『저기 네임드급이 작정하고 성벽 위에서 막으니까 답도 없고…….』
화면 속에는 서로에게 성질부리면서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KOREA 길드’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공성전 현황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성문도 못 뚫고서 아등바등하는 중이었다.
“역시 못 뚫네.”
“성문도 못 뚫었네요?”
“어. 답 없지. 이미 타임 오버인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 뚫고 열어도… 거의 기적에 가깝게 뚫고 가야 내성 안에 있는 가디언 토벌을 할 텐데… 사쿠라마치 길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하긴 입구부터 네임드들이 저렇게 꽉 막고 있으면 무리지.”
“‘네임드’…….”
민희가 태블릿 PC의 화면을 조정하자 성벽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지키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두 명이 아닌 약 십수 명의 네임드 유저들이 의기양양하게 문을 뚫지 못하는 ‘KOREA 길드’ 유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게임의 법칙은 숫자 싸움이지만 그래도 역시 전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네임드’ 유저들이지.”
“예. 전에도 들었어요.”
“지금 상황이 더 힘든 건 한국 길드의 네임드들도 일본 길드에 붙었다는 점 때문이지. 이전 공성전 이후로 더… ‘포트리스’뿐만 아니라 저기 ‘데블즈 윙’ 길드도 보이고, ‘검은 이빨’ 길드 같은… 중립이나 PVP 성향 길드까지 저기에 붙었네.”
유저들 여론이 중요한 기업 길드 혹은 프로게임단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네임드가 있는 대형 길드들이 이전보다 더 일본 길드에 붙어 버린 정황이 보이고 있었다.
“하……! 정말이지.”
“힘들겠네요.”
“이래야 더 넘는 맛이 있지.”
암담한 앞날이건만 이글이글 눈빛을 불태우는 민희. 상상 이상으로 근성 넘치는 그녀를 보며 찬성은 자신도 힘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힘낸다고 해도 저는 길드장으로서 운영이랑 퀘스트 미는 동안 또 책 감정뿐인 것 같은데요?”
“그걸 통해서 전설급 아이템 이상, 신화급 아이템을 파밍해야 하니까… 구매하는 건 상상도 못해.”
“예. 하하…….”
“아, 공성전 끝났네. 승패는… ‘교토 특구’는 당연히 사쿠라마치의 승리, 다른 영지는… 의외로 하나도 안 밀렸네? 중심 수비에 집중해서 그런가? 흠…….”
그만큼 ‘국뽕’이 모은 전력이 일본 길드에겐 위협적이었다는 의미. 일본 길드도 막을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고 전력을 집중해서 막았다는 의미였다.
“사쿠라마치의 길드장, 참 신중하고 현명하네. 다른 영지 두세 개 정도는 더 밀어도 될 건데…….”
“유능하니까 길드장을 하고 있는 거겠죠?”
“그렇지. 음, 그런데 동남아 계열 길드가 안 움직이는 것도 묘하네. 지금이 딱 한국 길드들 뒤통수치기 좋은 타이밍인데… 눈치를 보는 게 큰가? 아니면 저기도 일본 길드를 싫어하는 건가… 흠… 상황이 묘하네.”
손가락으로 툭툭 태블릿 PC를 두드리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계산하는 민희를 묘하게 바라보는 찬성. 아무튼 공성전의 결과에 대해서 떠드는 길드원들의 채팅을 보고 있는데, 태블릿 PC에서 갑자기 난데없는 인터뷰 소리가 들려왔다.
『검왕! 지금 보고 있습니까?』
“……? 저 찾는 거예요?”
“검왕이라는 네임드 유저는 너밖에 없지 않니?”
당황한 찬성이 휴대폰을 내리고 태블릿 PC로 시선을 돌리자, 화면엔 공성전 승리 인터뷰 중인 ‘사쿠라마치 길드’의 ‘萬千花’가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