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방송이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운동 영상이랑 동물 영상 보는 용도로만 썼는데… 근데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게 볼만한 건가?’
“음, 역시 그… 검술 같은 게 밖에 드러나면 안 되는 거니?”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전 성인이 되자마자 면허 개전 받은 몸이라서 더 수양하다가 제자만 구하면 된다고 스승님이…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 갑자기 왜 그래?”
“내 정신 좀 봐! 정신 차렸으면 스승님께 먼저 연락해야 했는데! 이런 멍청할 때가! 저 일단 게임 좀 나갔다가 올게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찬성은 그렇게 괴성을 지르면서 게임을 종료하고 사라졌다.
민희 또한 이건 그냥 있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똑같이 게임을 종료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찬성의 방문을 열자 기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불초 제자가 정말 몹쓸 죄를 지었습니다. 스승님! 이제야 연락드리게 되어 정말로 죄송합니다!”
찬성은 화상 통화로 돌려 둔 스마트폰 앞에 그야말로 오체투지 자세로 엎드려서 예를 갖추고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사람은 매우 연로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새하얀 긴 수염이 인상 깊은 그는 부처님 같은 자애로운 얼굴로 손을 저으며 찬성을 두둔했다.
『허허허, 몹쓸 죄라니.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게 어째서 너의 탓이라는 게냐. 고개 들고 자세를 편히 하여라. 오히려 정신이 들어서 다행이구나. 우린 병원에 갔을 때, 그대로 네가 떠나 버릴 것 같아서 엄청 걱정했는데 말이다.』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다. 네 경우는 특히 ‘면허 개전’을 받고, 진검을 신고하러 가던 날 그런 사고가 터졌다. 그 고통은 보통 사람… 아니, 너처럼 재능이 있고 빛나던 아이에게는 더 크겠지. 그나저나 지금 어딘 게냐? 병원은 아닌 걸로 보인다만? 네 사제들이 다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삼촌 댁에 잠시 신세 지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여기서 요양할 계획입니다. 병원에 누워 있었던 만큼 몸을 회복시키고 난 다음에… 차후 거취를 결정하고자 합니다. 뭐, 이런 몸이니 이제 현실에서는 ‘검’은 더 못 쥐겠지만요.”
『허허, ‘현실’에서는?』
스승은 찬성의 말에 뼈가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에 대해 되묻자 질문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찬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예.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 ‘검’을 휘두를 곳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께 설명드리기엔 매우 길지만 설명드리고자…….”
『설명할 필요 없다. 나도 가상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선 잘 알고 있으니, 그건 넘어가려무나.』
“네? 아신다고요?”
『제자를 키우는 입장에서 제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게 스승 된 도리가 아니더냐. 젊은 혈기와 호기심을 못 이겨서 여기저기 손댈 만한 문화 같은 건 이미 다 알고 있단다. 허허허.』
“아, 그러시군요.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찬성은 감탄했다. 보통 어른들 하면 젊은 세대의 문화를 그저 폄하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클 수 있는데, 제자들의 교육과 이해를 위해 솔선수범해서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익히려고 하니 더더욱 존경심이 솟은 것이다.
『그러니… 아, 미안하구나. 잠시만 기다려 주겠느냐? 택배가 와서 말이다. 산중에선 미리 받지 않으면 들짐승들이 노리거든. 허허허.』
“아? 예.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제들에게 시키시는 게…….”
찬성은 분명 산중에 있을 사제들을 생각하며 말을 했지만, 스승님은 이미 가 버린 듯 발소리만 스피커로 작게 들렸다.
여닫이문이 열리는 소리와 택배를 전달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오가고 난 다음, 스승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 내용이 들렸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호호호호~ 버추얼 아이돌 미카짱의 신작 피규어랑 굿즈가 왔군. 요호호~ 그리고 시크릿 라이브 일정이랑 접속 코드까지… 요호호호! 드디어 왔어!』
“…….”
“누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스승의 목소리는 최신 스마트폰의 성능으로 인해 똑똑히 전해졌지만 찬성은 그 내용을 모르기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반면 민희는 버추얼 아이돌이 뭔지, 굿즈가 뭔지, 시크릿 라이브 접속 코드가 뭔지 다 알아들었기에 ‘완전 깬다.’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흠! 아무튼 네가 정신을 차리다니 그걸로 다행이다. 크흠크흠! 그래, 세계가 어떻든, 네가 무엇을 하든 너는… 이미 ‘면허 개전’을 이룬 파성검각의 검사인 만큼 무엇을 해도 잘하리라 믿고 있다. 허허허, 조만간 시간이 나면 사제들이랑 한번 찾아갈 테니 몸조리 잘하고 있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만 택배를 정리해야 해서 가 보마. 무사해서 다행이고, 몸조리 잘하거라. 요호호호~』
흥겨운 스승의 웃음과 함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스승에게 인사를 마친 찬성은 자세를 풀고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민희 또한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아서 안도하며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네. 스승님이… 참 선진적인 분이셔서 다행이네. 아니… 누구보다 더 최신 문명에 밝으시고 잘 즐기시는 것 같지만…….”
“예? 교육을 위해 하시는 건 알지만 즐긴다니… 그게 무슨 소리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찬성의 마음에 있는 스승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감추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가상 세계 아이돌’의 피규어랑 굿즈를 사며 환호하고 비밀 콘서트 입장 코드에 흥분하는 주책맞은 노인이더라도, 찬성에게는 소중한 스승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녀는 곧장 다음 제안을 했다.
“자아~ 그러면 인터뷰를 마저 하자. 적어도 ‘검성’ 전직한 그 정보는 써먹을 수 있으니 말이야. 게임으로 들어와.”
“그런데 왜 굳이 게임 안에서 해요? 밖에서 하면 무슨 문제가 있나요?”
“가능한 한 인게임 정보를 동봉해서 영상을 만들어야 하거든. 내가 쓰레기 같은 기레기, 사이버 렉카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개인 신상도 지켜야 하고.”
“아하~ 예. 들어가겠습니다.”
스승에게 안부도 전했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된 찬성은 다시 팬텀 드라이브-2에 누워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민희의 하우스로 복귀한 찬성은 잠시 후 들어온 민희와 함께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는 게임 UI를 만져 녹화 모드로 바꾼 다음 찬성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냥 편하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말해 줘. 아이디는 적당히 가명으로 둘러대면 돼. 왜 그런지는… 혹시 아니?”
“아! 맞다. 근손실 님이랑 건강협회 님도 그렇게 말했어요. 남이 잘되는 거 못 보는 인간들 때문에 위험하다구요.”
“그래. 나 같은 경우 상위권 길드에 속해 있어서 괜찮지만, 초보인 너는 그게 아니니까……. 자, 시작하자. 그러면…….”
곧바로 인터뷰 형식으로 영상이 담아졌다. 간단하게 게임 UI랑 정보를 통해서 찬성이 Lv.10에 클래스:검성임을 인증하는 영상도 찍고 클래스 획득 루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 질문과 답변을 하는 것으로 약 5분간의 인터뷰가 완성됐다.
“좋아. 끝! 나는 이거 편집해야지~ 자, 귀환 스크롤. 이거면 단번에 이첸성의 모험가 길드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해당 영상 수익은…….”
“아뇨. 제가 누님 집에서 신세를 지는데, 받을 수 없어요.”
“아니, 이게 남이면 그냥 정보료나 성의 표시만 하고 치우겠지만 너는 집안끼리 가까우니까… 헛짓거리하면 내가 아빠한테 죽어. 그리고… 네 부모님께도 신세를 많이 졌으니! 반드시 챙겨 줘야 해! 아, 맞다. 너 부모님한테도 연락해야 하지 않니?”
“아… 뭐, 문자라도 넣어 두죠.”
뭔가 스승님에 대해서 떠들었을 때에 비해 담백한 반응이었다. 찬성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이내 그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무튼… 부모님은 문제없고, 영상은 누님 마음대로 하세요.”
집안끼리 가깝고, 어른들 이야기까지 나오니 찬성도 거부할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부친과 삼촌은 확실히 혈족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교류도 활발했기에 찬성도 더 이상 성의를 마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 그럼~ 나는 영상 만들러 가 볼게. 제목은… 보자, ‘월드 아카, 새로운 히든 루트 발견. 10레벨에도 가능하다!’로 할까?”
“그… 보통 사람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데요. 저도 상당히 힘들었는지라.”
“뭐, 제로가 아닌 확률은 가능하다고도 하니까. 후후후후후, 요점은 거짓말만 아니면 되는 거야. 실제로 너라는 증거가 있으니 말이야. 논란이 되면 논란이 되는 대로 조회 수가 오를 거고. 후후후후후후후…….”
‘귀여운 모습인데, 이렇게 하니 악마 같네.’
가뜩이나 토끼 수인이라서 눈도 붉은데, 사악하게 웃으면서 빛내고 있으니 살짝 기괴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튼 이제 클래스 전직도 마쳤고, 할 이야기도 다 했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이첸성으로 돌아가서 게임을 계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귀환 스크롤을 쓰려는 타이밍에 갑자기 민희가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그리고 앞으로 말인데, 던전 돌 때 영상 찍어서 보내 줘. 직접 방송 안 할 거라곤 해도 모아 두면 분명 쓸 일이 있을 거야. 알았지? 꼭이다!”
“아, 예. 그렇게 할게요. 그럼 나중에 봬요!”
“저녁 먹을 때쯤 연락할 테니 그때 봐.”
“네!”
활기차게 대답하며 스크롤을 써서 사라지는 찬성이었다.
이제 갓 성인이다 보니 아직 앳된 면이 많은 것에 미소를 지으며 민희는 곧바로 게임을 나가서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서 이첸성에 복귀한 찬성은 모험가 길드 앞에 도착했다. 연락을 넣고 잠시 기다리자 근손실보험과 전국건강협회가 곧바로 접속했다.
“리하요, 찬성 님.”
“전직을 마쳤는데… 변화점이 거의 안 보이네요?”
“아, 오셨어요. 두 분… 어라?”
셋 모두 전직을 마치고서 다시 모이자 찬성은 두 사람의 외양이 변한 것을 눈치챘다.
먼저 전국건강협회는 분명 처음의 아바타와 같은 것을 입고 있는데, 투구 위에 수탉처럼 거대한 붉은 술이 달려 흔들리고 있었고, 갑주의 가슴 부분엔 호랑이와 창이 겹쳐져 있는 엠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그거 뭐예요?”
“아, 전직 이펙트 같은 겁니다. ‘클래스 업’이 구현된 게임에 꼭 하나씩 있는 거죠. 어떤 갑주를 입든 간에……. 요 머리 위의 술은 이 도시를 지키는 창병이라는 뜻이고, 이 문양은 그란 왕국의 것입니다. 소속도 전 이곳 왕국으로 바뀌었죠.”
철그럭.
슬쩍 어깨를 움직여 갑주에 새겨진 문양을 보여 주는 전국건강협회를 보며 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내의 설정에 이입을 시키고, 자신의 변화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보상 심리를 높이는 방안인 ‘전직 이펙트’. 단순히 스킬만 차이 나는 게 아니라 외양의 변화도 중요하며,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자랑거리였기에 MMORPG에서 자주 시도되는 것이었다.
전국건강협회의 모습에 감탄한 찬성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뒤에 있는 근손실보험을 가리키면서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저기 근손실 님도… 전직 이펙트라서 저런 건가요?”
“예, 뭐. 그렇죠.”
“근손실 님이 아니라! 쿠룩! 보험 님이라고 해 주십시오. 쿠룩! 네! 알고 있습니다. 쿠룩! 이 야만의 투사 전직을 하게 되면… 쿠룩! 씨름 선수처럼! 쿠룩! 팬티 한 장과 그 위에 샅바만 걸친 모습이라는 걸 말입니다. 쿠룩!”
전직 이펙트가 창병처럼 본인이 입은 아바타 위에 장식되는 심플한 경우가 있는 반면 아예 패션을 덮어 버리는 유니폼 같은 경우도 존재했다.
‘야만의 투사’는 이름 그대로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노출이 많은 형태로 허리에 샅바와 팬티 한 장만 걸친, 거의 나체 차림이었다.
너무나 민망한 모습인지라 찬성은 그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그 전직 이펙트… 끄는 건 없나요?”
“물론 있죠. 하지만 하려면 찬성 님처럼 클래스 부분을 완전히 꺼야 합니다. 하하하, 이거 참 웃기죠? 근데 말이 안 되는 게 아닌 게… 클래스 정보 공개는 꺼 두었는데, 전직 이펙트를 켜 두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아하아~”
“그리고 보통 찬성 님처럼 히든 클래스나 유일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 과시나 다른 유저가 보면 ‘앗! 저 사람은!’ 하면서 쉽게 알 수 있게 해서 파티 모집을 수월하게 하기도 합니다.”
“아하아아아~ 그렇구나.”
“물론 저렇게 전직 이펙트가 민망한 경우도 끄는 경우로 취급됩니다. 이거 설명드리려고 일부러 저렇게 한 겁니다. 야, 이제 꺼. 빤스에 샅바 차림 민망하다.”
“쿠룩! 뉴비 교육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쳤지만… 쿠룩!”
근손실보험은 투덜거리면서 전직 이펙트 설정을 껐고, 그러자 민망한 팬티에 샅바 차림은 사라지고 가죽 갑옷에 권갑을 두른 모습으로 변했다.
야만의 투사가 되었다곤 해도 전직 이펙트 설정을 끄면 결국 아이템의 외양이 캐릭터의 외형을 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멀쩡해진 패션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셋은 레벨 업을 위해 다음 퀘스트를 뭘 받을까 고민하며 의뢰 게시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