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이번 건 꽤나 심각한 사태이긴 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 내부에 정당하게 만들어 둔 퀘스트 라인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을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물론 이 퀘스트 라인을 그대로 둘 순 없지. 하나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성취한 자의 노력을 부정할 것인가?”
“그… 버그라든가 오류라든가 이유를 붙이면, 애초에 게임 내의 아이템들은 약관상 모두 게임사의 것이기에…….”
“그렇게 처리하는 방법도 가능하지. 하지만 그 여파는? 상당히 시끄러워지겠지. 그런 건 피하고 싶지.”
이제는 ‘검왕’ 혹은 ‘검황’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해진 찬성. 이젠 네임드 유저 그 자체였다.
실제로 네임드 유저의 상징인 유사품 아이디, ‘촌성’, ‘촨성’, ‘첸성’ 같은 게 생성될 정도로 이름값이 커졌는데, 그런 유저가 정상적으로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얻은 아이템을 빼앗는다고 하면 유저들의 여론은 좋지 않을 것이다.
‘근데 애당초 그놈이 명성 쌓을 때까지 방치한 게 사장님이잖습니까!’
‘물론 덕분에 매출이라든가, 광고 효과는 좋았지만…….’
‘또 몇몇은 가상현실에서의 초인적 움직임과 활동에 대한 논문도 나오고 있고…….’
물론 이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사장의 방치도 있었기에 직원들은 속으로 한탄했지만, 어쩌겠는가?
긍정적인 효과도 많을뿐더러 상대는 사장이자 이 회사의 주인, 갑 오브 갑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두 가지지. 우리 쪽에 여론의 창날이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하는 점, 밸런스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점.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위험 부담이 생기는 거니 계산을 해 봐야 하지.”
“사장님, 저기… 아직 그, 찬성 유저 측에서 이 ‘(신화)천문(天問)’을 공개 안 한 것 같습니다.”
“음? 공개를 안 했다고? 소식을 공유 안 했단 말인가?”
“예. 제가 ‘야천 길드’에 몰래 들어가 있는데, 길드 내에서는 다들 검성의 ‘비전 4식’ 이야기만 하고 있고, ‘(신화)천문(天問)’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러면 잘됐군. 빨리 연락해서 접선하게. 그러면 적절하게 ‘조정’을 하고, 대신 다른 보상을 제시할 수 있으니 말이야. 기밀 유지 서약까지도 받고…….”
천만다행인 건지 살덩이는나약하다의 조언을 받은 찬성이 공성전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 쓰고자 했고, 그 덕에 다른 유저들에겐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 기회가 있는 ‘D.E사’였다.
“그, 교환할 보상에 대해선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이야기부터 끌어오게나.”
“예!”
나중에 ‘(신화)천문(天問)’의 존재가 알려지고 나서 수습하려면 이미지적으로든 게임적으로든 손해가 나기 때문에 사장은 우선 제안부터 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직원은 이전 광고 협의 때 받아 둔 연락처로 빠르게 최민희에게 연락을 넣었다.
***
그러는 사이, 찬성은 전국건강협회와 근손실보험에게도 이 말도 안 되는 막강한 신화 등급 아이템 ‘(신화)천문(天問)’에 대해서 공유하는데…….
[채팅방(5)] [전국건강협회:이건 심한데요.] [근손실보험:아무리 제국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몹을 잡는 거라지만 이건 심하네.] [전국건강협회:이건 치트지, 그냥.] [근손실보험:저거 스킬 지속 시간 늘려 주는 게 대박이야. 나중에 공격력이 가치가 없어도 스위칭하면 그만이니까…….] [전국건강협회:저건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반응이 똑같네요?”
“누구라도 저런 반응일 거야. 아무튼 조커 카드로서 비밀로 하자는 거 좋은 생각이었어. 아, 찬성아, 잠시만. 전화가 왔네.”
똑같은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던 민희는 자신의 전화가 진동으로 떨리는 것을 감지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누구세요.”
(그, 최민희 님 맞으시죠? 저는 예전에 봤던 D.E사의…….)
“아, 예! 과장님. 어쩐 일이시죠?”
목소리를 기억해서 전화를 건 이가 누군지 바로 알아들은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희가 전화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해당 직원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찬성이 먹은 검, ‘(신화)천문(天問)’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을 붙여 가며 이야기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제 해당 아이템을 조정 혹은 수정을 하고서 보상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보상이라면 어떤 거죠?”
(그건 아직 회의 중입니다. 일단 아이템의 정보가 바깥에 알려져선 안 되기에 우선은 의사를 밝히고 차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과연, 알겠습니다. 일단 주변 사람 몇 명에게밖에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단속시키고 있겠습니다. 차후에 연락을 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용건이 끝나자 전화를 끊은 그녀는 찬성에게 전화로 했던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어? 그러면 ‘(신화)천문(天問)’은 없어지는 건가요?”
“아니, 없어지진 않고… 그보다 보통 게이머면 회수라든가 너프라고 할 텐데, 아직 게이머가 덜 되었구나. 어쨌든 누가 봐도 심하긴 했어. 그 아이템…….”
“그 정도로요?”
“그렇다니까. 아무튼 대답이 오는 거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거고… 그때까진 밖에 안 드러나게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 놓으렴.”
“네에~”
찬성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과연 D.E사가 어떤 보상을 줄지,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찬성의 퀘스트 영상과 데이터를 별도로 백업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하이테크 기업이며, 일전 D.E사 개발부에 들어갔을 때 그 위용을 보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빠가 일하는 것만 봐도 대강 알 수 있으니 말이지.’
그녀는 실제 D.E사 직원의 가족이기도 하니 말이다.
***
며칠 뒤…….
비전 4식을 익히고 난 뒤에도 찬성의 게임 일상은 한동안 하던 대로였다.
‘D.E사’에서 말한 보상과 타협안에 대해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 가운데, 오늘 찬성은 민희와 함께 다시 외출을 했다.
오늘 모습은 둘 다 정중하게 갖춰 입은 차림새로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그러니까… 그 국뽕이라는 분을 만나는 거라고 했죠?”
“그래. 그분이랑 이제 기업 스폰서들을 설득하는 거야.”
“굳이 제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재주가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저를 알 리가…….”
“넌 존재 자체가 승리의 토템이자 치트키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
찬성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갸웃했고, 민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둘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고급 한정식집에 도착했고, 예약된 방에는 양복을 입은 낯선 중년 사내가 경건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저기… 그러니까 국뽕 님?”
“오셨군요, 실버 님. 그리고 옆에는… 설마 검왕님?”
“안녕하세요. 윤찬성입니다.”
민희의 경우 커스터마이징을 했지만 사전에 여성이라는 걸 밝혀 둔 덕분에 착오가 없었고, 찬성은 커스터마이징 자체를 하지 않아서 현실 외모나 가상세계 외모나 크게 다르지 않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인게임에서 국뽕 닉네임을 쓰는 김한국입니다.”
“김… 한국?”
“그런 표정 많이 봤습니다. 하하하.”
국뽕, 아니 김한국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전체적인 그의 인상은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말쑥한 중년으로, 배도 나오지 않고 다부진 몸매를 가진 것으로 보아 꽤나 잘 단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분이 바로 그 검왕이셨군요. 저번 공성전 잘 봤습니다.”
“너무 부담스러운 이름이라 부끄럽습니다. 음?”
“호오…….”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악수를 하면서 슬쩍 손에 힘을 준 김한국의 반응에 찬성은 의아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강하게 마주 쥐었는데, 찬성의 손아귀 힘을 느낀 김한국의 눈빛이 바뀌었다.
“오오… 이 근력. 겉보기와 다르신 분이군요.”
“아, 예. 매일 단련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몸이 되어서도 말이죠.”
“과연… 게임 내에서 검술을 쓰는 건 현실에서도 단련하셨다는 거군요.”
“정확히는… 단련했던 거지만요.”
다리 쪽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 찬성이었다.
게임 내에선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니던 그였지만 현실에서는 이제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 사고로 잃은 양다리를 슬쩍 보는 찬성의 모습에 김한국은 머쓱해하며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크흠, 그러면 인사도 나눴으니 올라오시죠. 민희 님, 찬성 님, 두 분 모두 오늘 회의 준비는 해 오셨는지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셨으니 믿고 있겠습니다만…….”
“걱정 마세요.”
“그, 저는… 그냥 토템이라. 누님에게 전권 위임입니다, 네.”
‘…이 두 사람을 믿어도 될까?’
김한국은 내심 그런 우려가 들었지만 일단 입 밖엔 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불안해 죽을 지경으로, 두 사람 모두 갓 성인이 된 어린아이들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 능구렁이 같은 갑질의 온상인 ‘스폰서 회사’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부디 내 선택이 맞기를…….’
“크흠, 다들 와 계셨군요.”
‘왔다!’
그리고 드디어 기침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방 안에 들어왔다.
이들 모두 대한민국 유수의 대기업들의 홍보팀으로 본래 ‘KOREA 길드’와 계약을 했던 스폰서 계약 담당 직원들이었다.
‘진짜… 진짜 괜찮은 거 맞겠지?’
‘이게 세계구에서 노는 사람들인가?’
오늘 이들의 손에 ‘KOREA 길드’와 ‘그란 왕국’ 주도권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나 마찬가지. 김한국의 긴장감은 더 크게 올라갔고, 민희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프레셔에 태연하려 애썼다.
‘찬성아, 너는 알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거?’
끄덕.
민희는 찬성에게 사전에 내린 지시에 대한 신호를 보냈고, 찬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하고 있음을 알렸다.
“반갑습니다. S그룹 전자 사업부의 조현철 대리라고 합니다. 본사 홍보 제2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L그룹 본사 대외 협력 제4과의 백춘석 과장입니다. 여기 명함입니다.”
“저는…….”
그렇게 소개가 이어지고, 총 7명의 스폰서 업무 담당자들과 마주 앉게 된 세 사람. 서로를 바라보면서 탐색하는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폭풍 전야와 같은 상황에서 김한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우선은 뭣 좀 시키고 이야기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야기하러 온 거긴 하지만, 식사도 겸하기 위해서 온 거니까 말이죠.”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이 업무 뒤에도 업무가 있기에 배를 불릴 순 없습니다.”
“요새 살 빼는 중이라.”
“아, 예. 하하하…….”
다들 핑계를 대면서 식사 거부를 하지만 그 내면에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갑시다.’라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얄짤없이 식사 대접을 거절당한 김한국은 슬쩍 고개를 돌려 민희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와 노트북을 꺼내었다. 그러자 마주 앉은 샐러리맨들도 모두 각자의 가방에서 서류 뭉치와 노트북들을 꺼냈다.
마치 검사들이 서로 무기를 뽑고 대치하는 것 같은 살벌한 긴장감 속에서 찬성은 민희의 지시를 조용히 이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