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5
5화.
“…이게 다 뭐람.”
찬성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눈앞에 잔뜩 나온 시스템 메시지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보자, 이건 축하 메시지이니 빼고… 상자는 나중에 열면 되고. 소속이 뭐지?”
[시스템-‘소속’은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의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및 단체들입니다. 서로 특별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뭉친 이곳은 구성원에게 보너스를 주며 ‘소속’에 맞는 퀘스트나 업적을 통해서 우호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우호도가 올라갈수록 여러 혜택이 주어집니다.] [소속:모험가 길드] [우호도 1단계 보너스:Lv.20까지 사망 시 경험치 하락이 없음] [우호도 2단계 보너스:모험가 길드 내의 시설 이용 가능(비활성화)] [우호도 3단계 보너스:모험가 길드 내의 시설 무료 이용 가능(비활성화)]“과연 이런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찬성은 지금 당장 신경 쓸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다음은 ‘캐시 샵 메뉴’. MMORPG 온라인 게임에 이젠 빠지면 섭섭한 것으로 현금으로 결제해서 다양한 혜택이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라? 옷을 파네? 양복, 수영복, 가죽 재킷… 게다가 샤X, 프X다랑 컬래버레이션 상품도 있네?”
중세, 근세 서양 판타지 배경이라서 그런지 현대식 패션에 대한 치장 욕구가 높아서 나름 판매도 잘되고 있었다.
물론 확률형 아이템이나 과금용 아이템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강화라든가 아이템 제작 성공률을 올려 주는 편의성, 확률 보정용 아이템이 주였다.
게임의 제작사인 ‘D.E’사에서도 ‘그냥 재미로만 하세요. 진짜 확률 구더기고 가성비 안 좋습니다. 그냥 넣어 둔 거예요.’라고 하는 랜덤 박스가 유일한 확률형 아이템이었다.
[랜덤 박스]게임 내의 아이템들 중 무작위로 1개를 얻습니다.
‘D.E’사에서 다른 게임사들의 눈치를 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넣어 둔 아이템이라 생각될 정도로 확률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서는 ‘D.E’사에 감사의 인사를 할 때, ‘후원 바칩니다.’를 인증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업적은… 아,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증거구나…….”
[업적은 당신이 이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성공했을 때 주어지는 징표입니다. 때론 흔하게 하기 힘든 업적을 세웠을 때 특별한 보상도 주어지게 됩니다.]모든 메시지 창을 분석하고 확인한 찬성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초보 모험가 지원 상자(전사)를 열자 안에서 보급용 장검, 모험가 길드 보급용 가죽 갑옷을 비롯한 장비와 초급 포션, 횃불, 밧줄 같은 모험용 아이템들이 여럿 들어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리얼하네. 이건… 진검 같네. 아… 가상이니까 가짜인가? 말이 이상하네. 하아아…….”
수수한 보급용 장검의 예리한 날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는 찬성.
자신의 진검(眞劍)을 받고 면허 등록을 하는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운명이 변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려 버린 탓이리라.
“아무튼 이거… 꽤 재미있네?”
찬성은 부대장 카알 NPC와 싸웠던 것을 떠올렸다.
사고를 당한 이후 검을 쥐고서 전력으로 집중해서 휘두른 것으로, 가상 세계라곤 하지만 나름 즐겁게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자신의 기준에서 살검(殺劍)이라 여길 기술들도 부담 없이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지금 스테이터스로는 우리 유파의 검술을… 다 구현 못하겠지? 이 육체로는 속도, 힘, 체력… 전부 부족해.’
검술을 다시 하는 것도 하는 것이지만, 찬성이 기대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현실에서도 하지 못했던 검사로서의 전투.
이 게임 안에서라면 마음껏 할 수 있는 점이 특히 찬성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일단 나가면 삼촌에게 사과해야겠다. 후우.’
[시스템-기기 외부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들으시겠습니까?]“어? 삼촌인가?”
[보아하니 꽤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밥은 먹으면서 해야 하니 일단 나와라. 저녁밥 먹자.]“아… 예! 보자. 시스템 창을 열고… 게임 종료 및 기기 종료.”
[게임을 종료하고, 기기를 종료합니다.]‘게임을 종료합니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찬성의 의식이 꺼졌다.
다시 눈을 뜨니 자신이 누워 있던 팬텀 드라이브-2의 내부가 보였다.
가상현실에서 나온 것을 깨달았지만 마치 꿈에서 깬 듯 약간 눈이 풀려 있었다.
“으음… 뭔가 꿈을 꾼 기분인걸? 아…….”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찬성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리의 허전함이었다.
아까 전 가상현실에서는 분명히 느꼈던 다리의 감촉이 사라져 버리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아무튼 밥 먹으러… 어라? 누구세요?”
“…그러는 너는 누구니?”
팬텀 드라이브-2 기기의 뚜껑이 열리고 찬성의 눈에 보인 것은 웬 낯선 여성의 모습이었다.
상당한 장신으로 예전 멀쩡할 때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클 것 같은 느낌이었다.
‘180 정도?’
캐주얼한 검은 바지 차림의 실내복에 긴 장발을 한 그녀는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눈을 가린 머리 스타일 때문인지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 저는 윤찬성이라고 하는데… 요?”
“그래. 나는 최민희라고 해.”
“아… 삼촌의 따님이셨군요. 게다가 연상인 것 같으니… 누나라고 부를까요?”
“윤찬성이면… 아! 윤 씨 아저씨네 아들이구나! 음, 부르는 건 네 맘대로 부르렴. 그나저나 그래서 우리 집에 올 순 있다곤 하지만, 멋대로 내 팬텀 드라이브-2 사용을 허락하진 않았는데?”
“그게, 삼촌이…….”
“하아… 그렇군. 사실 이미 그럴 거라 생각하긴 했어. 이 망할 아빠는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거야.”
도끼눈을 뜨고 순식간에 방을 나서는 그녀였다.
찬성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식사하러 나오라고 했기에 휠체어를 타고 거실로 나갔다.
“아버님, 어째서 제가 겨우겨우 하루 전날 새벽부터 가서 날밤을 새우면서 줄을 서서 힘들게 예약 구매한 팬텀 드라이브-2를 저 애가 쓰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만?”
“그게… 상당히 급한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하하, 미안하다. 이미 새로 주문해 놨단다. 다만 해외에서 직구한 거라 한국에 오려면 2주 정도 걸리는 게 문제일 뿐이지. 하하하.”
“하아~ 그래도 먼저 소유주에게 이야기를 하셨어야지요. 일을 그렇게 처리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 어머니랑…….”
아무래도 저 검은 관 같은 기기는 본래 저 민희라고 하는 삼촌 딸의 물건인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차라리 새 기기가 아닌 네가 원래 쓰던 팬텀 드라이브S를 쓰게 하고 싶긴 했지.”
팬텀 드라이브S. 방금 검은 관 같던 팬텀 드라이브-2의 바로 이전 기종으로, 팬텀 드라이브에 특별 옵션이 추가된 버전이었다.
“예. 차라리 그랬다면 이렇게 화나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까 팬텀 드라이브S에는 그… 자동 세척 기능이 없잖니? 네가 아마 예전에 레이드 뛸 때인가? 그때…….”
“아! 꺄아아아! 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자 민희는 난리를 치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결론은… 아빠가 잘했지?”
“…다음부턴 상의하도록 하세요. 에휴! 이러면 영상 일정 고쳐야겠네. 오늘 체험 및 성능 리뷰 영상 찍으려고 했는데. 하아아아아.”
“아무튼 먼저 식사부터 하자꾸나. 겸사겸사 할 이야기도 있으니.”
알 수 없는 소리들 사이에서 찬성은 일단 상황이 일단락된 것에 안심했다.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민희야, 오늘부터 여기 윤찬성이가 당분간 우리 집에서 머물 거란다.”
“예. 그건 들었어요. 뭐, 윤 씨 아저씨네라면 문제없다고도 했죠. 물론 다리가 불편한 문제라든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가능한 한 도와줄 거예요.”
“아, 저 괜찮습니다. 이래 보여도 몸은 가벼워서 다리가 없어도 혼자 할 건 다 해요. 뭐, 걸어서 움직이는 정도만 문제지 다른 게 불편한 건 아니니까요.”
두 다리는 없고,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진 덕분에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튼튼히 단련해 둔 덕분에 일반인 이상으로 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그다지 신경 써 줄 건 없고, 서로 빨래나 식사만 잘 조율하면 될 거다.”
“예, 알았어요. 그 정도는 문제없죠.”
“그리고 하나 더 부탁이 있다만… 이 녀석도 월드 아카 하니까 그것 좀 봐줘라. 뭐, 쩔이니 길드 가입이니 지원,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고, 그냥 모르는 거 물어볼 때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정도만 해 다오.”
“뉴비 챙겨 주기라는 건가요? 으음… 뉴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느 정도 뉴비죠?”
“쟤가 그러니까 사정이 있어서 IT 관련해선 완전 먹통이야. 찬성아, 네 휴대폰 좀 보여 줄래? 봐라. 저 골동품을 아직도 쓴다.”
찬성이 꺼낸 휴대폰은 자그마치 7년 전 기종. 액정과 휴대폰 보호 커버에는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금도 가 있었다.
“이 정도면 순도 100퍼, 아니 200퍼 뉴비네요. 심지어 가상현실 게임도 모자라서 온라인 게임 생뉴비? 요즘 세상에 이런 애가 존재하긴 하는구나.”
쿨한 인상은 어디 가고, 찬성을 기이하게 바라보는 민희였다.
확실히 요즘 같은 시대, 찬성의 나이대에 이런 고순도 뉴비는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녀의 눈빛이 기이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뭐, 네가 바쁜 것도 아니까 친구 추가 정도만 해 두고… 질문에 답변 정도만 해 주는 거면 충분하다. 알았지?”
“뭐, 그 정도라면 문제없겠네요. 솔직히 요새 레이드 트라이하느라 좀 바쁘거든요. 게다가 영상도 편집해야 하고. 후우~ 그래도 틈나는 대로 도와주거나 원한다면 지원도 해 줄 테니, 걱정 마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