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계정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예.]‘…답은 이거뿐인가?’
다른 방법이 있나 다시금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었다.
말로 통하지 않으니 이젠 결국 행동밖에 선택지가 없었고, 그 선택지는 모든 연락망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일반적인 메신저나 SNS는 쓰지 않고 모든 소통을 너튜브 계정과 E-메일,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 계정으로만 했기에 이 둘만 초기화하면 더 이상 자신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어진다.
‘좀 아깝긴 하지만…….’
이대로 놔둬 봐야 이 망할 ‘검성무새’들의 채팅과 이메일에 시달릴 게 분명하고, 차단하고 게임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할 가능성이 높았으니…….
이미 영상의 출처가 자신의 너튜브 채널이며, 자신의 계정과 캐릭터, 길드에 대해서 다 알려져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노림받을 게 분명했다.
‘그… 뭐더라? 브루탈 길드였나? 시작의 마을에서나 행패 부리는 촌구석 길드 놈들 주제에 포트리스 놈에게 귓말로 지랄했다더만……. 시공 길드인지도 난리고. 정말 화려하게 놀고 다니는 건 대단한데… 아무튼~’
딸깍… 딸깍…….
지난 3개월간 열심히 한 게 아깝긴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결단을 내렸다. 여러 인증 절차와 확인 메시지 화면을 넘기자, 그녀의 너튜브 계정과 영상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정말 허무한 결말. 지난 3개월은 물론이고, 그녀가 열심히 해 온 게임의 역사와 내용들이 있었는데 사라지니 가슴에 공허감이 스쳐 지나갔다.
“후우우우~ 뭐, 잘됐어. 그래, 후련해! 그리 잘되지도 않았던 거고. 그래!”
솔직히 흥했다고 보기 힘든 채널 구독자 수에 그녀는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애써 털어 내려고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것들을 한순간에 없앤다는 것이 아쉬워 그동안 결심을 못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자! 그럼 정신 차리고! 이제 계정 정리를 시작해 볼까~”
너튜브 채널을 날릴 때와 다르게 게임 계정의 처리는 일말의 감정이나 아쉬움 없이 슉슉 진행해 나가는 민희였다.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업화의 마법사’는 나름 ‘어나더 월드 아카이브’를 시작해서 빠르게 얻은 히든 클래스였고, 최상위 길드에 들어갈 정도로 딜 포텐셜이 압도적이었다.
그 힘으로 인해 지금 레이드의 선두를 이끌고 있고, 덕분에 너튜브 채널에서 구독자도 꽤 모을 수 있었다. 그렇듯 ‘업화의 마법사’는 상위 길드에서 그녀로 하여금 인지도를 얻게 해 준 클래스였지만, 명백한 단점이 있었다.
“솔직히 딜만 센 클래스라 재미 X나 없었어! 졸려 뒤지는 줄!”
업화의 마법사. 패시브부터 액티브 모든 스킬에 유틸성이나 다른 요소는 일절 없이 오로지 파괴력에만 집중된 마법사 클래스라서 사실 마법사라기에도 민망하고 그냥 불벼락 내뿜는 포대 같은 느낌이었다.
레이드든 던전이든 게임 플레이가 매우 단조로워서 딜 사이클만 돌리며 UI 켜 두고 웹 서핑해도 될 정도라서 뭔가를 하는 느낌이 없는 클래스였던 것이다.
“그래! 오히려 잘된 거야! 이번엔 제대로 재미있는 걸 키워야… 가 아니라! 걔한테 물어봐야지.”
[귓말][미니멈미니미니:저기, 혹시 지금 너희 파티에 꼭 필요한 클래스가 뭐니?] [귓말][찬성:네? 갑자기 그건 왜요?] [귓말][미니멈미니미니:기존 캐릭터 지우고, 다시 키울 거라서 말이지.] [귓말][찬성:네? 갑자기 왜요?] [귓말][미니멈미니미니:자세한 건 그때 설명해 줄게. 아무튼 너희 파티 지금 모자란 클래스 있지 않니?] [귓말][찬성:맨날 레인저, 도적 계열 부족하다고 해요!] [귓말][미니멈미니미니:어? 레인저랑 도적이? 의외네?]‘최고로 재미있어서 인기 많은 클래스인데… 그게 없다고?’
게이머로서 한국인 종족 특성은 원딜, 은신, 암살이라는 것이 세계에 알려졌을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클래스 계통이 레인저와 도적인데, 저 파티 구성에 그게 없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 하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파티에 넣는 건 다른 문제인가? 흐으음~’
[귓말][미니멈미니미니:내가 키워서 금방 따라갈 건데~ 파티원들에게 물어봐.] [귓말][찬성:어… 네! 그럴게요.] [귓말][미니멈미니미니:그리고 내 돈이랑 아이템 다 팔아서 너한테 보내 놓을 거니까, 아이템 받으면 우편함에서 열지 말고 그대로 갖고 있어. 알았지?] [귓말][찬성:예! 누님!]“후우~ 그럼 어디… 아이템이랑 팔고, 그러면서 도적, 레인저 계열에서 뭐가 좋을지 고민해 볼까~ 이번엔 좀 재미있는 걸 해 볼까?”
인게임 계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캡슐로 들어간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하나둘 떠올리며 캡슐의 작동을 기다렸다.
이윽고 접속이 완료되자마자 떠오르는 수많은 메시지 창들을 모조리 차단 설정으로 바꾼 다음 경매장으로 달려서 이 캐릭터에 있는 모든 아이템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수웨라 남작 저택 상층(하드 모드).
게임사 기준으로 ‘불가능에 가까움’이라고 할 정도의 임무.
3분마다 추가되는 한 파티 분량의 몬스터들을 처치하면서 수웨라 남작가에 배치된 몬스터를 처치하는 임무라서 보통은 고레벨에게 쩔을 받아서 업적만 먹고 빠지거나 아니면 나중에 레벨 업을 많이 해서 40레벨을 넘기고 와서 처리하는 게 이 던전의 일반적인 공략법이었다.
“흡!”
[시스템-찬성 님이 일반 공격으로 ‘수웨라 남작가 정예 궁병’에게 85의 데미지(급소 보너스 추가)를 입혔습니다.] [시스템-수웨라 남작가 정예 궁병이 죽었습니다.] [시스템-찬성 님이 일반 공격으로 ‘수웨라 남작가 정예 치유사’에게 98의 데미지(급소 보너스 추가)를 입혔습니다.] [시스템-수웨라 남작가 정예 치유사가 죽었습니다.] [시스템-다음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1분 55초…….]“뭔가 처리 속도가 올라… 가는 것 같은데? 뭐 버프 더 넣었냐?”
“쿠룩, 아니! 레벨이 오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능력치를 감안해도 이건?”
“지지직…….”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면 갈수록 찬성의 검이 후열의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던전에 배치된 것은 일반적인 레벨대의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정예 몬스터들인 데다 3차 클래스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싸우면 싸울수록 지치는 게 정상인데 도리어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 파티원들은 기가 막힌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찬성 님, 뭘 어떻게 한 건가요? 새로운 스킬이라도 얻은 건가요?”
“아뇨. 그… 검술을 게임에 맞게 조정한 거예요. 그동안은 실제 사람용 검술을 썼던 건데! 게임에 맞춘 거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실제 사람이나 생명은 급소를 찔리거나 베이면 곧바로 죽지만, 게임의 몬스터는 그냥 추가 데미지만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바꿔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 좀 바뀌는 느낌이지만요. 하하.”
10년 넘게 익히던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검술을, 게임용으로 조정을 한다?
무(武)와 검술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기술을 단시간 내에 저렇게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전국건강협회를 비롯한 찬성의 일행이었다.
“말이… 안 되죠?”
“쿠룩, 이미 벽 타고서 급소에 검을 꽂아 넣을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쿠룩.”
“아무튼 일단 진행할 건데… 아! 그러고 보니 저, 그… 흑우왕 주신 누님 있잖아요. 캐릭터 다시 키우신다는데요? 그래서 저희 파티에 레인저랑 도적 모자란다고 말씀드렸어요. 흡!”
찬성은 앞으로 나아가며 사전에 배치되어 있는 상층의 ‘Lv.28 수웨라 남작가 중갑 기사’와 싸우면서 아까 전 귓말로 오갔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찬성을 따라가며 딜하고 도움을 주던 일행은 의외의 소식에 감탄하며 호응했다.
“오, 아예 찬성 님을 지원하려고 하시는 건가? 캐릭터, 클래스까지 맞춰 오신다니… 든든하네요! 흑우왕 보유 유저면 상당한 큰손인데! 본캐 레벨이 얼마십니까?”
“어~ 52요.”
“쿠, 쿠룩! 그 정도라면 선발대 최상위 레벨! 지금 최전선에서 레이드 트라이하고 있을 레벨인데! 쿠룩! 아까워라! 거기서 나오는 스킬북이라든가 장비 먹으면… 쿠룩! 돈이 얼만데! 쿠룩!”
“지지직… 찬성 님을 지원하고 같이 뭘 하는 데에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거네요. 아! 힐 드릴게요. 그리고 다음 몹까지 25초 남았어요. 이거 잡고 대기해서 잡고 나아가죠.”
채앵! 까앙!
찬성의 솜씨 덕에 시간이 널널하다 보니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중에 대화까지 나누면서 쭉쭉 나아갈 수 있었다.
본래 이 던전이 어려운 이유는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를 처리하는 속도가 밀려서 후방에서 지원 오는 적 몬스터에 짓눌려 죽는 경우가 많아서였는데, 찬성의 검술 덕에 4인으로 지금 던전을 여유 있게 밀 수 있었다.
“어, 이 앞은 막혔어요. 문이네요.”
“그렇죠. 문이죠.”
그리고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엔 수웨라 가문의 문장이 양각되어 있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딱 봐도 이걸 열고 들어가면 안에 보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그런 설정일 거라는 걸 찬성은 눈치챘다.
“보스 방이죠?”
“정답! 하지만 이걸 열고 들어가도 지원 몬스터들은 계속 옵니다. 그리고 이 보스를 잡고 나면 이제 지원 몬스터가 5마리에서 6마리로 늘어나죠.”
“그럼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후우~ 그러면 열게요.”
“쿠룩. 넵!”
끼이이이익!
파티원들의 동의를 받은 찬성이 앞장서서 문을 열자 찬성 일행의 움직임이 자동으로 멈추면서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제는 익숙한 자동 컷신.
문 내부에는 파티장이나 연회장으로 쓰일 만큼 커다란 홀이 있었는데, 수웨라 가문의 기사와 병사들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보고를 하는 모습과 여럿이 대화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 단상 위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되면서 거기 있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벌어진 거리보다 훨씬 또렷하게 직접 귀로 들어왔다.
“아직도 침입자들을 격퇴하지 못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켈럭 단장님. 아무래도 모험가 길드장이 가진 비장의 카드 같습니다.”
“왕국의 개 주제에! 우리 남작님과 영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강요만 할 뿐이지! 국경에 있는 영지인데도… 제대로 된 지원과 도움도 안 주면서. 참 나! 영지를 지켜야 하는 남작님이 얼마나 힘든 심정으로 제국과 왕국의 사이를 조율하며 평화를 지키셨는지도 모르고!”
[(보스)수웨라 가문 기사단장 켈럭 크메리안]쾅! 파사삭!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분개하여 탁자를 내리치는 동시에 그의 이름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기사단장. 이 저택과 남작 가문의 군사 지휘관이라고 해도 무방했으며 친절하게 ‘보스’라고 이름 옆에 붙어 있기까지 했다.
더불어 행동과 대사로 이 수웨라 영지가 어째서 제국에 반역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떡밥도 유저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이젠 완전히 제국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 거기 네놈들은 누구냐?”
“그 모험가들인 것 같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 감히 여기까지 놈들이 들어오게 해? 저놈들을 처치하면 전 병력 지옥 훈련을 맛보게 해 줘야겠구나! 넌 빨리 가서 제국 측 사절과 함께 있는 남작님에게 이 결정을 알려라.”
“예!”
“그럼 어디… 침입자 놈들의 솜씨 좀 볼까? 다들 전투 준비!”
[Lv.30 수웨라 가문 기사단장 켈럭 크메리안(보스 몬스터)]보유 스킬:기사단의 의지, 방패 방어술, 집결의 명령, 폭풍 난무
철그럭!
허리에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방패를 집어 든 기사단장이 찬성 일행에게 검을 겨누자, 주변에 있는 다른 기사 2명과 병사 10명도 진형을 갖추고 찬성 일행을 포위한 채로 서서히 좁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가능에 가까운’이라는 난이도 표시에 맞는 위용. 보스전임에도 후방에서 지원 병력이 오는 타이머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