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개인리그(2)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신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경기를 앞두면 항상 명상을 한다. 상대를 골탕 먹이고 싶고 형편없이 박살 내고 싶은 악의를 끌어올린다.
실소와 나온다.
그럼 여태까지 그런 악의(惡意)로 자신을 박살 내왔다는 뜻이 아닌가.
“말 한 번 잘했다, 이 씨발 새끼.”
으드득 이를 갈며 황병철이 으르렁거렸다.
가슴 깊은 속에서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오장육부를 다 태우고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드는 깊은 증오였다.
복수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개인리그다.’
황병철은 곧 시작되는 개인리그를 염두에 두었다.
복수의 장은 그곳밖에 없었다.
프로리그에서 이신을 이긴 사람은 있었다. 이신도 승률이 100%는 아니니까. 깜짝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서 이신에게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개인리그의 최소 3판 2선승제나 5판 3선승제인 다전제 대결에서 이신을 이겨본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여러 차례 붙는 다전제에서는 수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수 싸움에서 이신은 져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연습해야지.’
연습밖에 답이 없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검지 끝이 아플 정도로 연습하던 때가 있었다.
e스포츠의 괴물 이신의 무패행진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던 그 시절이었다.
오늘 하루 휴식을 얻은 황병철이었지만,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로 향했다.
“어? 병철이 형.”
“형 오늘 쉬는 날 아니에요?”
연습실에 도착하자 후배들이 인사를 했다.
황병철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신태호를 발견했다.
“아 씨발, 그건 정말 반칙 수준 아니에요? 심시티로 제대로 막았는데 그렇게 넘어오면 게임이 뭐가 돼? 그것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기는 거였는데.”
신태호는 한창 동료 선수들과 떠들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신에게 패한 게 억울하다고 피력하고 있었다.
“또 상대가 이신이니까 그냥 쉬쉬하고 눈감아주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찜찜한 경기 여럿 있었잖아요. 신이 갑이니까 그냥 아무도 태클 못 걸고…….”
“야.”
“어? 형, 오셨어요.”
그제야 인사를 하는 신태호.
황병철은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디서 변명질이야? 비비기로 처음 넘어온 고속전차 3기가 지뢰 박을 때 넌 뭐했는데?”
“아니, 형, 그게……!”
“무빙 하면서 지뢰 일점사 했으면 지뢰 3개 다 제거할 수 있었어. 근데 넌 그거 못 했잖아. 입구에도 블로킹 못 해서 본진에 난입하는 거 허용하고.”
“…….”
“그 타이밍에 이신은 항공수송선 나왔었어. 원래의 이신이었으면 2기 정도는 따로 빼뒀다가 항공수송선에 태워서 벽 타고 넘어와서 본진 드롭을 했어. 그렇게 본진이랑 앞마당 동시에 털어버리는 게 이신의 원래 플레이인데, 네 디펜스가 병신이니까 그럴 필요도 없었던 거라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신태호.
황병철이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뭐? 그래놓고서 네가 이신을 이겨? 그게 그렇게 쉬워 보였어?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정말 공짜로 최고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너처럼 차세대니 유망주니 소리 듣다가 어느 순간 양민 된 놈들 한둘 본 줄 알아? 어?!”
“…죄송합니다.”
신태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화를 내던 황병철도 한숨을 쉬었다.
“씨발, 내가 무슨 남 얘기처럼 하고 있냐. 그날은 그냥 너나 나나 다 병신이었던 거야. 그건 인정하자. 그래야 더 연습해서 다음에는 이기지.”
“네, 형.”
황병철은 신태호의 어깨를 툭 쳤다.
“나랑 연습하자. 슬슬 개인리그 준비해야지. 다전제에서 그 새끼를 꺾어야 진짜 이기는 거야.”
“네.”
신태호는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다른 선수들도 부랴부랴 자리로 돌아가 연습을 시작했다.
독기에 차오른 황병철과 방금 욕을 먹고서 역시나 독이 오른 신태호.
자연스럽게 화성전자 팀 내부에 뜨거운 훈련의 열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한편, 신태호는 황병철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말도 못하게 날카로운 공격을 펼치는 황병철의 플레이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 분노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 나도 이번에는 결승 진출까지 노려봐야지.’
이신은 말할 필요도 없고, 쌍영도 있고 지금 상대하는 황병철도 있었다. 꿈에 그리는 정상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신태호도 열띤 자세로 황병철과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세밀한 컨트롤까지 신경 쓰며 날선 플레이로 황병철을 상대했다.
***
이맘때쯤이 팀과 선수 간의 불화가 잘 일어나는 시기였다.
개인리그는 선수 개개인의 성적이지 팀의 성적과는 관계가 없다.
때문에 팀의 프로리그 성적이 중요한 감독 및 코치진과 개인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선수들의 심리가 충돌한다.
4라운드는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지를 가리는 중요한 고비였다.
당연히 팀으로서는 선수들로 하여금 프로리그를 대비한 훈련을 시켜야 했고, 반면 선수들은 자신이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개인리그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다.
하지만 MBS의 선수들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동안 워낙에 죽을 쒀놔서 연봉 도둑이 되어버린 MBS의 주축 선수들은 죄책감에 프로리그에 더욱 매진하였다.
어차피 예전에도 팀의 에이스였던 신지호를 제외하면 개인리그에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선수도 없다시피 했다.
개인리그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방진호 감독과 드잡이를 벌이던 신지호를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갈등도 없었다.
방진호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었기 때문에, 선수들도 어떻게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싶었다.
“4라운드에서 우리 팀 떨어지면 지원금 더 줄어들 거 아냐?”
“지금도 방송국 윗대가리들은 우릴 쥐어짜지 못해서 안달이라는데.”
“그나마 감독님이 커버 치고 있어서 이 정도지…….”
“이신 코치님 말고는 진짜, 우린 다 뒈져야 돼.”
“씨발, 개인리그고 나발이고 다음 경기 준비나 하자.”
“어차피 연봉은 프로리그 성적 갖고 매기는 거지 개인리그가 밥 먹여주냐.”
MBS 선수들은 한마음이 되어서 훈련에 임했다.
MBS 방송국은 작년까지만 해도 종편채널로 프로리그 경기를 방영하는 등 e스포츠 사업에 나름대로 투자하고 있었다.
MBS 프로팀도 e스포츠 사업의 일환으로서 출범한 것이었다.
때마침 이신이라는 불세출의 탄생과 맞물려 MBS는 크게 재미를 봤다.
이신이 개인전에서 무패 금메달을 달성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자, 한국인의 관심이 다시 e스포츠로 모여든 것이었다.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했고, 이참에 아예 공중파 방송으로 경기를 방영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하지만 MBS 방송국은 끝끝내 e스포츠의 가능성을 얕잡아보았다.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온라인 유료 관람 시스템이 구축되어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지만, e스포츠 관련 파트를 맡은 MBS의 낙하산 인사는 계속 이대로 종편 채널에서 방영하며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을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신 습격 사태가 발발하면서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더더욱 e스포츠에 대한 의욕이 저하.
결국 IT미디어그룹 올도어에게 프로리그 및 개인리그 방송권을 빼앗겼다. 이신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 바람에 의욕이 저하되어 있었던 MBS는 떠넘기다시피 포기해 버렸다.
인터넷 강자인 올도어 그룹은 유료 관람 시스템을 신속하게 도입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이신교의 교주이기도 한 올도어 부사장 지수민의 작품이었다.
한국인은 냄비 근성이라 이신과 함께 팬들도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MBS.
하지만 올도어는 마치 보란 듯이 엄청난 수익을 기록해 버렸고, 이로 인하여 MBS는 더더욱 e스포츠를 싫어하게 되었다.
e스포츠 방영권을 포기한 것이 실책이 되지 않으려면, MBS 프로팀이 좋은 실적을 내서는 안 되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상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에이스 신지호를 포기해야 했던 사태도 이 같은 사정이 작용했다.
이신을 코치로 영입했던 것도, 선수 복귀가 힘든 이신을 은퇴시키고 방송계로 빼낼 생각이 농후했다. 이신의 정식 은퇴가 한국 e스포츠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거라는 야비한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e스포츠에 대한 상부 경영진의 비열한 태도는 MBS 선수들의 분노를 샀다.
처음에는 사기 저하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방송국 경영진의 태도로 보면 팀이 언제 해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신의 선수 복귀와 함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다시금 열정을 불태우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선수들의 목표는 개인리그 따위가 아니었다.
프로리그에서 어떻게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우승컵까지 거머쥐는 것!
아주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었다.
4라운드 플레이오프와 포스트시즌의 경기 진행 방식은 연승제.
이신은 한때 혼자서 팀을 우승까지 끌어올린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MBS 선수들 전부가 개인리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 이신은 지난 전반기 개인리그의 경기 영상을 보며 분석을 하고 있었다.
박영호, 최영준, 신지호 등.
가장 큰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되는 선수들의 영상이었다.
황병철이나 이철한, 신태호 등도 만만치 않은 선수임은 분명했지만, 그들은 이미 이신의 안중에 없었다.
황병철은 예전에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고, 지금은 맛이 간 상황.
이철한은 제법 훌륭한 기량을 가진 괴물 플레이어였지만, 이신은 본래 괴물을 상대로 한 승률이 매우 높았다.
신태호는 피지컬이 좋지만 세심한 면이 부족해서 파고들 빈틈이 많았다. 차라리 주디가 경험을 쌓으면 신태호보다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결국 이신이 가장 주의해야 할 상대라고는 셋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치열한 승부를 치렀던 철벽괴물 박영호, 광기 어린 물량을 쏟아내는 자원최적화의 천재 최영준, 디펜스와 운영의 달인 신지호.
‘쌍영은 그렇다 쳐도, 의외로 신지호도 강해졌는데?’
일전 신지호에게 Player_SIN으로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그건 상대가 이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싸운 탓이 컸다.
의외로 디펜스가 철두철미해서 견제가 들어갈 구석이 많지 않았고, 방어선을 구축해서 맵을 장악하는 전략적인 판단력도 훌륭했다.
늘 플레이가 평이하게 흘러가므로 재미가 없어 팬들로부터 과소평가를 받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신 습격 사건의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바람에 황병철과 함께 정신적으로 심한 고생을 한 케이스였다.
이제 그 아픔에서 벗어났다면, 지금쯤 보다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었다.
‘어떻게 공략할지 대책을 세워야겠군.’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문득 주머니에 넣어둔 구형 폴더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무시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지금은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서 받아보기로 했다.
-어, 이거 이신 선수 번호 맞나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맞습니다.”
-아, 그럼 이신이냐?
“누구십니까?”
많이 귀에 익은 목소리여서 이신도 반신반의했다.
-나야 나, 환열이!
“……환열이 형?”
환열이라는 말에 연습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수들까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그래, 형이야.
최환열.
지금은 은퇴하고 파프리카TV의 스타 BJ로 활동하고 있는 레전드 프로게이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