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진출(2)
본선 경기 첫날의 주인공은 주디가 차지했다.
다전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경기까지 가지면서 장장 2시간에 가까운 사투를 벌였다.
그런 엄청난 결투 끝에 얻은 승리였다.
임팩트 있는 승리로 인해 주디는 신태호를 실력으로 꺾었다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신태호가 체면을 구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신의 32강전도 순조롭게 치러졌다.
이신 역시 32강전의 첫 상대는 인류 플레이어 왕찬수였다.
인류 대 인류 전.
그러나 이신은 주디와 달리 매우 빠르게 승부를 내버렸다.
집에서 차이와 두고두고 연습했던 전략.
바로 인류 대 인류 전에서의 치즈 러시였다.
보병과 의무병이 섞인 병력이 건설로봇과 함께 빠른 타이밍에 치고 나왔다.
-치고 갑니다! 치고 나가요!
-세상에, 누가 같은 인류를 상대로 병영 체제로 싸웁니까!
각성제를 흡입하고 돌격한 보병들이 왕찬수의 얼마 없는 병력들을 박살 냈다.
왕찬수는 막 생산된 고속전차 1기와 건설로봇들 다수로 맞섰지만, 이신의 컨트롤이 빛을 발했다.
건설로봇과 의무병이 앞에서 블로킹.
보병들이 상대 건설로봇을 사살하면서, 고속전차가 접근했을 때 재빠르게 일점사격!
게다가 배후로 우회시킨 보병 2기가 안으로 침투해 식량자원을 채집하던 왕찬수의 건설로봇을 추가로 사냥했다.
왕찬수는 허탈한 얼굴로 GG를 선언해야 했다.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신 선수는요!
-제자는 2시간 동안 난투를 벌였는데, 스승은 8분도 안 걸렸어요!
그날 이신이 보여준 신기의 컨트롤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었다.
그렇게 32강전은 순조롭게 치러졌다.
이미 신태호라는 큰 벽을 넘은 주디는 승자전에서도 비교적 쉬운 상대인 박진수를 만나 가볍게 이기고 16강을 확정지었다.
이신 또한 승자전에서 만난 CT의 에이스 이철한을 다시 한 번 치즈 러시로 꺾으며 16강을 확정지었다. 이번에는 5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승부였다.
두 사람 다 순조롭게 32강전을 치를 수 있었는데, 이는 소속팀 MBS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더 이상 프로리그 경기가 없기 때문에 개인리그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0년 후반기 개인리그는 여러 가지로 팬들의 기대가 만발했다.
돌아온 이신.
그의 제자 주디.
게다가 유력한 우승후보들도 속속들이 16강 진출을 확정시키기 시작했다.
박영호, 최영준, 신지호 등은 일찌감치 확정지었고, 한 번 패했던 신태호나 이철한 등도 나머지 2경기를 전부 이겨 간신히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가장 의외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는 다름 아닌 황병철이었다.
부진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던 황병철.
박영호나 최영준 같은 선수도 있었기에 이제는 이신의 유일한 대적자라는 이미지도 사라져 버린 그가 2연승을 거둬 당당히 16강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두 경기 모두 10분을 넘기지 않고 끝장을 봐버렸다.
이번 개인리그에서 황병철의 플레이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위험했다.
“꼭 이기고 싶은 선수가 있습니다.”
황병철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제 모든 걸 걸고서 도전하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팬 여러분들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게 사실이지만, 한 번만 더 제 도전을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느 때보다도 날이 서 있는 황병철의 포스는 팬들의 기대를 다시금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단자가 신의 제자에게 처맞고 빡쳐서 부활!
-저랬는데 16강에서 떨어지면 낭패orz
-병철이 형! 이번에는 좀 잘해봐!
-적수를 전부 압살하던 잔혹한 신의 시대에 유일하게 들고 일어나 맞섰던 황병철 선수! 이단자의 활약을 응원합니다!
-라는 소리를 하는 마케팅의 희생양 1人 등장.ㅉㅉ
-ㅋㅋㅋㅋㅋ황병철이 이신한테 전적이 4승 9패인데 이게 라이벌임?ㅋㅋ
-신을 상대로 4승 거둔 게 어디냐? 다전제에서는 한 판도 못 이겼지만, 그래도 프로리그 경기 때는 간간히 신한테 불의의 일격을 먹이곤 했던 유일한 선수.
-하여간 그 시절의 이신 포스는 정말ㅎㄷㄷ
-이제는 이신의 적수가 꽤 생겼다는 게 문제지. 솔직히 황병철보다는 쌍영이 더 기대됨.
-아무튼 명경기 터져라! 뻥뻥 터져라!
-근데 이번에 이신이 또 무패우승 달성하면 어떻게 될까?
-아, 추억 돋네. 상황이 마치 이신 처음 데뷔했을 때 같다. 그때도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있었고, 설마 무패우승을 못할 거라고 다들 말했는데 결국…….
-아 놔, 이신교도들 왜 이렇게 많아. 아무리 신이래도 무패우승이 말이 되냐? 난 최영준 우승에 한 표.
기대 받던 스타가 뜬금없이 광탈당하는 그런 악재 같은 건 없었다.
이신을 비롯해 박영호, 최영준, 황병철, 신지호, 신태호, 이철한 등등.
내로라하는 초일류 프로게이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번 2020년 후반기 개인리그는 여느 때보다도 흥행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별들의 잔치였다.
***
16강 대진표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이루어졌다.
16인의 선수들과 방청객들이 한자리에 모인 방송국 촬영장에서 추첨식이 이루어졌다.
-16강, 제1경기는 과연?!
사회자가 둥그런 모양의 추첨 기계를 돌렸다.
이윽고 사람 이름이 적힌 작은 공 하나가 출구로 튀어나왔다.
사회자는 그것을 들고 소리쳤다.
-주디스 레벨린!
이신 옆에 찰싹 붙어 앉은 주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추첨 기계가 공을 뱉었다.
그걸 집어든 사회자가 짓궂게 물었다.
-주디 선수, 이 공에 적힌 이름이 누구였으면 좋겠습니까?
마이크를 받아든 주디가 약간 수줍어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괴물 선수였으면 좋겠어요.
-아, 종족 상성상 괴물이 그나마 낫다?
-네.
-인류는 싫습니까? 32강전에서도 인류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는데요.
-너무 길어서 힘들어요.
그런 주디의 말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예, 바로 주디 선수가 원했던 괴물 선수입니다! 바로, 박! 영! 호!
주디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박영호는 재미있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상대가 괴물이 되기를 원했지만, 현존 세계 최고의 괴물이라 불리는 철벽괴물 박영호와 싸우고 싶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원하셨던 그대로 괴물 선수가 뽑혔는데, 이거 참 축하드립니다.
-아, 안 좋아요…….
울상이 된 주디의 말에 웃음바다가 된 방청객들이었다.
-자, 그럼 2경기를 뽑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첨 기계는 계속 공을 토해냈다.
2경기는 신태호와 진철환이 걸렸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안 좋았다.
16강전에서 이긴다 해도 다음 8강에서 박영호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주디가 올라올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우승후보라 꼽히는 선수들은 골고루 추첨되었다.
신지호는 3경기에, ‘광전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신족 플레이어 오광태는 4경기에, 광기신족 최영준은 6경기에 배분됐다.
그런데 7경기에서 놀라운 매치가 성사되었다.
-아아! 이런 매치가 성사됐네요!
사회자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방청객도 환호를 하거나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7경기: 황병철, 이신]오랜 숙명의 라이벌이 16강부터 만나 버린 것이었다.
여유를 갖고 미소를 짓는 이신.
하지만 황병철은 웃을 수가 없었다.
32강전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경기력이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은 황병철.
그러나 상대는 이신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도 다전제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그 이신을 말이다.
황병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두 선수,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요. 소감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마이크는 먼저 황병철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빨리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필생의 목표였던 만큼, 기필코 이기겠습니다.
이어서 이신이 말했다.
-황병철 선수가 제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건 이제 진부한 추억팔이일 뿐입니다. 현역 프로라면 추억이 아닌 실력으로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그 말에 황병철의 입술이 씰룩였다. 굴욕감과 분노를 눌러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신의 말이 이어졌다.
-보다 저를 재미있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도 그러지 못하면, 이제 황병철 선수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신의 신랄한 디스에 황병철과 그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사회자는 황병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마이크를 잡은 황병철이 으르렁거렸다.
-아주 죽여 버릴 겁니다.
***
16강전 대진 추첨식은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신과 황병철의 대립은 실시간으로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본 차이가 돌아온 이신에게 문득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도발을 하셨어요?”
“황병철은 원래 열 받을수록 잘해.”
“…….”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는 자리에 앉아 연습을 시작하는 이신.
차이는 그런 이신을 물끄러미 보며 다시 물었다.
“황병철 선수가 잘하기를 원하시네요.”
“어.”
“황병철 선수가 선생님을 꺾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신이 말했다.
“날 꺾을 만큼 강했으면 좋겠어. 그래도 지고 싶지는 않고.”
“선생님은 참 이상한 분이세요.”
“태국에 있을 때, 네 또래 친구들과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같이했어?”
“…아뇨.”
또래의 소년들과 차이의 실력 격차가 너무 커서 게임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거랑 비슷해.”
***
-얘, 밥은 잘 먹고 있니?
“응, 아빠는?”
-우린 잘 지낸다. 네가 고생이라서 그렇지.
“고생은 무슨. 내 걱정하지 마.”
-어휴, 그래도 전보다는 목소리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역시 이신이가 복귀하니까 좋지?
“뭔 헛소리야. 그딴 자식이 돌아오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인데?”
-걔 때문에 마음고생 심했잖니.
“엄마 혹시 오늘 중계 봤어?”
그러자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황병철은 벌컥 짜증을 냈다.
“아 진짜, 그런 거 보지 말라니까! 그 새끼가 나 까대는 거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겁나니?
그 물음에 황병철은 말문이 막혔다.
-또 질까 봐 겁나는 거야?
“그럼 겁 안 나? 그 새끼가 얼마나 악독한 새끼인데. 오늘 인터뷰도 봤지? 이제 또 지면 물러설 곳도 없게 만들어놓는 거.”
-그래도 그런 게 좋아서 프로게이머 한 거잖니.
“엄마, 아빠랑 경기 보러 오지 마. 인터넷 중계로도 보지 말고.”
-왜?
“보여주고 싶지 않아.”
황병철은 서글픔에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나도 엄마 아빠 앞에서 최고인 모습 보여주고 싶은데, 노력하면 누구나 다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은데, 세상이 그렇지 않더라.”
-…….
“이 세상에는… 태어나서부터 결정되는 계급이 있는 것 같더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점점 따라잡기 힘들게 돼. 나도 정말 열심히 해왔는데, 그래도 안 되는 게 너무 분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황병철은 울음을 참았다.
그간의 마음고생들이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밀 듯이 밀려왔다.
아무리 강한 척 허세를 부려도, 부모님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잖니.
“뭐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말이다.
“…….”
-다들 봐라. 이 세상에 너처럼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남자답게 싸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그렇게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거다.
“그런가?”
-그럼. 엄마 아빠 둘 다 네 경기 보러 가마. 져도 괜찮아. 네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면, 지더라도 네가 자랑스러울 거다.
황병철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들을 벌써부터 패배자 취급하고 있어? 당연히 이겨야지.”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16강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