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드라마(1)
16강, 1경기.
주디의 개인리그는 16강에서 마무리되었다.
박영호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5판 3선승제의 다전제 경기에서 박영호는 단 한 세트도 주디에게 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
철벽괴물의 포스를 유감없이 보여준 박영호였다.
개인리그가 시작되면서 어쩐지 개그맨 같은 웃기는 이미지를 선보인 박영호였지만, 그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다시금 팬들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6강, 2경기.
신태호는 진철환에게 가까스로 3승 2패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음 8강에서는 박영호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아마도 그의 개인리그는 거기까지라고 팬들은 입을 모았다.
3경기에서는 신지호가, 4경기에는 ‘광전사’ 오광태가 8강에 진출했다.
5경기는 이철한, 6경기는 광기신족 최영준이 승리를 거두어 모든 팬을 즐겁게 했다.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스타들이 속속들이 8강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7경기가 다가왔다.
황병철 대 이신.
신과 이단자의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신은 방진호 감독과 함께 경기장에 왔다.
“오늘처럼 황병철이 벼르고 별렀을 때는 4벌레 러시도 잘 나온다.”
4벌레 러시는 일벌레 4마리에서 더 일꾼을 늘리지 않고 곧바로 바퀴를 뽑아 공격하는 초반의 필살 기습 공격이었다.
“그런 건 안 통합니다.”
“인마, 상대 황병철이야. 다른 괴물이 아니라고.”
이신의 초반 디펜스는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극강의 건설로봇 블로킹으로 전 종족을 불문하고 상대의 깜짝 치즈 러시를 철저히 막아내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이신에게는 치즈 러시를 절대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기적인 운영으로 가면 당연하게 지고, 치즈 러시도 일절 안 통하니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신에게 유일하게 4벌레 러시를 해서 이겨본 사람이 바로 황병철!
그는 마술 같은 바퀴 컨트롤로 이신의 건설로봇 블로킹을 뚫어낸 유일한 괴물 플레이어였다.
이단자라는 별명은 공짜로 얻은 게 아닌 것이었다.
“아마 맵의 러시 거리가 짧은 2세트에서 시도해 올 겁니다. 그때가 황병철의 종말입니다.”
이신은 이미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1세트는 무난한 운영으로 승리.
2세트는 황병철이 자포자기로 시도한 4벌레 러시를 막고 승리.
3세트는 멘탈이 나간 황병철에게 또 가볍게 승리.
“…이기고 나면 쓸데없는 인터뷰하지 말고.”
방진호 감독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 또한 이신이 진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신 선수, 준비해 주세요.”
경기장 스태프가 대기실에 들어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장비가 들어있는 게이밍 백팩을 메고 스태프를 따라 나섰다.
문득, 복도 저편의 대기실에서 나오는 황병철이 보였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황병철은 잠시 걸음걸이가 멈칫할 정도로 이신을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이신은 거의 육감적으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많은 것을 의식할 때의 황병철은 약한데.’
분노했을 때 실력이 올라가는 황병철.
그건 분노가 다른 여러 가지 잡념을 전부 태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신은 프로게이머 황병철에 대해 황병철 자신보다도 더 잘 꿰뚫어 보고 있었다.
‘좀 적극적으로 실수를 노려볼까?’
그리고 두 사람은 각각 무대의 양사이드에서 입장을 했다.
부스 안에 들어가 장비를 세팅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해설진의 목소리와 관객들의 함성이 요란하게 경기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한국의 모든 e스포츠 팬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작년 후반기 때 치르지 못했던 결승전이 마침내 오늘 펼쳐집니다!
-예,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이제 영원히 다시 저 둘의 대결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왔습니다! e스포츠의 신이 돌아와 다시 황병철 선수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신 선수가 돌아오니까 한동안 침체기였던 황병철 선수도 덩달아 살아나려고 하고 있죠? 적수를 본 순간 다시 이단자의 피가 끓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경기장이 들끓어 오르고 있을 때, 방음된 부스 속의 황병철은 고요한 긴장감을 느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세팅하다가 문득 부스 유리벽 밖을 바라보니,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부모님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가 힘내라고 두 손을 활기차게 흔들어보였다. 옆에서 부끄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신을 타도할 수 있는 유일한 적수.
이단자 황병철.
수많은 수식어로 포장한다 해도, 겁 많고 나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부모님을 알고 계신다.
두 분 앞에서,
신이라 불리는 저 거대한 적을 상대로,
자신은 얼마나 잘 싸울 수 있을까?
먹어가는 나이와 함께 철이 들어가면서, 점점 근거 없던 패기도 점차 닳고 닳아졌다.
이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이신을 이길 수 있을까?’
게임의 신이라고까지 불린 남자를 무슨 수로 꺾는단 말인가?
왜 자신은 이단자라는 별명이 붙고 신의 라이벌처럼 되었을까?
“아, 씨발. 왜 이래.”
황병철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한두 번 경기 무대에 서본 게 아닌데, 이상하게 긴장으로 온몸이 떨렸다.
평정심을 되찾고 평소에 연습했던 대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되뇌고 또 되뇌는데, 대체 무엇을 연습했던 건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황병철 선수, 준비되셨습니까?”
선수들의 경기 준비를 돕는 부스걸이 물었다.
“예.”
황병철은 떨림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대답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신에게 맞설 정신적인 태세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러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Kaiser: Good luck
-predator: gg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마침내 1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긴장감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에도, 손은 반사적으로 일벌레들을 식량자원을 캐게 하고 하늘군주를 시계방향으로 정찰을 보냈다.
‘그래, 하던 대로. 준비했던 것만 딱 하면 돼. 생각을 비우자. 딱 준비한 것만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이러라고 연습을 하는 거였다.
긴장감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손은 저절로 늘 하던 것을 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지나치게 평소대로 하던 나머지, 황병철은 너무 긴장한 탓에 긴장감 없는 플레이를 하고 말았다.
평이하게 3시 부근을 지나던 하늘군주가 대뜸 보병 2명과 만나 버린 것이었다.
타타타타탕!
보병 2명이 열심히 총으로 쏴댔다.
느릿느릿한 하늘군주는 총알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달아나 보려 했다
이때쯤 의례히 정찰을 보낸 하늘군주가 이 지점을 날아갈 거라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보병 2기를 보낸 것이다.
‘……?!’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느리기 짝이 없는 하늘군주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하늘군주가 죽자 인구수 제한이 갑자기 막혀 버렸다.
하늘군주가 추가로 생산될 때까지 황병철의 유닛 생산은 멈춰 버렸다.
본래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늘군주를 잃으면 게임이 크게 불리하다.
물론 그걸로 승부가 결정 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대가 이신이면 이 차이가 너무 뼈아프다.
결국,
-아, 이신 선수! 각성제 개발이 완료되자마자 곧바로 치고 나갑니다! 빨라요!
-괴물 플레이어들이 꼭 이 타이밍에 곧잘 인류에게 지곤 하거든요. 하물며 황병철 선수는 아까 하늘군주를 잃어서 운영이 더 꼬였어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그 시간을 줄 리가 없죠!
촉수탑 3개를 앞마당에 건설해 디펜스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그중 2개가 완성되기 직전에 들이닥친 이신이 그대로 돌입했다.
요란한 총소리.
그리고 현란한 컨트롤.
의무병이 먼저 앞서서 촉수탑의 공격을 맞아주고, 뒤이어 보병이 총을 갈긴다.
이신은 능숙하게 촉수탑을 전부 파괴하고 본진 안으로 대피하려는 일벌레를 학살했다.
-predator: gg
-황병철 선수 GG!
-너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간 이신 선수입니다. 아, 정말 이기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황병철의 안색은 몹시 좋지 않았다.
마치 이신이 평소 프로리그에서 보통 선수를 만나 가볍게 학살하듯이, 그렇게 무난하게 져 버렸다.
‘이래서는 안 돼. 2세트에서 만회하자.’
아무것도 못 해보고 패한 만큼, 보다 확실한 임팩트로 다음 세트에서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
2세트에서 준비한 전략은 촉수충을 먼저 뽑고 바로 괴물주술사를 생산하는 운영 전략과 4벌레 러시 두 가지였다.
그중 황병철은 4벌레 러시를 택했다.
치즈 러시에 좀처럼 안 당하는 엄청난 극초반 디펜스를 자랑하는 이신.
‘그런 만큼 오히려 허를 찔러야지.’
하지만 황병철은 자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고가 도박수인 4벌레 러시 선택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말이다.
-갑니다! 황병철 선수 갑니다!
-이신 선수의 정찰과 마주쳤죠! 이신 선수도 건설로봇을 끌고 나옵니다! 블로킹!
그것은 신의 블로킹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병철의 바퀴들이 출입구를 막은 건설로봇들을 1기씩 일점사해 잡고 뚫으려 했다.
그러나 이신은 건설로봇들로 서로 고치고 공격하고를 정교하게 컨트롤했고, 뒤에서 보병 1명이 총질을 했다.
“오오오!”
“우와!”
“꺄아아악!”
신들린 컨트롤에 감탄하는 관객들.
황병철도 체력이 닳은 바퀴를 빼가며 심혈을 기울여 싸웠지만, 끝내 뚫어내지 못했다.
이윽고 역습이 이어졌다.
이신은 보병, 의무병을 이끌고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황병철은 러시가 막혔을 때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는 멍해져 있었다.
조금의 딜레이도 없었다.
이신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치고 들어가 촉수탑과 앞마당 부화실을 부숴 버렸다.
황병철은 다시 GG를 선언했다.
-아, 또 GG! 이신 선수가 빠르게 2승째를 챙겨갑니다!
-여러 번 공언을 했을 정도로 타도 이신을 위해 벼려왔던 황병철 선수인데요. 이대로 끝나는 겁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신과 이단자의 대결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 분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황병철 선수가 이대로 무너질 선수가 아니죠! 3세트에서 과연 황병철 선수가 어떤 카드를 꺼내 들지, 아니면 이신 선수가 자신의 오랜 적수를 압살하고 8강행 티켓을 거머쥘지,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황병철은 부스에서 멍하니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현실은 벌써 2패라고, 한 번만 더 지면 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뭐 한 거야?’
믿겨지지가 않았다.
앞으로 1패만 더하면 끝.
0승 3패의 굴욕적인 셧아웃을 당한다.
이리도 허망하게 이 축제에서 퇴장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3세트라도! 3세트라도 내가 가져가야 해! 0승 3패는 안 돼!’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들었다.
본래 준비해 왔던 전략들도, 0승 2패 상황에서 3세트를 맞이할 거라는 전제는 없었다.
‘일단 최대한 무난하게……!’
애타게 대책을 강구하는 동안, 3세트가 시작되었다.
-아, 황병철 선수, 정찰 방향도 좋지 않습니다.
-요 3세트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명예회복이라도 할 텐데요.
한 번 꼬이니 계속 꼬이는 것일까.
일벌레를 보내 정찰을 하는 방향까지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심지어,
-맙소사! 이신 선수, 8병영!
-정말 잔혹하게 상대의 숨통을 끊을 준비를 합니다!
8번째 건설로봇으로 맵 중앙에 병영을 짓기 시작하는 이신.
치즈러시를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황병철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관객석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황병철에게 가장 처참한 엔딩이 새겨질 듯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두고두고 회자될 처절한 혈전의 시작이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