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결승을 향하여(1)
“선생님, 우리 같이 게임해요!”
존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현재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이었던 것이다.
존은 이신과 함께 프로게이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일단은 반대하는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레벨린 부부였다.
병약한 존을 만리타국으로 보내기가 쉬울 리 없었다.
게다가 건강도 건강이지만 학업 문제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신을 만나고부터 부쩍 건강해진 존의 모습 때문에 레벨린 부부는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존의 건강을 위한 길이 아닐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신도 그런 레벨린 부부의 걱정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본인 역시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겪어봤으니 말이다.
“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면 굳이 나를 따라올 필요도 없이, 밴쿠버SCC에 넣어줄 수 있어. 계속 밴쿠버에 있으면 학업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밴쿠버SCC의 선진적인 교육시스템을 받아 성장할 수도 있지.”
“하지만 전 카이저가 더 좋아요.”
“인생을 결정할 문제야. 겨우 그 정도 이유 갖고는 안 돼.”
이신은 명확히 선을 그었다.
“내 팬이라서, 누나랑 같이 갈 수 있어서, 겨우 그 정도 이유뿐이라면 널 데려갈 수 없어.”
“그럼요?”
“네가 나를 따라 한국에 가는 것이 밴쿠버SCC를 택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인 이유를 내게 설명해봐.”
그날 존은 하루 종일 끙끙 앓다가 글을 빼곡히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여기요.”
이신은 종이에 적힌 글을 슥 훑다가 그것을 주디에게 내밀었다.
“해석.”
이신이 긴 영문을 읽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주디가 대략적으로 해석해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존은 이신의 플레이를 보며 배웠고, 따라서 이신에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 이신은 이미 주디를 1군 프로로 단시일에 데뷔시킨 성공 사례가 있는 믿을 수 있는 스승이다.
셋째, 이신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무엇보다도 값진 것으로, 선수가 되었을 때 인지도 향상에 크게 도움 될 것이다.
넷째, 이미 먼저 선수 생활을 하는 누나가 있으니 이것저것 조언 받기 쉽다.
다섯째, 어릴 적부터 늘 과보호를 받은 탓에 몸이 더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다.
여섯째, 지구 반대편이라지만 전용기 타고 금방이다.
이신은 그 종이를 레벨린 부부에게도 보여주었다.
이를 본 레벨린 부부는 한숨을 쉬며 허락했다.
“아들을 잘 부탁드리겠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모쪼록 우리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예.”
그렇게 레벨린 부부와 약속한 이신은 존도 제자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이신에게 총 세 명의 제자가 생겼다.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인파가 이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신 선수, 밴쿠버SCC의 초대를 받아 함께 연습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했습니다.”
“최영준 선수와의 일전을 대비한 훈련이었습니까?”
“예.”
“밴쿠버SCC에서 이신 선수에 대해 강한 호감을 드러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 생각 안 합니다.”
주변의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식의 애매한 질문을 던지면 김빠진 대답이 나오는 게 이신이었다.
“밴쿠버SCC가 이신 선수를 영입할 의사를 보인 겁니까?”
“모릅니다.”
“이미 이신 선수를 영입할 의사를 드러낸 수많은 팀 중에 밴쿠버SCC도 있었는데요?”
“근데요?”
이신의 반문에 당황한 기자.
“아, 그, 밴쿠버에서 영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정말 보이지 않았습니까?”
“안 했습니다.”
이신은 시끄러워질 만한 사항은 대답을 피했다.
“주디 선수, 동생과 함께 왔는데 동생은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겁니까?”
“존도 프로게이머 할 거예요.”
주디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 대답했다.
기사들의 시선은 이제 존에게로 옮겨갔다.
“이신 선수의 제자로서 온 겁니까?”
“네.”
존의 그 대답은 큰 파장을 던졌다.
주디, 차이에 이어 존까지, 이신의 제자가 벌써 셋이나 된 셈이었다.
이는 이신이 지도자로서의 길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로 팬들에게 비춰졌다.
-벌써 제자가 셋!
-문파라도 만들 생각인가?ㅎㄷㄷㄷ
-이신이 제자들 데리고 프로팀 결성하면 웃길 듯ㅋㅋㅋ 4인류에 신족은 이신이 커버. 괴물만 한 명 구해오면 되겠다.
-주디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이신 안목이 꽤 괜찮은 듯. 제자들 다 장성하면 정말 엄청날 듯.
-이신과 제자들을 가진 팀이 프로리그를 제패한다!
-내 생각에는, 이신이 이제 월드 SC 그랑프리 단체전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단체전은 혼자 아무리 잘해도 안 되니까, 제자들 키우는 듯!
-아주 소설들을 써라ㅉㅉ
-근데 묘하네. 제자 셋이 다 외국인이여. 이신의 노하우를 외국인들이 다 빼먹는 것 아님?
-묘하게 국부유출 각;;;
-ㅋㅋㅋㅋㅋ국부유출이란 놈들 존나 어이없네. 이신이 무슨 군사기밀이라도 빼돌리냐?
-신님의 노하우가 군사기밀 급의 가치가 있긴 하지♡
-이신교 광신도들 여기까지 진출한 거 보소ㄷㄷㄷ
이신과 3명의 제자들은 크게 화제가 되어서 e스포츠의 화두가 되었다.
정말로 이신과 제자들을 얻으면 프로리그를 제패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우스갯소리 혹은 도시전설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국 e스포츠의 화제는 다시 개인리그로 옮겨졌다.
4강전 1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박영호 대 신지호.
작년 후반기에 준우승을 거뒀던 전 MBS의 에이스 신지호.
그리고 이신이 복귀하기 전까지 명실 공히 한국 최강자였던 박영호.
그런 두 사람이 맞붙은 것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대결.
명성이나 성적으로 따지면 박영호의 우세.
하지만 신지호는 괴물의 천적인 인류 플레이어였다.
또한 철벽괴물 박영호 못잖게 디펜스가 특기인 일류 선수였다.
거기에 최근 들어 컨디션이 좋아져서 엄청난 경기력을 보이고 있으니 승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박영호는 은메달리스트지. 근데 신지호는 누구야?”
“있어. 저 사람도 무지 잘해.”
“직접 본 적 있어?”
“전에 쌍성전자 연습실 갔을 때 보긴 했는데 연습은 못했어. 안 해주더라.”
소파에 나란히 앉은 존과 차이는 사이좋게 대화를 나눴다. 나이가 비슷해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이신의 집 거실.
PC랑 연결시켜놓은 50인치짜리 대형 디지털 TV에 4강전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신과 제자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그것을 지켜보았다.
존과 차이는 나이가 비슷해서 금세 친구가 되었고, 주디는 그런 둘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차이와 친해져서 금세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참고로 존은 이신과 같은 건물의 오피스텔을 구입해 주디와 함께 입주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이신의 집에 놀러와 차이와 연습게임을 하곤 했다.
주디 또한 이신과 출퇴근을 함께 하며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럼 1세트 시작합니다!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운영.
기업 간의 비즈니스 경쟁처럼, 손익을 따져가며 싸우는 숫자 전쟁이었다.
신지호가 먼저 보병과 의무병을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상대를 공격해 끝내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박영호가 방어로 촉수탑 3개를 앞마당에 건설하자, 싸우지 않고 그대로 회군해버렸다.
촉수탑 3개를 짓는 데 자원을 쓰게 만드는 것이 공격의 목적이었던 것.
다음 턴의 박영호의 차례.
쐐기충들이 생산되자 곧장 신지호의 진영으로 날아갔다.
이를 알고 있는 신지호는 본진과 앞마당에 대공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공포 건설에 돈을 쓰게 만들어 테크 트리를 늦추는 것이 박영호의 목적이었다.
게다가 인류에게 보병과 의무병 병력이 쌓이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미리 쐐기충으로 공격해 숫자를 어느 정도 솎아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박영호 선수의 쐐기충이 들어갑니다. 좀 더 피해를 주지 않으면 안 되죠?
-예, 보병 숫자를 줄여주고 건설로봇도 좀 죽여줘야 괴물주술사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죠.
퍼엉! 펑!
쐐기를 쏘며 건설로봇들을 하나씩 사냥하는 쐐기충들.
신지호는 본진의 곳곳에 건설한 대공포와 보병·의무병의 반격으로 이를 쫓아냈다.
대공포들의 위치가 너무도 절묘했다.
대공포의 공격에 계속 맞던 쐐기충은 오래 활약하지 못하고 후퇴해야 했다.
-아, 신지호 선수의 디펜스가 너무 훌륭하죠!
-예, 아직 피해를 더 줘야 하는데 대공포가 너무 잘 건설되어 있어요. 딱딱 필요한 곳에 배치돼서 쐐기충들이 파고들 틈이 없네요!
다시 신지호의 턴이 돌아왔다.
보병·의무병·기동포탑 2기가 일제히 뛰쳐나왔다.
병력이 곧장 박영호의 진영으로 진격했다.
신지호는 이신처럼 대단한 컨트롤 기교는 없었지만, 대신 기본기가 탄탄했다.
한두 명씩 흘리는 유닛 없이 병력을 잘 통솔하며 차근차근 전진했다.
박영호의 쐐기충이 호시탐탐 빈틈을 엿봤지만, 신지호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싸움이 묘하네요.”
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신지호의 플레이를 잘 봐. 저게 최신 추세야.”
“저게요?”
“철저한 계산 싸움이야. 승패를 결정짓는 큰 싸움은 좀처럼 나오지 않아.”
“그럼요?”
“상대로 하여금 디펜스에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거야. 모든 전투가 후반을 바라보는 운영의 일환이지.”
이신은 존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컨트롤은 딱 신지호 정도만 해도 돼. 유닛 컨트롤에 몰두할 시간에 병력과 일꾼을 더 뽑는 데 신경 쓰는 편이 나아.”
“그럼 저도 저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건가요?”
존은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존은 운영보다는 컨트롤 기교파였다. 최신 흐름에는 그다지 맞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유행에 따르라고 한 적은 없어. 자기가 잘 하는 플레이를 하면 돼.”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다.
괴물주술사가 나오자, 박영호의 반격이 거세게 시작되었다.
신지호는 기갑 체제로 전환하면서 고속전차와 기동포탑으로 맞섰고, 박영호는 번개같이 흑안개를 펼치며 진격해나갔다.
그 치열한 싸움의 승자는 박영호였다.
-신지호 선수 GG!!
-와아, 1세트부터 35분이 넘는 격전이 나왔습니다!
-박영호 선수도 진땀을 흘린 싸움이었죠. 오히려 신지호 선수도 그다지 실망한 기색이 아닙니다.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1세트는 인류의 정석 대 괴물의 정석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대결이었는데, 2세트부터는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기대가 큽니다. 평범한 빌드만 준비해왔을 리가 없거든요.
해설진의 말대로 1세트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2세트가 되자 싸움은 더욱 거칠어졌다.
2세트는 전술위성을 대량으로 모은 신지호가 엄청난 장기전 끝에 승리.
3세트는 박영호가 4벌레 러시를 시도하면서 일찍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지호가 이를 큰 피해를 입은 채 막아내면서 다시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잘하는데?’
이신은 신지호의 운영에 놀랐다.
운영이 너무나 좋았다.
상황이 불리해도 길게 보면 유리한 국면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운영을 하고 있었다.
결승행 티켓을 건 두 사람의 대결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