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결승을 향하여(2)
신지호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영호는 웃고 있었다.
두 선수의 희비가 한 화면 안에서 교차했다.
3승 2패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박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퇴장했고, 신지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다.
성격이 모나고 감정적인 기복이 심해도, 게임을 향한 그의 열정은 진심이었다.
실력이, 그리고 눈물이 이를 증명했다.
패, 승, 승, 패, 승.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승부였다.
철벽괴물 박영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지만, 애석하게도 신지호도 어느 때보다도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다.
인류라는 종족의 특성은 신지호의 강점, 디펜스와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그것은 흑안개로 온 화면을 뒤덮으며 가공할 공세를 펼치는 박영호로부터 승리를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맵도 좋지 않았어. 박영호가 운이 나빴지.”
이신이 짧게 평했다.
프로리그에서 보여준 성적은 박영호의 역량을 더 우세로 친다.
하지만 종족 상성과 맵 상성이 신지호에게 웃어주었다.
박영호의 패인은 그게 전부였다.
달리 실책이 없었는데도 패한, 그 정도로 완벽한 명승부였다.
“선생님, 어때요? 박영호와 신지호 둘 중 누구와 싸우고 싶으셨어요?”
“박영호.”
“신지호가 더 꺼려지시나요?”
“같은 인류는 디펜스가 성가셔. 신지호는 웬만해서는 빈틈도 없어서 경기가 다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어.”
“그래도 연습 상대는 여기에 많이 있잖아요.”
그렇게 말한 건 주디였다.
이신의 시선이 향하자 주디는 활짝 웃었다.
“열심히 상대해드릴게요.”
“저도요. 최대한 방어 위주로 버티기로 상대해드릴게요.”
차이도 거들었다.
“저도요.”
존까지 거들자 이신은 피식 웃었다.
“됐어. 일단은 최영준이 먼저야.”
가장 꺼려지는 상대는 신지호.
하지만 가장 강한 상대를 꼽자면 최영준이었다.
이신이 진심으로 감탄하고 배울 정도의 천재성을 지닌 선수. 심지어 인류의 천적인 신족 플레이어였다.
***
방진호 감독은 MBS 방송국에서 나왔다. 오전에 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방송국 건물에서 나오니 우아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롤스로이스 팬텀이 대기 중이었다.
뒷자리에 타니 이신이 옆자리에 있었다.
“잘 쉬었어?”
“예.”
“준비는?”
“잘 됐습니다.”
차가 출발했다.
그들은 4강전 2경기를 치르러 가는 길이었다.
방진호 감독은 이신을 슥 보더니 혀를 찼다.
“왜요?”
이신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처럼 재미없는 선수는 처음 본다.”
“뭐가요?”
“지나치게 완벽해.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없잖아.”
“신인 시절에도 뭔가 팀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이신의 말에 방진호 감독은 피식 웃었다.
이신의 예전 소속팀의 양아치 근성은 이제 유명한 이야기였다.
돈도 제대로 안 주면서 선수들에게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것은 예사였고, 감독이나 코치나 하는 일도 없어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 준비를 해야 했을 정도.
결국 그 팀은 이신이 떠나면서 스폰서를 잃고 해체됐다.
“밴쿠버SCC는 어떻디?”
“좋은 팀입니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상대 선수를 분석하고 전략을 연구해 선수에게 오더를 내리더군요.”
“허, 정말 명문 팀이네.”
방진호 감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되는 팀이어야 너를 제대로 서포트 해줄 수 있겠지.”
“…….”
“좋은 팀에 가라.”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는 이신에게, 방진호 감독은 피식 웃었다.
“더 제대로 너를 대우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곳으로 가.”
“글쎄요.”
“대답이 시원찮은데?”
“좋은 팀이긴 한데 제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지 내가 가르쳐줄까?”
이신은 방진호 감독을 빤히 쳐다봤다. 어디 아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는 표정이었다.
“넌 남을 너무 안 믿어. 네 부모님도, 예전 쓰레기 소속팀도, 공군 프로팀도, 넌 여태껏 주변의 지원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도 재능은 넘쳐서 혼자 다 알아서 해도 충분했지. 그게 독이 되어서 지금에 와서는 주변의 도움이 참견처럼 꺼려지게 된 거야.”
방진호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하물며 밴쿠버SCC 같은 명문이면 서포트가 장난 아니겠지. 넌 그게 꺼려지는 거야.”
“…….”
이신은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방진호 감독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체계적이고 세심한 팀의 지원이 자신의 영역을 해칠까봐 두려웠다.
지금까지 마음대로 자기 판단대로 해왔던 것이 그곳에서는 제한 받을 까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너 잘난 거 누가 모르냐. 하지만 너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야. 설령 네가 자신 있는 게임 분야라 해도, 네가 언제까지 완벽하지는 못할 거야.”
“압니다.”
이신은 과신하지 않았다.
모든 선수가 다 그랬듯, 자신 또한 결국은 슬럼프가 올 것이고, 전성기가 끝날 것이었다.
“거기다가 이제는 지도자로서의 길도 준비하고 있잖아. 그러면 더더욱 네 성격을 고쳐야지.”
“딱히 지도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알아.”
방진호 감독은 가볍게 툭 내뱉었다.
“그냥 같이 게임 하고 싶은 거잖아. 그래서 제자도 셋씩이나 데리고 있는 거고.”
그 한 마디가 이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방진호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고 싶고, 같이 공감하고 싶고, 그게 사람이야. 그게 게임이고.”
“……그렇군요.”
이신은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가슴속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오빠, 힘내세요!”
“이신! 이신!”
“오빠 파이팅!”
“꼭 이기세요!”
경기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팬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사방에서 팬들이 이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옷깃이라도 만져보겠다고 아우성들이었다.
“비켜주세요! 지나가겠습니다!”
운전사 정상범이 소리치며 길을 트려고 안간 힘을 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도 같은 마음인 건가?
같이 게임을 즐기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건가.
그래서 그냥 혼자 좋아하지 않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이렇게 아우성인 건가?
‘그런 건가.’
이신은 두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꺄아악!”
“오빠!”
“이신 파이팅!”
사방팔방에서 팬들이 손을 뻗으며 그의 양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수많은 온기와 마음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그렇게 이신은 경기장에 입장했다.
대기실에 가는 길에 최영준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최영준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
“준비 많이 하셨어요?”
“어.”
“다 들었어요. 밴쿠버SCC에서 저 이기려고 준비하셨다면서요?”
“그냥 휴가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저도 연습 많이 했어요. 지호가 도와줬거든요.”
“신지호가?”
“네.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각오하고 있어.”
“아참, 그런데 말이에요.”
“……?”
“Player_SIN, 형 맞죠?”
“아니.”
“맞잖아요.”
최영준이 웃으며 물었다. 이신은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뗐다.
“형 신족 플레이 제가 보내드렸던 그 개인화면 보고 하신 거 맞아요?”
“아니라고.”
“맞는 것 같은데…….”
“아냐.”
이신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뻔뻔스럽게 잡아뗐다.
“아, 정말. 알았어요. 그럼 말이에요, 그 Player_SIN이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닿으면, 저한테 신족 배웠으니까 신세 갚으라고 전해주세요.”
“어떻게 갚아?”
“시즌 끝나면 같이 합동 방송하자고요. 저한테 신족 배웠는데 그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요.”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환열이 형은 알지도 모르지. 환열이 형을 통해서 전해줄게.”
“히히,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서로 잘 해봐요.”
싱글벙글하며 자기 대기실로 사라지는 최영준이었다.
***
경기장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최영준 대 이신.
그 경기를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생중계되는 유료 관람도 시청자가 폭주하고 있었다.
게임의 신과 광기신족이 펼치는 5판 3선승제의 전면전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관객들이 애타게 경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대형화면에 인터뷰 영상이 나타났다.
“와아아아!”
“최영준!”
영상에 나타난 것은 최영준.
두 선수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 편집되어서 방영되는 것이었다.
-이신 선수와 붙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예쁘장한 부스걸이 물었다.
최영준이 답했다.
-당연히 떨리고,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떤 기대요?
-제가 인류한테는 절대 안 진다는 마인드인데요, 과연 e스포츠의 전설을 쓰셨던 이신 선배님의 인류는 어떨지 기대됩니다.
-이길 자신 있으신가요?
-결국은 제가 이기겠죠. 3대 2든 3대 1이든 말이죠. 3대 0은 안 나올 것 같네요. 결국은 치즈러시만 조심하면 되는 거잖아요.
“오오오!”
최영준의 자신만만한 발언에 관객들이 호응했다.
이윽고 대형화면에 이신이 나타났다.
“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
“이신이다!”
팬들의 함성이 아까보다 더 쩌렁쩌렁했다.
-벌써 4강에 올라오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4강이라는 성적에 딱히 어떤 의미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한두 번 올라온 것도 아니고.
-최영준 선수가 인류한테는 절대 안 진다는 마인드라고 그러던데요.
-전 애당초 아무한테도 안 진다는 마인드입니다. 실제로 개인리그에서 져본 적도 없습니다.
-최영준 선수를 이길 자신이 있나요?
-3대 0, 혹은 3대 2로 제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3대 0이나 3대 2요? 너무 극단적인데요?
-수 싸움에서 최영준이 저한테 말리면 3대 0, 그렇지 않으면 3대 2입니다.
-마지막으로 경기에 임하는 결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개인리그에서 져본 적이 없어서 우승을 놓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이겠죠. 궁금하지도 않고 느껴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길 겁니다.
그렇게 인터뷰 영상이 끝났다.
-안녕하십니까! e스포츠를 사랑하시는 모든 팬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캐스터 이병철!
-해설위원 정승태입니다!
-정말 끝내주는 한 판 승부가 기다리고 있죠?
-예, 그렇습니다.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두 명의 천재가 마침내 자웅을 겨룹니다. 둘 다 타고난 재능과 경기력은 더 설명드릴 필요도 없지요.
-박영호 선수는 프로리그 4라운드에서 이신 선수한테 진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런데 그 박영호 선수는 중요한 고비에서 최영준 선수를 번번이 꺾었습니다. 그런데 최영준 선수는 또 인류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한 번도 안 졌단 말이죠!
-와, 정말 세 선수가 종족 상성처럼 엮여 있군요?
-예, 만약 최영준 선수가 이신이라는 큰 고비만 넘긴다면, 그 다음은 우승이 거의 유력해집니다. 결승 상대인 신지호 선수는 최영준 선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상대거든요!
-자, 양 선수 모두 준비가 된 것 같고요. 이제 1세트, 유혈의 능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