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유혈(2)
경기장의 대형화면에 잠깐 잡힌 화제의 인물이 있었다.
화면에 그가 나타나자 경기장이 환호로 뒤덮였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옆에 함께 있는 예쁘장한 여자 또한 같이 손을 흔들며 쾌활한 리액션을 보인다.
남자는 바로 최환열.
이신 스스로 스승이나 다름없다고 인정했던 대선배이자, 한국 e스포츠의 레전드였다.
함께 있는 여자는 물론 그와 함께 파프리카TV의 인기 BJ인 유설희.
파프리카TV에서 톱을 달리는 BJ 커플이 함께 응원을 위해 개인 방송도 쉬고 관람을 온 것이었다.
-아, 반가운 얼굴입니다. 후배인 이신 선수를 응원하러 온 것 같네요.
-함께 있는 여자 분은 연인이죠.
-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BJ커플이죠. 아마 연애에 있어서는 최환열 선수가 한국 e스포츠의 레전드 중의 레전드가 아닐까요?
“하하하!”
“레전드 급으로 여자를 잘 얻었지!”
관객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최환열은 해설진의 농담을 유쾌한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이신 선수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거든요. 이신 선수 팬클럽의 회장 분께서 또 아주 유명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하하!
관객들 사이에서 폭소가 더 커졌다.
그렇게 해설진이 농담으로 시간을 때우는 이유는 아직 게임 시작 초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누가 이기고 있는 거야?”
껌 딱지처럼 찰싹 붙어 앉은 유설희가 물었다.
최환열은 어깨를 으쓱했다.
“똑같지 뭐. 빌드도 둘 다 무난하고.”
“아, 여기서 또 이겼으면 좋겠다. 2대 0이 되면 거의 이긴 거나 다름없잖아.”
“스코어가 2대 0이어도 승부는 끝까지 봐야 알지. 내가 현역 시절에 패, 패, 승, 승, 승을 한두 번 당해본 줄 알아?”
“푸히히, 그건 그렇지.”
“어쭈, 웃음이 나와?”
“그때 오빠 되게 썩은 표정 짓던 거 생각나서.”
최환열은 유설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유설희는 깔깔거리며 경기를 관람했다.
-갑니다! 이신 선수가 마침내 출발했습니다!
맵 중앙 길목에 지뢰를 심으며 출발하는 고속전차들.
“슬슬 일꾼 솎아줄 때가 됐지. 지금부터는 견제 안 들어가면 골치 아파져.”
자원 채집량이 원활해지면, 그것은 ‘광기’라 불리는 엄청난 물량공세로 나타난다.
그 전에, 이신은 지금부터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야 했다.
고속전차 7기가 1시의 최영준의 본진 앞마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거신병기가 지키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뺐다.
최영준에게 고속전차들이 12시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2기의 고속전차만 따로 빼내 3시 확장 기지로 은밀히 보낸다.
나머지는 12시를 공격하려는 모션을 취한다.
12시 확장기지도 이미 최영준이 단단히 대비해놓고 있었다.
이신이 이쪽으로 향하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와아아아!”
관객들이 함성을 질렀다.
따로 빼낸 2기가 3시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생명석을 이어 지어서 입구를 막아버렸지만, 지뢰 비비기로 간단히 점프해 들어가 신도들을 사살했다.
다른 1기는 상대의 구원 병력이 올 루트에 지뢰를 매설했다.
광신도와 거신병기가 3시를 지키기 위해 몰려왔다가 지뢰 2개를 밟고 여러 마리가 폭사했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어!”
최환열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함성을 질렀다.
“와, 어쩜 저렇게 날카롭지.”
대형화면에 최영준과 이신의 모습이 교차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최영준.
냉정한 표정의 이신.
“짜식, 잘한다!”
최환열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러게. 생긴 것도 어쩜 저렇게 조각 같을까…….”
이신을 바라보는 유설희의 눈이 몽롱하게 풀리자 흠칫하는 최환열이었다.
어쨌거나 3시는 지켰지만 피해를 많이 입은 최영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이신의 고속전차들이 다시금 3시로 몰려왔다.
질풍같이 달려온 고속전차들이 1시와 3시로 이어지는 길목에 지뢰를 미친 듯이 때려 박고 썰물처럼 후퇴.
그리고 곧바로 12시를 습격.
12시를 지키고 있던 병력과 교전이 벌어졌다.
고속전차들은 무시하고 파고들어가 오로지 신도들만 공격했다.
1명, 2명, 3명…….
최영준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도들을 잠시 밖으로 후퇴시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후속타로 온 고석전차 2기가 피신 나온 신도들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우와―!!”
밖으로 피신하는 신도들을 노린 지능적인 견제 플레이였던 것!
신도들은 다시 12시 확장 기지 안으로 후퇴했다.
광신도와 거신병기가 바쁘게 다니며 고속전차 테러를 진압했다.
하지만 최영준의 신경이 너무나 12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퍼퍼펑! 퍼어엉!
1시와 3시 사이의 길목에 심어놓았던 지뢰들.
최영준은 3시에 있던 병력을 1시로 옮기다가 그만 지뢰를 밟고 말았다. 12시에서 예상을 넘어선 일격을 당하는 바람에 당황해 이쪽에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와아아아! 보고 계십니까?! 이신입니다! 저게 신입니다!
-쉴 틈 없이 견제를 퍼붓는 저 템포! 천하의 최영준도 저 스피드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저 스피드로 견제를 펼치면서도 이중 삼중으로 덫을 쳐놓는 무서운 지모! 저러면 누가 와도 못 이기죠! 저게 e스포츠의 신이죠!
급기야 항공수송선까지 동원되었다.
항공수송선이 고속전차를 드롭하며 최영준을 더더욱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러는 사이, 이신은 대규모 병력이 갖춰지고 있었다.
-이신 선수 이제 진군을 시작합니다!
-인구수 제한까지 풀 병력이 완성되었고, 최영준 선수는 견제를 많이 받아서 허약해져 있어요. 지금처럼 좋은 타이밍은 없죠!
-최영준 선수에게 시간을 주면 결국 무서운 자원 최적화로 다시 살아날 거거든요!
-최영준 선수도 최후의 수단으로 아바타가 나왔습니다!
-아바타의 봉인 마법이 아주 제대로 들어가야 이신 선수의 공세를 늦추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이 한 타 싸움만 잘 하면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이신 선수도 전술위성이 3기나 있습니다!
아바타의 봉인 마법.
가로세로 3칸 범위 내의 모든 유닛들을 45초간 봉인시킨다.
봉인을 당한 동안은 움직일 수 없고, 공격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잘만 하면 엄청난 숫자의 기동포탑들을 봉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족에게 있어서는 필살의 한 수였다.
-자, 붙습니다! 붙습니다!
-승패를 결정짓는 화끈한 한 판 대결이…… 아아!!
해설위원 정승태가 별안간 한탄을 토해냈다.
이신의 항공수송선이 최영준의 3시 확장 기지에 고속전차 4기를 드롭했다.
아주 제대로 들어간 드롭.
고속전차 4기가 날뛰며 신도들을 학살했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
그러면서 진군하던 이신의 총병력이 일제히 후퇴하는 것이었다.
최후의 싸움을 각오하고 배수의 진을 친 최영준을 미치게 만드는 플레이였다.
“와, 잔인한 새끼!”
최환열은 기가 차서 웃음을 터뜨렸다.
“왜 안 싸우는 거야?”
“최영준이 싸우길 원했으니까 안 싸우는 거야. 원래 저런 놈이야.”
“어머, 잔인해!”
유설희의 눈이 또 풀려버렸다.
“나쁜 남자 멋져…….”
“그만해!”
최환열이 역정을 내자 유설희는 꺄르르 웃었다.
이신은 후퇴했지만, 최영준은 이제 미래가 없었다.
3시에서 신도들이 싹 털려버려서, 어차피 이대로 가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영준은 후퇴하는 이신에게 달려들었다.
-최영준 선수가 쫓아갑니다!
-싸우자 이겁니다!
-뒤가 없는 최영준이에요! 어차피 이대로 승부를 봐야 해요! 지금밖에 없어요!
-아바타, 아바타가 갑니다! 봉인 마법! 봉인이 아주 제대로 들어가야 희망이……!
펑―!
그때, 전술위성이 쏜 무력화탄이 아바타에게 직격했다.
-아아아! 직격!
-무력화탄에 맞았어요! 아바타마저 안 통했어요!
-역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겁니다! 바늘구멍도 허용하지 않아요!
-반사 신경마저도 이신이 최영준을 압도합니다! 최영준 선수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저런 부분에서도 밀린 거예요!
무력화탄.
스킬에너지를 빼앗는 전술위성의 스킬이었다.
그 무력화탄에 맞았으니, 아바타는 스킬에너지를 빼앗겨 봉인 마법을 펼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신의 총병력이 다시 말머리를 돌려 반격했다.
아바타가 제 기능을 못하니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
퍼퍼퍼퍼펑―!!
포격모드가 된 기동포탑들이 불기둥을 뿜을 때마다 거신병기들이 하염없이 녹아들었다.
한없이 불리한 싸움.
그럼에도 최영준은 최영준이었다.
계속 광신도들을 생산해내며 전투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최영준의 배후로 돌린 고속전차들이 지뢰를 깔아 후속병력을 차단시켰다.
이신은 깔끔하게 최영준의 전 병력을 잡아먹었다.
-rush_Joon: GG
-GG!!
-충격적입니다! 최영준 선수가 저렇게 맥없이 패한 적이 있었나요? 저게 인류를 상대로 한 번도 안 진 광기신족입니까?!
-사전 인터뷰에서 이신 선수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최영준 선수가 자기한테 말려들면 3대 0도 나올 수 있다고 했잖습니까? 정말 말렸어요!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서 저 이신 앞에서 허점을 보이고 있어요!
관객들은 할 말을 잃었다.
최영준의 팬도 이신의 팬도 모두 멍해졌다.
혹자는 걱정했다.
한국의 살아 있는 신화 이신.
내로라하는 e스포츠 강국을 꺾고 전 세계의 추앙을 받은 영웅.
그런 그가 최영준에게 패한다면, 그런 과거의 추억까지 전부 부서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이신이 긴 공백을 깨고 선수 복귀를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많이 보였다.
옛날처럼 강할 수 없다면,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달라고.
최영준은 너무 강했다.
적어도 인류에게는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도 예상 못했던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와 주었다.
어떤 인류 플레이어도 꺾지 못했던 저 최영준을 압도하고 있었다.
신은 여전히 신이었다.
대기실에 돌아온 이신은 지친 모습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힘들어 보인다?”
방진호 감독이 물었다.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이신은 축 늘어졌다.
정신이 너무 피곤해서 몸까지 피로해졌다.
이번 2세트 또한 철저히 준비한 일전이었다.
일반적인 견제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단순한 견제도 몇 수 앞을 보고 덫을 치는 전술로 승화시켰다.
그런 고도의 플레이를 그 빠른 템포 속에서 펼치려니, 그만큼 두뇌가 과부하 되는 기분이 들었다.
“3세트는 치즈 러시 하지 마. 최영준도 예상하고 있을 거야.”
방진호 감독의 충고.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오히려 최영준의 기를 살려주는 꼴입니다.”
치즈 러시로 쉽게 이기려 했다는 걸 보이면, 최영준은 깨닫는다.
상대도 지쳤구나.
그래서 쉽게 끝내려 했구나.
2대 0의 스코어의 압박에서 다소 벗어난 최영준은 다시 제 컨디션을 되찾게 된다.
이신도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 판에서 끝낸다.’
최영준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때 결판을 보고 싶은 게 이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광기신족의 본성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