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유혈(3)
대기실은 고요했다.
감독도, 함께 응원 온 팀 동료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영준은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2세트를 복기했다.
‘견제가 들어올 걸 알고 있었는데.’
알아도 못 막는 견제.
전성기 시절의 이신을 상징하는 플레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인류 플레이어들이 다들 이신을 따라했고, 그로 인해 인류의 견제에 당하는 신족 플레이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신족도 침체기를 딛고서, 견제를 막는 디펜스가 점점 발전했다.
이제는 알아도 못 막는다는 말은 핑계였다.
병력이 맵 센터를 잡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지뢰를 제거하고 고속전차의 침투 동선을 차단하면 된다.
‘근데도 못 막았다고?’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따위 변경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이신은 통상적인 견제가 안 먹힐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심리상의 허점을 노리는 이중삼중의 견제 전술을 구사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즉흥적으로 그런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리는 만무할 터.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이신은 자신을 꺾기 위하여 진심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떠한가?
‘형편없는 놈!’
물론 준비는 했다.
팀 동료 신지호의 도움을 받아 연습게임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하여 비책을 준비한 이신에 비하면, 그냥 반복되는 게임으로 손을 푼 것에 불과했다.
몸은 열심히 했는데 정신은 게을렀다.
이기기 위해서 연구하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함!
‘이러니 우승을 못했지.’
라이벌 박영호를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쌍영이라 불리는 박영호는 한때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톱클래스의 프로게이머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변화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연구할 줄 알았기에, 지난번 결승전과 월드 SC 그랑프리 4강전에서 자신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프로리그는 기본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개인리그의 다전제에서는 준비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최영준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그래, 영준아.”
쌍성전자의 감독 하영훈이 반색을 하고 대답했다.
“제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준비했잖아.”
“그래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번번이 고비마다 떨어졌던 것 같아요.”
“…….”
“다음엔 더 열심히 할게요.”
“……그래, 그런 마음가짐 좋아. 그리고 아직 진 거 아니니까 약한 마음먹지 말고 가자. 알겠지?”
“네.”
시간이 되자 최영준은 다시 부스로 향했다. 어쩌면 마지막 게임이 될 수도 있는 3세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3세트가 시작됐습니다. 경기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모든 분들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신 선수가 패하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저 최영준 선수가 인류에게, 그것도 다전제에서 패하는 것도 상상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아, 그렇죠! 인류 선수 중에서 최영준 선수를 다전제에게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인 선수는 미국의 마이클 조셉밖에 없잖습니까? 그 외에는 3대 2 스코어도 나온 적이 없어요!
-새삼스럽게 이신 선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겠네요.
-이신 선수가 정말 준비를 많이 해 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즉흥적으로는 할 수 없는 치밀성이 느껴지거든요.
-최영준 선수,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기대됩니다. 자, 최영준 선수는 11시, 이신 선수는 5시입니다. 세로 방향이죠.
초반의 깜짝 카드는 없었다.
다만 최영준은 정찰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하여 거신병기 2기를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두 길목에 각각 배치했다.
정찰을 들어가려다가 거신병기를 보자마자 이신은 건설로봇을 빼버렸다.
다른 길목에도 거신병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신은 건설로봇 1기를 추가로 투입했다.
2기를 겹쳐서 집어넣었다.
거신병기의 공격에 1기가 터졌지만, 다른 1기는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신 선수, 정찰을 중요시 여기는 듯 일꾼 2개를 투입해서 기어코 집어넣고야 맙니다. 일단 앞마당에 확장 기지가 없는 걸 확인했습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 거신병기를 모아주고 있는 걸 확인했죠.
최영준은 거신병기를 본진 구석에 숨겼지만, 이신은 꼼꼼한 정찰로 기어코 확인해냈다.
“와아아아!!”
정찰 성공만으로도 이신의 팬들이 환호했다.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펼친 이신은 이어서 고속전차를 뽑았다.
2개의 기갑 정거장에서 기동포탑과 고속전차를 꾸준히 생산하는 이신.
그러면서 기갑 정거장도 더 늘려 지었다.
마침내, 고속전차들이 또다시 출발했다.
-다시 갑니다! 최영준 선수로서는 2세트의 악몽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길목에 지뢰를 심은 뒤에 곧바로 확장 기지를 체크하겠죠.
-어, 하지만 최영준 선수는 2번째 확장 기지를 아직 안 가져가고, 대신 물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건 2세트와 다르네요.
-최영준 선수가 타이밍을 잡고 있는 겁니다. 2번째 확장 기지를 가져가면 또 지겹게 견제에 시달릴 게 뻔하거든요! 그래서 아예 지금부터 물량을 모아 승부를 보겠다, 이겁니다!
이신은 지뢰를 깔아 맵 시야를 밝히면서 2번째 확장 기지를 가져가고 있었다.
지뢰를 매설한 고속전차들이 정찰을 다니며 최영준의 확장 기지를 살폈다.
하지만 최영준의 확장 기지가 보이지 않았다.
‘앞마당 다음에 확장 기지를 안 가져갔어?’
이신의 안색이 변했다.
확장 기지가 아직 없다는 것은, 확장 기지를 구축할 자원으로 병력을 더 뽑았다는 뜻이었다.
2번째 확장 기지를 구축하는 상대를 물량으로 밀겠다는 뜻!
그 타이밍은 바로…….
-갑니다!
-최영준 선수가 뛰쳐나왔습니다!
-정찰선과 함께 출진하면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해나갑니다!
-어디로 진군하는 겁니까? 예, 그렇죠! 이신 선수의 6시 확장 기지로 향합니다! 새로 얻은 2번째 확장 기지부터 밀어버려야죠!
-최영준 선수, 아직도 2번째 확장 기지를 안 가져갑니다! 참회실을 늘려 짓고 병력만 계속 뽑고 있어요! 이건 완전히 끝장 보겠다는 겁니다!!
-물량 폭발합니다!
광기신족 최영준.
광기라는 수식어가 붙게 한 엄청난 병력 물량이 진격했다.
정찰선을 앞세워서 지뢰밭을 무난하게 통과한 광신도·거신병기·대사제 병력이 이신의 6시 확장 기지로 향했다.
이신 역시 6시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기동포탑들이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고 포격모드로 전환했다.
고속전차들은 6시 진입로에 지뢰를 깔았다.
그렇게 만반의 태세를 갖췄을 때였다.
최영준의 병력이 돌연 방향을 바꿔, 이신의 본진 쪽으로 향해 달렸다.
-어?! 방향 전환! 방향을 돌려서 이신 선수의 본진으로 향합니다!
-이건 1세트 때의 양상이 거꾸로 뒤바뀐 거죠?!
-이신 선수도 본진을 지키려 병력 일부를 회군시킵니다!
-병력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신 선수!
인류는 신족보다 훨씬 싸울 때의 위치 선정이 중요했다.
기동포탑의 포격모드 때문이었다.
사거리가 긴 대신, 근거리 공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덕 위 같은 보호받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최영준은 그걸 노리고 급격히 타깃을 이신의 본진 방면으로 바꿨다.
이신은 급히 앞마당 통로를 심시티로 바리케이드치고, 그 뒤에 기동포탑들을 배치했다.
-방어태세 잘 됐습니다! 최영준, 그냥 들어갈 겁니까?
-들어갑니다!!
최영준은 거침없이 돌격했다.
길을 막는 건물을 부숴버리고, 광신도들이 저돌적으로 파고들었다.
대사제들이 기동포탑의 밀집한 곳에 전격마법을 퍼부었다.
하지만,
퍼퍼퍼퍼펑―!!
앞마당을 지키는 기동포탑들도 만만찮은 화력으로 거신병기들을 녹여버렸다.
건설로봇들까지 뛰쳐나와 블로킹을 했고, 추가 생산된 고속전차들이 광신도들을 하나둘 잡아냈다.
치열한 전투!
최영준은 자신의 진가를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추가 병력이 계속해서 전투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물량의 행렬!
-정말 대단합니다! 저게 본진과 앞마당의 자원을 쥐어짜며 쏟아내고 있는 물량이죠!
-지금 이 시간대에 나올 수 있는 병력의 최대치네요.
-이신 선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죠?!
최영준은 기어코 이신의 앞마당을 장악했다.
방어선이 계속 밀리는 바람에, 앞마당의 확장 기지가 가동이 중단되었다.
통제사령부 건물을 공중에 띄워 이동시키고, 건설로봇들을 전부 본진 안으로 대피시켰다.
-앞마당 확장 기지를 들게 만들었습니다!
-계속 본진까지 밀고 가나요?!
-밀죠! 밀어야죠!
앞마당을 밀었지만, 그렇다고 확장 기지를 완전히 파괴시킨 건 아니었다.
통제사령부 건물과 건설로봇들만 무사하면 언제든 다시 확장 기지를 재구축하고 바로 자원 채집이 가능한 것이 인류였다.
끝장을 보기로 한 이상, 최영준은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본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두들기면서, 최영준은 수송기 2기를 준비했다.
수송기 2기에 광신도 8명을 태웠다.
그리고 이신의 본진, 포격모드가 되어 있는 기동포탑의 머리 위에 드롭했다.
기동포탑이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 못하는 약점을 찌른 플레이였다.
이신은 고속전차로 광신도들을 처치해나갔다.
최영준은 계속 소송기로 병력을 본진에 실어 날랐다.
그러면서 출입구로도 최영준의 병력이 밀어닥쳤다.
최영준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신 역시 미칠 듯한 디펜스로 버텨내면서, 한 수를 발휘했다.
6시 확장 기지에 있던 고속전차 7기가 최영준의 본진을 향해 질주했다.
최영준은 빨리 생산되는 광신도만 뽑아서 추가 투입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진과 앞마당을 지키는 건 광신도들밖에 없었다.
-이신 선수가 파고듭니다!
-광신도들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광신도들이 제대로 길을 막고 있어요!
고속전차들과 광신도들의 싸움!
고속전차들이 지근거리에 지뢰를 깔자, 광신도는 잽싸게 고속전차들에게 가까이 붙었다.
광신도를 보고 발동된 지뢰가 가까이 있던 고속전차들까지 함께 폭사시켰다.
퍼어어엉!!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
“최영준!!”
-지뢰 역대박!!
-이번 경기는 최영준 선수가 가져가나요?!
그런데 살아남은 고속전차 2기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광신도들의 대열이 흐트러진 틈을 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통과!
앞마당에 침투한 고속전차 2기가 날렵하게 치고 빠지며 앞마당에서 자원을 채집하던 신도들을 사살했다.
다수의 광신도들이 그 고속전차들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고속전차들은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치고 빠지며 신도들을 계속 잡았다.
절묘하게 광신도들을 피해 다니며 신도만 쏙쏙 뽑아먹듯이 사냥했다.
-어어어!
-겨우 2기한테?! 겨우 2기뿐인데 일꾼 피해가 너무 커집니다!!
-가뜩이나 바짝 자원을 쥐어짜는 최영준인데요, 일꾼이 털리면 안 되죠!
그것은 컨트롤의 극한.
이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컨트롤이었다.
광신도들 틈바구니를 잘도 빠져나가며 신도들을 사냥.
광신도들의 포위망이 물샐 틈 없이 갖춰지자, 신도들에게 가까이 붙은 채 지뢰를 매설했다.
광신도들이 접근하자 지뢰가 발동되었다.
‘아차!’
최영준은 급격히 광신도들을 뒤로 뺐다.
하지만 늦었다.
지뢰가 폭발했다.
퍼어어엉!!
근처에 있던 신도들까지 휘말려버렸다.
관객들의 비명과 환호와 고함이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