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분투(1)
마침내 기다렸던 빅 매치가 성사되었다.
이신과 제자들을 필두로 한창 떠오르는 올도어SCC.
그리고 철벽괴물 박영호가 버티고 있는 작년 준우승팀 JKT.
두 팀의 대결은 인류 제국과 괴물 제국의 전면전이라 일컬어졌다.
올도어SCC는 세계 e스포츠의 신으로 군림한 이신을 필두로 주디, 차이, 존 등 세 제자가 모두 1군에 군림하는 엄청난 인류 라인업을 자랑했다.
심지어 은퇴한 레전드 인류 플레이어였던 최환열조차 수석코치로 기용하면서, 그야말로 인류 제국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을 지경이었다.
반면, JKT는 오래 전부터 괴물의 강세라는 뚜렷한 팀 컬러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괴물 종족 특유의 공격성을 좋아하는 골수팬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전통의 강팀이었다.
그 괴물 제국을 떠받드는 기둥은 철벽괴물 박영호.
또한 지난 개인리그에서 16강에 진출했던 진철환도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27세의 베테랑 프로게이머 오성준이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통산 개인리그 우승 2회, 월드 SC 그랑프리 동메달 2회.
그런 엄청난 커리어를 쌓은 오성준은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작년 중순에 공군 프로팀에서 제대하고 친정팀인 JKT로 돌아오고부터 다시 놀라운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내로라하는 후배 선수들이 많아 출전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깜짝 카드로 출전했을 때 엔트리 전략이 빗나가는 바람에 하필이면 최영준과 맞붙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성준은 광기신족 최영준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때를 기점으로 그를 좋아하고 응원했던 올드 팬들이 돌아왔고, 자신감을 얻은 오성준은 2021년에 주전으로 다시 나타나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이신에 이어 오성준의 부활.
이러다 최환열도 현역에 복귀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
* * *
?
선수 대기실.
190㎝의 장신에 체격도 매우 좋은 거구의 오성준은 오늘따라 유독 과묵했다.
신인 시절부터 줄곧 사용해 온 기계식 키보드를 청소할 뿐이었다.
키 캡을 뽑아 내부 먼지를 털어내는 이 일련의 행동은 그의 징크스와 같았다.
원채 키보드 마니아였던 그는 자기가 직접 커스텀해서 만든 이 기계식 키보드를 애지중지했고, 이 키보드의 내부가 깔끔해야 게임이 잘 풀리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형, 뭐함?”
박영호가 불쑥 안으로 들어와서 말을 걸었다.
“엔트리는?”
“아직 안 나왔음.”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젠장.”
“어쩔 수 없잖아. 그놈의 불법 배팅이 뭔지.”
본래는 며칠 전에 양 팀의 엔트리가 공개되곤 했다.
그러면 상대를 미리 알고서 맞춤 전략을 구상하여, 치열한 두뇌싸움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법 배팅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생충들이 e스포츠 경기를 배팅 종목으로 이용하면서 그러한 e스포츠 풍토에 큰 제약을 가하였다.
배팅 방지를 위해 경기 직전까지 엔트리를 공개하지 않게 된 것.
결국 미리 짜놓은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싸우던 지략가형 프로게이머들이 몰락했고, 기본기와 정석 위주의 프로게이머들이 득세했다.
당연히 비슷한 양상의 경기들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사전 준비도 없이 특색 있는 전략을 즉흥적으로 구사하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었다.
“누구랑 붙었으면 좋겠어?”
박영호가 은근히 물었다.
오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유진영과 붙는 편이 좋겠지.”
괴물 대 괴물 전은 대게 일찍 승부가 끝나 버리고, 컨트롤이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에 오성준이 가장 강력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에이, 누구랑 붙고 싶냐고.”
“…이신.”
“오, 진짜?”
“…….”
오성준은 더는 입을 열지 않고 말을 아꼈다.
한국 e스포츠 역사에서 적수가 없는 최강자로 군림했던 선수를 논할 때, 오성준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대다수의 네티즌이 논하는 1대 최강자는 최환열.
개인리그 우승 3회, 준우승 2회, 월드 SC 그랑프리 은메달, 동메달 획득.
세계가 알아주는 최환열은 몰락한 한국 e스포츠의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또한 괴물을 상대하는 인류의 전략 상당수를 정립하여서, 인류를 진정한 괴물의 천적으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런 최환열을 권좌에서 몰아내며 등장한 것이 바로 오성준이었다.
개인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월드 SC 그랑프리 동메달 2회 획득.
인류에게 맥을 못 추던 괴물에게 오성준은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인류 플레이어들이 득세하던 시절, 혼자서만 인류를 연파하던 괴물 플레이어가 바로 오성준.
그는 끝내 최환열까지 꺾고서 2대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인류를 상대하는 괴물의 전략·전술을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괴신.
괴물의 신의 줄임말로, 오성준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가 되었다.
오성준은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운영을 펼쳤지만, 목숨을 걸고 덤비는 황병철과 달리 자잘한 견제 플레이로 운영상의 이득을 취하는 스타일을 띠었다.
끊임없는 견제로 계속 데미지를 입혀 끝내 인류의 거인 최환열마저 녹다운시킨 것이었다.
그 뒤로도 오성준은 최환열과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지만, 그 양상은 뜬금없이 나타난 신인 한 명에 의해 무너져 버렸다.
바로 이신.
최환열과 오성준, 둘 중 누가 과연 우승패를 거머쥘 것인지가 주목되었던 개인리그가 갑자기 첫 출전한 신인에 의해 평정되었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 신인은 최환열과 싸우고 오성준과도 싸웠는데, 우승에 이르기까지 단 한 세트도 지지 않았다.
그 경이적인 포스는 최환열과 오성준을 전부 옛날이야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성준은 승부욕이 강했다.
자신의 전성기가 다 지나간 추억으로 회자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오성준은 다시 최강자의 자리를 되찾고자 끊임없이 이신에게 덤볐다.
0승 9패라는 처참한 전적이 오성준에게 주어졌다.
이신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의 대적자인 황병철까지 나타나면서, 오성준은 완전히 톱클래스의 일선에서 밀려나 버렸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바로 견제 위주의 공격적인 이신의 스타일이 오성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최환열의 단단한 진용을 분쇄시켜 나가는 오성준의 폭풍 견제를 보면서, 이신은 인류도 저렇게 플레이하지 못하나 고민하게 되었던 것.
그 결과는 사상 최고의 공격 템포를 자랑하는 인류 플레이어 이신으로 나타났다.
‘정말 이겨보고 싶다.’
오성준에게 이신은 넘고 싶은 벽이었다.
공군 프로팀에 함께 있을 때도, 오성준은 연습 게임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신에게 도전했었다.
이신이 손목을 다쳐 은퇴했을 때 오성준은 누구보다도 서글프게 울었다.
그 뒤로는 의욕을 잃은 채 차츰 프로게이머의 삶을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신의 부활은 은퇴를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오성준을 붙잡았다.
다시 한 번 붙고 싶었다.
너무나 강했던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이신을 꼭 한 번 이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JKT 입장에서 오성준과 이신이 만나는 건 최악의 매치였다.
차라리 이신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박영호가 나았다.
그런데 그때, JKT의 최용훈 감독이 선수 대기실에 나타났다.
최용훈 감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엔트리가 나왔다.”
오성준은 기대 어린 눈길로 최용훈 감독의 손에 들려 있는 A4용지를 바라보았다.
‘제발, 이신! 이신이기를.’
“먼저 1세트, 불모지는…….”
오성준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오성준은 바로 1세트에 출전을 한다.
최용훈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성준아.”
“예?”
“이신 이길 수 있겠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이신이요?”
오성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놈이 아예 작정을 했는지 괴물 맵인 불모지에 나왔다.”
1세트 맵 불모지.
괴물에게 매우 유리한 맵으로, 올도어SCC로서는 이 맵에 출전시킬 선수가 마땅치 않았다.
신족을 내자니 그냥 지자는 뜻.
그렇다고 괴물인 유진영을 내자니, 오성준과 박영호 등 유진영보다 괴물 대 괴물 전에 능한 선수가 JKT에 둘이나 있었다.
그래서 낸 선수가 바로 비장의 카드인 이신.
어떤 맵에서 누구와 싸우든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에이스였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오성준은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제가 반드시 이길 겁니다.”
신께 감사했다.
신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맵도 볼모지로 안성맞춤! 그야말로 한 번 이겨보라고 운명이 오성준에게 웃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오성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
?
-여러분,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이 두 선수가 또 만났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매치가 성사되었어요.
-그렇습니다. 괴신 오성준! 그리고 게임의 신 이신! 정말 3년 전으로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은 풍경입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오성준 선수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지요?
-예, 이신 선수와 만나게 해주어서 신께 감사한다고 했지요. 정말 한국 e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인 오성준 선수인데요, 그런 오성준 선수에게 이신은 정말 넘고 싶은 벽이었거든요!
-예, 이신 선수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은 오성준 선수입니다. 최강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이 바로 이신이거든요! 오늘 마침내 설욕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두 선수의 사이를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공군 프로팀에 함께 있을 때도 절친했고, 사적으로도 좋은 선후배 관계였다고 합니다.
-에이, 그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이신 선수라고 ‘성준이 형 안됐는데 한 번 져 줄까?’ 하지는 않거든요!
-아유, 그러기는커녕 더 화려하게 이기고 싶어서 안달인 선수죠, 이신 선수는.
해설진의 목소리가 첫 세트부터 매우 흥분된 가운데, 경기장의 분위기도 소란스러웠다.
“이신 파이팅!”
“신 오빠 이겨라!”
“카이저! 카이저!”
“성준이 형 짱 드셈!”
“오성준 파이팅!”
이신교의 광신도들과 오성준의 올드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광란을 일으켰다.
특히 오성준의 올드팬들은 이신에 대해 감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오성준을 매번 만날 때마다 한 번도 안 져주고 짓밟아 버린 철천지원수였기 때문.
그런데…….
?
[Kaiser : 랜덤] [Krazy : 괴물] [맵 : 불모지]?
오성준은 종족을 골랐는데, 이신은 여전히 랜덤(random) 상태였다.
?
-Observer :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준비되셨나요?
-Kaiser : go.
-Krazy : go.
?
두 선수 모두 준비되었다고 어필했다.
게임을 중계하는 옵서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신은 지금 종족을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속 준비가 되었다고 ‘go’를 치니…….
이신도 실수를 할 때가 있구나 하고 옵서버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
-Observer : 이신 선수, 종족을 선택해 주세요.
?
그리고 이신은,
?
-Kaiser: go.
?
단호하게 go 사인을 계속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