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초빙(1)
TV에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어도 모르고 예능을 좋아할 나이도 아닌 76세의 늙은 장첸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방송을 보았다.
장첸이 이 방송을 보는 이유는 TV에 시선을 빼앗긴 어린 손자 때문이었다.
장양은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입에서 침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TV에 몰두하는 장양은 12세의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장첸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꺼내 손자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주었다.
가만히 있는 장양이지만, 할아버지의 손이 시선을 방해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뿌리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장첸은 조금도 섭섭한 눈치가 아니었다.
“녀석……. 그리도 좋을까.”
장첸은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손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많은 것을 이룬 장첸이었다.
아들 내외는 북경에서 사업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자폐증에 걸린 손자를 돌봐줄 사람은 장첸뿐이었고, 그것이 은퇴한 장첸의 유일한 삶의 낙이기도 했다.
“아아……!”
장양이 나지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TV 화면에는 젊고 잘생긴 남자가 나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현란하게 조작하며 플레이하는 저 남자는 이신.
손자 장양은 2년 전부터 저 한국인 프로게이머에게 푹 빠져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조작법을 스스로 익히면서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옛날처럼 블록 쌓기를 하며 하루 종일 보내는 것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도 하고 인터넷으로 이신 관련 영상을 찾아다니면서 보내는 편이 훨씬 좋았다.
“하아…….”
장첸은 한숨을 쉬었다.
손자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자신도 자식 내외도 죽고 없으면 누가 손자를 돌봐준단 말인가.
손자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건 장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작이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언제 등 돌릴지 모르는 일.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손자 장양이 게임에 있어서 천재라는 사실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장양을 위해 e스포츠의 관계자를 불러 봐달라고 했는데, 손자가 게임하는 모습을 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천재라고 입을 모았다.
당연히 프로게이머를 시켜볼까 생각도 했다.
게임을 하찮게 여기던 옛날과 달리 지금 중국은 e스포츠에 매우 열광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정된 영토와 자원을 놓고 상대와 지략을 겨루는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테마는 중국인의 취향에 딱 맞았다.
장첸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손자 장양을 프로게이머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장양은 결국 정신질환 탓에 단체 생활에 적응을 못 하였다.
그 뒤로는 후유증이 더 심해져서 웬만해서는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지금처럼 함께 TV를 볼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정확히는,
‘저자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장첸은 TV 속의 이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도 손자가 좋아하다 보니 장첸도 모를 수가 없었다.
듣자 하니 전 세계를 통틀어도 적수가 없는 e스포츠 최고의 영웅이라고 했다.
심지어 신으로 추앙받는다고 했던가.
장첸은 손자를 위하여 이신이라는 저 남자를 몇 번이고 중국에 데려오려고 손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거액을 제시해도 도무지 이신은 중국 리그로 진출하려 하지 않았다.
대체 한국이 뭐가 좋아서 저 좁은 우물 속에 머무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으로 안 되는 이상 장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힘으로도 될 일이 아닐 터이니…….’
장첸은 초조하게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TV 속의 이신은 냉정한 눈길로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신이 바라보는 모니터 개인 화면은 도무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화면이 휙휙 바뀌어서 늙은 장첸으로서는 현기증마저 날 지경이었다.
“아아……!”
장양이 신음을 토했다.
“좋으냐?”
장첸이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장양은 할아버지의 질문을 무시했다.
하지만 이신의 플레이에 푹 빠져 있음은 틀림없었다.
-쫘아악!
-쫘악!
스텔스 전투기가 여왕괴물 무리를 신속하게 격살하고 있었다.
“허허!”
장첸도 나직이 감탄했다.
손자와 지내다 보니 그도 이제는 약간이나마 게임을 볼 줄 알았다.
미니 맵의 상황을 보면 이신이 얼마나 심각한 판도를 뒤집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고 못생긴 상대 선수가 총력전을 퍼부었다.
이미 미니 맵을 거의 장악한 상대 선수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텔스 전투기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와도 같았다.
집요하게 움직이며 물고 늘어져 끝내 승리를 만들어냈다.
장첸이 이 게임의 상황을 잘 아는 이유는 이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기 때문이었다.
이신과 관련된 영상물은 손자를 방 밖으로 꼬셔내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손자는 게임이 끝난 뒤에도 멍하니 TV를 보니 이윽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 게임을 할 거라는 것을 장첸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 있나?”
장첸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바깥에 있던 한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부르셨는지요, 노사(老師)님.”
“저 친구 말이다.”
“이신이요?”
“그래.”
여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첸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실패했던 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리라.
“도저히 데려올 방법은 없는 건가?”
“한국 프로팀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젠 중국에 데려올 수 있는 여지가 더욱 없어졌습니다.”
“허허, 내가 이리도 원하는데도 데려올 수 없다니.”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냐.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우리 손자가 좋아하는 것이고.”
장첸은 의자의 팔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그럼 단 며칠이라도.”
“네?”
“단 며칠이라도 와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아라.”
“…….”
“잠깐이라도 좋으니 우리 손자 좀 만나주면 안 되겠냐고 정중히 청해라. 대가는 얼마든 좋다.”
“네.”
장첸의 간절함이 묻어 나오는 지시였다. 대답하는 여성의 표정에 굳은 의지가 보였다.
?
* * *
?
“…라는 요청이 왔는데요.”
“안 갑니다.”
이신은 지수민의 말에 간단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꽤나 거액을 부를 것 같던데 정말 생각 없으세요?”
“시즌 중에 어딜 갑니까?”
“어휴, 아까워라. 정말 생각 없으세요? 단 며칠이라도…….”
“일어나겠습니다.”
이신은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로 돌아갔다.
지수민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까워 죽겠네. 그 장첸의 손자라는데.’
장첸.
중국 공산당의 전 간부로 한때 중국 대륙을 움직였던 실력자였다.
점잖고 겸손한 인품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고, 깨끗이 은퇴한 지금도 북경의 수많은 실력자들이 노사라 부르며 존경하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만약에 이번 일로 인연을 맺어두면, 올도어의 중국 쪽 사업은 탄탄대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아무리 해봐야 이신이 들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미 일전에도 장첸 측에서 중국 프로팀들을 움직여 이신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이신은 한국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신이 손목을 다쳐 은퇴했던 시기에도 제안을 했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장첸이 상당히 간절하게 원했다고 봐야 했다.
그때 이신은 집에서 두문불출하느라 모든 연락을 거절했지만 말이다.
지수민은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올도어의 지수민입니다.”
-네, 어떻게 됐죠?
중국인임에도 여성의 한국말은 상당히 발음이 정확했다. 마치 같은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이신 감독님께서 정중히 거절을 하셨습니다. 프로리그가 진행 중인 바쁜 시기라 불가능하다고 하시네요.”
-…….
분노인지 당혹인지 상대 여성은 말이 없었다.
“좋은 제안 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꺼내보도록…….”
-제가 가겠습니다.
“네?”
순간 지수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직접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신 감독님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여성은 똑 부러지게 말하고는 통화를 끊어버렸다.
“아이 참, 와서 어쩌겠다는 거야.”
지수민은 울상이 되었다.
직접 면전에서 이신 특유의 냉정한 칼 거절을 받으면, 이신뿐만이 아니라 올도어에 대한 감정도 안 좋아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라?’
문득 지수민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데 아까 잠시 후라고 하지 않았었나?’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본사 사무실에서 부사장으로서의 업무를 보고 있던 지수민에게 전화가 왔다.
-뵐 수 있겠습니까?
낮에 통화했던 그녀 특유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디신데요?”
-1층입니다.
“저희 본사요?”
-네.
“지금 당장 내려갈게요!”
지수민은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었던 여자가 벌써 아래에 와 있다니, 그녀가 누구를 수행하는 여자인지를 생각하면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본사 건물 1층에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수행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와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긴 머리가 허리까지 이르렀고, 약간 마른 듯한 유려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큰 키에 굽 높은 하이힐까지 신어서 웬만한 남자의 키를 훌쩍 넘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낸 긴 다리는 같은 여자가 봐도 부러웠다.
마치 영화배우 같은 자태로 나타난 여성은 급히 내려온 지수민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리쟈입니다.”
“지수민이에요.”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이윽고 리쟈가 말했다.
“올도어SCC의 연습실로 가보고 싶네요.”
“네, 따라오세요.”
세 사람은 함께 본사 안에 있는 올도어SCC의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은 한창 선수들이며 연습생이며 가릴 것 없이 훈련에 몰두 중이었다.
코치들이 돌아다니며 선수들의 플레이를 확인하고 있었고, 그것은 수석코치 최환열도 마찬가지였다.
“어, 단장님?”
최환열이 지수민 일행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했다.
지수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석코치님, 여기는 감독님을 찾아온 손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면서 최환열은 여자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압도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나직해졌다.
“신이는 지금 훈련 중인데…….”
“죄송하지만 감독님을 좀 불러주시겠어요?”
지수민이 부탁했다.
최환열은 훈련을 방해받는 걸 극히 싫어하는 이신의 성격을 잘 알았지만, 손님이 직접 찾아온 이상 거절하지도 못해서 곤란함을 느꼈다.
그런데 리쟈가 입을 열었다.
“아뇨,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오후 훈련 ?〕し존?아직 멀었는데…….”
“괜찮습니다.”
리쟈는 게임에 극도로 몰두하고 있는 이신을 보며 말을 이었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다뤄봐서 익숙합니다.”
리쟈.
장첸을 곁에서 수행하는 그녀의 주된 역할은 자폐증을 앓는 그의 손자 장양을 돌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