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초빙(2)
“전 여기서 기다릴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리쟈는 오후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듯, 아예 토트백에서 태블릿PC를 꺼내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지수민은 중국에서 온 손님을 이대로 푸대접할 수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제가 감독님께 양해를 구할게요.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무시하실 분은 아니에요.”
“아뇨, 방해하면 화가 난 채로 저를 대하겠죠. 그냥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기 시작하는 리쟈였다.
그렇게 기다림이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훈련 중에 종종 쉬러 휴게실에 온 선수들이 리쟈를 보고 흠칫 놀랬다.
워낙 미모의 여성인지라 나이 어린 선수들의 방심을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선수들은 저 여자 누구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연습실이 부산스러워지자 마침내 이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인마, 너 손님 왔어.”
최환열이 선수 휴게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말 안 했어?”
“너 훈련하는 거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그냥 기다리더라. 꽤 오래 기다렸어.”
‘생각은 제대로 박혀 있군.’
손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신은 마음에 들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차피 곧 있으면 식사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끝내야겠군.’
이신은 훈련을 접고 휴게실로 향했다.
리쟈는 이신이 나타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이신 씨.”
리쟈는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예,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네, 중국에서 왔습니다.”
그제야 이신은 아침에 받았던 제안이 떠올랐다.
“프로리그 시즌 중이 아니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들어보셨나요?”
“높으신 분의 자제 분께서 저를 보고 싶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예.”
리쟈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렇게만 들으셨으니 저희가 아주 무례해 보였겠군요.”
“예.”
이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쟈가 해명했다.
“저희는 귀하신 분의 철없는 아들의 변덕 때문에 한창 경기 중이신 이신 씨를 초청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보다 조금 더 절박합니다.”
“절박?”
“제가 모시는 노사님의 손자 분은 장양이라고 합니다. 이제 12세가 되었고, 자폐증입니다.”
“…….”
“장양이 이신 씨를 좋아합니다. 늘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내지만 TV에 이신 씨의 영상을 틀어주면 그제야 나오죠. 그게 노사님께서 손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이신은 입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하니 아무리 이신이라도 단칼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리쟈는 스윽 날카로운 눈매로 이신을 응시하더니 다시 말했다.
“이신 씨가 중국에 온다면 외출도 좀 더 자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프로팀들에게 이신 씨를 영입하도록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손목이 부러지시고도 오지 않으시더군요.”
‘그땐 아무런 연락도 받지 않았으니까.’
외부와의 연락 일체를 끊고 살았다. 직접 집으로 찾아오지 않는 한 만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혹여 중국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어쩐지 그때 당시 유난히 중국 프로팀들이 엄청난 거액을 제시하곤 했었다.
결국 타국에서 지내기가 귀찮아서 안 갔지만 말이다.
“그럼 바쁜 와중임은 충분히 알지만, 시간을 내어 단 며칠이라도 저희의 초청을 받아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사연은 안타깝지만…….”
“라스베이거스 이벤트 매치에 초청받으셨을 때, 얼마를 받으셨죠?”
“…100만 달러였습니다.”
“한화로는… 대략 11억 정도로군요?”
“예.”
그리고 승리수당으로 100만 달러를 추가로 벌어들였었다.
“비행기로 왕복했으니 대략 이틀에 11억을 버셨군요.”
“……?”
“그 정도로 이신 씨의 시간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틀에 11억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제가 정신과 의사로 보입니까? 아니면 돈 받고 애와 놀아주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런 뜻만이 아닙니다!”
리쟈가 화가 난 듯이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테이블에 놓아둔 태블릿PC를 꺼내들었다.
“뭡니까?”
“장양의 플레이 영상입니다.”
“자폐증 손자?”
“네.”
그러면서도 리쟈는 대놓고 자폐증이라 부르는 이신에게 눈을 흘겼다.
그것은 한 왜소한 소년이 인류 종족을 골라 플레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개인화면이 아니라, 아예 뒤에서 소년이 기기를 조작하며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신은 깜짝 놀랐다.
그는 살면서 자신보다 손이 빠른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게 겨우 12살이라고 했다.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장발에 창백한 피부만 빼면 번듯하게 생긴 소년.
잘 먹지 않아서 마른 체격을 한 소년은 그야말로 기계처럼 게임을 했다.
이신은 잠깐만 보고도 소년, 장양이 자신의 플레이를 완전히 똑같이 따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시티와 병력 배치 등이 거의 완전히 자신의 스타일과 일치했다.
아니,
‘저건 박영호랑 했던 게임이잖아?’
예능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어서 화제가 되었던 그 명경기에서 이신이 보여준 플레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었다.
심지어 상대는 그때의 박영호와 전략이 달랐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상대가 뭘 하든 상관없이 자기 할 것만 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상대인 괴물 플레이어가 쐐기충을 대거 이끌고 쳐들어오자, 보병·의무병 병력으로 무섭게 대응했다.
쐐기충이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각성제를 흡입하며 총기난사.
언덕 너머로 도망치는 쐐기충들을 레이더를 찍어 시야를 밝히며 끝까지 사격해 몇 마리를 더 격추시켰다.
기계처럼 정확한 컨트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
컨트롤과 순간 반응이 초인적인 지경이었다.
다만 게임 전체를 바라보는 전략적인 시야가 개판이었다.
소년은 상대와 상관없이 자기 할 것만 끝까지 했다.
워낙에 기계처럼 병력을 잘 뽑고 무서운 컨트롤로 무장한 탓에, 상대가 먼저 덤볐다가 나가떨어졌지만 말이다.
“어떻습니까?”
동영상이 끝나고 리쟈가 물었다.
이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중국의 프로 팀들은 천재라고 추켜세우지 않았습니까?”
“네, 맞습니다.”
리쟈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어 말했다.
“이신 씨 당신에게 비견될 수 있는 재능이라고 말했습니다.”
“게임의 기본 개념만 좀 더 가르칠 수 있다면, 이라고 했겠지요?”
“네,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그건 자폐증이 치료된다면, 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네?”
“이건 게임을 한 게 아니라 게임 상에서 자폐증 증상이 나타난 겁니다.”
“뭐라고요?”
이신은 태블릿PC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플레이가 아니라 병입니다.”
이신의 말에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이 보였다.
“그럼 어떡해야 하는 건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신은 정지된 영상 속의 소년 장양을 보며 말을 이었다.
“종족을 바꿔보면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제는 인류가 방어의 종족이라는 점이었다.
세 종족 중 가장 피동적인 인류를 선택했으니,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자폐증 기질이 도지는 것이었다.
인류는 건물과 병력의 배치로 효율적인 디펜스를 구축하는 재미가 각별했다.
장양은 거기에 빠져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상대가 알아서 공격을 와주니 그것만 막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마치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듯이 수동적인 플레이에 미쳐 있는 것.
하지만 종족을 괴물로 바꿔보면 어떨까?
방어보다 공격에 특화되어 있고, 필연이 병력을 계속 활발하게 움직여주며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능동적인 종족이라면?
필연이 공격을 위해 상대를 살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고 허를 찔러야 한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점도 있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게임을 합니까?”
“네, 자제를 할 줄 모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는 편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보다 낫고요.”
이신은 답답함을 느꼈다.
저렇게 기계처럼 게임을 종일 반복하게 놔두는 게 정답이라고?
저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는지 이신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엄청난 손 빠르기는 겨우 12세의 소년에게서 나올 수가 없는, 나와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몇 군데 병신이 되겠군.’
이신은 손목 습격 이전에 이미 직업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치유의 힘이 정신질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으니까.’
다음에 잡혀 있는 프로리그 경기의 상대는 바로 MBS.
방진호 감독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MBS는 올해 최약체. 이신이 나설 필요도 없는 경기였다.
잠시 생각해 본 끝에 이신이 말했다.
“나흘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리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문해 주실 수 있는 시기를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정중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바로 가지요.”
이신은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장양의 안쓰러운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컨트롤과 피지컬로 괴물을 하게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였다.
?
* * *
?
결국 MBS 전은 최환열에게 맡겨 버리고 이신은 북경으로 향했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리쟈와 함께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그들은 리쟈와 이신에게 인사를 하고는, 두 사람의 짐을 대신 들어주었다.
이신은 짐을 사내들에게 맡기고 준비된 차량에 탔다. 운전사를 고용하고 있는 탓에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북경의 교통상황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차들이 하나같이 레이스를 펼치듯이 차선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질주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리쟈는 익숙한 듯 태블릿PC를 꺼내 뉴스를 읽고 있었다.
이신은 스멀스멀 밀려오는 멀미 탓에 반지에 마력을 주입해 심신을 안정시켜야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북경 외곽 지역에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
잠시 이신은 관광지에 온 줄로 착각했다.
저택이 워낙 커서 이화원 같은 궁전쯤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중국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데다가 중앙에 커다란 연못이 있어서 더욱 착각을 했다.
커다란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무인도처럼 작은 정자(亭子) 한 채가 있었다.
이게 일개 개인의 집이라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거물인가 보군.’
그때 저택 본채 안에서 수수한 옷차림의 노인 한 명이 나왔다.
저택 관리인쯤 되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런데 리쟈와 사내들이 그 노인에게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리쟈가 나직이 말했다.
“장량 노사님이십니다.”
장량은 이신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해왔다. 왼손으로 오른쪽 주먹을 감싸는 중국 특유의 인사법이었다.
이신도 마주 인사를 했다.
약수터 나온 동네 할아버지 같은 수수한 모습의 장량은 이신을 보며 순박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리쟈와 사내들의 태도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존경 받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